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데카의 박근아 대표는 디자인 회사 ‘둘 디자인’을 이끌고 있는 인테리어 디자이너다. 도데카 지하 1층 매장에 마련한 유리방은 그가 고객과 만나는 상담실. 그는 이 작은 유리방을 통해 도데카가 단지 물건을 파는 상점이 아닌 라이프스타일을 디자인해주는 해결사가 되길 바란다.
언제부터인가 다양한 브랜드 제품을 모아놓은 일명 ‘편집 매장’이 유행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백화점과 시장에서는 물건을 팔지만 편집 매장은 ‘스타일’을 팔기 때문이다. 물론 백화점과 시장에서도 스타일을 만날 수는 있다. 그러나 지나치게 많은 스타일을 동시다발적으로 보여줘 오히려 쇼핑을 어렵게 만든다. 반면 특정한 콘셉트의 물건을 파는 곳에 가면 쇼핑이 쉬워진다. 그것이 자신의 취향과 일치하면 말이다. 취향이 비슷한 누군가가 미리 골라놓은 스타일을 집어 드는 것, 이것이 바로 편집 매장 쇼핑의 묘미다. 옷이든 가구든 물건 고르는 데 영 자신이 없는 이라면 편집 매장은 더없이 좋은 쇼핑 어드바이저가 되어준다. 감각적인 스타일의 편집 매장은 설령 기호가 맞지 않더라도, 굳이 무엇을 사지 않아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워지는 공간이다. 그런 의미에서 라이프스타일 편집 매장 도데카는 꽤나 흥미로운 장소임이 분명하다. 용도를 알 수 없는 유리 보석, 스위치 모양 지우개처럼 아이들이나 눈길을 줄 법한 소품부터 전 세계 화폐가 프린트된 ‘돈방석’ 쿠션, 촛불 모양 라이터 등 유머 감각이 더해진 소품, 과감한 원색 패브릭으로 마감한 모던 디자인 가구, 캐시미어와 가죽 소재 패션용품, 그 선택 기준을 종잡을 수 없는 음반 컬렉션까지…. 위트 넘치고 재기 발랄한 디자인으로 가득한 공간이다.
1 컬러풀한 악센트 가구와 모던한 디자인이 어우러진 거실 풍경. 경쾌하되 가볍지 않고 고급스럽지만 고루하지 않은 스타일이 매력적이다. 체스 판 모양의 장식장은 박근아 씨가 디자인한 것이다. 정면에 걸려 있는 판화는 제나 킴 작품.
2 친구들이 놀러 오면 그는 화폐가 프린트된 쿠션을 안겨주며 꿈에 그리던 ‘돈방석’에 앉아보라 권한다고.
물건이 아닌 스타일 도데카가 문을 연 것은 지난해 가을이지만 박근아 대표가 이 공간을 구상한 것은 꽤 오래전이다. 인테리어 디자이너이기도 한 그는 해외 출장이나 여행 때마다 각양각색의 라이프스타일 매장을 찾아다니며 자신이 꾸리게 될 숍을 구상했다. 그러다 마침내 연을 맺은 것이 일본의 시보네다. “시보네는 라이프스타일 편집 매장으로 시작해 인테리어 디자인과 컨설팅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한 숍이죠. 그들이 일하는 시스템과 경험을 접하면서 자신감이 생겼어요. 저는 이미 인테리어 디자인 회사를 운영하고 있으니, 디자인 비즈니스와 연계해 시보네처럼 시너지 효과를 얻을 수 있겠구나 싶었지요.” 도데카의 독특한 제품 구성이 오늘의 만남을 주선했으니 상품 기획에 대해 먼저 묻지 않을 수 없다. “손님들도 가끔 물으시더군요. MD가 누구냐고요. 상품 기획 담당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에요. 온전히 제 마음과 제 눈에 의존해서 선택한 제품들이죠. 물론 처음 숍을 오픈할 때는 시보네에서 상품 기획을 담당한 친구에게 자문을 구하고 수없이 많은 미팅을 거쳐 브랜드와 제품 콘셉트를 좁혀나갔어요. 그렇게 잡아놓은 틀 안에서 제품과 디자인을 선택하는 것이지요. 물론 제가 선택한 상품에 100% 자신 있는 것은 아니에요. 인테리어 디자인과 스타일링 작업을 하면서 앞서 간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기는 했지만, 지금은 제 판단을 검증받고 있는 단계라고 생각해요.” 디자인과 스타일에 정답이 어디 있겠느냐며 도데카는 그저 세상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개성 중 하나라고 그가 말한다.
