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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yle in Life 삶이라는 아카이브
아카이브의 사전적 의미는 역사적 기록물을 보관하는 장소다. 이를 삶에 빗대어 해석해보면 한 개인의 서사가 담긴 기록물이 보관된 장소는 집일 것이다. 칼럼니스트이자 기획자로 활동하는 이민경 작가의 집을 아카이브라 표현하고 싶은 것은 그가 오랜 시간 동안 길러온 안목과 아름다운 생활 방식에 대한 기록을 읽기 위해서다.

타일과 회색 메지를 매치한 벽이 깔끔한 주방은 나무 선반을 두어 일본에서 수집한 소품과 빈티지 그릇을 놓았다. 싱크대의 경우 스틸 상판을 선반보다 살짝 튀어나오게 마감해 물이 떨어져도 나무가 썩는 것을 방지했다.
거실 가운데에 배치한 유리 테이블 위에 최희주 작가의 모시 명태를 두었는데, 푸른 색감이 수묵화 같은 볼과 박홍구 작가의 나무 오브제, 아스티에 드 빌라트의 인센스 홀더와 잘 어우러진다.
한 사람의 집, 삶으로 대변되는 아카이브를 들여다볼 때 무엇을 기대하는가. 집주인이 어디에서 비롯되었고, 어디로 향하고 있으며, 무엇을 추구하는가,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은가에 대한 단서가 아닐까 싶다. 탄천이 내려다보이는 이민경 작가의 집은 이 단서를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는 아카이브다. 홍콩에서 보낸 어린 시절, 패션 에디터로서 치열하게 일한 10년, 브랜드 마케터로서 일, 남편의 발령으로 도쿄에 머문 6년, 서울로 돌아와 보낸 2년 가까운 시간이 집을 통해 기록되고 있다.

가장 먼저 읽어야 하는 그의 아카이브는 도쿄에서의 삶이다. “두 도시의 라이프스타일은 확실히 달라요. 도쿄에서 가장 많이 쓰는 말을 꼽자면 ‘조금만 기다려주세요’예요. 서울이 디지털이라면, 도쿄는 여전히 아날로그죠. 그런 도시에 있는 동안 글을 쓰고, 번역도 하고, 요리를 즐기다 보니 나만의 속도와 균형을 찾게 되었어요. 일본어를 배우고 일본을 움직이는 크리에이터와 제가 좋아하는 물건 그리고 장소에 대해 취재하다 보니 기다림과 여백의 가치, 정성의 힘을 깨닫게 되었어요.”


거실에서 부엌을 바라본 풍경. 빈티지 테이블과 폭을 맞추어 아일랜드를 제작하고, 위생을 고려한 스틸 상판이 인상적이다. 공간에 무드를 더하기 위해 간접 조명을 적재적소에 활용했는데, 식탁 위쪽에 설치한 종이 이사무 노구치의 아카리 등도 매력적이다.
때때로 좋아하는 차 도구로 따뜻한 차를 내려 스스로를 돌보고, 비워내는 시간을 가진다.
2016년부터 6년간 도쿄에서 일상을 살아온 에디터의 관점으로 크리에이터, 물건, 장소, 생활 방식에 대한 이야기를 엮어낸 책 <도쿄 큐레이션>은 사람들이 도쿄를 폭넓게 읽을 수 있는 가이드가 되었다. 역으로 이민경 작가에게 도쿄다움을 물어보는 일본 관계자가 많아졌단다. <도쿄 큐레이션>을 쓰는 동안 아름다운 것을 듣고 보고 만져보며 키운 힘은 가장 그다운 취향이 되어 빛을 발하고 있다.

“어릴 때부터 빈티지와 클래식을 좋아했어요. 낡고 오래돼도 빛이 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일본에서의 경험이 큰 영향을 줬는데요, 오래된 식당에 가면 낡은 그릇에서 윤이 나는 거예요. 고택을 가면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데도 마룻바닥과 가구, 소품에서 윤이 나는 모습이 신기했어요. 얼마나 공들여 가꾸고, 아끼면 이렇게 윤이 날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런 태도가 그들의 문화에 반영되어 있는 거죠. 빈티지 가구를 좋아하는 것도 마찬가지예요. 좋아하는 것을 자신의 삶 속에서 자기답게 소화하는 것이 중요해요.” 이민경 작가는 집의 가구와 조명, 그릇을 유명세에 구애받지 않고 오로지 자기다운 것으로 골랐다. 매일 쓰고 보고 만지는 물건을 아름답고 좋은 것으로 채우고 싶기 때문이다.


