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번잡한 삼청동 길을 조금 벗어난, 비탈길 끝자락에 있는 이 집은 시모네 카레나 씨와 신지혜 씨 부부의 보금자리. 오래된 한옥의 조그만 창 너머로 보이는 경복궁과 청와대 풍경에 매료되어 다른 것은 보지도 않고 이 집을 사기로 결심했다. 집 마당에 평상도 만들고 해먹도 걸어 한 템포 쉬어 갈 수 있는 여유를 즐기고 있다.
2 주소보다도 더 쉽게 이 집을 찾는 방법은 바로 빨간 듀카티 오토바이가 세워진 한옥을 찾는 것이다. 이 오토바이는 시모네 카레나 씨의 심벌이다.
결혼 3년 차 부부인 시모네 카레나Simone Carena 씨와 신지혜 씨. 빨간 가죽 점퍼에 빨간 듀카티를 타고 달리던 이탈리아 건축가 청년은 2001년 지인의 파티에서 한 한국 여인을 만났고, 이탈리아와 한국을 오가며 정을 키워 2006년 부부의 연을 맺었다. 처음에는 논현동에 있는 시모네 카레나 씨의 스튜디오 근처에서 신혼 살림을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시모네 씨는(그는 현재 홍익대학교 국제디자인대학원 교수이기도 하다) 제자가 촬영한 사진에서 옛 정취 가득한 삼청동의 모습을 보았다. 그 길로 두 사람은 삼청동으로 달려와 집을 알아보았고, 이곳 전망 좋은 자리에 터를 잡게 되었다. “땅 면적만 겨우 28평, 건평은 12평 정도였어요. 마당은 담으로 막혀 있고 옆집과 지붕이 맞닿아 있어 답답했죠. 그런데 이쪽에 있던 방에 작은 창 너머로 경복궁과 청와대를 보더니 여기서 꼭 살아야겠다고 하더라고요.” 아내 신지혜 씨가 유리 벽으로 둘러싸인 주방을 가리키며 이야기한다.
1 어려서부터 시모네 씨에게 집이란 놀이터와 같았다. 건축하는 아버지는 항상 집을 갖고 실험을 하셨다고. 그는 한옥의 마루를 파내어 슬라이딩 테이블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아내 잠든 시간 몰래 나와 게임도 하고 아내가 이탈리아에 계신 어머니께 배워 만든 사과케이크도 먹는다. 오토바이 마니아인 그는 헬멧만 5~6개다.
2 침실 모습. 침대 옆 부부 욕실 입구에는 두 사람의 유카타가 나란히 걸려있다. 마당을 바라보고 누울 수 있는 침대는 단을 높여 마루를 깔고 매트리스만 얹어 놓은 것.
3 거실에 앉아 TV를 보다가도 볼록 거울을 통해 바깥 경치를 감상할 수 있게해 놓았다. 거실 옆으론 게스트 영역이 있어 외국 친구들이 오면 머무를 수 있게했다. 블라인드를 열면 게스트 침대와 욕실 입구가 나온다. "서울에서 청계천, 을지로 구경만큼 외국친구들이 재미있어 하는 게 없다"고 말하는 그는 청계천 시장 바로 옆에다 사무실을 만들고 파트너 마르코와 함께 틈만 나면 시장 순례를 다니며 영감을 얻는다고 한다.
내가 살기 좋게 한옥을 실험하다 이 두 사람은 ‘실험, 모험’이란 단어가 참 잘 어울리는 부부다. 건축가인 남편은 아버지도 건축가였던 덕에 어려서부터 남들과는 좀 다른 환경에서 자랐다(아버지는 집을 늘 실험의 장소로 삼았고 아들은 그곳을 놀이터 삼았다). “어렸을 적 학교에서 자신의 방을 그려 오라는 숙제를 내주었어요. 친구들은 클래식한 형태의 침대가 놓인 방을 그렸는데 나는 모던하면서 특이한 형태의 침대가 놓인 방을 그렸어요. 제가 자란 집은 항상 뭔가 달랐고 수시로 디자인이 바뀌었어요.” 아내 역시 실험적인 옷을 디자인하는데 남편에게 물방울 무늬 셔츠도 만들어주고, 꽃 문양을 따라 과감하게 절개선을 넣은 원피스를 디자인해 입고 다니기도 한다. 이 두 취향이 더해졌기에 집은 더더욱 실험적일 수밖에. “이 집은 원래 마당도 좁고 경복궁을 바라보는 방향이 막힌 ‘ ? ’ 형태의 집이었어요. 그런데 경복궁을 향해 마당이 열리도록 건물을 옮겨 ‘ ? ’ 형태로 집을 새로 지었죠. 그러면서 원래 마당이 있던 자리에 주방을 만들고 위로는 루프 톱을 만들었지요.” 이 집의 건축가이자 주인인 시모네 카레나 씨가 말한다. 그는 오랜 친구이자 건축 스튜디오 ‘모토엘라스티코MOTOElastico’를 함께 운영하는 마르코 부르노Marco Bruno 씨와 이 집을 디자인하며 서울의 도시형 한옥의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보고 싶었다고 한다. 건물의 배치를 바꾸고, 처마 높이를 높여 위쪽에 창을 내고, 지하를 파냈으며, 나무와 흙으로 지은 한옥에 청계천에서 찾아낸 타공판, 볼록 거울, 공업용 집게 같은 차갑고 딱딱한 소재를 더해 ‘깜짝 인테리어’를 완성했다.