3 이정섭 작가의 테이블과 체르너 체어.
4 건물 중앙에 계단실이 자리해 ㅁ자 구조를 이루는 집에서 거실과 부엌이 ㄱ자로 연결되어 있다. 다이닝 테이블을 중심으로 거실과 부엌이 서로 연결되기도 하고 분리되기도 한다.
생활을 아는 늦깎이 디자이너 현장에서 고객 상담과 실무를 담당하는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도데카의 상품 기획자이자 디자인 사무실과 도데카 매장의 살림을 책임지는 경영자로 바쁜 나날을 보내는 박근아 씨도 한때는 전업주부였다. “졸업과 동시에 결혼을 했고 아이 둘을 키우며 평범한 가정주부로 살았어요. 너무 늦었다 싶으면서도 더 늦기 전에 디자인 공부를 해보고 싶었지요.” 30대에 들어서 디자인 공부를 시작하고 지인의 사무실에서 프로젝트를 받아 일하는 방식으로 커리어를 쌓아나갔다. “처음에는 주택 작업을 많이 했어요. 디자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능이라 생각하기에, 그리고 전업주부로 살아온 세월 덕에 주택 작업에 대해서는 두려움이 없었거든요. 생활이라는 것을 기본적으로 이해하고 있으니까요.” 그는 지금도 주택 디자인을 할 때면 본인이 그 집에서 아침에 눈 뜨고 하루를 보내는 상상으로 작업을 한다. 내가 이 집에서 살 것이라고 생각하면 작은 것 하나도 놓치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기능적으로도 손색없는 디자인을 이끌어내는 세심한 노력이 일을 계속할 수 있는 기반이 된 것 같다고.
5 인테리어 디자이너이기도 한 도데카 대표 박근아 씨.
6 복도를 마주 보는 현관 벽에 대형 거울을 설치해 현관을 보다 밝고 넓어 보이게 연출했다.
즐거운 나의 집 백문이 불여일견. 인테리어 디자이너를 만났으니 열 마디 듣는 것보다 그의 집을 한번 구경하는 것이 더 낫지 않겠는가? 매장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한 그의 집은 사각 박스 모양의 아담한 3층 주택이다. 건축가 한동훈 씨가 설계했다는 이 집은 ㅁ자 구조다. 집 중앙에는 중정 대신 1층에서 3층을 오르내리는 계단실이 자리하는데, 이를 중심으로 펼쳐진 ㅁ자 공간은 각 부실이 분리되면서도 서로 소통하는 유기적 구조를 만들어낸다. 비둘기색이 감도는 오프 화이트 페인트로 마감한 벽이 차분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가운데 적재적소에 사용한 포인트 컬러가 공간을 밝고 경쾌하게 만들어준다. 호두나무로 마감한 체스판 모양의 거실장은 빨간색 에그 체어, 임스 스툴 등 모던한 디자인의 거실 가구와 멋스럽게 조화를 이루고, 이정섭 작가의 원목 다이닝 테이블과 검은색 쉐르너 체어는 원래 한 쌍인 양 잘 어우러져 있다. 그레이 컬러 캐비닛과 스틸 상판의 미니멀 가구를 배치한 주방의 겨자색 악센트 벽은 고급스러우면서도 캐주얼한 주방을 연출해낸다. 푸른색 페인트로 도장한 스틸 난간을 비롯해 붉은색, 민트색, 겨자색, 하늘색, 파란색 등 다양한 색이 한 공간에 어우러져 있음에도 산만하거나 튀는 느낌이 없다. 거실과 주방을 중심으로 1층을 한 바퀴 둘러보니, 마치 경쾌한 음악을 듣고 있는 듯 괜스레 즐거워지는 것이 콧노래라도 불러야 할 것 같다. 내 집도 아닌데 말이다.
1 그는 얼마 전부터 드럼을 배우기 시작했다. 좀 더 시간 여유가 생기며 친구들과 함께 취미 생활을 하기 위해서다.
