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익대학교에서 건축학을 전공한 최시영 씨는 1990년대 초,월간 <행복이 가득한 집>과 MBC TV <선택 토요일이 좋다>의 객원 디자이너로 활동하면서 대중에게 친숙하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도곡동 타워팰리스, 한남동 힐탑 아파트 레노베이션, 서초동 미켈란 등 대한민국에서 내로라하는 트렌디한 주거 공간에서 그의 이름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또한 한국실내건축가협회(KOSID) 제15대 회장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부산 영조주택 퀸덤, 건설사 이름 대신 디자인 콘셉트를 내건‘북시티(경기도 평택)’아파트를 선보였다.
최시영 대표가 애시스 디자인 Axis Design 사무실을 유행의 메카인 청담동에서 고즈넉한 성북동 어느 언덕배기로 옮긴다고 했을 때, 이보다 ‘절묘한 조합’이 또 있을까 생각했다. 어느 동네, 어느 공간이건 공간과 사람 사이에도 첫 만남에는 으레 서먹함이라는 게 있어 익숙해지기까지 다소 시간이 걸리는 게 통상의 일이다. 하지만 최시영 씨와 성북동은 첫눈에 마음을 뺏긴 연인처럼 서로를 알아봤다. 무엇보다 20년도 더 된 단독주택을 개조해 거기다 그동안 모아온 컬렉션으로 아날로그적인 흔적을 더한 방식이 평소 ‘느림’의 미학을 즐기던 그이답다. 빼곡한 빌딩이 창밖의 풍경이었던 강남 사무실과 달리 이곳은 저 멀리 작은 교회의 십자가가 희미하게 보이고 계절마다 옷을 갈아입는 수목이 눈의 피로를 덜어주는 곳. 최시영 씨는 성북동으로 사무실을 이전한 후 출퇴근하는 것이 가장 즐거운 일이 됐다고 말한다.
(위) 긴 테이블과 1950년대 프랑스 공장에서 사용하던 빈티지 체어로 꾸민 회의실. 박스형의 획일화된 사무실 에서는 좀처럼 느낄 수 없는 독특한 정서가 공기 중에 부유하는 듯하다. 일은 자고로 즐겁게 해야 한다, 이것이 그의 오랜 지론이다.
1, 2 최시영 씨는 성북동으로 사무실을 옮기면서 그동안 창고에 묵혀두었던 소품을 꺼냈다. 오래간만에 세상빛을 보게 된 방콕산 문짝과 아프리카산 의자. 회의실 한쪽에 에스닉한 문짝을 세워두고 틈날 때마다 눈길을 주다 보니 마음이 자연스레 따뜻해지는 게, 이제야 제자리를 찾아준 것 같다고.
한남동 자택에서 남산을 넘어, 광화문과 경복궁 거리를 지나 사간동 갤러리 길을 마지막 코스로 그의 출퇴근 여정은 마무리된다. 사실 그건 어떤 이의 주말 드라이브 코스에 다름 아니다. ‘상업 공간부터 주거 공간, 도시 디자인, 그리고 가구 숍 오픈 등 디자이너로서 할 수 있는 건 다 해보신 것 같은데요, 평소 주장하던 공간이 아닌 라이프스타일을 디자인한다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것인가요?’ ‘벽면에 은은한 조명을 설치하고 물이 흐르게 하는 등 통념을 깨는 독특한 장치들은 아파트라는 삭막한 공간에도 감성을 불어넣을 수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나요?’ 그의 사무실 여기저기를 둘러보며 두서없는 질문을 떠올리고 있는데 먼저 그가 적막을 깨며 한마디를 허공에 던졌다. “이제 나는 박진영 같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본인도 아티스트면서 젊은 아티스트들을 발굴해내는, 한 프로젝트를 할 때 A부터 Z까지 잘할 수 있는 사람을 모아 ‘베스트 원 best one’이 아닌 ‘온니 원 only one’을 추구하는 사람…. 이제 그런 사람이 필요한 시대인데, 누군가가 해야 한다면 자신이 해야 하지 않겠냐고 그는 덤덤하게 말했다. 쉽게 말해 ‘엔터테인먼트 업계에 박진영이 있다면 인테리어 업계에는 최시영이 있다, 아니 있게 하겠다’는 이야기다. “인테리어 디자이너 중에서 아트디렉터를 할 수 있는 사람, 사실 많지 않아요. 나는 예전부터 이 일을 생각하고 준비했어요. 나한테 한 가지 콘셉트를 제시해봐요.
