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의 빨간 벽돌은 살리고 미장 느낌의 페인팅과 빨간 문으로 오래된 건물의 운치를 살렸다
소위 ‘뜨는’ 동네라고 하면 한 집 건너 한 집이 카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카페 전성시대다. 단층집이 아니라면 집과 일터를 위, 아래로 나누어 사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 1층은 카페, 2층은 집. 그런 점에서 성북동 최미경 씨의 집은 상가 주택에 로망이 있는 사람에게 이상적 공간이다. 새로 짓지 않았기에 오히려 일반 점포 주택과는 거리가 먼 개성 있는 공간이 탄생했다.
1 단 차이가 나는 카페 한쪽에 밀실 같은 라운지 공간을 마련했다. 라운지에서 카페를 바라본 모습.
2 성북동 다가구 주택을 레노베이션해 오픈한 카페 ‘Bistro 8 steps’(02-766-5838).
삼청동에서 이탤리언 레스토랑 8 steps를 운영하는 요리사이자 <행복>이 낳은 스타 주부 최미경 씨.다양한 살림 솜씨를 알려주는 칼럼을 진행하다 요리책을 내고 멋진 레스토랑을 오픈하기까지, <행복>은 그의 삶의 산 증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그가 지난해 말 성북동에 집을 짓고 있다는 소식을 전했다. 겨우 골조 공사만 마쳤다고 했지만 그의 감각을 익히 알기에 궁금증을 참을 수 없었다. 성북동 선잠로 삼거리의 빨간 벽돌집. 평범한 데다 다소 허름해 보이는 외관이 의외라는 생각도 잠시, 집과의 특별한 인연이 흥미롭다.
“어느 날 성북동을 지나는데, 평소에는 보이지 않던 허름한 집이 눈에 띄는 거예요. 뭔가 재밌는 작업을 해볼 수 있겠다는 기대감이 솟구치더라고요. 무작정 인근 부동산을 찾았죠. 다섯 가구가 사는 다가구 주택인데 소유권이 얽혀 있어 힘들 거라고 하더군요. 그리고 또 시간이 한참 흘러 한 모임에서 건축가 최시영 씨를 만났는데 ‘성북동 재밌어요. 이사 오세요’ 라고 하는 거예요. 뭔가 홀린 듯 다시 성북동을 찾았죠. 근데 그 허름한집을 또 보여주는 거예요. 인연이다 싶어 바로 계약했죠.”
1 필지의 높낮이가 달라 카페 한쪽에 세 계단 정도 높은 무대 같은 공간이 생겼다. 낮은 암체어와 길게 늘어뜨린 조명등으로 라운지 느낌을 강조. 창밖으로 빔 프로젝터를 쏘면 근사한 영화관이 된다.
2 카페 입구에서 정면으로 바라보이는 창문. 막혀 있던 벽을 뚫으니 한결 개방감이 느껴진다.
한옥도 지었는데 집 고치는 것쯤이야
처음에는 왜 이렇게 낡은 집을 샀냐고 걱정하는 사람도 많았다. 하지만 이미 10년 전, 그 어렵다 는 한옥도 지었는데 다가구 주택 고치는 것쯤이야! 처음부터 다 알고 시작하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하나씩 배워가며 하리라 마음을 다잡은 그는 먼저 복잡한 필지를 정리했다. 이 집은 밖에서 보면 한 집처럼 보이지만 엄밀히 말하면 집 세 채가 붙어 있는 형태로 소유주가 세 명에 무려 다섯 가구가 살고 있었다.
세 집을 한 집으로 묶는 데만 10개월, 1층은 카페로 2층은 살림집으로 용도를 변경하니 철거와 골조 보강이라는 난공사가 기다리고 있었다. 경사진 지형에다 집 세 채가 주먹구구식으로 지어진터라 바닥 높이가 모두 달랐던 게 가장 큰 문제. 특히 1층 입구 맞은편은 세 계단 정도 높았고, 천장 높이를 맞추니 상대적으로 천장이 낮아 답답해 보였다. 땅을 파내려면 구조 보강을 할 설계자가 필요했고(건축주가 직접 공사를 맡아 처음 몇 달간 설계자가 없었다) 지인으로부터 COOM PARTNERS의 김종석 소장을 소개받았다.