2 스포츠카 미니 모양 USB는 지난겨울 도쿄 기프트쇼에서 발견한 제품.
작은 음반 가게의 추억을 담아 작은 거실과 운동실, 두 아들의 방이 있는 2층을 지나 3층으로 오르니 침실로 곧장 연결된다. 침대 머리맡을 가득 채운 책과 10년 넘게 사용하고 있는 낡은 안마 의자, 서재 코너와 침실을 가르는 파티션 역할을 하는 CD장과 그 안을 빼곡하게 채운 수백 장의 음반, 수줍은 듯 한구석에 놓여 있는 드럼 스틱…. 하루 일과를 마치고 돌아와 여유로운 시간을 누리는 침실 풍경을 바라보며 질문을 하나 던졌다. “음반 코너요? 막연하게 매장을 구상하던 시절부터 음반 코너는 꼭 마련하리라 생각했어요. 우리는 아날로그 세대예요. 저도 물론 차 안에서는 아이팟을 연결해 음악을 듣지만, 음반은 이리저리 뒤적이며 한장 한장 골라 듣는 재미가 있어요. 이제 거리에서 대형 레코드 상점을 찾기도 힘들어졌잖아요. 음악은 소리를 듣는 재미만 있는 게 아닌데 말이에요. 생활의 그런 잔잔한 재미가 없어지는 것이 안타깝더라고요. 제3세계 여행을 가도 음반 가게에 꼭 들르는 저 같은 사람을 위해서 만든 코너예요.” 도데카가 그러하듯 자신과 코드가 맞는 사람들을 위한 컬렉션이라며 “여기서 선택하면 크게 실패할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더불어 박근아 씨가 도데카 매장에 음반 코너와 패션 코너를 더한 것은 생활의 변화와 디자인은 의외의 것에서 출발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란다. 차 안에서 듣는 음악이 달라지면 운전하는 기분이 달라지고, 달라진 기분에 매일같이 사용하던 그릇이 지루하게 느껴지고, 이는 일에 변화를 주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도데카에서 만나는 작은 소품 하나가, 그곳에서 우연히 듣는 음악 한 소절이 누군가를 웃게 만들고, 그렇게 달라진 기분이 하루를 바꿀 수도 있는 것이라고.
3 2004년 엘르 데커레이션 옵서버 디자인 어워드 조명 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한 케밥 램프. 박근아 씨가 가장 아끼는 디자인이다.
1 건축가 한동훈 씨가 설계한 3층 주택은 건물 중앙에 계단실이 배치되어 있다. 1층에서 3층까지 오르내리는 계단과 하늘색 페인트로 마감한 철제 난간이 그래픽적 장면을 연출해낸다. 계단 아래 생긴 자투리 공간을 20세기를 대표하는 디자인 체어 미니어처로 장식했다.
2 2층에 마련한 두 아들을 위한 거실. 모던한 디자인 가구로 밝고 경쾌하게 꾸몄다.
3 아이들 방은 그가 직접 디자인하고 제작한 가구로 꾸몄다. 창문에는 직사광선은 피하면서도 은은한 자연 채광을 방해받지 않을 정도의 원단으로 심플하게 셰이드를 제작해 달았다.
4 전망 좋은 창을 끼고 있는 3층 욕실은 차분하고 편안한 느낌으로 연출했다.
생활의 모든 것을 디자인하다 “작년에 경주 코오롱 호텔의 스위트룸 레노베이션 작업을 했어요. 인테리어 마감 공사뿐 아니라 그 안에 들어가는 모든 것을 스타일링하는 작업이었지요. 도자기 작가를 선정해 스위트룸만을 위한 그릇을 제작하고, 욕실용품 하나도 프랑스에서 3대째 허브를 연구하는 브랜드 제품을 선정하고, 코오롱패션과 함께 유니폼도 새로 디자인하고, 심지어 족욕 레시피도 만들었어요.” 이번 호텔 레노베이션 작업처럼 생활과 관련한 모든 것을 제안하고 디자인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도데카를 통해 펼치고 싶은 작업이라고 한다. “작은 포푸리 하나 사러 들른 손님도 자연스럽게 우리 집 가구는 어떤 스타일이고 욕실 타일은 무슨 색인데 이 포푸리를 어디에 담는 것이 좋겠느냐며 물어 올 수 있고, 이에 대한 해답을 찾아줄 수 있는 곳이 되었으면 해요. 그렇게 작은 것으로 시작해서 그 손님이 나중에, 원하는 침장이나 가구가 시중에 없으니 해답을 찾아달라고 찾아올 수도 있고요.” 단순히 하나의 디자인을 파는 상점이 아닌 라이프스타일을 디자인하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컨설턴트, 이것이 바로 도데카의 존재 이유라고 그가 말한다.
