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1층은 노출 콘크리트로, 2층은 목재로 마감한 집. 집 안에는 액자 하나 걸려 있지 않지만, 제각각 다른 창에서 투영하는 하늘, 나무 등의 자연이 멋진 그림이 되어준다.
건축가 최종훈 씨가 소개하는 집은 주차장에서 500여 미터 떨어진 곳에 자리하고 있지만, 우리는 차를 그곳에 먼저 주차해야 했다. 30여 년 된 노후 주택을 허물고 건축가가 새로 지은 집에 차고 하나 없단 말인가? 물으려는 찰나 상도동 골목길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자동차 한 대 들어가기 어려운 좁디좁은 길. 앞서 가는 사람을 놓치면 길이라도 잃을 것 같은 고부라진 골목길을 따라 묵묵히 건축가의 잰걸음을 쫓았다. 북적거리고 흐느적거리는 세상살이에서 생채기 난 마음을 보듬어줄 것 같은 따스한 햇빛 한 올이 나뭇등걸에 걸터앉아 있었다.
두껍아, 새집 말고 기억의 집을 지어다오
누구나 일생에 한 번쯤은 나만의 집을 짓는 꿈을 꾼다. 서울 시내 얼마 남지 않은 주택가, 상도동 빨간 벽돌집에 살던 신기수・허지은 씨 부부는 마음이 부자다. 새집을 마련하고부터 한쪽 벽면을 붉게 물들여놓는 석양을 감상하느라 저녁 시간을 기다리는 이들. 집 때문에 삶을 사는 재미가 하나 더 늘었다고 말하는 이들은 똑같은 돈을 들여 인근에 새로 지은 아파트를 샀더라면 누리지 못할 기쁨을 맛보고 있다. 택배 차도 들어올 수 없을 정도로 좁은 골목에 살면서 불편한 일도 많지만, 그렇기에 공기 좋고 경적 소리도 없는 오염되지 않은 동네에 살 수 있는 것이라고 아이들에게 말해왔다. 동네 어귀, 까까머리 아이들이 부르던 “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게, 새집 다오” 하던 노래를 기억하는가. 부부는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추억이 서린 집을 조심스럽게 허물며 “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게, 새집 말고 기억의 집을 지어다오”라고 빌었다. “비가 새고, 채광이 좋지 않아 어두컴컴한, 더 이상 사람이 살기 너무 힘든 집이었어요. 쓰러져가는 낡은 집이지만, 아버지의 손때가 묻은 소중한 집이라 고민을 많이 했죠. 결국 아버지가 주신 터에 튼튼한 새집을 짓고, 우리가 또 자식들에게 물려주자고 결론을 내렸죠.” 건축가 최종훈 씨는 설계도를 그리기 전, 먼저 이 부부의 마음을 읽었다. 집을 철거하면서 대들보, 벽돌, 기와 등 재활용할 수 있는 자재를 한쪽에 모아 기와는 마당 펜스로, 벽돌은 외관을 채워 넣는 데 사용한 것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다. 또 기존에 사용하던 오래된 가구도 버리지 않고 새로운 공간에 적절하게 둘 수 있는 방법을 모색했다. 건축주의 ‘기억의 집’을 지켜주고 싶은 건축가의 배려였다.
2 딸아이의 방과 이어진 야외 덱. 엄마와 별을 보고 비밀 이야기를 하는 아지트와 같은 곳이다.
3 과거와 현재가 혼재된 상도동의 골목길에 정미소 같기도 하고 갤러리 같기도 한, 건축가 최종훈 씨가 지어 올린 집. 이 집 안주인 허지은 씨는 동네에서 찾기 제일 쉬운 집이 됐다고 웃으며 이야기한다
1 바닥에는 리놀륨 장판을 깔고, 벽에는 화이트 컬러의 천연 페인트를 발라 완성한 건강한 집.
2 남은 자작나무 합판을 이용해 만든 간이 식탁. 냄새도 나지 않고, 실용성도 좋아 차 한잔 마실 때나 책 볼 때 가족이 즐겨 이용하는 장소다.
3 30년 된 주택을 철거할 때 걷어낸 기와를 담장에 재활용했다.
