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우노 초이 부부의 작은 서재. 그림으로 가득한 벽면이 인상적이다. 대부분 캘리포니아 로컬 작가의 작품.
2 서재 입구를 둘러싼 책장은 모두 남편 빈센트의 솜씨다.
3 식사 준비는 언제나 요리하기를 즐기는 남편 몫이다.
미국의 유명한 가전제품 광고 중에 ‘Beauty and the Beast’라는 시리즈가 있다. 최고급 가전제품으로 꾸며진 드림 키친을 배경으로 슈퍼모델급 미모의 아내와 어수룩한 외모지만 인텔리 공학자 남편이 나란히 서 있는 장면. 기능과 디자인을 완벽하게 결합했다는 자신만만한 광고다. 앤티크 주얼리 디자이너 우노 초이와 남편 빈센트는 바로 광고 속 미녀와 야수에 다름 아니다. 아트 스쿨에서 애니메이션을 전공하고 모델로 활동했던 아내와 코넬 대학에서 토목과 건축을 전공한 남편. 그 예술적 감성과 재능이 만나 부부는 그들만의 완벽한 드림 하우스 , 해피 라이프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우리 부부는 요즘 말로 하자면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의 완벽한 결합이에요. 저는 아이디어를 내고 남편은 그걸 만들어내는 재주가 있어요.”
4 식탁 앞 벽에 큰 거울을 달아 다이닝룸이 넓어 보이는 효과를 얻었다. 거울 위쪽으로 와인잔 걸이를 설치해
복잡한 부엌이 비치는 것을 가려주면서 장식 효과도 함께 얻었다. 벽에 걸린 그림은 작가 김봉태 씨 작품이다.
5 다이닝룸에서 연결되는 마당에서 꽃꽂이를 하는 우노 초이.
그는 의자 몇 개를 제외하면 모든 것이 다 남편의 작품이라며 집 안 구석구석을 소개해준다. 꼭 필요한 가구를 만들고 버려지기 십상인 숨겨진 구석에서 수납공간을 창출해냈다. 과감한 페인트 컬러를 선택했으나 과하다는 느낌이 없다. 붙박이로 짜여진 가구들은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으며 묵묵히 기능에 충실하고 집 안 곳곳에 배치된 미술품은 이 실속 있고 알찬 집 안에 개성과 품위를 부여한다.
겹겹이 쌓인 시간과 정성의 흔적들을 발견하게 되니 그들이 이곳에서 얼마나 오래 살았는지 궁금해졌다. 지금 그들이 살고 있는 이 타운하우스는 1980년대 초반 남편 빈센트가 대학 졸업 후 첫 둥지를 튼 곳이란다. 보트 타기를 즐기던 청년 빈센트는 졸업과 동시에 뉴욕에서 캘리포니아 바닷가로 이사를 했다. 당시 베벌리힐스에서 패션모델로 활동하던 우노 초이와 청년 빈센트는 오다가다 마주치면 가볍게 인사를 나누는 정도의 이웃일 뿐이었다. 그 후 우노 초이는 몇 번의 이사를 했고 그들이 다시 만나 연인이 되기까지 그는 여전히 지금의 타운하우스를 지키고 있었다. 근 30년 가까운 세월을 한곳에 뿌리내리고 있으니 혹자들은 그들을 미련하다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 몇 년간 미국의 부동산 가격은 유례없는 폭등을 했고 비교적 순진하다고 여겨지는 미국 사람들마저 집을 더 이상 삶의 공간으로만 보지 않았다. 집으로 큰돈을 벌 수 있다는 꿈에 부풀어 사람들은 과도한 융자도 서슴지 않고 부동산 투자에 열을 올렸고 그 결과가 요즘 우리가 연이어 신문이나 방송에서 접하게 되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문제이지 않은가. 그러나 ‘집은 우리의 삶 그 자체’라는 확실한 믿음을 갖고 있는 이들 부부에게 더 크고 더 좋은 집은 어차피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1 남편이 부엌에서 저녁을 준비하는 동안 아내는 테이블 세팅을 한다.
2 5년 전 심은 대나무 묘목이 자라 어느새 키높이가 되었다. 뒷마당 텃밭에서 수확한 풍성한 허브가 탐스럽다.
3 직접 가꾼 텃밭에서 수확한 딜을 이용해 연어구이를 준비한다.
4 생선구이에 사용하는 유산지를 하트 모양으로 자르는 센스가 과히 아티스트의 남편답다.
