아름지기 함양한옥의 정체성은 바로 전통과 현대의 완벽한 조우에 있다. 채의 배치를 그대로 살리고 자연을 집안으로 끌어들이는 노력을 곳곳에 시도했다. 반면 시스템 창호를 사용해 단열에 신경쓰고 쾌적한 욕실사용을 위한 배려는하는 등고급 호텔형 한옥의 바로미터가 됐다.
아름지기 함양한옥은 경남 함양군 서하면 봉전리의 전형적인 향촌 鄕村 양반 가옥이다. 정선 旌善 전씨 全氏 가문의 7대손 전재학이 구한말인 1866년에 지은 집으로, 안채와 사랑채 등 다섯 동의 기와집으로 이뤄져 있다. 2006년 후손이 한옥을 관리하기 힘들어 재단법인 아름지기에 기부한 이후 재단법인 아름지기는 개관을 위한 증축 과정에서 전문가들의 자문을 거쳤지만 기본적인 건물 배치는 손대지 않았다. 선조들이 처음 집을 지을 당시의 의도를 훼손하지 않기 위해서였다고. 그 결과 아름지기 함양한옥은 그렇게 전통이라는 씨줄과 현대라는 날줄이 촘촘히 엮인 지금의 모습으로 재탄생했다.
장영석 아름지기 사무국장이 이곳의 개·보수를 맡았을 당시 내세운 가장 큰 화두는 ‘한옥의 현대화’였다. 일본의 료칸처럼 ‘고급스러운 한옥’을 아름지기 함양한옥의 전략으로 삼았다. 이를 위해 가장 먼저 개선한 것은 외국인이 한옥을 찾을 때 가장 불편해하는 화장실과 샤워 시설이었다. 각 채마다 쾌적한 화장실을과 현대식 식당, 목욕 시설을 갖췄다. 전통 한옥의 정체성은 지키되 잠자고, 씻고, 먹는 시설은 고급 호텔급으로 격상한 것이다. 아름지기 함양한옥의 세심한 배려와 서비스는 집사 역할을 도맡고 있는 이재천 간사의 공이 크다. 이 간사는 먼저 집의 내력을 설명하고 허브 웰컴 티를 내는 것으로 손님을 맞는다. 여행객이 여장을 풀고 식당에서 조리장이 준비한 저녁을 즐기는 동안 욕조에 목욕물을 받아놓는다. 그리고 손님이 혹여 볼세라 뒤쪽 복도로 이불을 옮겨 이부자리도 깔아놓는다. 이 간사는 “손님들이 신경 쓰지 않도록 모든 서비스를 되도록 눈에 띄지 않게 한다”면서 “최대한의 서비스를 제공하지만 한옥의 멋과 운치를 즐기는 것은 온전히 손님의 몫”이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한옥의 특성상 방의 낮은 천장은 서 있는 사람을 엉거주춤하게 만든다. 하지만 아랫목에 앉으면 흡사 어머니의 품에 안긴 듯 편안함이 밀려온다. 비교적 좁은 공간이 되레 가족과 대화할 기회를 더 많이 만들어 주는 것이다. 아파트에서는 쉽사리 맛보기 힘든 유대감을 발견할 수 있는 셈이다. 각 채와 채가 모여 형성되는 ‘울타리 의식’은 한옥이 현대인에게 선사하는 선물이다.
1 자연에 파묻힌 함양한옥의 사위가 어둑어둑해지면 사랑채의 불빛이 온기로 차오른다.
2 이재천 간사의 큰아들 이정우 군. 아빠를 따라 대들보 거미줄 청소에 열심이다.
3 검정 타일로 마감한 현대적 욕실에 낮은 창을 내 외부 의 자연 경치를 감상하고 빛이 들어올 수 있도록 했다.