철거, 구조 보강, 에이치 빔 시공 후 현장에 투입된 김종석 소장은 땅을 파낸 뒤 다시 구조 보강을 하고벽으로 막혀 있던 곳에 창호를 뚫어 개방감을 살렸다. 집으로 올라가는계단 아래에는 장작을 쌓아두고 카페 한쪽 라운지 공간 정면으로 보이는 창은 담이 맞닿아 있으니 담쟁이덩굴을 심으면 운치 있을 거라는 그의 예상은 적중했다.
3 6개월간 다가구 주택 레노베이션 공사를 진두지휘하며 1층은 카페, 2층은 살림집으로 꾸민 최미경 씨. 카페 주방 설비와 인테리어는 SBI어쏘시에이트(02-540-1007)의 도움을 받았다.
4 슬라이딩 도어, 벽 장식 등 친환경 건축 자재인 컬러 발크로맷 소재를 공간 곳곳에 적용해 모던한 느낌을 살렸다.
최미경 씨, 건축주 직영 공사에 도전하다
건축주가 직접 인테리어 공사를 진행할 경우 체크할 일은 크게 두 가지. 첫째, 각 공정을 맡길 유능한 장인을 찾아야 하고 둘째, 그들이 하는 일을 시시때때로 관리 감독해야 한다. 결국 주방의 셰프, 오케스트라의 지휘자 같은 역할인데 그간 레스토랑, 한옥을 고치며 쌓은 안목과 요리사의 체력과 의욕이라면 너끈히 해낼 수 있으리라는 자신감이 들었다. 사실 고생은 하겠지만 대신 비용을 줄일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도 있었다. 하지만 콘크리트 기술자, 목수, 미장이, 타일 기술자, 마루 기술자 등 40여 명의 ‘사장님’을 일일이 고용한 후 그 사람들이 하는 일을 감독하는 일은 녹록지 않았다.
먼저 시공 회사로부터 받은 견적서에는 각종 공사 _ 가설공사, 기초공사, 철근 콘크리트 공사, 조적 공사, 미장 공사, 지붕과 수장 공사, 도장 공사, 부대공사, 골재대와 운방 공사, 위생 설비 공사 등 _ 리스트의 연속이다. 오늘 하나를 끝내면 내일 하나, 며칠 뒤 또 하나, 결정은 해도 해도 끝이 없다. 마라톤만큼 힘든 게 집 짓기구나! 또한 철제 빔, 노출 콘크리트, 구로철판 벽면 등 보통 주택에서 시도하지 않는 독특한 인테리어를 현장 소장과 많은 인부에게 이해시키는 것이 어려웠다. 인부들은 무엇보다 ‘편의’를 우선시하므로 배관을 쉽게 깔 수 있는 위치에 맞춰 주방을 시공한다거나(현장 소장이 현재 거실에 주방 가구를 설치하려고 고집을 피웠다.
무려 일곱 번이나!), 외벽의 불필요한 장식을 철거하지 않는다거나(철거되는 양으로 비용을 계산해 양이 적은 철거는 귀찮아한다) 하는 식이다. 그렇다면 인부들과 따로 계약해서 공사하면 한 업체와 일괄 계약해 공사하는 것보다 비용을 줄일 수 있까? 이 경우 대부분은 ‘아니다’가 정답이다. 쉽게 도매와 소매의 차이를 생각하면 된다. 또한 현장 책임자가 없으니 공사 기간이 하루 이틀 늘어지는 일도 다반사다. 성북동 집의 경우 난공사에다 몇 번의 시행착오로 한 업체에 공사를 맡길 때보다 비용이 30%이상 더 들었다. 반면 집주인의 세세한 감각과 취향이 공간 곳곳에 반영되어 집에 대한 만족도와 애착은 크다. 어찌보면 이번 레노베이션을 통해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값진 교훈을 얻은 셈이다.
