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붕과 뒷산 사이에 데크를 만들어 후원을 꾸몄다.
편집부에 두툼한 파일 한 권이 우편으로 날아들었다. 그 안에는 1992년 1월호 <행복>에 실린 기사도 한 편 담겨 있었다. 이 소포의 주인공은 화가 한영섭 씨다. “지난해 여름부터 정년을 준비해왔습니다. 이제 교단을 떠나니 오직 작업에만 몰두할 수 있겠구나 싶었지요. 20년 전 마련한 작업실을 재정비하면서 옛 생각이 나더군요.” 그가 1백여 장의 사진을 보내온 작업실 겸 가정집에는 언뜻 보아도 세월의 때가 묻어 있었다. 20년 만에 하는 개조 공사는 처음 집을 지을 때와 마찬가지로 설계에서 시공까지 모든 과정이 그의 손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한다. 1992년 1월호 <행복>에 ‘개성이 빛나는 집’으로 소개했던 집이 20년이 흐른 지금 어떻게 변모되었는지 소식을 알려 온 것이다.
뒷산에 진달래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던 날, 경기도 광주시 초월면에 자리한 화가 한영섭 씨의 집을 찾았다. 지난 1년간 뚝딱뚝딱 집을 고치느라 한 동안 작품에서 손에서 놓았다. 어찌나 손재주가 좋고 부지런한지 일주일 만에 후원을 꾸몄다며 진달래 만발한 뒷동산으로 안내했다. 작업실 2층에서 밖으로 나서니 바로 뒷산 중턱이다. 그는 지난 주 내내 톱질과 못질을 번갈아가며 새로운 데크를 만들었다고 한다. 구름다리처럼 산중턱과 작업실 지붕을 연결하는 너른 데크를 혼자 힘으로 만들었다니 대단한 솜씨다. 이 후원이 안고 있는 또 다른 재미는 새로 만든 데크를 거쳐 지붕 위로 올라갈 수 있다는 것. 지붕을 밟고 저 멀리 도시 풍경과 중첩되는 자연을 바라보는 것은 맨 땅을 밟고 바라보는 것과는 또 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1 한영섭 씨가 한지에 깻잎 줄기를 탁본하는 방식으로 작업하고 있다.

2 <행복>에 보내온 편지

1 리모델링을 통해 아내의 작업실이 된 거실에는 아내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2 돌과 옹기로 장식한 창가의 여유로운 풍경.

뒷산을 후원 삼아 사는 일상에서 가장 좋은 것은 사계절 꽃을 볼 수 있는 것이란다. 개나리와 진달래로 시작하는 봄꽃에서부터 사시사철 다른 옷으로 갈아입는 들꽃 무더기까지. “산과 들에서 꽃을 볼 수 없는 겨울이 되면 저이는 장화를 신고 눈 덥인 산으로 가서 개나리나 진달래 가지를 꺾어 와요. 화병을 양지 바른 곳에 두고 물에 꽂아두면 1~2주일 후에 꽃을 볼 수 있어요. 창 밖으로 온 세상이 하얗게 눈 덮여 있는데 집 안에 봄꽃이 피어 있으면 정말 볼 만해요.” 창 밖으로 눈발이 날리는데 거실에 놓인 커다란 항아리에 개나리가 한 가득 피어 있는 사진을 보여주며 아내가 말한다. “이이는 앞산이고 뒷산이고 어디 가면 무슨 나무가 있다, 이건 캐와도 된다 안 된다 다 알아요. 이러니 서울에선 절대 못 살죠.”
3 손님을 반갑게 맞아주었던 백구 흰둥이.

4 전시장으로 꾸며 놓은 한영섭 씨의 작업실 2층 풍경.
5 후원과 다름없는 뒷산은 아담한 숲을 가지고 있다. 이들 부부는 이 숲길을 가로질러 이웃을 만나러 가기도 산책을 즐기기도 한다.
주말마다 들르는 별장도 아니고, 그렇다고 매일 출근해야 할 직장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이런 상황에서 20년 동안 아이들 키우며 전원 생활을 한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을 터. 그는 교편을 잡았던 상명대학교 천안 캠퍼스로 출근하기 위해 처음 10년 동안은 차를 네 번이나 갈아타야 했다고 한다. 그렇게 고된 출퇴근길을 겪으면서도 지난 23년간 단 한 번도 지각이나 결근을 하지 않았다. 그는 자연과 함께하는 삶에 생활의 편리함을 내준 것이다. 더 이상 고단한 출퇴근길은 없다. 그는 자연을 벗하며 작품 활동에 푹 빠져 볼 요량이다. 그가 직접 설계하고 손수 쌓아 올린 이 집은 어느덧 스무 살 성년이 되었다. 이제 인생 2막이라는 한영섭 씨에게 이 집은 무대가 되어줄 것이다. 언제나 그를 응원하는 가족이 관객이 되고 아름다운 자연이 배경이 되는 풍요로운 무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