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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로코 엄마 우리아 씨의 서울 일기 문화를 나누며 인연을 만든다
여러 도시를 거쳐 서울에 살게 된 모로코 여인 우리아 리히티 씨. 남편의 사업 차 한국에 온 그는 친구를 사귀며 서울 생활에 적응해나가고 있다. 그에게는 가족만큼 소중한 인연이 된 친구들이 있다. 그들을 통해 발견한 서울의 이야기를 전한다.

1 창가에 아들 로리스와 마주 앉은 우리아 씨. 정겹게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한국의 엄마들에겐 조금 낯선 풍경이다. 엄마에게 막내란 성인이 되어도 아이같은 법이다.
2 모로코 전통 문양의 조명등으로 안쪽에 초를 넣어 정원에 놓고 사용하기도 한다.


우리아 씨의 집을 찾은 날, 그의 집에서는 티 파티가 열리고 있었다. 아래층에 살고 있는 프랑스 친구부터 엘리베이터 안에서 우연히 만난 모로코 친구, 평소 가깝게 지내는 한국 친구들이 모여 한낮의 티타임을 즐기는 것이었다. 거실 테이블 위에는 홍차와 커피 그리고 한과, 마카롱, 홍콩에서 사 온 화과자가 놓여 있었다. 친구들의 국적만큼이나 다양한 테이블 세팅이다. 테이블을 에워싼 친구들 사이에서는 프랑스어와 영어가 뒤섞여 한바탕 수다 판이 벌어지는 가운데 모로코 음악이 흘러나온다. 그는 새로운 도시에 갈 때마다 많은 친구들을 사귀는 것이 외국 생활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요즘은 한국 친구들을 통해 한국어도 배우고 한국 생활의 다양한 즐거움을 맛보고 있다. 덕분에 그는 난생처음 와본 서울 생활에 어려움이 ‘전혀 없다(Honestly nothing)!’고 할 만큼 빠르게 적응하고 있었다.


3 우리아 씨가 수집한 빈티지 향수와 여행 중 구입한 브로치.
4 현관에서 거실로 이르는 통로에 런던에서 구입한 1950년대 빈티지 장이 있다.


모로코 마라케시 Marrakesh(카사블랑카, 라바트에 이어 모로코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로 입생로랑, 알랭 들롱, 카트린 드뇌브 등 유명 스타들의 별장이 있는 곳으로도 유명하다)에서 태어난 우리아 씨는 15세에 스위스로 이주했다. 그곳에서 학교를 마치고 결혼을 한 뒤 가족들과 함께 영국, 그리스 등 여러 도시에서 살았다. 낯선 세상과 문화에 적응하면서 그의 긍정적이고 쾌활한 성격은 더욱 빛을 발했다. 적응할 만하면 새로운 도시로 옮기는 생활이 반복될 때마다 ‘적응 스트레스’도 적지 않았을 텐데, 오히려 그것을 사는 재미로 받아들인다. “새로운 도시에서 사는 것은 모든 것이 제로인 상태에서 출발하는 것이죠. 그만큼 무언가를 발견하면서 보낼 시간이 많아지는 것이기도 해요”라고 말하는 그는 때론 이런 외국 생활이 다시 신혼으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해 매력적이라고 한다.


1 영국 ‘어쿠스틱’ 브랜드에 의뢰해 제작한 액자 모양의 스피커. 미국 사진작가가 촬영한 모로코 전통 의상을 입은 여인의 사진이 맘에 들어 스피커로 만들었다.
2 우리아 씨의 드레스 룸. 1960년대 디올 빈티지 드레스부터 입생로랑 빈티지 코트까지 마치 패션 박물관을 축소해놓은 듯하다.