부엌 한쪽에 걸린 앞치마와 소재.
집을 둘러보는 묘미 중 하나가 조명. 서재에는 밀크 글라스로 만든 유기적 형태의 빈티지 조명을 달았다. 집을 꾸밀 때 소재의 밸런스에 신경 썼는데, USM 장식장에 유리, 도자기, 나무로 만든 소품을 적절하게 믹스 매치한 것도 인상적!
집을 꾸미는 것은 결국 이야기를 수집하는 것과 같다. 여기서 이어지는 두 번째 아카이브는 도쿄와 서울에서 수집한 물건이다. 2022년 봄, 도쿄 생활을 정리하고 서울로 돌아올 준비를 하면서 이민경 작가는 중학교 때부터 살던 분당의 아파트를 원하는 미감으로 레노베이션했다. “42lab의 최익성 실장님을 소개받아 줌으로 첫 미팅을 하고, 모든 것을 화상 미팅으로 논의했어요. 문을 없애고, 노렌을 달거나, 유리 가벽을 세우는 등 라이프스타일을 최대한 반영해 도쿄와 서울을 담아보았어요.” 허투루 선택한 것이 없을 정도로 집은 그가 경험한 이야기를 겹겹이 쌓아 올려 만든 총합체. 현관 안으로 들어서면 펼쳐지는 구조 역시 꽤 드라마틱하다. 이곳은 한국이면서도 곳곳에 마련한 장치가 일본의 모습을 반영한다.

가장 먼저 신경 쓴 것은 소재의 조화다. 메탈과 유리, 자연 소재를 적절하게 믹스 매치했다. 벽과 천장은 모두 화이트로 단장하고, 바닥재를 오크 우드로 선택했으며, 포인트가 되는 곳곳에 메탈 소재를 적절하게 사용했는데, 온종일 쏟아지는 볕이 이 모든 것을 따뜻하게 중화한다. 소재의 조화를 보여주는 방식은 이민경 작가의 의도가 잘 들어맞았다. 현관 정면에서 보이는 벽은 나무 프레임에 패브릭으로 제작해 선과 면을 영리하게 활용했다. 가운데쯤 있는 패브릭 벽의 한 면을 밀면 안방으로 이어지는 비밀스러운 공간이 나오는데, 세면대를 설치해 미니 파우더룸처럼 만들었다. 안방과 거실을 적절하게 구분해주고, 손을 씻기 위해 욕실로 걸음하는 횟수를 줄여주니 유용을 넘어 합리적 공간이 되었다.


일본식 환대 공간인 도코노마. 일본 빈티지 시장에서 구매한 1백 년 된 나무껍질 위에 무진 작가의 백자를 놓았다. 빨간 열매에 달린 최성미 작가의 버선이 새해맞이를 연상케 한다.
<도쿄 큐레이션>의 저자이며 칼럼니스트이자 기획자로 활동 영역을 넓혀 가고 있는 이민경 작가. 도쿄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에 정착한 집은 한국과 일본의 경계에 놓여 있다. 두 도시의 근간이 되는 삶의 양식을 새롭게 해석하며 누군가에게 동경이 될 만한 고유한 라이프스타일을 선보이고 있다. 그가 앉은 의자는 일본을 대표하는 가구 디자이너 조지 나카시마의 작품이다.
소재 다음으로 고민한 부분은 일본의 와비사비 정신을 차용해 완벽하지 않아도 미감을 더할 수 있도록 덜어내고 비워내는 과정이다. 일본식 환대 공간인 도코노마를 거실 한쪽에 마련해 돌 오브제와 아를에서 구매한 종이책, 무진 작가의 도자 작품, 황정화 작가의 바구니, 일본 캘리그래피 작가 다이치로 신조의 작품 등을 두었다. 취향의 선택이 의미가 있어야 비로소 가치가 생기는데, 시선을 옮길 때마다 그가 선택한 아름다움을 언어로 옮겨 이야기해주는 깊이가 놀라울 정도였다. “가장 아끼는 공간은 부엌이에요. 제게 식사는 정말 중요한 의식과도 같은 거예요. 치우는 건 힘들지만 요리는 정말 좋아해요. 빈티지 테이블과 폭을 똑같이 맞춰 아일랜드를 제작했는데, 하부장은 우드로, 상판은 위생을 고려해 스테인리스로 맞췄어요. 결과적으로 정말 마음에 들어요.”

