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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를 넘어 탄생한 동시대 한복
지난 20년간 우리의 전통문화를 연구하며 매년 의식주 중 하나를 선정해 기획 전시를 선보이는 아름지기. 올해는 의복 분야에서 ‘한복’을 주제로 온지음 옷공방, 의상 디자이너 크리스티나 김과 함께 이 시대의 한복을 소개한다.

이번 전시의 주역들. 왼쪽부터 의상 디자이너 크리스티나 김, 아름지기 신연균 이사장, 온지음 옷공방 조효숙 공방장.
“자, 이제 이 시대에 필요한 한복을 만들자.”

아름지기 신연균 이사장과 전통문화연구소 온지음 옷공방의 조효숙 공방장(가천대학교 석좌교수)은 2019년 ‘바지’를 주제로 한 여섯 번째 의복 전시를 마치고 이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제 이 시대에 필요한 한복을 한번 만들어보자.” 아름지기는 우리의 아름다운 전통문화가 현대인의 삶에 자연스럽게 스며들도록 2004년부터 매년 의식주를 바탕으로 한 기획 전시를 선보이고 있다. 의복 분야에서는 쓰개(머리 장식 및 신분을 드러내는 용도로 머리에 쓰던 물건. ‘관모冠帽’라고도 한다)를 시작으로 배자(조끼), 포, 저고리, 바지가 전시의 주제가 됐다.

“아름지기가 ‘집(한옥)’을 지키려고 한 것처럼 ‘완전히 잊힌 것이 무엇일까’ 하는 데서부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처음 ‘쓰개’를 다루었지요. 이렇게 한복의 요소를 깊이 연구하고 현대 디자이너와 의논하며 새로운 디자인을 선보였습니다. 그런데 내 옆에 있지 않고 쓰이지 않으면 다시 멀어지잖아요. 지금 있는 이 한옥(아름지기 통의동 사옥)이 편리하게 진화해 일상에 들어온 것처럼 한복도 그렇게 되기를 바랐습니다.” (신연균)

머리부터 발끝까지, 한복의 요소를 하나씩 풀어낸 후 비로소 한복 전체를 전시장으로 가져왔다. 한복의 정체성을 지닌 채 편안하게 입을 수 있는 동시대의 한복. 아름지기의 일곱 번째 의복 전시 주제는 ‘한복’이다.


‘안양 포도’라는 이름의 한복 작품. 크리스티나 김 작가의 어린 시절 안양 포도의 추억을 담았다. 저고리는 금잔화와 석류 껍질 등을 사용해 작가가 직접 천연 염색한 실크로 만들었다.
오리온 별자리를 수놓은 치마가 돋보이는 작품 ‘오리온’. 허리춤에 컬러풀한 매듭과 리본을 둘렀다.
“뿌리가 확실해야 한복이라고 말할 수 있지.”

무엇이 지금의 한복을 한복답게 만드는가? 의복은 자연 및 사회 환경에 따라 적절히 변화해왔다. 한복 또한 그러한 변화의 과정을 거쳐왔을 터. 조효숙 공방장은 변화 안에서 “유목 문화권 복식의 특징인 상의(저고리)와 하의(바지 혹은 치마)로 분리된 이부양식二部樣式과 상의를 앞에서 여며 입는 카프탄caftan 양식만은 지속되어 우리 민속복으로서 정체성을 유지해왔다”고 말한다. 이것은 새로운 시대를 위한 한복 프로젝트를 시작하며 조효숙 공방장이 제시한 두 가지 핵심 의견 중 하나다.

다른 하나는 “17세기 조선 시대부터 오늘날까지의 근현대 복식기 중에서도 서양 문물에 영향을 받기 시작한 20세기 전후의 개화기 복식을 디자인 원형”으로 삼는 것이다. 오늘날 한복 하면 떠올리는 것이 바로 개화기 한복으로, 우리가 가장 받아들이기 쉬운 형태의 한복이기 때문이다. 저고리에 깃을 없앤 라운드 네크라인의 적삼의를 1920년대의 유물이라고 멀리하기엔 너무 친숙하다.


아름지기와 온지음은 늘 원형에서 변화와 창조를 모색해왔다. 2층 ‘기억의 방’에서는 20세기 초중반의 대표적 저고리 모본을 바탕으로 재현 및 변형한 스물다섯 점의 저고리를 설치 작품 형태로 구현했다.
“한국을 떠났다 돌아왔기에 할 수 있는 것.”

