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베켓 박성희 이사(왼쪽)와 정조앤 이사는 그림을 새롭게 바꿔 달아놓을 때면 VIP 손님 몇몇을 초대해 다이닝 룸에서 와인 파티를 연다. 다이닝 룸에는 파티의 흥을 돋워주는 생동감 넘치는 데미안 허스트의 작품을 걸어놓았다.
“혼자 식사를 하는데 10여 명의 사람들과 만찬을 즐기는 듯한 느낌이 들었어요. 그의 작품은 다이닝 룸에 참 잘 어울리죠.” 주방 한쪽에 걸린 데미안 허스트의 작품을 응시하면서 집주인은 다음 말을 이었다. “흥성스러운 대화 속에서 데미안 허스트는 달콤한 음악을 들려주더군요. 현악 오케스트라의 역동적이면서도 현란한 음정과 리듬, 아마도 쇼스타코비치의 음악이었던 것 같아요.” 작품을 눈으로 보는 데 그치지 않고, 청각을 동원해 감상하면 그 이면의 또 다른 세계가 보인다고 조언하는 이는 갤러리 베켓의 이사 박성희 씨다.
음악 학도, ‘아트 딜러’로의 외도 청담동에 개관한 갤러리 베켓은 서울예고 출신의 음악 학도 두 사람이 함께 운영하는 곳이다. 지금으로부터 15년 전, 여고 시절부터 유난히 사이가 좋았던 두 친구는 줄리아드 음대와 보스턴 음대로 나란히 미국 유학을 떠났다. 이후 박성희 씨는 한국으로 돌아와 독주회를 여는 등 비올리스트로 활발한 활동을 했으며, 또 다른 친구 정조앤 씨는 뉴욕에 남아 미술이라는 새로운 예술 세계를 공부해나갔다. 정조앤 씨는 현대미술의 최전선에서 접한 세계 미술계의 다양한 소식을 한국에 있는 죽마고우와 아낌없이 나눴다. 어느 날인가, 두 사람은 문득 이런 취미를 살려 일을 함께 해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했고, 그렇게 해서 지금의 갤러리 베켓이 탄생했다. 갤러리 베켓은 뉴욕에서 정조앤 씨가 세계 미술 시장에 포진한 신진 작가들을 발 빠르게 접하고, 한국에서는 박성희 씨가 갤러리를 경영하며 친구에게 전달받은 정보를 사람들에게 알리며 전시를 준비하는 등 이원 체제로 운영한다.
1 거실 한쪽 벽면을 수납공간으로 만들고 슬라이딩 도어를 달아, 자유자재로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슬라이딩 도어를 한쪽으로 완전히 밀어버리면 침실로 통하는 복도의 입구가 봉쇄돼, 네모반듯한 갤러리로 변신한다.
갤러리 베켓은 작품 셀렉션뿐 아니라 갤러리 운영에도 남다른 감각을 보이는데, 박성희 씨의 살림집이기도 한 갤러리 하우스가 그것을 증명한다. “뉴욕에는 숍 개념의 갤러리가 아닌 실제 주거 공간을 갤러리처럼 꾸민 후 그림을 걸어놓고 그곳에서 사람들을 만나는 갤러리 하우스가 아주 많습니다. 그들을 이른바 프라이빗 아트 딜러라고 하지요. 현재 한국에는 이런 곳이 많지 않지만, 앞으로 이것이 트렌드가 될 것입니다.” 갤러리 베켓은 청담동에 자리 잡은 작은 부티크 갤러리에서는 전시를 주로 하고, 반포의 아파트에 마련한 갤러리 하우스에서는 컬렉터들과 자유로운 만남을 가진다. 박성희 씨는 갤러리를 운영하면서도 틈틈이 자신만의 외딴섬과도 같은 연습실에서 몇 시간씩 음악에 심취하곤 한다. 벽에 걸린 그림을 울리며 금세라도 음악이 흘러나올 것 같은 작은 연습실. 박성희 씨는 이 연습실에서 ‘들리는 미술, 보는 음악’을 경험한다. “누구든 경험할 수 있는 예술 감상법이죠. 하지만 처음에는 좀 어렵게 느껴질 수 있어요. 그럴 때는 클래식, 재즈 등 다양한 음악을 틀어놓고 미술을 감상해보세요. 예술에 조예가 깊지 않더라도, 미술과 음악을 동시에 접하면 마음과 몸이 진정한 휴식을 얻고, 충만해지는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니 이 갤러리 하우스가 어떻게 탄생하게 됐는지 고개가 주억거려진다.
2 브라질 출신의 팝 아티스트 로메로 브리토의 아트워크 ‘조이 베어’. 경쾌하고 생동감 넘치는 그의 작품은 삶에 유쾌함을 더해준다.
3 갤러리 베켓 이사이자 비올리스트인 박성희 씨의 ‘들리는 미술, 보는 음악’을 경험할 수 있는 연습실. 음악과 미술은 결국 같은 선상에 놓인 예술로, 함께 즐길 때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해준다.
