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화이트 컬러와 자연 소재 마감재가 고급스럽게 어우러진다.
집주인 박세정 씨는 신혼집에 이어 지금의 두 번째 집도 주상복합아파트를 선택했다. 생활 편의 시설을 두루 갖춘 주상복합아파트가 맞벌이하는 신혼부부의 라이프스타일에 잘 맞을 것이라는 게 단순한 선택의 이유였다. 하지만 살아보니 일반 아파트보다 천장이 높고 커다란 창이 많은 덕분에 하루 종일 블라인드를 내리고 살 정도로 채광이 좋고 시야가 확 트인 점이 더 큰 매력으로 다가왔다. 단, 입주한 지 7년이 지난 서초동 아크로비스타 주상복합아파트는 방문과 몰딩 등 마감재가 체리목이라 그가 선호하는 모던한 가구와 어울리지 않고 수납공간이 턱없이 부족했다. 레노베이션을 맡은 이길연 씨는 향후 10년간 이사할 계획이 없다는 집주인의 뜻을 담아 오래도록 질리지 않는 화이트를 주조색으로 정하고 최대한 내추럴한 자연 마감재를 사용해 따뜻한 느낌을 더했다. 우선 벽 마감재로는 페인트를 선택했다. 벽에 페인트를 칠하려면 밑작업하는 데 4~5일은 걸리고 페인트를 세 번 이상 덧칠해야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색이 바래는 벽지와 달리 페인팅한 벽은 오랫동안 깔끔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이 장점. 화이트로 깔끔하게 도장한 외국의 아파트처럼 꾸미고 싶다는 집주인의 요구를 적극 반영한 것이다. “검은색이나 회색 옷을 즐겨 입는 독일인은 십중팔구 하얀색 실내 장식을 선호한다고 해요. 평소 모노톤의 단정한 패션 스타일을 좋아하는 박세정 씨 역시 벽도 바닥도 가구도 모두 하얀색에 끌린다고 하더군요.” 바닥재도 화이트 타일로 골랐지만 너무 차가워 보일 것을 우려해 절충안으로 밝은 톤의 오크 원목을 사용했다. 자연스럽게 나뭇결이 살아 있는 오크 원목 바닥재는 폭이 넓은 것을 고르면 모던한 느낌으로 연출할 수 있다. 체리색이던 몰딩과 문은 모두 블랙 컬러로 도장하고 현관과 주방 바닥은 돌 질감이 살아 있는 회색 타일로 바꿨다. 마치 땅을 밟는 것 같은 까슬거리는 느낌의 타일은 결혼 전까지 줄곧 주택에서만 살아온 남편 이용진 씨의 의견을 반영한 것. 자칫 차갑고 건조하게 느껴질 수 있는 화이트 공간은 이렇게 나무와 돌 등 자연 소재가 하나씩 더해져 따뜻한 온기를 뿜어낸다.
2 그레이와 핑크 등 컬러 패브릭으로 포인트를 준 침실.
3, 4 공간감 있는 가구 배치와 체계적인 수납 시스템으로 모던한 인테리어를 완성했다.
5 현관은 대리석 바닥재 대신 돌 질감의 타일을 깔고 철제 접이문을 설치했다.
디자인 도어, 맞춤 제작 가구로 공간의 리듬을 살리다 이 집은 비교적 공간 구성이 효율적이라 구조를 변경할 필요가 없었다. 침실 옆에 드레스 룸이, 주방 옆에는 다용도실이, 현관 옆에는 창고가 갖추어졌기 때문에 추가로 공간에 다른 기능을 더하거나 용도를 변경하지 않아도 되었던 것. 화장실 문 위치를 이동한 것과 복도에서 통하는 주방 입구를 없앤 것이 구조 변경의 전부다. 현관에서 거실에 이르는 복도 왼편에 주방으로 통하는 문이 있었는데, 이를 벽으로 막고 안쪽 벽에 전면 수납장을 채워 넣은 것. 사실 있던 문을 없앤다는 것이 내심 마음에 걸렸지만 주방 문을 막으니 복도가 한결 길어 보여 대만족. “문이 많으면 공간이 조각조각 쪼개져 더 작아 보일 수 있지요. 사실 집 안에 큰 그림을 걸 수 있는 공간이 많지 않아요. 현관에서 거실로 이르기 전 맞은편 아트월이나 긴 복도뿐이죠.”
현관에서 거실로 이어지는 복도 라인. 현관에서 주방까지의 동선은 더 길어졌지만, 갤러리처럼 그림을 걸거나 세워둘 수 있다.
