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9시면 잠자리에 드는 나는 새벽 4시경이면 잠을 깬다. 그러고는 5시가 되면 부엌으로 들어선다. 마치 하루의 첫 일과처럼 홍차와 녹차를 2~3일씩 번갈아가며 달여온 지도 어언 20년은 될 듯싶다.
흰 테이블보가 깔린 식탁 한가운데를 차지한 홍차, 녹차 단지는 그 자체가 하나의 오브제. 그에 더해 단지 속 차 잎사귀들이 일제히 향을 뿜어낸다. 이렇듯 차와 찻잔이 놓인 자리는 멋스러운 풍경을 연출한다. 홍차를 하루에 일고여덟 잔 마신다는 영국 사람들처럼 나도 홍차와 녹차를 매일 그만큼 마신다. 그러면서도 나는 커피를 포함한 다른 마실 거리와는 달리 홍차와 녹차는 꼭 내 손으로 달이고 찻그릇을 고르는 즐거움도 함께 누린다.
어쩌다 벼르고 벼르던 여행길을 떠날 때면 홍차, 녹차와 함께 찻그릇을 찾아 고르는 일이 큰 보람과 기쁨이 된 지도 꽤 오래다. 유럽의 유서 깊은 카페에서는 카페 이름이 또렷이 새겨진 티컵을 구할 수 있어 더욱 기쁘다.
요즘 즐겨 마시는 홍차는 런던의 ‘해로즈 Harrods’ 백화점이 창업 150주년을 기념해 선보인 ‘브랜드 49’이다. 티컵은 며칠 전까지는 7~8년 전 로마의 ‘카페 그레코’에서 구입한 것을 쓰다가 어제부터는 이탈리아 시에나에서 구한 ‘리보이레 Ri Voire’ 잔을 쓰고 있다.
“마들렌 한 조각이 입술에 닿는 순간 불가사의한 기쁨이 나를 덮쳤다.”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한 구절이다. 프루스트는 마들렌과 함께 무슨 차를 즐겨 마셨을까?
차에는 다과 茶菓가 붙어 다녀서 더욱 좋다. 홍차에는 스콘, 머핀, 마들렌, 비스킷이 좋고 녹차에는 월병이 안성맞춤이다.
‘디저트’라는 말은 ‘식탁을 치운다’는 프랑스어 ‘dessert’에서 유래했다지만 향기롭고 맛스러운, 지중해 포도주 빛깔처럼 고혹적인 빛깔의 홍차를 우아하고 아름다운 자기, 본차이나 잔으로 음미하는 그 호사가 어찌 ‘후식’의 끝이라 할 것인가.
영국 사람은 누군가를 자기 집 애프터눈 티에 초대하는 것을 ‘당신과 친구가 되고 싶다’는 의사 표시라고 생각한다. 나도 언제부터인가 ‘당신은 나의 좋은 친구입니다’ 하고 혼자 마음에 새기며 누군가에게 홍차나 녹차를 선물하곤 한다. 살롱이 프랑스 사람들의 사교 문화의 토포스 topos이듯이 홍차의 나라 영국에서는 애프터눈 티 파티가 사교의 주요한 무대다. 우리의 경우는 어떠한가. 지난날 우리 선비들은 ‘다선일미 茶禪一味’의 경지를 바라며 고고한 차 놀이를 즐겼다. 그러나 우리 전통 사회의 차 문화 풍정 風情은 그에 그치지 않았다. 중국 명대 明代 어느 다인의 말씀.
손님과 주인이 정성스럽고 친할 때
아름다운 손님과 작은댁이 있을 때
서로 어울려 차를 마시리라
영국 사람이 애프터눈 티를 자주 즐긴다고는 하지만, 그들은 그에 앞서 키츠 Keats의 시나 셜록 홈스의 추리소설을 탐독할 때 제일 느긋하게 차 맛에 빠져들었다. 그렇듯 홍차와 녹차는 혼자 즐겨도 좋고 더불어 마셔도 좋다. 그리운 사람처럼 기다린 입춘이 지나니 따뜻한 남쪽 나라 산기슭 차밭 서리에 씻긴 상서로운 소화 素花가 향을 뽐내며 움틀 날도 머지않다. 그때가 되면 홍차를 좋아하는 우리 모두 인도 히말라야 산악 지대 다르질링을 눈여겨 그려보자.
바쁘고 바빠서라고 하지 말자. 하루에 한 번쯤은 찻잔을 갖춰 한유 閒遊의 한때를 즐겨보자. 좋은 인생이란 좋은 사람과 함께 좋은 차를 즐기는 삶이리라.
글을 쓴 이광주 선생은 평생 동안 유럽 지성사를 중심으로 유럽 문화 전반에 대해 연구해온 역사학계의 원로입니다. 무엇보다 소문난 차 애호가로 동서양 차 문화와 유럽 살롱 문화를 다룬 고품격 에세이를 집필해왔습니다. 자신은 차를 좋아할 뿐 차 전문가는 아니라고 누누이 이야기하지만, 그가 쓴 글들을 읽고 나면 동서양 차 문화에 대해 소소한 것까지 꿰뚫은 대단한 애호가라는 걸 금방 알게 됩니다. <유럽 카페 산책: 사교와 놀이 그리고 담론의 멋스러운 풍경> <베네치안의 카페 플로리안으로 가자> <동과 서의 차 이야기> 등이 그가 차에 대해 쓴 책입니다. 지금은 인제대학교 명예교수로 있습니다.