신연균 이사장이 우연히 크리스티나 김Christina Kim의 옷을 보고 강요하지 않으면서 드러내는 한국적 멋에 ‘이 사람을 만나면 한복을 현대화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 2001년. 크리스티나 김 작가는 자신의 브랜드인 ‘도사dosa’를 이끄는 의상 디자이너이자 공예가다. 그는 열다섯 살에 한국을 떠나 미국에 정착했고, LA를 기반으로 전 세계를 여행하며 다양한 문화권의 수공예와 함께 작업한다.

이번 전시의 시작이 되는 만남은 2019년에 성사되었다. 조효숙 공방장은 첫 만남에서 한복에 관한 애정과 의지를 담아 30여 권의 책을 건넸고, 온지음 옷공방의 장인들과 크리스티나 김 작가는 서울과 LA라는 시공간의 차이를 넘어 2년여간 한복을 탐구했다. 그 결과물이 전시장에 펼쳐진 것이다. 그는 이번 협업이 한국을 떠나 50년 동안 외국에서 살던 자신이 다시 한국에 돌아와 작업한다는 것에 의미가 있다고 말한다. 그와 동시에 이번 전시는 한국에서 보낸 어린 시절의 기억과 그때 배운 것에서 영감을 받았다.


아름지기 사옥의 인상적인 계단실에 구현한 은지 치마 열다섯 점의 설치 작품.
지하 1층 ‘우리 색 연구’에서는 작가가 발견한 다양한 한국 고유의 색을 확인할 수 있다.
“혹시 〈삼국지〉나 〈아라비안나이트〉 읽으셨나요? 그런 기분으로 하고 싶었어요. 이그조틱exotic하면서도 ‘한국 맛’이 나는 거요.” 시루떡, 온돌방, 안양 포도, 서리···. 이는 모두 이번 전시에서 만나는 한복의 작품명이다. “어릴 때 갤러리에 가서 본 단색화가 너무 아름다웠어요. 그런데 우리 할머니가 시루떡을 하시는데, 단색화하고 너무 비슷한 거예요. 이런 얘기는 한국에서만 할 수 있잖아요. 미국에서는 제가 시루떡, 온돌방을 말해도 아무도 모를 거예요. 그러니까 이런 거를 해보고 싶었어요.”

“어떻게 하면 한복을 편안하게 입을 수 있을까?”

크리스티나 김 작가는 동시대의 한복, 일상의 한복에 대한 힌트를 편안함에서 찾았다. “스타일보다는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편하게 입을 수 있을까 많이 생각했어요.” 편한 옷에 자주 손이 가는 것은 당연지사. 그는 원단에 풀을 먹여 다림질하는 전통 방식 대신 원단을 손빨래한 후 건조해 한복을 만들었다. 착용감과 관리의 편의성을 고려한 것. 또한 입어보고 수정하기를 반복하며 평면적 재단을 현재 우리 몸에 맞게 변형했다. “패턴을 완전히 새롭게 한 것이 아니에요. 우리 한복을 입혀보면서 지금 활동하기 편하고 아름답게 ‘모디파이modify’한 것이죠.” (조효숙)


카프탄 양식과 이부양식을 대표하는 아이템 저고리. 조효숙 공방장 또한 저고리를 한복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로 꼽았다.
“경계 위에서 새로운 것이 태어난다.”

이번 전시명은 〈blurring boundaries: 한복을 꺼내다〉이다. 경계라는 건 전통과 현대의 경계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아름지기는 항상 현대 작가와 함께 새로운 의복을 선보여왔다. 여기에는 학문과 예술의 경계까지 포함된다. 이론과 역사를 공부한 사람과 작가가 서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려는 마음의 자세를 지녀야 제대로 된 이 시대의 한복이 탄생할 거라고 조효숙 공방장은 말한다. “저희는 디자이너를 존중하고 디자이너는 학문하는 사람을 존중해서 서로의 이야기를 귀담아듣는다면, 거기에서 새로운 것이 탄생하지 않을까 싶어요.”

신연균 이사장은 이번 전시를 위해 온지음 옷공방 장인들과 크리스티나 김 작가가 함께 작업하면서 서로 깨닫고 느끼는 과정이 의미 있었다고 말한다. 전시장에서 만나는 한복은 굉장히 익숙하다. 쓱 봐도 우리가 알던 한복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이 한복들은 무엇보다 지금 편하게 입을 수 있다는 점이다. 여기에서 다시 한복의 생애가 이어진다. 전시는 아름지기 통의동 사옥에서 11월 15일까지 열린다.


자료 제공 아름지기

글 김혜원 기자 | 사진 이우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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