어찌 보면 이 집의 인테리어 포인트는 바로 ‘문’인 셈이다. 주방 문을 막아 시원스러운 복도 벽을 얻었다면, 화장실 문을 숨겨 아트월처럼 연출했다. 언뜻 보면 벽면처럼 보이는 화장실 문은 문을 둘러싼 벽체와 함께 티크 원목으로 마감한 것이다. 손잡이 역할을 하는 가죽끈을 잡아당기면 마치 마법의 회전문이 열리는 것처럼 스르르 문이 열리고 욕실이 나온다. 공간을 분할하는 방법으로 없던 문을 더하기도 했다. 주방과 거실 사이에 철제 슬라이딩 도어를 설치했는데, 이는 필요에 따라 주방을 독립된 공간으로 만들어준다. 외국계 컨설팅 회사에 근무하는 부부는 평소 외국인 친구들을 초대하는 일이 잦은데, 손님을 초대할 때 자신들도 충분히 즐길 수 있도록 케이터링 서비스를 받곤 한다.이때 주방과 거실을 가변적으로 분리해주는 슬라이딩 도어가 제 몫을 톡톡히 한다. 침실 역시 발코니와의 경계 부분에 철제 접이문을 달아 공간을 분할했다. 컴퓨터를 많이 사용하는 남편은 때론 침실에서 일을 하는데 이때 접이문이 파티션 역할을 한다. 여름에는 내리쬐는 햇볕을, 겨울에는 한기를 막아주는 데도 효과적이다. 이처럼 기능적인 역할을 하는 문은 디자인 요소가 가미되면 그 자체만으로 인테리어 포인트가 될 수 있다. 맞춤 제작한 가구는 모두 일반 제품보다 크게 제작했다. 특히 친구들이 자주 방문하는 것을 고려해 여러 명이 함께 앉을 수 있는 널찍한 소파와 주방에는 빅 테이블을 두었다. “거실에 일반 소파를 두니 한쪽에 떡하니 버티고 있는 두꺼운 내력벽 때문에 오히려 공간이 단절된 느낌이 들더군요. 그래서 아예 소파를 크게 맞추자고 제안했지요.” 소파 역시 화이트 패브릭으로 선택했는데, 오염이 염려될 때는 별도로 제작한 슬립 커버를 씌운다. 가로 3m, 세로 4.5m의 ㄱ자형 소파는 양쪽 팔걸이를 없앤 것이 특징으로 가구 배치를 바꿀 때 좌우를 자유롭게 조합할 수 있다. 침대 역시 슈퍼킹 사이즈로 제작했지만 헤드보드를 비롯해 전체적으로 높이를 낮게 해 침실이 한결 넓어 보인다.
1 ㄱ자로 꺾이는 세면장과 세면대는 모두 티크 원목으로 제작해 리조트 같은 느낌을 자아낸다. 세면대를 길게 만들기 위해 화장실 문 위치를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이동했다.
2 화장실 문과 아트월은 현장에서 제작한 것. 너비와 두께가 각기 다른 원목을 사이즈에 맞게 잘라 붙이면 더욱 입체감 있게 보인다. 손잡이는 가죽끈으로 제작.
3 책상 상판으로 스테인리스 소재를 사용. 나무 책장 사이에 책상을 두는 배치로 두 사람이 마주 보고 함께 쓸 수 있도록 했다.
심플한 인테리어의 완성, 계획적인 수납 베란다가 없어 수납공간이 아쉬웠던 문제는 부분적으로 수납장을 짜 넣어 보완했다. 침실 문 맞은편에 있던 오픈형 장식장은 선반을 좀 더 깊게 만들고 문을 달아 두꺼운 옷과 가방 등을 수납할 수 있도록 했다. 주방 문 자리였던 공간에는 키큰장을 짜 넣어 그릇과 소형 가전을 수납하고, 아일랜드 조리대 밑에는 빌트인 와인 냉장고를 설치했다. 와인을 즐기고 손님 초대를 좋아하는 부부의 라이프스타일을 반영한 것. 드레스 룸 아이디어도 재미있다. 문을 열면 왼쪽은 남편의 재킷과 팬츠가, 오른쪽은 박세정 씨의 재킷과 스커트가 일렬로 정돈되어 걸려 있다. 원래 화장대가 있던 공간을 수납장으로 바꾸고 대신 욕실에서 메이크업할 수 있도록 세면대 아래 화장품 수납장을 만들었다. 사실 샤워 후 바로 화장품을 바르고 화장할 때 물을 쓰는 일이 많으니 화장대로 널찍한 세면대가 제격인 것. 현관 옆 작은 창고는 양쪽으로 수납장이 있었는데, 한쪽은 과감하게 없애고 보통 현관에 두는 자전거를 보관했다. 부부 모두 밖에 물건이 나와 있는 것을 싫어하는 성격으로 곳곳에 숨어 있는 체계적인 수납장 덕분에 언제나 깨끗하게 정돈된 상태를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출장이 잦은 남편이 밖에 나가서 집을 떠올렸을 때, ‘그래도 집이 최고지’라는 생각을 했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레노베이션을 계획했다는 집주인 박세정 씨. 그래서 이름 지은 ‘어번 릴랙싱 하우스’는 단정하고 깔끔한 것을 좋아하는 이 부부가 그 어떤 고급 호텔보다 편안하게 머물 수 있는 천상의 보금자리가 아닐까 싶다.
1 부엌 옆 다용도실은 좁은 공간에 효율적인 티크 소재 포켓 도어를 설치했다.
화이트 하이글로시, 실버 스테인리스, 티크 원목, 돌 질감 타일 등 다양한 소재가 믹스 매치된 주방. 고재 나무 식탁은 음식물이 스며들지 않도록 오일 스테인을 한 번 더 발라 마무리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