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화가 나카무라 테츠에이가 디자인한 101호. 와和 의 장식을 기본으로 한 모티프가 외국인 크리에이터에게 호평을 받고 있다.
교토를 좋아하는 외국인들에게 더 스크린 호텔은 또 하나의 새로운 세계다. 더 스크린 호텔을 프로듀스한 이는 시마다 아키히로島田昭彦 씨로 그는 문예춘추의 스포츠 종합 잡지인 <넘버 Number>의 편집자였다. 그가 더 스크린 호텔을 프로듀스하기로 마음먹은 계기는 교토를 찾아오는 외국 친구들에게 “교토를 좋아해. 하지만 좀 더 크리에이티브한 호텔은 없을까?”라는 질문을 자주 들으면서부터였다고 한다. 시마다 씨는 일본의 전통 분위기에 매력을 느껴 교토를 찾는 푸른 눈의 외국인들에게 새로운 교토를 보여주기로 마음먹은 다음 부동산 회사의 건물이던 곳을 놀라운 감각으로 레노베이션했다. 건축이나 디자인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13명의 아티스트에게 자유로운 주제로 13개의 방을 디자인하도록 의뢰한 것. 건축가, 아트 디렉터, 공간 디자이너, 화가, 기모노 디자이너 등 세계 각지에서 활동하고 있는 크리에이터들은 자신만의 감각을 담은 디자인 모티프를 보내왔고, 이를 토대로 13개의 객실 디자인이 탄생했다. 디자이너를 정할 때 특별한 원칙과 기준이 있었던 것은 아니라고 말하는 시마다 씨. 세계적으로 유명한 디자이너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디자인을 새롭게 해석하는 감각을 갖고 있고, 건축뿐 아니라 여러 분야에서 활약하는 사람들에게 숙제를 주었을 뿐이라고 설명한다.
1 문예춘추에서 발행하는 잡지 넘버의 편집자 출신으로 현재는 주식회사 클립의 대표인 시마다 아키히로 씨. 교토의 오래된 가게의 장인들과 협업해 다양한 프로젝트를 시도하고 있다.
2 202호의 리빙룸. 심플하고 미니멀한 디자인과 세련된 소재로 인기를 얻고 있다.
3 우산 만드는 장인 히요시야는 시마다 씨와의 협업으로 와모단 이미지의 램프를 만들었다.
더 스크린 호텔은 정형화된 인테리어를 자랑하는 호텔과는 다른 차별화된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한다. 그런 만큼 저마다 다른 개성을 품은 객실을 고르는 즐거움을 맛볼 수 있다. 그래서 더 스크린 호텔을 다른 말로 셀렉터블 호텔 selectable hotel이라고도 한다. 13개의 객실 모두가 전혀 다른 콘셉트로 꾸며져 있으며 객실의 크기와 디자인, 레이아웃 등이 모두 제각각이라 객실마다 뚜렷한 특색을 갖추고 있다. 13개의 방을 모두 경험해보고 싶어서인지, 다시 찾는 단골 고객 또한 많다고. 디자인 호텔로 등록되어 있고, <기드 미슐랭 Guide Michelin>에 소개되어 이곳을 찾는 손님의 40% 이상이 외국인이다. 유럽에 비해 이렇다 할 디자인 호텔이 없던 일본에서 최근 도쿄의 시오도메 파크 호텔, 호텔 클라스카 등을 시작으로 디자인 호텔을 속속 선보이고 있다. 이들 디자인 호텔의 공통점은 호텔에서 문화를 제공한다는 점이다. 도쿄 메구로에 위치한 호텔 클라스카는 책도 만든다. 도쿄의 트렌드세터들이 안내하는 포켓 가이드북인 <도쿄 바이 도쿄 TOKYO BY TOKYO by claska>가 그것. 이제 호텔은 더 이상 휴식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다. 다양한 분야의 전시가 열리고, 가끔은 패션 디자이너의 캣워크로 변신하기도 한다. 도쿄에 디자인 호텔 클라스카가 있다면 교토에는 더 스크린 호텔이 있다. 더 스크린 호텔은 총 7층 건물로, 1층 입구에서는 교토의 전통 공예점과 협업해 만든 디자인 상품과 인테리어 소품을 만날 수 있다. 지하 1층 로비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대대로 우산을 만들어온 히요시야 日吉屋 장인의 샹들리에를 볼 수 있는데, 리듬감 있는 배열과 컬러풀한 색감이 인상적이다. 큰 통유리창으로 빛이 쏟아져 들어와 로비의 한쪽 벽면을 장식한 벚꽃 그림과 색색의 화지로 만든 샹들리에가 멋스럽게 어우러진다. 호텔 주변에는 교토 고쇼(천황이 살던 곳)가 가까이에 있다. 지리적으로 오랫동안 이어져온 전통과 이를 새롭게 재창조하는 움직임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테라마치 도오리에서 호텔까지 이어지는 거리에는 오래된 역사를 자랑하는 찻집 잇포도, 러시아 과자를 파는 무라카미 카이신도, 기모노 소재의 치리멘으로 만든 소품, 헌책방 등이 줄지어 있어 호텔 주변을 산보하다 보면 교토의 고즈넉한 멋과 문화를 느낄 수 있다.
4 시마다 아키히로 씨의 아이디어로 만든 소파. 같은 소재와 문양의 천으로 가방도 디자인했다.
신진 기모노 디자이너, 사이토 조타로 씨의 개성적인 공간. 대형 화면 프로젝터와 주칠을 사용한 벽면 등 쾌적함과 와(和)의 이미지가 전하는 강렬함을 느낄 수 있다.
