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창 너머로 바라보이는 능선, 툇마루 같은 테라스… 아파트의 편리함과 주택의 낭만을 결합한 공릉동 이재하 씨 가족의 50평 아파트. 인테리어를 맡은 튠플래닝tune planning은 공간을 조율한다는 뜻의 이름처럼 공간 스타일보다 프로그래밍에 중점을 두는 것이 특징이다. 아기자기한 소품이나 장식이 없어도 꽤 재밌는 공간이 탄생한다.
주택으로 이사하고 싶었지만 부부 모두 일을 하다 보니 현실적 문제로 다시 아파트를 선택, 주택의 장점을 담기 위해 과감한 레노베이션을 했다는 이재하 부부. 거실에는 오가다 턱 걸터앉을 수 있는 툇마루 같은 공간을 연출해 매트를 깔고 방석을 두면 푹신한 좌식 라운지가 된다. 정남향이고 단열재를 추가 시공해 겨울에도 따뜻하게 사용할 수 있다. 액자는 아티초크 판매.
부부 침실 맞은편에 마련한 서재는 삼부자가 함께 사용하는 공부방이다. 아이들이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 부분적으로 컬러를 적용해 포인트를 줬는데, 도장이 아닌 재료 자체에 색감이 있는 발크로맷을 선택했다.
매트리스 위에서 뒹굴뒹굴 노는 아이들이 장난감과 책을 정리 정돈하기 쉽도록 바닥에 수납장을 끼워 넣은 것이 특징.
방문은 모두 슬라이딩 도어로 처리. 벽과 문이 구분되지 않아 복도가 한결 시원해 보인다.
많은 사람이 주택 생활을 꿈꾸지만 사실 누구에게나 그런 용기와 기회가 허락되는 것은 아니다. 이사를 앞두고 주택을 알아보다 현실적 제약에 부딪혀 다시 아파트로 노선을 바꾼 이재하 부부. 아파트의 편의성은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주택의 장점을 들이고 싶던 부부는 여러 디자이너의 포트폴리오를 검색하다 <행복>에 소개한 튠플래닝 김석ㆍ나진형 실장의 집을 보았고, 공간에 건축적 디테일을 접목한 아이디어가 마음에 들어 레노베이션을 의뢰한다.
부부가 원한 것은 두 가지, 테라스와 툇마루였다. 그래서 이사할 집을 고를 때도 ‘전망’ 을 최우선으로 뒤편에 산이 있는 마지막 동을 선택했다. “집주인과 첫 미팅할 때 전원 주택의 덱 같은 테라스를 만들고 싶다고 하더군요. 주택으로 이사하고 싶은 이유 중 하나가 덱에서 바비큐를 하는 거라고요. 남편분은 딱 한마디 하셨는데, 어린 시절 한옥 툇마루에 앉아 책을 읽던 기억이 참 좋았다는 얘기였어요.”
김석ㆍ나진형 실장은 테라스와 툇마루의 키워드를 듣자마자 ‘공간 속 공간’을 생각했다. 아파트의 평면적 구조에 단 차이를 두고, 박스로 공간을 분할해 입체감을 부여하자는 계획이었다. 통창 너머 멀리 불암산 능선이 내려다보이는 박스형 다이닝룸(테라스)은 공간 속의 공간을 구현한 곳으로 이 집의 트레이드마크다. 그저 앞 동이 바라보일 뿐인 앞 베란다는 단을 높이고 날개벽을 안쪽으로 시공해 오히려 전망을 차단한 것이 특징. “앞 베란다의 전망이 좋지 않아 가리고 싶어 하셨어요. 폴딩 창이나 한식 미닫이문을 달까 하다 조금 답답해 보일 것 같아 차라리 프레임을 만드는 게 어떠냐고 제안했죠. 자작나무 패널로 프레임을 만들고, 안쪽 면을 빨간색 발크로맷valchromat 으로 마감해 시각적 분산 효과를 줬습니다.”
집주인과 마찬가지로 아파트의 획일적 구조에 한계를 느낀 나진형 실장은 앞면은 가리고, 뒷면은 확실하게 개방하는 방법으로 마치 숲 속 정자 같은 공간을 완성했다. 하지만 산이 보이는 전망이라고 해서 모든 집이 이러한 시공이 가능한 것은 아닐 터. 외벽을 없애고 통창을 시공하는 것이 가능한 집인지 먼저 규제 사항을 살펴봐야 한다. 다행히 이 집은 뒤 베란다의 외벽 일부를 철거할 수 있었고, 개폐되지 않는 통창을 시공하면 난간을 설치하지 않아도 되는 조건이었다.
“박스형 다이닝룸 자리는 원래 다용도실과 연결되는 보조 주방자리였어요. 보조 주방과 다용도실을 주방 라인까지 끊고, 외벽을 철거한 후 마치 그 자리에 박스를 끼워 넣은 듯한 형태로 공간을 분할했죠. 내추럴한 느낌을 살리기 위해 단을 높이고 티크 원목으로 마감했어요.” 나진형 실장은 용도에 따라 열리고 닫힌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폴딩 도어를 설치했다. 평소에는 개방
감이 느껴지도록 폴딩 도어를 완전히 열어두고, 바비큐를 할 때는 폴딩 도어를 닫고 외부 창을 열어 사용하는 것. 가끔 테라스에 앉아 있으면 마치 숲 속 리조트에 와 있는 느낌이란다. 구석에 설치한 카쿤cacoon 의자(천장에 매다는 형태의 의자) 하나로 아이들도 즐거워하니 그야말로 다용도 ‘박스’다.