우노 초이의 침실 벽에는 ‘수처작주隨處作主’라는 글이 걸려 있다. 친분이 있는 스님께 받은 선물이다. 중국 당나라 선승 임제선사의 법어집인 <임제록>에 기록된 ‘수처작주 입처개진 隨處作主 立處皆眞’에서 따온 글귀로 어디서든 머무는 곳의 주인이 되라는 말로 해석된다. 우노 초이는 이 글귀를 항상 마음에 새긴다.
“내가 주인이 되어 산다는 것이 중요해요. 아무리 크고 좋은 집인들 내 손길과 눈길 한 번 닿지 못하는 공간이 있다면 내 것이 아니지요. 저는 에너지의 흐름을 믿어요. 내가 정성을 다해 가꾸고 보듬은 시간과 공간들은 더 크고 좋은 에너지를 만들어내고 우리는 다시 그 에너지를 받아가며 살아가지요.”
사람의 기운이 집을 눌러야지, 집의 기운이 사람을 누르면 안 된다는 옛 어른들의 말씀과 맥을 같이하는 이야기다.
남편 빈센트가 혼자 살 때부터 이 집이 이렇게 아기자기하고 화사한 것은 물론 아니었다. 온통 화이트 일색인 벽면과 공간을 무겁게 짓누르는 전공 서적들. 혼자 사는 여느 엔지니어 출신 비즈니스맨과 별다를 바 없는 무채색의 공간이 아내의 등장과 함께 변화하기 시작했다. 아내는 집 안을 아름답게 만들기 위한 제안을 시작했고 남편은 그 아이디어에 효율성을 더해 직접 만들고 꾸미기를 시작했다. 어쩌면 남편 빈센트는 아내 우노 초이를 만나서 숨겨진 자신의 재능을 발견한 건지도 모르겠다고 물으니, 남편이 그에게 들려주었다던 한마디 말을 전한다.
1 우노 초이가 직접 흙을 빚어 구워낸 고양이 장식. 고양이가 담장을 넘어가듯 사립문에 얹어놓은 재치가 엿보인다.
2 여행 가방 속에도 요리책을 챙길 만큼 요리에 관심이 많은 남편이 준비한 밥상.
3 다이닝룸 앞 마당에 마련된 야외 테이블.
4 가드닝은 이들 부부의 중요한 일상이다. 남편은 타운하우스 단지 내 구석진 정원도 내 앞마당처럼 정성스럽게 가꾼다. 아름다움을 이웃과 함께 나누는 것도 이들에게는 큰 즐거움이다.
“당신은 잘 익은 볏단 속에 숨어 있는 황금 바늘을 주은 거야”. 황금 바늘 남편은 공학도 출신답게 무엇을 해도 정확하고 효율적인 결과물을 내놓았다. 그렇게 시작된 목공 실력은 온 집 안을 맞춤 가구로 채워갔고, 가드닝 솜씨는 연일 이웃들의 찬사를 받는 꽃밭과 웬만한 푸성귀는 자급자족할 수 있는 텃밭을 일구어냈다. 요리 또한 남편의 몫이다. 여행 가방을 꾸릴 때조차 요리책을 챙긴다고 하니 그 내공이 궁금할 따름이다. 남편이 주방에서 요리를 하는 동안 아내는 식탁을 꾸민다. 정원에서 꺾어 온 몇 송이 꽃으로 식탁을 장식하고 오늘의 메뉴에 어울리는 그릇을 내온다. 부부는 그렇게 소소한 일상을 즐기며 서로의 존재에 감사하며 사랑을 나눈다.
화려한 인생의 극치를 살아보았기 때문일까. 결혼과 함께 우노 초이는 모델 생활을 뒤로하고 온전한 자신만의 삶을 살았다. 이전의 삶에 비하면 은둔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조용하고 소박한 삶은 손발이 맞는 남편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러던 그가 앤티크 주얼리 디자이너로 다시 세상에 발을 디딜 수 있도록 힘을 실어준 것도 바로 남편이었다. 비즈를 취미로 즐기던 우노 초이의 심미안은 오래지 않아 일반 비즈에서 싫증을 느꼈고 그즈음 모델 시절 수집했던 앤티크 주얼리를 떠올렸다. 오랫동안 서랍 속에서 잠자고 있던 주얼리들을 꺼내어 새로운 놀이를 시작했다. 브로치와 브로치, 브로치와 백 등 전혀 다른 디자인과 소재를 매치시켜 새로운 또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낸 것이다. 주변의 지인들은 그의 작품에 열광했고 패션계에 종사하는 후배들은 적극적으로 사업을 제안해오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곧 자신은 작품 하나하나에 마음을 심는 작가이지 물건을 찍어내는 장사꾼이 될 수 없음을 깨달았다. 사업을 한다는 자세로 작품을 만들다보면 어느새 작업은 기쁨이 아니라 고통이었다고. 아름다운 것을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매만지며 행복한 마음이 가득했던 작업이, 밀려오는 어깨 통증을 참아가며 감내해야 하는 노동이 된다는 것을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던 것.