아파트에서는 누릴 수 없는 풍요를 담다
건축가 최종훈 씨는 단독 주택 53평 안에 아파트에서는 누릴 수 없는 독특한 구조를 설계했다. 단독 주택에서만 누릴 수 있는 커다란 천창, 이층집에 대한 로망이 있는 아이들을 위한 방, 정원을 끌어안은 듯한 거실 등이 그것이다. 1층과 2층에는 각각 천창을 냈는데 이는 앞집, 옆집과 다닥다닥 붙어 있는 환경에서 사생활을 보호하고, 채광도 한껏 즐길 수 있는 방법으로 선택한 것이다. 그런데 천창 덕분에 두루두루 효과를 보았다. 집에는 흔한 그림 액자 하나 없지만, 시시각각 자연이 드라마틱한 광경을 연출해주기 때문에 전혀 지루하거나 심심하지가 않다. 또 직사각형 매입등 형식의 조명등은 용도에 따라 필요한 공간에서 선택적으로 끄고 켤 수 있도록 여러 개를 달아놓았다. 거실 하나만 세어봐도 조명이 서너 개나 될 정도다. 편리성은 물론 전력 소비를 줄여 관리비를 절감할 수 있는 방법을 고려한 것. “사실 나만의 공간을 만들기 위해 주택을 짓는 것인데, 일을 하다 보면 기존의 아파트 구조에 집착하는 사람을 만나곤 합니다.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은 일정 틀에서 벗어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어요. 하지만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 아닙니까. 새로운 것에 얼마든지 빠르게 적응할 수 있죠.” 무엇보다 최종훈 씨는 아토피 피부염을 앓고 있는 가족을 고려해 건강한 집을 지었다.
1 작은아들이 직접 고른 벽지로 꾸민 2층 아이 방.
2 천창은 집 안의 풍경을 드라마틱하게 해주는 요소로, 단독 주택에서만 누릴 수 있는 작은 사치다.
천연 소재 바닥재 리놀륨, 천연 페인트, 자작나무 합판 등 순한 자재를 사용한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최종훈 씨는 친환경 페인트와 천연 페인트는 다르다는 것을 강조한다. 친환경 페인트는 일반 페인트보다 유해 물질이 적을 뿐이지 완전한 천연 재료는 아니라는 것. 반면 천연 페인트는 재료 자체가 천연이어서 인체에 무해해 새집증후군의 위험을 줄일 수 있다. 부부는 “사람들이 우리 집에 와보고 교회 같기도 하고, 갤러리 같기도 하다고 해요. 바닥, 벽, 가구, 조명등 같은 소품까지 모두 한두 가지 컬러로 통일해서 그런가 봐요. 아토피피부염이 심한 큰아이 때문에 새 가구를 살 엄두가 안 나기도 했지만 예산의 많은 부분을 건축비로 사용하다 보니 가구를 살 여유가 없었죠. 벽면에 수납공간을 자작나무로 짜 넣었더니 냄새도 안 나고, 저렴하게 가구를 새로 마련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 벌써부터 딸아이는 엄마에게 이 집은 나중에 자기가 살 집이라고 우스갯소리를 한다. 딸에게든, 아들에게든 훗날 아이들에게 이 집을 대물림한다면, 그때의 생활 양식에 맞게 증축할 수 있도록 마당으로 넓은 여유 공간을 확보해두었다.
3 건축가 최종훈 씨는 건축은 작업일 뿐, 작품은 아니라고 말한다. 작품은 손댈 수 없지만, 주택 건축은 사는 이에 맞게 변형할 수 있기 때문. 본인은 건축가로서 바탕만 만들어놓을 뿐, 공간에 대한 쓰임새는 건축주가 자유자재로 살면서 바꿀 수 있다.
건축가 최종훈 씨에게 듣는 내 집을 건축하려고 할 때 알아두면 좋은 정보
먼저 평소 좋은 건축물을 많이 보자. 그리고 이왕 볼 때는 겉모습뿐만 아니라 깊이 들어가서 관찰하자. 건축 전문지를 통해 건물의 내부 구조를 살펴보는 것도 좋다. 좋은 건축가를 만나는 것은 좋은 배우자를 만나는 일과 같다. 건축가가 설계도를 그리기 전, 서로의 의견을 자유롭게 교류할 수 있도록 건축주의 생각을 명확하게 적어놓은 ‘오너 요구 사항, 일명 owner’s requirement’를 만들어놓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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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A 건축사사무소 소장인 건축가 최종훈 씨는 정림건축에서 타워팰리스, 국립중앙박물관 작업에 참여했으며, 5년 전 독립해 NIA 건축사사무소를 설립해 파주출판단지 열화당 증축, 내곡동에 나루글로벌 와인 하우스 등을 작업했다. 지난 8월 론첼갤러리에서 건축가 김종규 씨와의 공동 프로젝트 ‘파주 문화 클러스터’를 전시했다. 문의 02-529-0897, www.nia21.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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