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해주세요.
본문 바로가기
해외의 아름다운 집 가족 이야기가 장식이 된 집
면도기 같은 생활용품부터 하이브리드 자동차까지. 유기적인 디자인을 통해 첨단의 생활을 이야기하는 디자이너 카르멜로 디 바르톨로. 밀라노에 있는 그의 집과 사무실을 방문한 다는 건 이런 마음이지 싶다. 이렇게 고색창연한 도시에 사는 사람이 어떻게 현대인의 삶을 보다 편리하고 모던하게 진화시키는 것일까?

“어휴, 약 올라! 분명 이 부근 맞는데 말이죠.” 주소만 불러주면 목적지 바로 문 앞에 데려다 주는 밀라노의 택시 기사들을 보면서 내내 감탄을 금치 못했건만, 카르멜로 디 바르톨로Carmello di Bartolo 씨의 집을 찾아가는 길은 예외였다. 이 건물이 저 건물 같은 고색창연한 건축물이 즐비한 곳에서도 단번에 목적지를 찾아주던 운전사. 그런데 왜 더 널찍한 도로, 여유로운 주택 단지에서 목적지를 쉽사리 짚어내지 못하는 것일까? “쉽게 설명하자면 여기는 아무나 살 수 있는 집이 아니랍니다. 밀라노에 이런 주거 단지가 형성된 것은 이곳이 유일무이하니 말이죠.” 이탈리아에서 가장 오랜 역사와 큰 규모를 자랑하는 디자인 학교 에우로페오Istituto Europeo di Design의 학장을 지내고 현재 디자인 컨설팅 스튜디오 ‘디자인이노베이션Designinnovation’을 운영하는 카르멜로 디 바르톨로 씨. 아내와 두 자녀까지, 그의 네 식구가 사는 집은 보통 밀라노 사람들의 집과는 다른 매우 특별한 곳이다. 육중한 석재 건물의 나무 문을 열고 중정을 지나 높은 계단을 걸어 올라가야 하는 아파트가 밀라노의 전형적인 주거 형태라면 이곳은 여러 채의 단독주택을 일렬로 배치한 것이 요즘 우리가 말하는 ‘타운하우스’를 닮았다. “원래 이 집은 1930년대 철도 공무원을 위해 지은 집이었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그 용도와 가치가 다양하게 변화했지요.” 카르멜로의 가족이 이 집에 이사 온 것은 20년 전. 당시 중산층 이상의 감각 있고 의식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인테리어뿐만 아니라 주거 형태에 대한 인식 변화가 생기면서 선망의 대상이 된 것이 단독주택, 그리고 이에 대안으로 떠오른 것이 철도 공무원 아파트 단지였단다.

(왼쪽) 밝은 햇살이 들어오는 1층 다이닝룸에 모여 앉은 카르멜로의 가족. 아들 프란체스코, 부인 마리아, 그리고 막내딸 이레네가 환한 미소를 짓는다. 앤티크 식탁에 재활용 자재로 만든 이탈리아 에메코 브랜드의 ‘네이비’ 의자를 매치한 다이닝룸은 디자이너 카르멜로의 철학과 감각이 담긴 공간이다.


1
1930년대 지은 철도 공무원 아파트. 지금은 밀라노의 단독주택 단지로 각광받는다.
2 맨 위층 천장에 매달 아놓은 새 오브제. 자연물을 좋아하는 카르멜로가 여행지에서 발견했다.

3
한국에 왔을 때 ‘득템’한 죽부인. 계단 가운데 모빌처럼 설치해놓았다.
4 앤티크 벤치를 놓은 현관. 벽면에는 식물 도 감을 그림처럼, 나무 조각을 오브제처럼 걸었다.

5
현관문 틀 위에는 시칠리아 지방 특유의 장식 오브제를 올려놓았다.
6 장롱 문짝의 장식 프레임을 재활용해 만든 거울.

하부의 하늘색 몰딩과 주황색 사이드보드가 오묘한 컬러 대비를 이루는 부부 침실. 그림과 오브제는 모두 부부가 여행을 하면서 모은 것으로, 삶의 역사를 보여준다.