가족사진과 책은 인테리어 필수품
그가 살고 있는 오크우드 프리미어는 서비스 레지던스라 집 안을 직접 꾸밀 수 있는 여지가 많지 않았다. “렌트를 한 것이기에 집을 많이 바꿀 수 없었어요. 그래도 바닥의 카펫만큼은 거둬냈어요. 그냥 이렇게 나무 바닥이나 대리석 바닥이 더 깨끗한 거 같아 좋아요”하며 집 안 곳곳을 구경시켜 주었다. 금색 벽지에 몰딩까지 너무 강해 뭔가를 더 꾸며 넣지 않기로 했다. 단지 런던에서 구입한 프랑스 앤티크 침대와 수납장, 테이블과 의자 세트, 전신 거울 등의 가구와 소품들을 조화롭게 배치했다. 그는 최소한의 살림만 챙기고 나머지는 스위스 집에 두고 왔다.
처음 이 집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바깥 경치에 한 번 감탄하고, 창가에 줄지어 있는 수많은 액자, 그 속에 있는 사진들을 보며 한 번 더 감탄한다. 가족이 모두 함께 살 수 없기 때문에 허전함을 달랠 겸 언제나 집 안에서 제일 좋은 위치에 가족사진들을 펼쳐놓는다. 첫째 딸 켄자는 스위스에, 둘째 딸 데릴라는 런던에 산다. 막내아들 로리스는 연세대학교에서 경제학을 공부하고 있다. 로리스는 1년 정도 서울에 머물며 한국어를 공부할 계획으로 왔다가 이곳의 생활과 친구들이 좋아 대학에 다니며 몇 년 더 머물 예정이다. 자녀들이 어렸을 적엔 함께 도시를 옮겨 다니며 살았지만 어느덧 그들이 독립할 나이가 되었고 학업을 계속하고 직장을 갖게 되면서 각기 다른 도시에 살게 되었다. 로리스도 같은 서울 하늘 아래 살지만 부모와 떨어져 인사동에 집을 마련했다. 주말이나 손님이 찾아올 때면 종종 삼성동 집으로 오는 로리스는 엄마 친구들과도 자연스럽게 어울리며 때론 대화를 주도한다. 엄마 친구에게 영어를 가르쳐주기도 하는 그는 살가운 막내이다.
가족사진이 늘어선 거실 창가 한쪽에는 책들이 꽂혀 있다. 대부분 모로코의 건축과 문화를 소개한 책들이다. 그리스를 비롯한 유럽의 건축과 정원, 여행지를 다룬 책도 몇 권 있고, 사진집, 미술 작품집도 있다. 우리아 씨는 손님이 찾아오면 모로코 문화를 전할 때 이러한 책들을 활용한다. 유달리 건축에 관심이 많아 건축 책을 많이 모으게 됐는데, 모로코를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낯선 도시의 문화를 이해시키는 데 건축을 살펴보는 것만큼 좋은 것도 없다고 한다. 이렇게 그와 이야기하고 나면 마치 모로코 여행이라도 다녀온 듯 생생한 느낌이 든다. 이런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문화 홍보대사가 아닌가 싶다.


3 런던에서 구입한 의자와 테이블 세트. 
4 우리아 씨의 동네 친구 3인방이 모였다. 한건물 안에 살고 있는 같은 모로코 출신인 살리마 씨(오른쪽)와 프랑스에서 온 루이자 씨.


5 여자 셋이 모이면 그릇이 깨진다는데 국적도 다르고 언어도 다른 여섯 명의 여자가 모였다. 여기에 아들 로리스까지. 영어와 프랑스어가 오가는 가운데 한낮의 티 파티가 열렸다. 맨 왼쪽부터 주얼리 브랜드 뮈샤의 대표이자 디자이너 김정주 씨, 우리아 씨, 애비뉴 준오의 헤어 디자이너 강초록 씨, 로리스, 그리고 일식 레스토랑 ‘풍월’을 경영하는 이선명 씨이다. 이들은 가끔 밤에 모여 여자들만의 샴페인 파티를 열곤 한다.