테라스는 티크로 마감하고 천장에 매다는 카쿤 의자를 설치했더니 아이들 놀이 공간으로 제격이다.
아이들 방은 밝은 컬러의 자작나무로 한쪽 벽면을 마감해 따뜻한 느낌을 완성했다. 아이의 성장에 따라 매트리스와 수납장 위치, 조합을 바꿀 수 있다.
거실에서 바라본 주방. 평소 주방에 있는 시간이 많지 않아 주방 크기를 줄이고, 대신 한편에 테라스를 마련했다. 폴딩 도어를 닫고 창문을 열면 마치 야외에 있는 듯 독립된 공간으로 즐길 수 있다.
테라스와 주방 사이에 작은 창을 내어 음식, 식재료를 나르기 편리하다.
부부 침실 역시 군더더기 없이 심플하게 연출했다. 침대 맞은편에는 TV 크기에 맞춘 시스템 월을 시공해 깔끔한 분위기를 완성했다.
통창 너머 멀리 불암산 능선이 내려다보이는 테라스는 ‘공간 속 공간’을 구현한 곳으로 이 집의 화룡점정이다. 가끔 테라스에 앉아 있으면 마치 숲 속 리조트에 와 있는 듯하다.
함께여서 즐거운 집
본격적으로 집 구경에 나섰다. 우선 거실은 TV가 없다. TV 없는 거실이라면 으레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서재 겸 거실을 연상하겠지만 이 집 거실은 소파도, 책장도 없다. 오직 널찍한 테이블과 의자뿐. “예전 집에도 거실에 소파가 없었어요. 사실 소파에 앉는 시간은 TV를 보는 시간과 비례해요. 아이들과 책도 읽고 간식도 먹고, 가족 모두 대화하기에는 소파보다 널찍한 테이블이 더 실용적이죠.”
실제로 테이블 하나가 준 변화는 참으로 크다. 엄마는 노트북으로 일하면서 아이의 노는 모습을 볼 수 있고, 가족이 테이블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짐에 따라 자연스레 대화도 늘었다. 또한 부부는 가구를 최소화하는 대신, 편안하게 앉고 누울 수 있는 공간을 주문했다. 앞 베란다와 서재 창가에 단을 올려 툇마루처럼 연출, 지나다 툭 걸터앉거나 쿠션을 깔고 뒹굴뒹굴하는 등 편안히 쉴 곳이 많이 생겨 좋단다. 부부 침실과 아이 방 역시 가구를 최소화한 것이 특징. 부부 침실은 침대 헤드보드를 생략하고 천장 에어컨 라인까지 패널로 마감했으며, 아이 방은 매트리스 크기에 맞춰 바닥에 깔리는 수납장을 제작했는데 다양한 조합으로 연출할 수 있어 실용적이다.
또한 갤러리처럼 그림을 걸고 싶다는 바람에 따라 책장이나 장식장도 두지 않고 하얗게 마감했다. 벽은 페인팅 마감을 하고 싶었지만 겨울이라는 공사 시기와 짧은 공사 기간으로 무지 벽지로 대체. 도배로 도장 느낌을 내기 위해 몰딩을 생략하거나 면적을 최소화하고 마감의 에지를 살린 것이 특징이다. 거실 다용도 테이블 위 레일 조명등은 공간에 포인트를 주는 역할이자, 레일로 조명등 위치를 바꿀 수 있어 등 아래 가구 배 치도 자유롭게 연출이 가능하다.
“집을 고칠 때 보편적으로는 각자의 개인 공간을 원하거든요. 주방에 대한 욕심, 서재에 대한 욕심…. 그런데 이 가족은 모든 공간의 기준이 가족 모두, 즉 ‘함께하는’ 것이더라고요. 거실은 물론 아이 방 침실도 건우와 준우가 뒹굴뒹굴하며 같이 잘 수 있도록 낮은 매트리스를 깔았고, 서재는 아이들도 아빠와 같이 사용할 수 있도록 툇마루를 두고 한쪽 벽에는 백페인트 글라스를 시공했죠.”
시각적 디자인보다 이곳에서 펼쳐질 가족 구성원의 라이프스타일에 따라 공간을 규정하는데 초점을 맞췄다고 말하는 김석 소장. 주거 공간을 디자인할 때는 무엇보다 ‘여지’를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다시금 강조한다. 인테리어 디자인 속에는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희로애락이 함께해야 하는 법. 삶의 흔적이 한 편의 서사시처럼 집 안 곳곳에서 펼쳐지며 삶을 배경으로 한 서정적 드라마가 완성되기 때문이다.
꾸밈없고 요란 떨지 않은 말 그대로 너른 집. 만약 디자이너 혼자의 상념으로 디자인에 접근했다면 박스형 다이닝룸, 툇마루 등은 그저 남의 옷을 빌려 입은 듯 어색한 연출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집은 어른뿐 아니라 아이들 역시 침실과 거실, 서재와 테라스를 오가며 그들만의 세상을 만끽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필요한 가구만 두고 장식을 배제해 간결하고 담백한 집,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진화할지 자못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