“사람들은 한옥을 너무 있는 그대로만 지키고 싶어 하는 것 같아요. 멋있을지는 몰라도 요즘 사람들이 살기에는 불편하지 않을까요? 그래서 서울에 있는 멋지고 소중한 한옥들이 카페나 레스토랑으로 바뀌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들어요.” 이런 생각에 시모네 카레나 씨는 도시형 한옥의 새로운 가능성을 실험해보고 싶었다고 한다. 그 과정이 순조롭지만은 않았을 테지만 디자이너로서 꼭 도전해보고픈 작업이었다. 그 도전의 성공이 이들이 사는 집이다.
4 이탈리아인 신랑이 가장 좋아하는 음료는 와인도 스파클링 워터도 아닌 우유다. 우유 한 모금에 아내에게 윙크 한 번씩….
5 게스트 룸 앞으로 난 계단을 내려오면 지하실, 두 사람의 작업 공간이다. 남편이 직접 그린 아내의 뒷모습이 걸려 있다. 집 안에 강하게 드러나는 녹색은 햇빛에 반짝이는 나뭇잎의 색상에서 영감을 얻었다.
둘이 하나씩 사이좋게 나눠 가진 행복 고등학생 때까지 한옥에서 살았던 신지혜 씨는 남편이 만들어준 색다른 한옥 풍경을 만끽하고 있다. 마당에 가만히 있으면 휴양지 같고, 루프 톱에 올라가 있으면 서울타워 부럽지 않은 전망대도 되었다가 거실로 들어오면 놀이터 같다. 집 안 곳곳에 기발한 아이디어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어느 날 주방 천장 쪽에서 물이 새더라고요. 다음 날 시모네가 퇴근길에 깔때기랑 고무 호스, 자석을 사 왔어요. 혼자 뚝딱뚝딱 하더니 물 새는 곳 주위의 철제 프레임에 자석으로 깔때기를 붙인 뒤 호스를 싱크대 안으로 빼내고서는 이제 물 새도 걱정 없다고 하는데 너무 웃겼어요.” ‘맥가이버’ 부럽지 않은 남편 덕에 신지혜 씨는 집에서 발생하는 웬만한 문제점은 걱정 않고 지낸다. 이들 부부는 아이가 생기면 이 집에서 키울 것이고, 아이가 더 자라면 집을 한 채 더 사서 잇고 싶은 욕심도 부려본다.
6 삼면이 유리벽으로 둘러싸인 주방, 그 위로는 루프 톱이 있다. 일명 삼청동 전망대. 왼쪽으론 경복궁이 보이고 오른쪽으론 청와대가 보인다. ‘풍수’와 ‘명당’ 이야기를 하다 이탈리아의 ‘Regola d’arte’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이탈리아에서 좋은 집, 잘 지어진 집을 이야기할 때 적용되는 실용적인 룰과 같다. 습기를 막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고, 바람 잘 통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한다는 것과 같이.
이탈리아에 살고 싶어 이탈리아로 유학 갔던 한국 아가씨는 서울에서 일하는 이탈리아 청년을 따라 다시 서울로 돌아왔다. 그 청년은 먹을 것 많고 사람들 재미있고 청계천, 을지로 같은 ‘놀이터’가 있는 서울이 좋았는데, 하늘은 한국인 아내까지 선물해주었다. 대신 이탈리아에서의 생활을 꿈꿔왔던 한국인 아내는 남편을 따라 여름과 겨울이면 잠깐씩 이탈리아에 머무르며 시어머니에게 요리도 배우고 이탈리아에서 여유 있게 즐길 수 있게 되었다. 그 뿐만 아니라 남편 덕분에 자신이 나고 자란 서울을 재발견할 수 있었고, 한옥이 주는 색다른 재미도 느끼며 살고 있다. 그렇게 삼청동의 연둣빛 한옥에는 서로가 하나씩 양보하며 사이좋게 나눠 가진 행복의 풍경이 있었다.
이 집을 디자인한 모토엘라스티코(02-542-9298, www.motoelastico.com)는 시모네 카레나 씨와 마르코 부르노 씨가 함께 세운 건축 디자인 스튜디오다. 서울과 이탈리아를 오가며 주거 공간, 오피스, 스파 등을 디자인한다. 왼쪽 사진은 삼청동 한옥을 구상하며 그린 스케치와 회사 로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