행복을 채워줄 친구를 만나다
우리아 씨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어느 곳이든 여자들의 문화란 대개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한국의 찜질방과 같은 하만이란 것이 모로코에 있고, 김장처럼 겨울의 길목에서 온 집안 여자들이 모여 옥수수를 갈아 파스타 면과 같이 생긴 음식을 마련하는 일종의 ‘세리머니’가 있는 것이 비슷하다고 한다. “아직 찜질방은 못 가봤는데 모로코의 하만은 사회적 신분에 따라 부유층이 이용하는 곳이 있고, 서민들이 이용하는 곳이 있어요. 한국 여자들처럼 모로코 여자들도 하만에 모여 수다를 떨곤 하죠. 하지만 한국처럼 오래 있지는 않아요. 저는 어릴 적 어머니와 하만에 갈 때면 오렌지를 가져가 찬물에 넣어두고 목이 마를 때마다 먹었어요.”
어느덧 서울에 정착한 지 두 해가 되어간다. 그동안은 서울이란 도시를 알아가느라 분주했다. 그리고 이제부터가 본격적인 한국 생활의 시작이라 한다. ‘뉴욕의 소호와 비슷한’ 신사동 가로수길, 삼청동, 신촌, 홍대 앞까지 어지간한 명소들은 다 가보았다. 앞으로 한 3년 정도 한국에 더 머물며 해보고 싶은 것이 너무 많다. 요즘 한 친구에게서 한국어를 배우고 있는데, 한국어는 가만히 듣고 있으면 노래처럼 멜로디가 느껴진다. 갈치 요리처럼 한국의 맛있는 음식들도 더 많이 먹어볼 것이다. 가끔 모로코가 그리울 때면 이태원에 있는 ‘마라케시 나이트’라는 모로칸 식당에 찾아가 마음을 달랜다. 지금까지는 서울에만 머물렀지만 이제부터는 한국의 이곳저곳을 여행하며 다양한 문화를 경험해볼 것이다. 그리고 더 많은 사람을 만나고 싶다. 그리고 또 한 가지 할 일이 있다. 바로 자신의 집에서 바자회를 여는 것이다. 우리아 씨는 서울에 오기 전까지는 항상 현지에서 사귄 친구들과 함께 집에서 바자회를 열어 그 수익금을 고아원이나 사회 복지 시설에 기탁했다. 바자회의 주요 아이템은 안 입는 옷이나 액세서리 같은 소품. 때로는 자신이 직접 디자인한 옷을 팔기도 한다. 여러 도시를 돌아다니는 데다 뛰어난 패션 감각 덕에 그가 착용한 옷과 액세서리는 항상 친구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곤 한다. 그러니 친구들에게 바자회는 그의 안목으로 고른 아이템을 구입할 수 있는 좋은 기회도 된다.
세계 여러 도시를 돌아다니며 일에 대한 스트레스 없이 생활을 즐기며 사는 삶은 누구나 한 번쯤 꿈꾸는 모습이 아닐까. 그렇다고 그런 일상이 매일 행복한 것만은 아니다. 우리아 씨는 모로코를 떠나 스위스에서 결혼 생활을 시작하며 이를 깨달았다. 그리고 행복은 스스로 만들고 채워나가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을 바꾸었다. 스위스든 영국이든 그리스든, 불평보다는 만족하고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을 키우기 위해 애썼다. 그러다 보니 내면에서부터 긍정적인 에너지가 생성되고 서로 다른 문화적 배경에서 자란 사람들과도 금방 인연을 맺을 수 있었다. 국적과 세대를 초월해 더 큰 행복을 만들어나가는 우리아 씨의 노하우인 것이다.

(위) 가족사진은 이 집 인테리어의 포인트이다. 손님방에도 로리스, 데릴라, 켄자의 어렸을 적 사진으로 장식했다.

우리아 씨가 추천하는 모로코에서 꼭 가봐야 할 도시
모로코의 수도 카사블랑카는 영화를 통해 더욱 유명해졌다. 한국어로 ‘하얀 집’을 의미하는 카사블랑카에는 하얀 리야드 Ryad(모로코 전통 주택)가 많다. 뿐만 아니라 프랑스 지배 당시 지은 아르데코 양식의 건축물이 많다. 다음으로 중요한 도시는 마라케시. 그 이름에는 빨강이란 의미가 담겨 있다. 정열의 붉은 태양과 건축물을 많이 볼 수 있는 곳이다. 또한 모로코의 대표적인 휴양 도시이기도 하다. 유명 배우들은 이곳을 비밀의 장소라 생각해 별장을 지었다고 한다. 스페인과 불과 몇 km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아실라라는 도시도 있다. 날씨만 좋으면 스페인이 보이기도 한다는데, 담벼락에 그린 그림 하나까지도 예술적인 도시 풍경에 감탄하게 되는 곳이란다.

김명연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09년 5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