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남동 148.5㎥ 3층 주택 응답하라, 오버! 이 가족이 사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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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직거리는 잡음이 들리더니 이어서 “딸내미 나와라, 오버!” 하는 굵직한 목소리가 무전기에서 흘러나온다. 스마트한 시대에 무전기가 웬 말이냐고 하겠지만, 김향숙 씨네 세 식구에게는 요즘 가장 인기 있는 물건이다. 방 일곱 개가 있던 게스트 하우스를 개조해 층층이 독립된 공간을 꾸민 이 작은 집에서 세 식구는 따로 또 함께 일상을 공유하는 중이다.
계단의 코너 공간을 활용해 매입형 책장을 만들어 남편이 수집한 물건과 아내가 좋아하는 책을 올려놓았다.
빛바랜 벽돌 벽과 하얀 스타코 마감, 유리창, 따스한 색감의 대문이 어우러져 흥미로움을 자아내는 김향숙 씨네 집. 다가구주택에서 게스트 하우스로, 다시 주택으로 용도를 변경하면서도 기존 모습을 적절히 활용한 덕분이다.
“저 지금 집에 있어요!”
대학생 딸 박수민 씨가 이 집으로 이사 온 뒤 입에 붙은 말은 “집에 있어요”다. 작지만 층이 분리된 주택에 살기에 일부러 찾지 않는 한 부부는 수민 씨가 집에 있는지, 무얼 하는지 전혀 알 길이 없기 때문이다. 유난히 더웠던 지난여름에 이곳 연남동 주택으로 이사 온 김향숙 씨네 가족은 아파트에서 생활할 때는 경험해본 적 없는 일상을 살고 있다고 한다. “딸아이가 자라 성인이 되니 아빠와 한 공간에 있는 게 종종 불편할 때가 있나봐요. 독립인 듯 독립 아닌 생활을 위해 공간을 분리할 수 있는 복층 아파트나 단독주택을 알아봤어요.”
데이베드에 누워 좋아하는 책을 마음껏 볼 수 있는 아담한 서가. 가족실에 꾸민 서가는 김향숙 씨가 집에서 가장 아끼는 곳이다.
친정이 있는 광장동에서만 20년 가까이 살다가 처음으로 다른 동네로 이사할 결심을 한 김향숙 씨는 반려견 꼬꼬마, 딩동이와 함께 지낼 수 있는 동네를 알아보던 중 지인의 권유로 연남동을 찾았다. 강아지들을 산책시키기 좋은 경의선 숲길과 골목 사이사이의 예쁜 꽃집, 소박한 카페를 마주하며 연남동의 매력에 흠뻑 빠진 그는 본격적으로 집을 구하기 시작했다.
오래된 주택이었다가 2년 전 게스트 하우스로 레노베이션한 이 집은 세 식구와 만나 그들의 일상을 담을 하나의 주택으로 다시 모습을 바꿔가기 시작했다. 출퇴근 시간이 서로 다른 부부와 자신만의 공간을 갖고 싶어 하던 딸이 ‘따로 또 함께 사는 집’을 완성해가는 과정은 그야말로 흥미진진했다.
레이어 세 개가 쌓여 완성된 집
벽돌과 스타코 도장한 금속판, 유리창과 소프트한 핑크 컬러의 대문이 어우러진 집. 호기심을 자극하는 외관만큼 이 집은 독특한 이력을 지녔다.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층마다 현관이 있어요. 다가구주택이었다가 게스트 하우스로 레노베이션할 때 외벽을 세워 외부 계단을 실내 공간으로 만들고, 방도 일곱 개나 갖추었지요. 이사하면서 공간을 다시 구성했지만 옛 모습은 적절히 살려두었습니다.”
1 부엌과 거실, 침실, 연습실, 욕실까지 규모는 작아도 있을 건 다 있는 수민 씨 공간. 혼자 있을 때 간편하게 식사할 수 있도록 부엌에 전자레인지와 미니 냉장고를 구비해놓았다. 2 2층 한쪽에 세탁실을 만들고 슬라이딩 도어를 달았다. 동선이 편리해지고 공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한 아이디어다. 3 벽돌 벽에서 볼 수 있는 계량기와 현관은 본래 다가구주택이었음을 말해준다.
이곳에서 노년까지 생활할 것을 염두에 둔 김향숙 씨는 상업 공간에서 주거 공간으로 바꾸고, 카페에서 볼 법한 유니크한 스타일을 더하기 위해 공상플래닛의 김경목 대표와 작업을 시작했다. 평소 두 공간을 모두 작업하는 김 대표야말로 최적의 디자이너라고 생각했기 때문. 그는 집의 기본 골조를 활용하되 2층은 부부 공간, 반지하층은 수민 씨 공간, 1층은 가족실로 꾸며 독립적 공간을 완성했다. 활동 시간대가 서로 다른 가족의 생활 패턴을 반영한 부분이기도 하다. 2층은 부부 침실과 욕실, IT 회사를 운영하는 남편 박기현 씨를 위한 작은 서재와 부부의 드레스룸이 있고, 여분의 공간을 활용한 세탁실을 두었다.