1 패션모델에서 앤티크 주얼리 디자이너로 다시 세상의 주목을 받고 있는 우노 초이. 모델 시절 단련된 뛰어난 안목으로 그는 주얼리 패션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2, 4, 5, 6 그의 작품은 모두 1950~60년대에 미국에서 제작된 것을 소재로 사용한다. 3 2008년 봄 웨딩 컬렉션 중 하나인 화이트 메시드 메탈 백을 남편 빈센트가 제작한 붙박이장 손잡이에 걸어보았다. 손잡이 상단의 장식은 자투리 나뭇조각으로 만든 것으로 부부의 미적 감각과 재치가 엿보인다.
그저 자신이 작업을 하면서 그랬던 것처럼 남들 역시도 자신의 작품을 통해 행복해지길 바란다. 그래서일까, 몸이 조금이라도 피곤하거나 남편과 사소한 신경전으로 마음이 불편해지면 아예 작업을 하지 않는다. 자신이 주얼리를 만드는 순간 본인이 품은 에너지가 그대로 전해진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의 작품이 만들어내는 빛과 아름다움은 행복하고 평온한 그의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의 작품을 직접 보면서 절로 조용한 감탄이 터져나온다. 평소 주얼리에 관심을 가져본 적 없는 이라 해도 화려하면서도 기품을 잃지 않은 그 자태에 집중하게 된다. 작년 말 청담동 서미앤투스에서 전시된 그의 첫 번째 컬렉션이 단 며칠 만에 모두 팔렸다는 소문이 사실이었음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그가 사용하는 앤티크 주얼리는 모두 1950년대에서 60년대 사이에 미국에서 제작된 것들이다. 그 시대에 제작된 크리스털이나 비즈는 성분비가 지금과 달라 광택이나 반짝임이 요즘의 것들과는 또다른 멋스러움이 있다고. 얼마 전 귀국한 그는 올 4월에 서울에서 새로운 컬렉션으로 프라이빗 전시회를 열 계획이다. 웨딩을 주제로 한 화이트 메시드 메탈 백과 코르사주를 연상케 하는 커다란 실버 플라워 브로치 등을 선보인다.
우노초이의 캘리포니아 하우스에서 배우는 공간활용 아이디어
1 남편 빈센트가 직접 디자인하고 제작한 만능 휴지걸이. 잡지와 휴지를 함께 수납할 뿐 아니라 상단에는 꽃병을 안전하게 고정시킬 수 있는 홈을 동그랗게 파 넣었다.
2부엌의 아일랜드를 다시 제작하면서 다이닝 테이블쪽으로 수납공간을 만들었다. 위쪽에는 선반을 달아 요리책 등 부엌에서 자주 보는 것들을 수납했고 아래쪽에는 와인랙을 설치하고 문을 닫았다.
3 파우더룸에 있는 약장 문에 칫솔꽂이를 만들어 달았다. 칫솔, 치약, 면도기 등 자질구레한 욕실용품을 깔끔하게 수납할 수 있도록 했다.
4 원래는 옷걸이 봉이 있던 벽장에 선반을 짜 넣어 차이나 캐비닛이 부럽지 않은 식기장을 만들었다. 다양한 그릇 크기에 맞추어 선반의 폭과 높이를 달리했다. 와인 박스에 칸을 나누어 플랫 워어와 냅킨을 수납할 수 있는 서랍을 만든 아이다어가 돋보인다.
5그는 모델 출신답게 아무래도 패션 소품이 많다. 스카프를 둥글게 말아 정리하면 보기에도 깔끔하고 사용하기에도 편리하다.
6 벽과 통로 사이의 좁은 벽에 벨트 수납장을 만들었다. 벨트 걸이를 사선으로 층이 지게 설치해 수납의 효율성을 높였다.
7현관문에 설치한 열쇠고리 수납 박스. 집을 나서기 전에 현관문에 달린 박스를 열면 외출 시 챙겨야 하는 소지품과 요일별 스케줄을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