1 고가의 작품부터 야시장에서 구입한 소소한 장난감까지, 최시영 씨의 사무실에 가면 지루할 틈이 없다.
그럼 나는 그 콘셉트에 맞는 전 세계 자료를 모두 꺼내놓을 수 있어요. 그리고 인문학자부터 스토리텔러, 마케터, 건축가 그리고 CI 디자이너까지 아트디렉터 아래 한 팀이 모이는 거예요. 어때요, 멋지지 않아요?” 더불어 그는 최근 추진하고 있는 4백만 평 규모의 중국 도시 디자인 프로젝트를 살짝 귀띔했다. 사실 생각해보면 최시영 대표에게 아트디렉터는 아주 뜬금없는 이야기가 아니다. ‘공간이 아닌, 라이프스타일을 디자인한다’는 평소 그의 디자인 지론이 조금 더 확장됐다고 생각하면 될 일이다. 어느 날 두문불출하는 듯해 수소문해보니 아프리카, 모로코로 한 줄기 바람같이 표표한 모습을 감추고, 웬만한 서고를 능가하는 자신의 서재에 며칠 동안 들어앉아 언제 쓸지도 모르는 방대한 양의 자료를 차곡차곡 스크랩하는 등 그동안 그는 자신만의 스케일을 착실하게 넓혀왔다. 클라이언트들이 요구하는 초스피드 마감 기한에 맞춰 콘셉트를 짜고 설계를 하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스케줄에도 그건 잠시도 등한시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이런 작업이 비단 마냥 먼 훗날을 위한 것만은 아니었다. 동남아의 어느 리조트에서 눈앞에 바다를 두고 식사하던 때의 그 만족감을, 때론 ‘눈높이를 맞춰야 진심을 나눌 수 있다’며 모로코의 리아드(모로코 전통 민박) 문화를 집이라는 공간에 녹여내야겠다는 아이디어를 떠올린 것도 이렇듯 공간을 라이프스타일로 보며 평소 스케일을 키워온 그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2 빈티지한 가구와 잘 어울리는 제리율스만의 여유로움이 느껴지는 사진 작품.
3 책 모양의 대리석 오브제는 독일의 부부 조각가 쿠바흐 & 뷜름젠의 작품.
자연과 여행을 언제나 스승으로 삼았다고 이야기하는 최시영 씨는 이번 제15회 서울리빙디자인페어에서 그린 스타일의 공간을 선보인다. 그는 제한된 부스에서 그린 디자인을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지 고심하다 ‘한지, 책, 식물’ 이 세 가지 요소를 최종적으로 선택했다. “뚜껑을 열고 잉크를 채우고 펜촉을 가는 번거로움, 인터넷이 아닌 종이로 된 활자를 일일이 손으로 짚어가며 읽는 즐거움, 여기서부터 그린이 시작되는 거예요. 그린이라고 하면 흔히 식물을 먼저 떠올리지만, 사실 한 번 더 생각해보면 아날로그라는 이미지거든요. 아날로그적인 휴식. 지금까지 내가 몰두해온, 그리고 앞으로도 지향할 디자인 세계입니다.” 영국의 가구 디자이너 로스 러브그로브는 “자연을 최대한 받아들이고 그것을 재현하는 것이 바로 보편적인 디자인”이라고 말했다. 자연만큼 힘이 있는 디자인은 없다, 이것이 최시영 씨가 굳게 믿는 신념이다. 그리고 오래전부터 그린에 주목해온 이유다.
4 돌, 물, 식물 등 자연 소재를 과감하게 그대로 집 안에 들여놓은 ‘퀸덤’모델하우스. 이 작업으로 최시영 씨는 2008년 골든스케일디자인어워드에서 국토해양부장관상을 받았다.