흰 테이블보가 깔린 식탁 한가운데를 차지한 홍차, 녹차 단지는 그 자체가 하나의 오브제. 그에 더해 단지 속 차 잎사귀들이 일제히 향을 뿜어낸다. 이렇듯 차와 찻잔이 놓인 자리는 멋스러운 풍경을 연출한다. 홍차를 하루에 일고여덟 잔 마신다는 영국 사람들처럼 나도 홍차와 녹차를 매일 그만큼 마신다. 그러면서도 나는 커피를 포함한 다른 마실 거리와는 달리 홍차와 녹차는 꼭 내 손으로 달이고 찻그릇을 고르는 즐거움도 함께 누린다.
어쩌다 벼르고 벼르던 여행길을 떠날 때면 홍차, 녹차와 함께 찻그릇을 찾아 고르는 일이 큰 보람과 기쁨이 된 지도 꽤 오래다. 유럽의 유서 깊은 카페에서는 카페 이름이 또렷이 새겨진 티컵을 구할 수 있어 더욱 기쁘다.
요즘 즐겨 마시는 홍차는 런던의 ‘해로즈 Harrods’ 백화점이 창업 150주년을 기념해 선보인 ‘브랜드 49’이다. 티컵은 며칠 전까지는 7~8년 전 로마의 ‘카페 그레코’에서 구입한 것을 쓰다가 어제부터는 이탈리아 시에나에서 구한 ‘리보이레 Ri Voire’ 잔을 쓰고 있다.
“마들렌 한 조각이 입술에 닿는 순간 불가사의한 기쁨이 나를 덮쳤다.”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한 구절이다. 프루스트는 마들렌과 함께 무슨 차를 즐겨 마셨을까?
차에는 다과 茶菓가 붙어 다녀서 더욱 좋다. 홍차에는 스콘, 머핀, 마들렌, 비스킷이 좋고 녹차에는 월병이 안성맞춤이다.
‘디저트’라는 말은 ‘식탁을 치운다’는 프랑스어 ‘dessert’에서 유래했다지만 향기롭고 맛스러운, 지중해 포도주 빛깔처럼 고혹적인 빛깔의 홍차를 우아하고 아름다운 자기, 본차이나 잔으로 음미하는 그 호사가 어찌 ‘후식’의 끝이라 할 것인가.
영국 사람은 누군가를 자기 집 애프터눈 티에 초대하는 것을 ‘당신과 친구가 되고 싶다’는 의사 표시라고 생각한다. 나도 언제부터인가 ‘당신은 나의 좋은 친구입니다’ 하고 혼자 마음에 새기며 누군가에게 홍차나 녹차를 선물하곤 한다. 살롱이 프랑스 사람들의 사교 문화의 토포스 topos이듯이 홍차의 나라 영국에서는 애프터눈 티 파티가 사교의 주요한 무대다. 우리의 경우는 어떠한가. 지난날 우리 선비들은 ‘다선일미 茶禪一味’의 경지를 바라며 고고한 차 놀이를 즐겼다. 그러나 우리 전통 사회의 차 문화 풍정 風情은 그에 그치지 않았다. 중국 명대 明代 어느 다인의 말씀.
손님과 주인이 정성스럽고 친할 때
아름다운 손님과 작은댁이 있을 때
서로 어울려 차를 마시리라
영국 사람이 애프터눈 티를 자주 즐긴다고는 하지만, 그들은 그에 앞서 키츠 Keats의 시나 셜록 홈스의 추리소설을 탐독할 때 제일 느긋하게 차 맛에 빠져들었다. 그렇듯 홍차와 녹차는 혼자 즐겨도 좋고 더불어 마셔도 좋다. 그리운 사람처럼 기다린 입춘이 지나니 따뜻한 남쪽 나라 산기슭 차밭 서리에 씻긴 상서로운 소화 素花가 향을 뽐내며 움틀 날도 머지않다. 그때가 되면 홍차를 좋아하는 우리 모두 인도 히말라야 산악 지대 다르질링을 눈여겨 그려보자.
바쁘고 바빠서라고 하지 말자. 하루에 한 번쯤은 찻잔을 갖춰 한유 閒遊의 한때를 즐겨보자. 좋은 인생이란 좋은 사람과 함께 좋은 차를 즐기는 삶이리라.
글을 쓴 이광주 선생은 평생 동안 유럽 지성사를 중심으로 유럽 문화 전반에 대해 연구해온 역사학계의 원로입니다. 무엇보다 소문난 차 애호가로 동서양 차 문화와 유럽 살롱 문화를 다룬 고품격 에세이를 집필해왔습니다. 자신은 차를 좋아할 뿐 차 전문가는 아니라고 누누이 이야기하지만, 그가 쓴 글들을 읽고 나면 동서양 차 문화에 대해 소소한 것까지 꿰뚫은 대단한 애호가라는 걸 금방 알게 됩니다. <유럽 카페 산책: 사교와 놀이 그리고 담론의 멋스러운 풍경> <베네치안의 카페 플로리안으로 가자> <동과 서의 차 이야기> 등이 그가 차에 대해 쓴 책입니다. 지금은 인제대학교 명예교수로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