마지막 아카이브는 삶의 태도에서 비롯된 안목을 공유하는 방식이다. 책을 쓰고, 다양한 콘텐츠를 만들면서 지난해 봄에는 갤러리 <피크닉>의 객원 기획자가 되어 프랑스 사진작가 프랑수아 알라르François Halard의 사진전을 선보이기도 하고, 무더운 여름날 요리 팝업을 열기도 했다. 독서 모임 커뮤니티 트레바리의 클럽장이 되어 ‘도시와 나’를 주제로 책을 읽으며 사람들과 도시 및 공간의 숨은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안방 입구에 마련한 미니 파우더룸. 모서리에 거울과 세면대를 설치한 감각이 멋지다.
“낡고 오래된 것도 빛이 난다”는 말의 가치를 알기에 그는 빈티지 가구를 모으고, 좋아한다.
현관과 방문 앞에 노렌을 걸어 적당히 가리면서도 공간 너머의 공간이 보일 수 있도록 개방감을 주는 효과를 만든다.
“에디터는 듣는 직업이라 생각해요. 세상에 사는 다양한 사람을 찾아 나만의 표현으로 세상에 내보이는 일을 하죠. 지금의 시대는 너무나도 많은 정보가 생산되고, 정제되지 않은 채 흘러나와요. 각자 하고 싶은 말만 하다 보니,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태도가 사라지고 있는 것이 안타까워요. 정보를 걸러내고 자기만의 아름다움을 판별할 수 있는 삶의 태도가 중요한데, 집은 이를 가능하게 만드는 장소예요.” 이민경 작가는 과거 모든 아름다움과 새로운 것은 거리에 있다 생각했다. 도쿄에서의 삶, 코로나19로 한 번 더 바뀐 일상을 보내며 집이야말로 무엇이 중요한지를 끌어들여 기록하는 곳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의 아카이브를 들여다보면 남들이 좋아하는 것을 무조건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것을 내 취향으로 소화하고 표현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렇다 보니 그가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은가에 대해 공유할 이야기도 기대가 된다. 현재진행형으로 기록할 아카이브는 <행복이 가득한 집> 3월호부터 만날 수 있다. “제가 좋아하는 아름다움에 대해서 이야기할 거예요. 단순히 취향이 좋다라고 단정 짓는 이야기보다는 다양한 선택지로 인해 삶이 풍요로워지는 안목, 오리지낼리티에 대한 이야기를 더 많이 하려고 합니다.”


공유하고 싶은 이민경 작가의 아카이브

Index 1.
도쿄의 시간 6년간 도쿄 생활자로 경험한 모든 것을 담은 <도쿄 큐레이션>은 도쿄라는 브랜드를 경험하는 여정에 가깝다. 갤러리와 미술관, 공원, 고택 등을 비롯해 좋아하고 아끼는 것에 진심인 크리에이터의 숍과 물건 그리고 음식까지. 문화의 토대가 되는 정신적 근간과 라이프스타일을 총체적으로 엿볼 수 있다.

Index 2.
안목의 발견 이민경 작가의 인스타그램 @tokyo_mk는 그가 어디로 향하고 있으며, 무엇을 추구하는지 볼 수 있는 매일의 아카이브다. 새로운 시각을 선사하며, 술술 읽히는 재치 있는 글과 다양한 사진 그리고 요리하는 일상을 보다 보면 팬심이 가득 차오른다.

Index 3.
리얼 리빙 ‘MK의 리얼 리빙’이라는 주제로 <행복> 3월호부터 공예와 장인, 예술가를 비롯해 도시 속 의외의 장소와 일상을 채우는 요리, 일본식 꽃꽂이 이케바나 등 우리를 둘러싼 진짜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이야기를 연재할 예정. 취향보다 안목을, 그때그때마다 영감을 주는 관점을 다룰 예정이니 기대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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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혜민│사진 맹민화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24년 2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