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 인테리어 디자이너 박소영 씨의 패턴 플레이 ‘바람과 그늘을 선사하는 부채’
부채와 부채 사이로 바람이 넘나들며 그늘과 바람을 동시에 선사하는 부채 발. 쥘부채를 펼쳐서 한쪽을 고정하는 방식으로 수십 개의 부채를 하나로 연결해 바라보기만 해도 시원한 부채 발은 인테리어 디자이너 박소영 씨 작품이다. 대나무 부챗살의 반복되는 패턴과 뜨거운 태양빛을 여과시키는 한지가 만들어내는 조화가 매력적이다. 부채를 접어 올리면 자연스럽게 고정되므로 채광 조절도 손쉬운, 만들기 쉽고 관리하기 쉬운 부채 발이 완성되었다.
(오른쪽) 일러스트레이터・건축가 오영욱 씨의 생각 ‘부채는 자연의 바람’
그림 그리는 건축가 오영욱 씨에게 부채는 아날로그 시대의 상징이다. 이제 우리에게 몇 남지 않은, 사람의 힘을 빌려야만 대가가 돌아오는 이 단순한 도구에서 그는 디자인을 논하기 이전의 건축, 태초에 인간이 바람과 태양을, 추위와 더위를 피하기 위해 지은 집을 떠올렸다.
그는 부채에 그림을 그리려던 처음의 생각을 접고 시골집으로 향했다. 시골집 풍경은 부채가 만들어내는 부드러운 미풍을, 그 부채 바람은 다시 그에게 추억 속의 시골집을 떠올리게 한다.
건축가 문훈 씨의 상상 ‘숲 속에 바다가 있는 이상한 나라의 요정’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무어라 단정 짓기 어려운 모양새다. 건축가 문훈 씨가 제작한 오브제는 천사의 날개도 될 수 있고 바다를 헤매는 상어 지느러미도 될 수 있다. 바라보는 이가 상상하는 그 무엇도 될 수 있다. 정체를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사람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동화 속 요정 같은, 와이어 작업으로 틀을 만들어가며 부채를 하나하나 연결해 만든 이 조형물의 디자인은 문훈, 제작은 이경호와 유학규가 맡았다.
(왼쪽) 플로리스트 박영섭 씨가 전하는 ‘산 위에서 부는 바람, 시원한 부채 바람’
두 눈을 감고 머릿속에 부채를 떠올려본다. 플로리스트 박영섭 씨에게 부채는 숲 속에서 불어오는 바람이다.
깊은 산속 울창한 숲을 지나 만나게 되는 계곡의 짙푸른 흙 냄새와 촉촉한 물기를 머금은 자연의 바람. 그는 깊은 산속 계곡에서 만나게 되는 풍경을 돌과 이끼로 표현했다. 벽돌을 전기 드릴로 파고 이끼를 심어 부챗살 모양을 간결하게 표현하고 크고 작은 돌덩이와 수생 식물인 레드루빈으로 계곡의 정서를 연출했다.
(오른쪽) 인테리어 스타일리스트 홍희수 씨가 만든 ‘여자의 바람’
중세 유럽에서 여자들의 신분을 나타내기도 했고 한때는 여성의 필수 액세서리로 여겨지기도 했던 부채. 인테리어 스타일리스트 홍희수 씨는 여성스럽고 화려한 부채에서 힌트를 얻었다. 부채의 한지를 모두 떼어내고 남은 대나무 살을 검은색으로 칠하고, 검은색 망사를 종이 부채처럼 겹겹이 접어 붙인 오브제로 벽을 장식하고 장식장 위로 검은색 망사와 커다란 유리 장식품을 배치해 여성미와 강렬함이 함께 느껴지는 공간을 연출했다.
패션 디자이너 채은하 씨가 펼친
‘하늘을 나는 부채’
옷 짓는 이답게 패션 디자이너 채은하 씨는 바느질로 전통 부채를 표현했다. 하늘하늘한 배추흰나비처럼 날개짓하며 공중을 부유하듯 걸려 있는 것은 전통 실크에 바느질로 주름을 만든 치마. 반비침이 매력적인 전통 실크는 전통 부채의 한지나 닥종이를 표현하기에 안성맞춤이다. 얼마 전 삼청동 한옥 작업실로 들어서는 골목길에서 패션쇼를 열기도 했던 그는 자신이 최근 몰두하고 있는 전통 실크를 소재로 한 일련의 작업에서 부채를 찾아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