가구로서의 그림을 마주하다 형식에 얽매인 어려운 음악 대신 가구처럼 늘 거기에 있는 쉽고 친근한 음악을 강조한 프랑스 작곡가 에릭 사티가 ‘가구로서의 음악’을 주창했다면, 이들은 ‘가구로서의 그림’을 이야기한다. 박성희 씨는 자신의 집을 갤러리 하우스로 꾸미기 위해 이제 막 입주를 시작한 새아파트지만 레노베이션을 감행했다. 구조 변경까지는 아니더라도, 클래식하고 과장된 몰딩과 벽지를 뜯어내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했다. 뉴욕에서 갤러리 하우스를 방문해본 경험이 많은 정조앤 씨는 박성희 씨에게 인테리어에 관한 아이디어를 귀띔해주었다. 정조앤 씨는 “처음에는 그림이 돋보이도록 벽면을 흰색으로 페인트칠한 맨해튼의 60여 평 규모 갤러리 하우스의 인테리어가 어떻겠냐고 제안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결국 페인트 대신 자작나무 합판을 선택했습니다. 따뜻한 느낌을 더하고 싶었고, 무엇보다 우리나라의 주거 현실에 맞게 공간을 꾸며놓고, 거기에 어울리는 그림을 배치해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한다. 실제 사람이 거주하는 집이 이토록 심플하고 모던하게 하나의 갤러리처럼 정리 정돈돼 보이는 데는 잘된 수납의 덕이 크다. 사람이 사는 집은 해를 더할수록 살림살이가 많아지게 마련. 액자, 그릇, 책 등 개인적으로 의미 있는 물건이어서 늘 가까이할 수 있는 곳에 잘 보이도록 놓다 보면 어느새 정리가 불가능할 정도로 복잡한 공간이 되고 만다. 이 집은 한쪽 벽면에 널찍한 수납공간을 마련하고 슬라이딩 도어를 달아 기능은 높이고 스타일은 더했다. 평소에는 열어놓고 편하게 사용하다가도, 손님을 초대하는 날이면 깔끔하게 닫아놓는다. 모든 방의 문고리마저 과감하게 없앴다. 동화 속에 나오는 ‘비밀의 방’처럼, 벽인 것 같지만 밀어보면 문이 열린다. 방문 역시 벽면과 통일된 느낌을 주기 위해 자작나무 합판을 사용했으니 더욱 감쪽같을 수밖에.
1 창호지를 바른 동양적인 정서가 묻어나는 복도 한쪽에 영국 작가 올리버 크레그의 작품을 배치했다.
2 벽면에 자작나무 합판을 붙이고, 방마다 문고리를 모두 없앤 갤러리 하우스. 동양적인 복도 한쪽과 상반되는 서양적인 느낌의 또 다른 복도를 배경으로 로이 리히텐슈타인, 조지 콘도의 젊은 여성을 그린 작품이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3 VIP 손님을 초대했을 때, 편안하게 앉아 음악과 미술을 즐길 수 있도록 거실 바닥에 다다미를 깔았다.
작품을 더욱 빛나게 해주는 공간 일본의 료타 우노 Ryota Unno, 인도의 마닐 굽타 Manil Gupta, 영국의 올리버 클레그 Oliver Clegg, 미국의 리처드 메이휴 Richard Mayhew 등 갤러리 베켓에서 소개하는 작품이 동서양의 구분 없이 한데 어우러진 것처럼, 갤러리 하우스의 인테리어도 동서양의 만남을 콘셉트로 했다. 창호지를 바른 문살이 인상적인 복도 한쪽, 그에 대비되게 코발트 빛 대서양이 펼쳐지는 또 다른 복도 한쪽이 그렇다. 복도에는 객을 환대하는 밝은 느낌의 작품을 걸고, 거실에는 솔 르윗의 미니멀한 그림을 걸었다. 한쪽에는 조지 콘도의 ‘Young Girl’과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Crying Girl’을 함께 배치해, 젊은 여성을 각기 다르게 표현한 두 작가의 작품 세계를 함께 감상할 수 있다. 박성희 이사는 미국의 미니멀 아트 미술가 솔 르윗의 ‘정사각형’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개울가에서 작은 물결이 일렁이듯 리듬과 음정이 약간씩 변하는 마이클 니만의 음악이 자연스럽게 오버랩된다고 말한다. 이렇듯 그림이 공간 안에서 절묘한 조화를 이루며 사람과 소통하고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것, 공간에 맞게 작품을 제대로 배치했을 때 맛볼 수 있는 예술적 감동의 극치다. 세월이 흐를수록 가슴이 헛헛하다면 당신의 마음을 어루만져줄 그림 한 점 만나러 갤러리로 향하라. 그래도 채워지지 않는다면, 당신의 집을 갤러리 하우스로 꾸며보라. 이른 아침 눈뜨면 마주하는 침실 한쪽, 홀로 식사를 할 때 무의식중에 시선을 던지는 그곳에 그림을 들여놓자. 삶이 한결 풍요롭고 여유로울 테니….
4 에르메스의 추상화 패턴 스카프 작가로 알려진 요제프 알베르스의 아트워크. 채광이 잘 드는 창가에 두면 그가 구현한 색 조합의 묘미를 제대로 감상할 수 있다.
프라이빗 세일에 중점을 둔 청담동 갤러리 베켓(02-515-8004) 내부. 일반 갤러리와 달리 레드 컬러로 벽면을 칠해 전체적으로 아늑하면서도 편안한 느낌을 자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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