5 박근아 씨의 사무실에서. 선반 위 탱크 프라모델은 친구가 직접 만들어준 것이다. 도데카라는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는 그에게 어떤 일이 있어도 뒤돌아보지 말고 앞으로 전진하라는 의미를 담아 선물했다고.
6, 8 도데카(02-3445-0388) 지하 2층 매장에는 음반 코너와 아트 북 코너가 카페와 함께 마련되어 있다.
7 생활용품을 판매하는 지하 1층 매장에서 직원들과 회의를 하고 있다.
남는 장사와 손해 보는 장사 어떤 이들은 어차피 돈 되는 것은 가구인데 차라리 가구 매장을 열지 그랬느냐는 우려 섞인 말을 건네기도 한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돈만 좇아서 무얼 할 수 있는 주변머리는 못 된다며 말을 잇는다. “인테리어 공사를 하면서도 해본 일은 분명 돈이 남게 생겼고 안 해본 일은 손해를 볼 것이 뻔한데, 결국 안 해본 일을 선택하게 돼요. 미련한 짓이죠. 그런데요, 제가 디자인을 하는 이유가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인걸요. 언젠가는 독립하게 될 직원들도 저와 함께 일하는 동안 가능한 한 더 많은 경험을 하게 하고 싶기도 하고요.” 그러나 그렇게 밑지는 것이 뻔한 작업을 통해 그는 언제나 더 많은 것을 배운다. 예산이 빠듯하다 해서 빠듯한 결과물을 내놓을 수는 없지 않은가. 머리를 쥐어짜며 고민하고 발품을 팔다 보면 값싸고 좋은 자재도 만나게 되고 새로운 아이디어도 생기는 법이란다. “직원들은 왜 만날 우리 사장은 돈도 안 되는 것을 들고 와서 우리를 고생시키나 하겠지만, 그 고생이 바로 일의 재미인걸요.” 이야기를 듣다 보니 도데카는 징글징글한 고생도 일의 재미로 생각하고, 익숙한 것보다는 새로운 도전에 매력을 느끼는 그의 도전적인 성격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쉽고 빠른 길을 선택했다면 아마도 그는 3층 규모의 매장을 대중적 기호와 적당히 유행을 따르는 물건으로 가득 채워놓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냥 예쁘기만 한 디자인은 싫다’는 그는 하나의 제품이 완성되기까지의 과정을 감동의 드라마로 이해하는 자만이 지불할 수 있는 높은 가격의 디자인 제품부터 돌처럼 굳어버린 어른의 상상력만 자극할 뿐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몇천 원짜리 소품까지, 타고난 장사꾼이 아니더라도 쉽게 팔리지 않을 것임을 뻔히 알 수 있는 물건을 곳곳에 포진해놓고 있다. “우리와는 또 다른 취향과 스타일을 지향하지만 우리 같은 성격의 매장이 여러 군데 생기면 좋겠어요. 각기 개성이 다른 라이프스타일 숍이 즐비한 거리, 정말 재미있지 않겠어요?”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머릿속에는 엉뚱하게도 작은 책방이 떠올랐다. 언젠가 꼬부랑 할머니가 되면 두어 평 작은 공간에 내가 좋아하는 책만으로 채워놓은 동네 책방을 차리겠다는 오래된 계획. 한 달에 한 권을 못 팔지라도 비슷한 취향을 가진 이라면 언제든 들러 책 한 권 뽑아 들고 한나절을 보내다 갈 수 있는 곳. 그에게 도데카는 어쩌면 내 머릿속의 작은 책방과 비슷한 공간이 아닐까 싶다. 그의 바람대로 각기 다른 개성의 라이프스타일 숍이 거리에 즐비해지면 그 옆에 구멍가게처럼 작은 책방 주인이 되는 즐거운 상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