13명의 디자이너와 13개의 객실 이야기 가장 눈에 띄는 룸은 나카무라 테츠에이 Tetsuei Nakamura가 디자인한 101호이다. 나카무라 테츠에이는 일본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활발하게 활동하는 일본화 작가로 엔랴쿠지 延曆寺 벽화나 인도의 조린지 본당 定林本堂 등 일본의 사계절을 우아하고도 화려하게 그려내는 신진 기예 화가로 주목받고 있다. 이 객실에 그려진 장지문 그림을 본 이들은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니죠 성의 니노마루고덴에 온 것 같은 느낌”이라고 표현한다. 102호를 디자인한 시마다 아키히코 Akihiko Shimada는 클립 Clip inc.의 대표로 더 스크린 호텔 전체를 프로듀스했다. 가문 家紋을 모티프로 한 문장 紋章 공예 工藝가 장식된 공간은 일본의 전통미를 깊이 있게 다루고 있다. 패션 디자이너와 순수 예술가들의 독창적인 공간도 눈에 띈다. 기모노 디자이너 사이토 조타로 Jotaro Saito가 디자인한 201호는 교토 니시진에서 짜내는 최고급 비단인 니시진오리 西陣織를 벽면에 장식해 개성 있는 공간으로 연출했다. 대형 화면 프로젝터와 주칠을 사용한 붉은 벽면 등 좀 더 강렬한 와모단의 콘셉트를 만날 수 있다. 304호를 디자인한 다나카 사토루 Satoru Tanaka는 패션 디자이너로 지난 2004년부터 남성용 브랜드 ‘보이코트 Boycott’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활약, 2007년에는 새로운 브랜드 ‘폴리텔리 Politely’를 발표했다. 바닥, 벽면, 천장은 물론 가구에 이르기까지 모두 ‘검정’으로 통일된 공간은 13개 객실 중 가장 트렌디한 디자인으로 손꼽힌다.
1 교토 니시진의 기모노 디자이너, 사이토 조타로가 연출한 201호의 외관 벽 장식.
2 바닥, 벽, 천장. 소파에서 인테리어에 이르기까지 ‘블랙’으로 통일한 공간. 패션 디자이너 타나카 사토루 씨의 작품.
고베에 거주하는 순수 예술가 도미니크 루트링거 Dominic Lutringer는 히타치 쇼룸, 시가 클럽, 리츠 칼튼 오사카, 와인 바 등의 타블로 tableau 디자인을 맡아온 실력가다. 그가 디자인한 402호는 와인 잔을 모티프로 한 놀이 감각 넘치는 예술적인 공간으로 오가닉 도료만 사용한 것이 특징. 외국 디자이너의 활약도 눈여겨볼 만하다. 이탈리아의 건축가 살바토레 바비에라 Salvatore Barbiera가 디자인한 203호는 나뭇가지 사이로 스며드는 햇살 속에서 바닥에 앉아 여유로운 한때를 즐기자는 콘셉트로 편히 쉬고자 하는 이들에게 추천할 만하다. 교토가 자아내는 사계절의 은은하고 섬세한 색채를 공간 전체에 표현한 302호는 태국에서 활약하는 자매 디자이너 피라다&파라디스 세니봉세 Pirada & Paradis Senivongse, 나 아유디야 Na Ayudhya의 솜씨다. 403호는 영국의 건축가 샘 리우 AA 딥 Sam Liu AA Dip가 디자인을 맡았다. 투명한 소재의 화이트 커튼을 사용해 안개에 싸인 평원을 표현했다. 런던에서 활동하는 기타이 히카루 Hikaru Kitai는 303호 벽면에 수많은 거울을 배치했다. 서로 비추고 반사되는 공간은 그 자체로 무대가 되어 머무는 이가 누구든 공간의 주인공으로 만들어준다. 호텔 디자인의 중심은 결국 ‘휴식’이라는 것을 강조한 디자이너도 있다. 마쓰다 아키코 Akiko Masuda가 디자인한 103호는 뮤지션과 아티스트를 위한 방으로 창작 활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심플하게 꾸민 것이 특징. 이가 타쿠로 Takuro Iga 씨가 디자인한 202호 역시 편안한 소재와 원색을 사용해 안락함과 화려함을 동시에 표현했다. 흰색을 바탕으로 ‘언젠가 이런 방에서 살고 싶다’는 공간을 실현한 디자이너 구로다 타이지 Taiji Kuroda. 그가 디자인한 401호는 뉴욕 업타운 고급 레지던스를 이미지화해 특히 여성 투숙객에게 인기가 높다. 스즈키 가쓰노리 Katsunori Suzuki가 디자인한 301호의 커다란 창문은 눈 아래 펼쳐지는 시모고료 신사 下御零神社의 나무를 배경으로 계절의 변화를 온전히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교토의 여운에 마음껏 빠지고 싶은 사람에게 추천한다. 문의 www.the-screen.jp
3 더 스크린 호텔의 레스토랑, 브론 로네리. 교야사이를 이용한 교토식 프렌치 요리를 맛볼 수 있다.
글을 쓴 리아코는 자신이 체험한 일본의 고급문화를 한국에 소개하는 일본 문화 칼럼니스트로 일본 전문 콘텐츠 PR 회사 리아코 컴퍼니 Liako Company의 대표이다. 현재 ‘리아코만 알려주는 일본(liakomono.tistory.com)’이라는 문화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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