벽면의 페인트는 서너 번 칠했다 덮었다를 반복하면서 만든 색이다. 페인트 사장님한테 ‘색에 참 민감하다’고 핀잔을 듣기도 했지만 같은 컬러라도 미세한 차이에 따라 공간 전체의 분위기가 달라지기 때문에 결코 포기할 수 없었다. 이처럼 스태프들에게 콘셉트를 설명하고, 설득하고, 발품 팔아 소품을 구입하는 등 최미경 씨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옥상에서 2층 주거 공간으로 내려가는 계단. 외장 마감재를 실내로 들여 꾸미지 않은 듯 멋스러움을 더하고 싶었던 최미경 씨는 금속 계단과 매끈한 판톤 조명등으로 임팩트를 주었다.
1 2층 주거 공간에서 옥상으로 올라가는 계단실 아래 콘솔 테이블을 두었다.
2 계단실 아래 자투리 공간을 활용한 욕실. 작은 타일로 그래픽적 감각을 더했다.
3 아일랜드 조리대와 배관 행어, 행잉 선반 등 실용성과 개성미를 모두 만족시킨 주거 공간의 주방.
2층 주거 공간은 뉴욕의 스튜디오처럼 열린 공간으로 꾸미고 싶었다. 건축 외 장재를 내부로 끌어들이는 게 포인트. 천장을 보강한 에이치 빔이나 철 계단, 도장, 천장 배관 장식 등이 그것이다. 천장은 물론 벽면도 울퉁불퉁한 옛 건 물의 흔적을 남기고 싶었지만 벽은 단 열이 필수라 석고보드로 매끈하게 마 감할 수밖에 없었다. 대신 연한 그레 이, 웜 베이지 톤으로 부분 도장하고 빨간 목재 창으로 포인트를 줬다.
1 취향은 디테일에서 비롯되는 법. 모과를 사이에 꽂은 촛대, 창가에 오브제처럼 둔 국수 다발 등 안주인의 감각이 집안 곳곳에서 느껴진다.
2 원래 거실이었던 현관 앞 공간은 서재 겸 전실로 사용한다. 가족 사진과 추억의 소품 등이 놓여져 타임 캡슐 역할을 해주는 쉘레모의 노란 장식장이 포인트.
3 욘 칸델의 징크 책장, 마츠 테셀리우스의 암체어 등 스웨덴의 쉘레모 가구로 꾸민 거실.
창문, 아름다운 소통
무엇보다 이 집의 백미는 ‘창문’이다. 사실 인테리어와 관련된 항목 중 가장 돈이 많이 들어가는 한 가지를 고르자면 바로 창호 공사다. 창은 채광과 환기 등 기능뿐만 아니라 미적으로도 중요하다. 어떤 창을 어떤 크기로 다느냐에 따라 집 안 전체 분위기가 달라진다. 1층 카페와 2층 주거 공간에 통일감을 주면서도 옛 건물의 정취와 어울리는 창이 무얼까 고민한 최미경 씨는 손잡이를 한 바퀴 돌리면 철커덕잠기는 일반 시스템 창 대신 ‘목창’을 선택했다. 그것도 빨간색으로! 이처럼 즉흥적으로 다소 과감하게 결정한 부분은 일상에 색다른 즐거움을 준다.
빨간 창문 너머로 보이는 파란 하늘은 더욱 상쾌할 것이고, 카페 라운지의 담벼락에 프로젝터를 쏘면 그야말로 근사한 영화관이 될 것이다. “집을 새로 짓는 것보다는 이렇게 오래된 주택을 고치는 일이 힘들면서도 재밌는 것 같아요. 신축은 초기에 기획, 설계만 하면 끝이잖아요. 과정이 없죠. 하지만 레노베이션은 굉장히 많은 변수가 있어요. 시작부터 중간과정 내내, 또 끝나고 사람이 들어와 살 때까지 계속 손을 봐야 하죠. 순간 순간 즉흥적으로 바뀌는 게 묘미고요.” 지난한 공사를 마치고 이사한 지 어느덧 네 달이 지났지만 최미경 씨는 여전히 자신의 집을 가꾸는 중이다.