여름에는 바람을, 겨울에는 햇볕을 들인다 ‘조선시대’ 한옥은 현대의 주거지로서는 실패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한옥의 고유한 특성은 살리면서 그 가치를 계승해 현대화할 수 있을까. 단순히 춘양목 春陽木(경북 봉화군 춘양면과 소천면 일대에서 나는 소나무로, 목재의 질 이 우수해 한옥 건축재에 쓴다)으로 집을 짓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한옥의 정신과 가치를 담는 것이다. 장영석 사무국장은 한옥의 아름다움, 미를 발견하려면 무엇보다 한옥의 문화 자체를 이해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사실 한옥은 외관만 봐서는 건축적 의미를 헤아리기 힘듭니다. 누구든 먼저 경험해봐야만 알 수 있지요.” 아름지기 함양한옥은 그 이름처럼 감각적인 집이다. 대문을 지나 돌담을 돌아서면 너른 빈 마당에 떨어진 처마 그림자의 조형미에 시선이 머문다. 후원의 대숲에 이는 바람 소리에 귀가 열리고, 고재의 향기가 묵향처럼 은은하게 감돈다. 그리고 뒷산을 배경 삼아야트막하게 엎드려 있는 제 형상처럼 사람을 포근히 품어 마침내 생채기 난 마음을 도닥여주는 듯하다. 안을 들여다보니 창호 窓戶 하나 내는 데도 집 안을 통하는 바람길을 염두에 뒀다. 대청을 만들어 여름에는 바람을, 겨울엔 햇볕을 받아들인다. 또 아름지기 함양한옥의 모든 창호는 열면 바로 ‘자연을 담은 액자’가 된다. “천인합일 天人合一과 물아일체 物我一體라는 도교의 기본 정신은 유교에서도 그대로 통용되는 핵심”이라던 도올 김용옥 선생의 지적은 이곳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자연과 인간은 우주의 일부라는 측면에서 원래 하나이고, 그 때문에 선인들은 자연을 집 안으로 들여 즐기고 소통하려 했다. 아름지기 함양한옥의 누마루에 앉으면 집 안이기도 하고, 수려한 풍경의 숲 속이기도 하다. 안채 건넌방의 창을 열어젖히면 매화나무 위에 내려앉은 산새가 지저귄다. 후원을 향해 난 통창을 열면 큼지막한 대숲 풍경이 펼쳐진다. 이곳을 찾은 이들은 처음에는 주변 관광 명소를 묻지만 막상 방에 짐을 풀고 나면 밖으로 한 발짝도 내딛지 않는다. 안에서 즐길 수 있는 자연과 풍류가 차고 넘치기 때문이다.
장영석 사무국장이 말하는 함양한옥의 가장 큰 멋은 이처럼 한옥이 가진 전통을 창조적으로 계승한 점이라고 강조한다. 주변의 지세를 최대한 살리기 위해 함양한옥을 복원할 때에도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던 널찍한 너럭바위를 옮기지 않고 그대로 그 자리에 두었다. 최근에는 세 식구가 책 스무 권을 싸들고 와서 한 명이 한 채씩 차지하고 들어앉아 책장을 넘기며 고즈넉한 휴가를 보내기도 했단다. 아름지기 함양한옥에 올 때 꼭 챙겨야 할 것은 일상에 바짝 조여진 마음과 머릿속 태엽을 풀어줄 열쇠 하나면 충분하지 않을까. 누마루를 지나는 바람과 처마의 부드러운 곡선, 밤이 되면 사랑채에서 두런두런 나누는 담소가 그 빈자리를 채워줄 것이다.
4 안채 뒤편에는 본디 한옥에는 없는 복도 구조가 있는데 전면이 통유리창이라 대숲을 산책하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우리 집에도 들이고 싶다, 한옥의 美
간접조명이 되는 창호 창호지 바른 문으로 새어 들어오는 빛은 방 안에 은은한 정감 어린 분위기를 준다. 한옥의 문에는 창호지라는 반투명 재료를 사용한다. 자연히 빛이 잘 들고 문을 닫아도 방 안의 조도가 높아진다. 달이 차오르는 밤엔 그 작은 창호로 달빛까지 쏟아져 내리면 이만한 간접조명이 없다. 미세하게 바람이 통하니 방 안 습도가 조절되는 것은 물론이다.
한옥의 일부를 집에 들이다 한옥은 나무, 돌, 흙, 종이로 짓는 집이다. 아파트에 살더라도 이런 자연 소재를 다양하게 활용하면 한옥의 정신적 여유를 즐길 수 있다. 천연 한지 벽지로 방을 도배한다거나 요철 한지를 발라 포인트 아트월을 만드는 건 어떨까. 거실을 넓게 쓴다며 베란다를 확장하는 대신 그 공간에 식물을 키워 집 안에 작은 마당을 만드는 것도 좋다. 대청마루 느낌이 나도록 원목 패널을 깔면, 대청마루에 나앉아 자연을 집 안으로 끌어들인 선인들의 풍류를 즐길 수 있다.
마당을 비워 관계를 맺다 한옥 마당을 떠올려보면 항상 비어 있다. 어디에서도 물건이나 수목으로 빽빽이 채워져 있는 것을 보지 못했다. 그 옛날 조선시대 양반집의 마당은 넓을수록 명망이 높다 했는데, 그 이유는 그 마당에서 많은 객 客을 받기 위해 잔치나 명절 준비, 음식 손질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 특별한 일이 아니고서는 한옥의 마당은 항상 비어 있었다. 비워두다 보니 자연히 여백의 미학이 생기고, 이는 숨을 돌릴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한다. 공간 생태학을 하는 이는 “마당을 비워두니 뜨거운 공기는 자연스레 하늘로 올라가고 뒷산의 정기는아래로 내려와 순환한다”고 말한다. 전통 창호, 우물마루 만들기 안방이나 서재 등 집의 한 공간을 다실이나 한옥 공간으로 꾸미는 것도 좋은 방법. 안방 창문을 문살이나 꽃무늬를 새겨 만든 꽃살문 등의 전통 창호로 마감하면 실내 분위기가 확연히 달라진다. 거실 한쪽에 단을 올리고 우물마루를 깔아 툇마루 느낌을 살려도 한옥의 정취를 집 안에서 만끽할 수 있다.
5 놋세숫대야가 놓인 수돗가가 정겹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