침대 위에는 헤드보드와 똑같은 너비의 창을 만들고 접이식 문을 달아 이중창처럼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침대 머리맡에는 창을 내 감나무와 지붕, 하늘을 배경 삼은 근사한 헤드보드도 마련했다. 가족이 가장 빈번히 사용하는 1층은 주방 겸 다이닝룸, 거실이 있다. 이곳의 특징은 두 공간을 나누는 벽을 타공해 식사를 하면서도 TV를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영상 편집자인 아내의 바람을 정확하게 반영한 부분이다. 책을 좋아하는 그를 위해 두 벽면은 서가로 꾸미고 편안하게 독서할 수 있도록 특별히 제작한 데이베드도 배치했다. 공간은 가족이 평소 스크랩해둔 인테리어 사진을 토대로 1층과 2층은 무채색을 베이스로 하고 다크 블루 컬러와 소프트한 핑크 컬러로 포인트를 더해 따뜻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계단의 빈 공간에 작은 서가를 꾸미거나 외출 시 단장할 수 있는 파우더룸을 만드는 등 기발한 공간 활용 아이디어도 엿볼 수 있다. 작은 집이 일반적으로 넓어 보이는 데 중점을 두는 것에 반해 이 집은 넓어 보이는 것보다 즐겁고 유쾌한 공간으로 꾸미는 데 포인트를 두었다. 또 상업 공간에서 시도하기도 하는 과감한 디스플레이로 집에 개성을 더했다. 수민 씨만의 아지트인 반지하층은 채도가 높은 핫 핑크 컬러를 활용해 팝한 스타일로 완성하고, ‘Are U Normal?’ ‘NO!’라 쓰인 네온사인을 거는 등 재미있는 데코 요소를 가미했다.
주방에서 바라본 가족실 전경. 영상 편집자인 김향숙 씨의 바람대로 벽을 타공해 식사하면서도 TV를 볼 수 있는 구조로 만들고, 두 벽은 창문을 제외한 전체에 책장을 짜 넣어 서가를 완성했다. 전체적으로 깔끔한 화이트 베이스에 다크 블루 컬러로 포인트를 주었다.
“성악을 전공하는 딸을 위해 작은 연습실을 꾸몄어요. 방음장치를 하고 스스로 자세를 점검할 수 있도록 붙박이장 문짝에 전신 거울을 달았죠. 거실에는 TV와 2인 소파를 배치하고, 간단히 식사를 챙겨 먹을 수 있도록 주방에 전자레인지와 미니 냉장고를 놓으니 굉장히 좋아하네요.”
아담하지만 침실과 연습실, 욕실과 주방, 거실까지 있을 건 다 있고 현관을 닫으면 그야말로 독립적인 집이 되는 수민 씨 공간. 그는 친구를 만나기 위해 외출하는 대신 집으로 초대하는 일이 많아졌다. 수민 씨뿐 아니다. 연남동으로 이사 온 뒤 부부는 점점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진다고 말한다. 소소한 물건을 모으길 좋아하는 남편은 딸과의 소통을 핑계로 무전기를 사 오고, 아내는 데이베드에서 좋아하는 추리소설을 읽으며 마음껏 늘어지기도 한다.
수민 씨를 위한 아담한 거실. 2인 소파와 작은 커피 테이블을 배치하고, 코너장을 짜 넣은 뒤 TV를 올려 콤팩트하게 꾸몄다. 방문의 핫 핑크 프레임과 노출 천장이 조화를 이루며 공간에 개성을 더해준다.
“꼬꼬마와 딩동이가 가끔씩 창문에 매달려서 짖을 때가 있어요. 그러면 신기하게도 다른 집 강아지가 화답하는 것처럼 짖는데, 동네가 떠나갈 듯이 시끄러울 때도 있죠. 그래서 이 연남동이 참 마음에 들어요. 해 질 무렵 아이들과 숲길 공원으로 산책을 나갔다가 버스킹 공연을 볼 수 있고, 옥상에서 친구들과 맥주 한잔을 마시는 것도 낭만적이죠. 이번 크리스마스 때 홈 파티를 열 계획인데 글램핑 콘셉트로 차려보는 것은 어떨지 고민 중이에요.” 일상에서 소소한 행복을 발견하는 중인 세 식구. 집이 달라지니 일상 풍경이 변화하고 행복의 크기가 달라졌다는 말에 다시 한 번 공감하게 된다.
카페를 연상시키는 개성 있는 요소
1 파우더룸 한 뼘 공간에 꾸민 파우더룸. 파벽돌을 붙인 뒤 면을 분할해 페인트칠을 했다.
2 타이포그래피 장식 배수관에 시트지를 입히고 ‘Stress Free Zone’이라 쓰인 타이포그래피를 붙여 재미를 더했다.
3 데코 타일 호텔 욕실처럼 이국적 분위기를 내는 데코 타일.
4 네온사인 조명등 비스트로에서 볼 법한 네온사인. ‘Are U Normal?’ ‘NO!’라는 문구는 수민 씨가 직접 골랐다.
5 핫 핑크 컬러 과감한 핫 핑크 컬러로 곳곳에 포인트를 줘 파리의 작은 아파트를 연상시키는 공간.
6 미니 무전기 아빠와 딸이 소통을 핑계로 구입한 소소한 물건이다.
7 스트라이프 패턴 차양 루프톱 파티를 즐길 수 있도록 꾸민 공간. 아웃도어 가구와 차양이 어우러져 흥겨운 분위기를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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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6년 12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