집과 일터가 함께 있으니 이렇게 저렇게 바꿔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내가 살 집, 일할 공간이기에 더욱 과감한 시도가 가능하고, 주거 공간의 경우 삶의 방식을 한결 간소화할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살다 보면 집에서 그다지 필요하지 않은 것들이 생기는데, 그의 경우 대부분 1층 카페에서 유용하게 쓰일 수 있는 물건들이라 카페로 내려보낸다. 살림집은 점점 심플해지고, 카페에서 더 많은 사람이 그것을 충분히 향유할 수 있으니 뿌듯하다. 또한 마당을 가질 수 없는 상가주택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옥상을 정원으로 꾸밀 계획이다. 완연한 봄이 오면 빨간 벽돌집에도 초록 향기가 가득할 듯.
침대와 스툴을 활용한 사이드 테이블, 전통 거울로 소담하게 꾸민 침실. 베이지 톤의 연한 그레이 컬러로 도장해 편안한 침잠의 공간을 완성했다.
성북동 ‘Bistro 8 steps’를 만든 사람들
시공 전 후의 모습 (대지 188㎡, 연면적 244㎡)
집 한 채를 지으면 10년은 늙는다는 말을 많이 한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처럼 돈은 콸콸 들어가고 몸은 피곤하고, 늘 하던 일이 아닌 만큼 툭하면 차질이고 돈 쓰면서 자학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하지만 최미경 씨는 특유의 긍정적 마인드로 6개월에 걸친 이러한 역경을 이겨냈다. 그리고 그 뒤에는 모든 공정을 내 일처럼 맡아준 든든한 조력자가 있었다. 설계 보강을 맡은 COOM PARTNERS(070-4212-2912) 김종석 소장은 구조보강의 달인이다.
어깨를 숙이고 다녀야 할 정도의 경사지였던 1층 카페 한쪽을 과감히 땅을 파고, 커다란 창을 뚫는 것은 물론, 내진 설계에 가까울 정도로 구조 보강을 탄탄히 했다. 특히 이 건물은 안에서 바깥을 바라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바깥에서 건물을 바라봤을 때 거슬리지 않는 것도 중요했다. 동네 풍경에서 도드라지는 것을 원하지 않은 최미경 씨의 바람대로 빨간 벽돌 마감재를 최대한 그대로 사용하고 미장과 부분 도장으로 마감해 비용을 절감했다. 또한 평범한 다가구 주택으로 보일 수 있어 시스템 창 대신 나무 창문을 제안했다.
김종석 씨의 소개로 레노베이션에 참여한 오랑겐바움(010-2551-4425)의 나무 작가 최호세, 양수경씨는 크기도, 모양도 제각각인 나무 창 스물네 개를 맞춤 제작했다. 인천 목재 단지를 뒤져 붉은빛이 도는 나왕 소재를 고른 두 작가는 하나하나 손대패로 다듬어 창문과 2층 주거 공간의 방문, 붙박이장 문 등 모든 문을 수작업으로 제작했다. 특히 창문은 프레임 디자인뿐 아니라 단열과 환기라는 기능도 중요한 아이템이기에 제작부터 설치까지 직접 진행했다. 벽체 안으로 창틀이 최대한 많이 겹쳐질 수 있도록 프레임을 두껍게 짜고 우레탄 폼으로 틈새를 완벽히 막아 단열 효과를 높였다.
이 집은 취향의 정점인 인더스트리얼 스타일을 반영하기 위해 외장재를 내장재로 사용한 면면이 눈에 띈다. 집에서 옥상으로 올라가는 내부 금속 계단, 옥상난간, 카페와 라운지의 공간을 구분해주는 철제 슬라이딩 도어와 간이 계단, 주방의 파티션 등은 승지금속(02-308-3993) 김병오 대표가 맡았다.
1 성북동 Bistro 8 steps를 완성한 주역들. 왼쪽부터 구조 보강을 맡은 김종석 소장, 금속 작업을 맡은 김병오 대표, 건축주 최미경 씨, 오랑겐바움의 두 작가 최호세, 양수경 씨.
2 사람의 옷차림을 평가할 때 신발과 시계 등 액세서리가 중요한 것처럼 창문이 공간의 완성도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크다. 오랑겐바움 최호세, 양수경 작가가 맞춤 제작한 빨간 창문이 이 집의 백미다.
3 주거 공간의 에이치 빔과 노출 천장은 모두 화이트로 도장했다.
4, 5 아연 철판으로 천장, 프레임을 만들어 인더스트리얼 무드를 완성한 1층 카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