101동, 102동 대신 101페이지, 102페이지로 불리는 ‘북시티’ 아파트 모델하우스. 1만권 이상의 책을 소장한 도서관을 비롯해 북카페로 꾸민 주민 커뮤니티 센터까지, 최시영 씨는 2008년에 이렇듯 책을 테마로 한 독특한 아파트 디자인을 선보여 화제가 됐다.
최시영 대표가 애시스 디자인 Axis Design 사무실을 유행의 메카인 청담동에서 고즈넉한 성북동 어느 언덕배기로 옮긴다고 했을 때, 이보다 ‘절묘한 조합’이 또 있을까 생각했다. 어느 동네, 어느 공간이건 공간과 사람 사이에도 첫 만남에는 으레 서먹함이라는 게 있어 익숙해지기까지 다소 시간이 걸리는 게 통상의 일이다. 하지만 최시영 씨와 성북동은 첫눈에 마음을 뺏긴 연인처럼 서로를 알아봤다. 무엇보다 20년도 더 된 단독주택을 개조해 거기다 그동안 모아온 컬렉션으로 아날로그적인 흔적을 더한 방식이 평소 ‘느림’의 미학을 즐기던 그이답다. 빼곡한 빌딩이 창밖의 풍경이었던 강남 사무실과 달리 이곳은 저 멀리 작은 교회의 십자가가 희미하게 보이고 계절마다 옷을 갈아입는 수목이 눈의 피로를 덜어주는 곳. 최시영 씨는 성북동으로 사무실을 이전한 후 출퇴근하는 것이 가장 즐거운 일이 됐다고 말한다.
(위) 긴 테이블과 1950년대 프랑스 공장에서 사용하던 빈티지 체어로 꾸민 회의실. 박스형의 획일화된 사무실 에서는 좀처럼 느낄 수 없는 독특한 정서가 공기 중에 부유하는 듯하다. 일은 자고로 즐겁게 해야 한다, 이것이 그의 오랜 지론이다.
1, 2 최시영 씨는 성북동으로 사무실을 옮기면서 그동안 창고에 묵혀두었던 소품을 꺼냈다. 오래간만에 세상빛을 보게 된 방콕산 문짝과 아프리카산 의자. 회의실 한쪽에 에스닉한 문짝을 세워두고 틈날 때마다 눈길을 주다 보니 마음이 자연스레 따뜻해지는 게, 이제야 제자리를 찾아준 것 같다고.
한남동 자택에서 남산을 넘어, 광화문과 경복궁 거리를 지나 사간동 갤러리 길을 마지막 코스로 그의 출퇴근 여정은 마무리된다. 사실 그건 어떤 이의 주말 드라이브 코스에 다름 아니다. ‘상업 공간부터 주거 공간, 도시 디자인, 그리고 가구 숍 오픈 등 디자이너로서 할 수 있는 건 다 해보신 것 같은데요, 평소 주장하던 공간이 아닌 라이프스타일을 디자인한다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것인가요?’ ‘벽면에 은은한 조명을 설치하고 물이 흐르게 하는 등 통념을 깨는 독특한 장치들은 아파트라는 삭막한 공간에도 감성을 불어넣을 수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나요?’ 그의 사무실 여기저기를 둘러보며 두서없는 질문을 떠올리고 있는데 먼저 그가 적막을 깨며 한마디를 허공에 던졌다. “이제 나는 박진영 같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본인도 아티스트면서 젊은 아티스트들을 발굴해내는, 한 프로젝트를 할 때 A부터 Z까지 잘할 수 있는 사람을 모아 ‘베스트 원 best one’이 아닌 ‘온니 원 only one’을 추구하는 사람…. 이제 그런 사람이 필요한 시대인데, 누군가가 해야 한다면 자신이 해야 하지 않겠냐고 그는 덤덤하게 말했다. 쉽게 말해 ‘엔터테인먼트 업계에 박진영이 있다면 인테리어 업계에는 최시영이 있다, 아니 있게 하겠다’는 이야기다. “인테리어 디자이너 중에서 아트디렉터를 할 수 있는 사람, 사실 많지 않아요. 나는 예전부터 이 일을 생각하고 준비했어요. 나한테 한 가지 콘셉트를 제시해봐요.
