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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 디자이너 3인의 힐링 스페이스]로담건축 대표 김영옥 씨 아날로그적 감성이 나를 치유한다
공간이란 마음이 느끼고 몸이 반응하는 대상입니다. 사람들은 경험을 통해 공간을 기억합니다. 디자인은 변할지라도 사람들이 기억하는 공간의 모습은 영원합니다. 여기 세 명의 디자이너가 있습니다. 화려한 디자인보다는 담백한 공간에 더 어울리는 이들입니다. 그들이 완성한 공간에서 사람들은 행복을 맛보고 휴식을 경험합니다. 그렇다면 이 세 명의 디자이너는 어디서 휴식을 경험하고 위안을 받을까요? 그들의 몸과 마음을 무장해제시키는 힐링 공간을 소개합니다.


김영옥 씨가 8년 동안 사용하고 있는 사무실. 원래 2층 벽돌집이었던 것을 레노베이션하면서 합판으로 벽과 천장을 다시 만들었다. 그렇게 해서 생긴 다락방이 그의 사무실이다.

“공간도 사람과 마찬가지예요. 나와 닮은 공간에 더 끌리게 마련이죠. 그리고 공간도 결국은 그 안에서의 경험을 통해 기억되죠. 디자인은 항상 변화하지만 자신이 경험한 그 공간에서의 기억, 그 기억 속 모습은 영원한 것이에요.”
인테리어 디자인 회사 로담건축을 운영하는 김영옥 씨의 방은 그의 말투와 행동은 물론 그의 외형과도 너무 잘 어울리는 공간이다. 고층 빌딩을 마주한 벽돌집 사이에 자리 잡은 2층 건물이 로담건축의 사무실이다. 이 건물 2층에 있는 김영옥 씨의 사무실로 올라가려면 벽 쪽으로만 난간이 있는 좁은 계단을 조심스레 올라야 한다. 그러면 소녀적인 감성이 담긴 공간이 나타난다. 따스한 봄볕이 들어오는 창가에 오도카니 앉아 라디오를 들으며 책을 읽는 모습이 떠오를 법한 풍경이다. 밤이면 친구와 와인 한잔에 디자인을 논해도 좋을 방의 모습이다.


김영옥 씨가 지난해 1년 가량을 보냈던 사무실이다. 삼성동에 이런 동네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조용하고 한적한 곳이었다. 아름드리 버드나무가 한 그루 있어 더욱 애착이 갔지만 결국 원래 있던 사무실로 돌아왔다. 헤어질 인연인 것을 직감했는지 김영옥 씨는 평소에는 잘 찍지 않는 사진을 이곳에서만큼은 거의 매일 찍었다고 한다. 주인공은 당연 공간이었다.

김영옥 씨에게 사무실은 그저 ‘일’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다. 그곳은 일요일 아침이면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기에 더없이 좋은 독서와 사색의 공간이며, 오래된 아날로그 라디오를 들으며 정겨운 대화를 나누는 공간이기도 하다. 일을 할 때는 책상 가득 종이를 펼쳐놓고 골몰하다 생각이 막히면 그가 좋아하는 이탈리아 건축가 알바로 시자 Alvaro Siza(포르투갈 출신의 건축가로 군더더기 없이 담백하면서도 조형성이 강한 건축이 특징이다. 한국에서는 안양예술공원 내 커뮤니티 하우스를 설계했다)의 작품집을 펼쳐보기도 한다. 김영옥 씨는 이 사무실에서 1990년대 후반 패션 피플들이 즐겨 찾았던 ‘큐브’라는 아트북 숍과 카페를 디자인했다. MBC <러브 하우스>에도 출연해 소외된 사람들을 위한 집을 디자인하는 뜻있는 활동을 하기도 했다. 또한 카페, 바, 레스토랑, 소규모 호텔, 주거 공간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공간을 탄생시켰다. 최근에는 석촌호수 산책로에 들어설 카페와 문화 공간을 디자인하고 있다. 그의 사무실에서 아날로그적인 따스한 감성이 묻어난다면, 그가 디자인한 공간에서는 모던하면서도 원색적인 포인트에 아날로그와는 다른 느낌의 따스한 감성이 묻어난다. 카페나 바, 숍과 같은 상업 공간이 필요로 하는 시선을 사로잡는 요소를 만들어주기 위해 그는 화려한 형태보다는 컬러를 이용한다.


1 김영옥 씨의 사무실로 이르는 계단. 좁은 계단을 조심조심 오르면 다락방처럼 생긴 그의 방이 나온다. 계단을 중심으로 오른쪽에는 미팅 룸이, 왼쪽에는 그의 책상이 있다.
2, 5 그의 사무실에서 유난히 탐이 났던 것이 바로 창가였다. 다락방의 풍취가 고스란히 느껴지는 창가에 아기자기한 소품으로 정겨움을 더했다.


사실 김영옥 씨가 꼭 소개하고 싶었던 공간이 있다. 1년 남짓 짧은 시간을 보낸 사무실이긴 하지만 그 어떤 공간보다도 애착을 가졌던 곳이다. 하지만 인연이 아니었는지 더 이상 그곳에 지낼 수 없게 되어 8년 가까이 사용했던 지금의 사무실로 돌아왔다. 그곳의 사무실 앞에는 버드나무가 한 그루 있었다. 노을이 질 녘이면 버드나무가 긴 그림자를 드리워 장관을 이루었고 비바람 부는 날이면 마치 살아 움직이는 듯했다. 가만히 앉아 감상하기에 멋진 풍경이었다. 그는 옥탑에 양철 지붕을 씌워 그 아래에서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도 감상하고 라면도 끓여 먹었다.
“어렸을 적 외할머니와 함께 살았어요. 집 앞에는 버드나무 한 그루가 있었죠. 그 아래서 책도 보고 혼자 노는 것을 좋아했어요. 그 기억에 지난해에 잠깐 지냈던 사무실을 좋아했나 봐요.” 그는 다시 한 번 사무실 이전을 계획하고 있다. 이번에는 도심에서 조금 떨어진 전원 마을에 보금자리를 구했다. 그곳에도 버드나무 한 그루가 듬직하게 서 있다. “제가 기억하는 어린 시절 그 공간의 정서가 지금의 사무실에도 배어 있을 테고, 곧 이사할 새로운 사무실에서도 그대로 느껴졌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제 기억의 잔상을 드러내는 것이죠.” 어쩌면 김영옥 씨에게 휴식이 되어주는 소중한 공간은 그가 마음속에 품고 있는 버드나무 그늘 아래가 아닌가 싶다.

 3 정원 일 할 때 신는 신발의 발목 부분을 잘라내어 명함통으로 쓴다.


4 그가 존경하는 건축가 알바로 시자의 수납장 위에 좀처럼 착용하지는 않지만 아끼는 중절모를 놓았다.


6 천장고가 높은 공간의 벽면에 다양한 전시회 포스터를 붙였다.
7 1층 천장을 뜯어내고 페인트를 칠했다. 형광등 아래 순록 인형이 앉아 있다.


김명연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09년 5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