따로 또 같이, 색깔로 하나 된 공간 초록색 철제 대문을 열고 들어선 카르멜로의 집. 폭이 좁은 대신 3층으로 지은 집 내부는 다소 답답해 보일 수 있지만 의외로 신선한 기운이 감돈다. 파스텔 톤의 민트 그린으로 칠한 벽면과 소박한 빈티지 나무 의자가 선사하는 청량함, 3개 층을 관통하는 계단 위 천창에서 쏟아지는 햇살, 그리고 주방을 비롯해 공간 곳곳에 드리워진 식물. 이 집에 발을 디딘 순간 동선은 자연스러운 색깔의 변주와 리듬을 따른다. “집이 갖고 있는 특징을 그대로 살리되 우리 집다운 개성을 표현하기 위해 선택한 것이 색깔입니다.” 그래픽 디자인을 전공해 한때 그와 함께 스튜디오를 운영했던 아내 마리아Maria의 실력까지 더하면 이 집은 충분히 과감한 변신을 택할 수도 있었을터. 하지만 카르멜로의 생각과 소신은 이렇다. 기존의 것에서 나와 연관되는 가치를 발견하고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디자인이라는 믿음. 이런 의미에서 그의 집에 흐르는 색깔은 자연에 존재하는 컬러 스펙트럼이요, 그 표현은 집 고유의 벽면과 구조의 특성을 살리는 데 집중했다. 민트 그린으로 시작하는 1층 현관과 복도를 지나면 스카이 블루로 몰딩에 포인트를 준 주방과 다이닝룸이 이어지고, 그 안에는 붉은 톤이 도드라지는 분홍색 타일 바닥이 펼쳐진다. 그리고 주방 바닥을 닮은 붉은 핑크 컬러는 계단 단면과 벽면 하단부 몰딩의 컬러로 이어지며 집 전체를 하나로 아우른다.
공간마다 색깔을 달리했지만 분절된 느낌이 들지 않는다. 역시 디자이너의 계산답다하니, 이 집의 야무진 막내딸 이레네Irene가 한 수 거든다. “사실 진한 핑크는 조색을 잘못한 건데, 그냥 칠한 거예요.”


유명한 산업 디자이너이지만 한번도 고급 디자인 오브제를 사본 적이 없다는 카르멜로는 이상적인 집, 아름다운 인테리어 디자인이란 집에 사는 사람의 생각과 삶의 이야기가 한눈에 읽히도록 하는 것이라 말한다. 이를 실천에 옮긴 대표적 공간이 다이닝룸 벽면. 자연과 인간이 공존할 수 있는 시스템을 창출하는 디자이너로서 세계를 돌아다니며 관심을 갖고 발견한 사물들을 바다와 육지, 하늘로 구분한 벽면에 재치 있게 장식했다. 시칠리아 지방 제과점 집안 출신의 ‘요리 잘하는 남자’인 그의 취향은 선반에 정리해놓은 요리책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1 구조 변경 없이 컬러에 변화를 주는 것으로 분위기를 전환하는 인테리어. 그 특징은 각 벽면과 몰딩, 문 등 ‘캔버스’가 되는 평면에 자연스러운 색상 대비를 통해 표현되고 있다. 밝고 상쾌한 느낌이 드는 컬러를 조합해 빛이 들어오면 더욱 경쾌해지는 것이 특징.
2 가족이 모여 책도 읽고 TV도 보는 리빙룸. 테이블은 장롱 프레임을 재활용해 만든 것으로, 부부 침실에 건 거울과 같은 프레임을 사용했다. 창문 아래와 옆에 건 장식 오브제는 옛날 시칠리아에서 마차에 사용하던 장식품으로 지금은 카르멜로의 집에서 그의 유년기를 말해준다.


존재의 이유가 분명한 인테리어
공간의 면마다 색깔을 달리하고, 층마다 붙박이 수납장을 마련해 단순미를 추구한 가운데 스테인리스 스틸의 매끈한 부엌 가구를 들여놓은 주방. 이 사실만을 두고 보면 카르멜로의 집은 자로 잰 듯 반듯하고 기계 미학의 결정체인 듯 도도해 보여야 한다. 하지만 지금 눈앞에 보이는 집은 인간미 넘치고 편안한 모습으로 손님마저 무장 해제시킨다.