1 고가의 작품부터 야시장에서 구입한 소소한 장난감까지, 최시영 씨의 사무실에 가면 지루할 틈이 없다.
그럼 나는 그 콘셉트에 맞는 전 세계 자료를 모두 꺼내놓을 수 있어요. 그리고 인문학자부터 스토리텔러, 마케터, 건축가 그리고 CI 디자이너까지 아트디렉터 아래 한 팀이 모이는 거예요. 어때요, 멋지지 않아요?” 더불어 그는 최근 추진하고 있는 4백만 평 규모의 중국 도시 디자인 프로젝트를 살짝 귀띔했다. 사실 생각해보면 최시영 대표에게 아트디렉터는 아주 뜬금없는 이야기가 아니다. ‘공간이 아닌, 라이프스타일을 디자인한다’는 평소 그의 디자인 지론이 조금 더 확장됐다고 생각하면 될 일이다. 어느 날 두문불출하는 듯해 수소문해보니 아프리카, 모로코로 한 줄기 바람같이 표표한 모습을 감추고, 웬만한 서고를 능가하는 자신의 서재에 며칠 동안 들어앉아 언제 쓸지도 모르는 방대한 양의 자료를 차곡차곡 스크랩하는 등 그동안 그는 자신만의 스케일을 착실하게 넓혀왔다. 클라이언트들이 요구하는 초스피드 마감 기한에 맞춰 콘셉트를 짜고 설계를 하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스케줄에도 그건 잠시도 등한시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이런 작업이 비단 마냥 먼 훗날을 위한 것만은 아니었다. 동남아의 어느 리조트에서 눈앞에 바다를 두고 식사하던 때의 그 만족감을, 때론 ‘눈높이를 맞춰야 진심을 나눌 수 있다’며 모로코의 리아드(모로코 전통 민박) 문화를 집이라는 공간에 녹여내야겠다는 아이디어를 떠올린 것도 이렇듯 공간을 라이프스타일로 보며 평소 스케일을 키워온 그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2 빈티지한 가구와 잘 어울리는 제리율스만의 여유로움이 느껴지는 사진 작품.
3 책 모양의 대리석 오브제는 독일의 부부 조각가 쿠바흐 & 뷜름젠의 작품.
자연과 여행을 언제나 스승으로 삼았다고 이야기하는 최시영 씨는 이번 제15회 서울리빙디자인페어에서 그린 스타일의 공간을 선보인다. 그는 제한된 부스에서 그린 디자인을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지 고심하다 ‘한지, 책, 식물’ 이 세 가지 요소를 최종적으로 선택했다. “뚜껑을 열고 잉크를 채우고 펜촉을 가는 번거로움, 인터넷이 아닌 종이로 된 활자를 일일이 손으로 짚어가며 읽는 즐거움, 여기서부터 그린이 시작되는 거예요. 그린이라고 하면 흔히 식물을 먼저 떠올리지만, 사실 한 번 더 생각해보면 아날로그라는 이미지거든요. 아날로그적인 휴식. 지금까지 내가 몰두해온, 그리고 앞으로도 지향할 디자인 세계입니다.” 영국의 가구 디자이너 로스 러브그로브는 “자연을 최대한 받아들이고 그것을 재현하는 것이 바로 보편적인 디자인”이라고 말했다. 자연만큼 힘이 있는 디자인은 없다, 이것이 최시영 씨가 굳게 믿는 신념이다. 그리고 오래전부터 그린에 주목해온 이유다.
4 돌, 물, 식물 등 자연 소재를 과감하게 그대로 집 안에 들여놓은 ‘퀸덤’모델하우스. 이 작업으로 최시영 씨는 2008년 골든스케일디자인어워드에서 국토해양부장관상을 받았다.
101동, 102동 대신 101페이지, 102페이지로 불리는 ‘북시티’ 아파트 모델하우스. 1만권 이상의 책을 소장한 도서관을 비롯해 북카페로 꾸민 주민 커뮤니티 센터까지, 최시영 씨는 2008년에 이렇듯 책을 테마로 한 독특한 아파트 디자인을 선보여 화제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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