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한옥을 모티프로 한 통영 12공방 전시장.
2 나전장 박재성 씨의 TV 수납장과 염장 조대용 씨의 대나무 발.
올해의 대상 _ 통영 12공방
디자인의 원천은 공예다
어린 시절 할머니의 시골집을 떠올리면 기억나는 몇 가지가 있다. 그 중 하나가 자개장. 그래서인지 ‘자개장’하면 공식처럼 ‘할머니 장롱’이라는 단어가 연상된다. 하지만 이제 그 인식을 바꿔야 한다. 이번 2010 서울리빙디자인페어에서 전통 가구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업들이 상을 휩쓸었기 때문이다. 전통이 디자인과 만나 세련된 스타일로 변모했으며, 장인의 손길을 담아 더욱 고급화되었다. 대표적인 브랜드는 바로 리빙디자인어워드에서 대상을 차지한 ‘통영 12공방 craft12’이다. 통영의 전통 공예 장인과 젊은 디자이너의 협업을 통해 현대적인 전통 명품을 만들고자 지난해 시작한 이 프로젝트가 올해로 두 번째 결과물을 선보였다. 공간 디자이너 마영범 씨와 경원대 실내디자인학과 이정욱 교수가 아트 디렉팅을 맡고, 송방웅, 박재성, 김종량, 김금철 등 여섯 명의 장인이 참여했다. 알루미늄을 레이저로 커팅한 뒤 그 위에 자개를 입힌 다용도 함, 뚜껑을 열면 디지털 슬라이드 쇼가 펼쳐지는 경대, 버튼을 누르면 TV가 솟아오르는 수납장 등 현대적 기능을 결합한 전통 공예품의 아름다움은 감동 그 자체였다. 전통은 살아 있으면서도 현대적인 미감이 뛰어난 통영 12공방의 작품. 디자이너 마영범 씨는 이번 전시의 주인공을 공간이 아닌 작품으로 잡고 작품 하나하나가 주인공으로 빛날 수 있도록 전시 부스를 독특하게 디자인했다. 한옥을 모티프 삼아 자작나무로 골조를 세우고 부드러운 한지로 마감한 부스가 그것. 이번 전시 내내 통영 12공방의 작품은 공간에서 은은한 불빛을 받으며 품격 있는 자태를 뽐냈다.
3 실용미가 돋보인 나전장 김종량 씨의 차다구함.
4 나전장 송방우 씨의 하이브리드 목기. 한국 디자인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함께 보여주는 작업이다.
5 통영 12공방의 아트 디렉터를 맡은 디자이너 마영범 씨.
6 나전장 박재성 씨가 만든 화장대는 전통과 디지털의 만남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올해의 디자이너 상 _ 마영범
전통 공예, 시대가 원하는 쓰임새를 찾아라
올해는 공간 디자이너 마영범 씨의 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가 디렉팅한 통영 12공방이 리빙디자인어워드에서 대상을 차지했으며, 그 역시 올해의 디자이너 상을 수상했다. 통영 12공방의 장인들, 특히 무형문화재 나전장 송방웅 선생을 만나면서 자개의 매력에 푹 빠져들었다는 그는 지난 8개월간 서울과 통영을 오가며 전통의 쓰임새에 주목했다. “모든 시대에는 제 시대에 맞는 쓰임새를 가진 물건이 있습니다. 조선시대부터 전해 내려온 12공방은 당시에는 그 시대에 맞는 물건을 만들었기에 성황을 이루었던 것이지요. 전통 공예가 퇴색한 원인은 바로 변화하는 그 쓰임새를 제대로 좇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디자이너 마영범 씨는 현대적 기능에 어울리는 형태를 선택하고 그에 맞는 생산 기법에 관심을 갖는 것이 바로 전통 공예와 현대인이 행복하게 만나는 방법이라고 강조한다. 작은 차호부터 다구함, 하이브리드 목기, 애물단지 TV를 쏙 감춰주는 수납장까지 지극히 실용적인 제품을 선보인 것도 이러한 이유. 조각보를 덧댄 대나무 발은 현대 공간에서 스크린이나 커튼의 기능을 할 수 있는 작품이다. 여섯 명의 장인은 익숙한 재료와 형태를 잠시 접어두고 낯선 것과의 조화를 통해 전통에 새로운 에너지를 부여했다. “모든 작업을 마치고 송방웅 선생을 만나러 통영에 내려갔을 때였지요. 완성한 작품을 보여주시며 ‘누가 산다고 할까 봐 걱정이야, 자식 같은데 어떻게 팔아?’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감동의 순간이었지요.” 과거에 기인하지만 현대적인 것, 디지털 시대와 잘 어울리는 전통이야말로 진정한 명품이 아닐까.
1, 2 대나무 발에서 모티프를 얻어 ‘소통’이라는 콘셉트로 풀어낸 천년 전주명품 온 부스는 김백선 씨가 디자인했다.
3 오동나무에 옻칠을 해서 만든 가야금은 디자이너 정석연 씨와 무형문화재 악기장 고수환 씨의 협업작품이다.
4 아트디렉터 김백선 씨와 무형문화재 소목장 조석진, 서성철 씨가 만든 의자.
5 디자이너 진효승 씨와 소목장 권원덕 씨의 작품, 한지 발 등1
눈에 띄는 공간 상 _ 천년 전주명품 ‘온’
소통하는 공간에 소통하는 전통이 있다
2007년 서울리빙디자인페어를 통해 론칭한 이래 매해 많은 관심을 받아온 전주 전통 공예품 브랜드 천년 전주명품 ‘온onn’ 부스가 작년에 이어 올해도 ‘눈에 띄는 공간 상’을 받았다. 심사위원들은 천년 전주명품 ‘온’ 부스에 대해 “우리의 자연 소재, 자연 색상을 바탕으로 개성적이면서도 고급스러운 공간을 선보였다”고 평했다. 아트디렉터 김백선 씨가 디자인한 부스는 한국의 전통 공예품인 대나무 발에서 모티프를 얻었다. 안팎의 경계가 없는 대나무 발에서 ‘소통’이라는 콘셉트를 잡아 목재로 가느다란 골조를 만들어 겹겹이 쌓아 놓은 것. 그물처럼 짠 구조 덕에 안에서도 밖이 보이고, 밖에서도 안이 보이는 디자인이 인상적이었다. 무엇보다 올해 천년 전주명품 온 부스에서는 30,40대 젊은 장인과 디자이너의 협업이 눈길을 끌었다. 소목장 김완규, 선자장 엄재수 등은 모두 무형문화재 소목장 조석진, 선자장 엄주원 선생의 제자들로 차기 전주의 전통을 이끌어갈 재목들이다. 이들은 디자이너 박재우, 정석연 씨와 손잡고 나침반, 오합 상자, 지칼, 줄자 등 기품이 느껴지면서도 모던한 생활용품을 선보였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국내 유일의 한지 발 장인인 유배근의 한지 발을 응용한 스탠드와 책장이 눈길을 끌었다. 지금까지 천년 전주명품 온이 옛 선조들의 서재 문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디자인을 주로 선보였다면, 앞으로는 찻상 등 리빙 공간을 위한 작품에 주력할 예정이다.
눈에 띄는 공간 상 _ 서정기 씨의 디자이너스 초이스 전시관
비움과 채움, 이것이 하이브리드다
패션 디자이너 서정기 씨는 디자이너스 초이스 전시관에서 ‘하이브리드’라는 주제를 식 食 공간으로 연출해 화제를 끌었다. 그에게 하이브리드는 어떤 의미일까? 서정기 씨는 하이브리드를 두 개의 서로 다른 요소가 절묘하게 만나는 것으로 해석하고, 비움과 채움에서 답을 찾았다. “평소에 패션이든 리빙이든 디자인을 할 때 ‘강약 중간약’과 같은 음악의 박자 개념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이번 전시 공간을 디자인할 때도 절제된 비움의 공간인 ‘공 空’과 사람의 취향에 따라 채워지는 장식의 공간 ‘만 滿’이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도록 했습니다.” 서정기 씨는 오래전부터 모아온 소반, 제기, 병풍 등의 골동품을 활용해 채움과 비움이 혼재된 전시관을 디자인했다.“쪽 병풍은 현대 공간에 맞게 새로 표구하는 작업을 거쳐 벽면에 액자처럼 걸어 놓았고, 제기는 촛대로 사용해 친환경 종이 그릇 와사라와 함께 매치해 보았습니다.” 이외에 하얀색 보료 등은 이번 전시를 위해 새로 디자인했다. 다이닝 공간에서의 음악은 스타일의 정점을 찍는 요소이기에 관객들에게 가야금 산조를 들려주며 우리네 멋스러운 풍류 문화를 알렸다.
2010년 리빙디자인어워드는 분야별 전문가로 구성된10명의 심사위원이 대상, 올해의 디자이너 상, 눈에 띄는 공간 상, 눈에 띄는 제품 상, 인기상의 5개 부분을 심사했다. 심사위원으로는 월간 <행복이 가득한 집> 양은경 편집장, <럭셔리> 김은령 편집장, <까사리빙> 최미선 편집장, 건축 디자인 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