“아마도 이건 아빠의 취향이 분명하게 반영되어 있기 때문일 거예요. 그 예 중 하나는 식물이에요. 집에서 뿐만 아니라 사무실에서도 화초를 온실 수준으로 키우는데, 이러한 자연미는 누구나 다 좋아하죠. 또 다른 이유는 그림과 소소한 장식품 그리고 테이블과 의자 모든 것에 가족의 사연과 추억이 깃들여 있다는 점이죠.” 딸 이레네의 흥미로운 설명이 이어진다. 이곳에서 가장 눈에 띄는 데커레이션이자 아이콘은 누가 뭐래도 다이닝룸의 벽면 장식. 긴 막대를 두 줄로 붙인 후 그 사이에 다양한 소품을 붙여 놓은 벽면은 소박하지만 무언가 특별한 사연을 품고 있는 듯했다. “막대로 만든 줄 위는 하늘, 그 아래는 바다예요. 바다 부분에 붙인 조개와 소라는 가족이 해변에 놀러 갔을 때 주운 것이고, 하늘을 나는 새 모양의 목각 인형은 아빠가 해외 출장지에서 사온 거랍니다. 바다와 육지 경계에 붙인 나뭇가지와 잎 역시 숲에서 주운 것이고, 축구 게임 선수 인형은 우리 남매가 갖고 놀던 것이지요.”

행여 쓰레기로 간주될 수 있는 것들에서 남다른 의미를 찾아내는 예리한 감수성과 이를 디자인으로 승 화시키는 기지란! 이런 아빠 덕분에 고등학교 졸업반인 이레네는 또래 아이들이 맹목적으로 유행을 따를 때 자기가 직접 침대 헤드보드를 만드는가 하면 훗날 자신의 아이들에게 어떤 수집품을 물려주면 좋을까 고민한단다. “우리 집에 있는 것은 모두 존재 이유가 분명해요. 거실에 건 추상 정물화는 어느 날 아빠가 화랑에서 구입해 온 건데, 보자마자 마음에 들어 제가 작가를 직접 찾아갔어요.” 이레네가 화가를 만나고 난 후, 거실에 건 그림 옆에 엽서 크기만 한 똑같은 그림 한 점이 더해졌다. 화가가 자신의 작품 세계를 공감한 꼬마 숙녀에게 작은 버전의 같은 그림을 선물로 건넨 것이다.

(왼쪽) 디자인 이노베이션 스튜디오에서 만난 카르멜로. 높은 천장을 가득 메운 책장 앞에 선 그를 보니 별명이 왜 ‘작은 거인’인지 알수 있었다.


1 유리병을 묘사한 정물화. 카르멜로가 구입한 작품인데, 이를 보고 한눈에 반한 딸 이레네는 작가를 직접 찾아갔다고. 작가는 감사의 인사로 원작의 축소판을 이레네에게 선사했는데 이것을 원작과 함께 나란히 걸었다.
2 지붕 아래 있는 이레네의 방. 촬영 전날 침대 헤드보드를 직접 만들어 설치했다고. 각자의 방은 본인들의 개성에 따라 꾸몄다.

3 요리하는 것을 좋아하는 카르멜로의 라이프스타일이 반영된 오픈 키친.
4 컬러 타일은 시각장애인이 길을 거닐 때 방향을 알려주는 입체 표시판으로, 자연 구조체를 모티프로 디자인했다.

5 세계 각지에서 모은 ‘짜임’이 독특한 생활용품. 그는 이런 사소한 사물에서도 법칙을 발견한다. 
6 연구를 위해 모은 각종 식물의 씨앗과 열매.

자연 속에 답이 있고 역사 안에 현재가 있다 한 분야에서 대업을 이룬 사람들의 공통점이라면 바로 일과 생활에서 ‘언행일치’를 이룬다는 점. 이런 속설을 근거로 했을 때 카르멜로의 집과 사무실을 보면 그곳은 일상과 업무가 혼연일체가 된 것이 분명하다. 그도 그럴 것이 카르멜로는 자연물의 구조에서 발견한 원칙을 바탕으로 사물의 콘셉트와 구조를 이끌어내는 ‘비오니카Bionica’라는 디자인 이론을 발전시킨 세계적인 산업 디자이너. 자연물에서 ‘창조의 원동력’을 발견하는 그는 사무실과 집 안에서 다채로운 식물을 키우며 그 구조와 생장 원리를 살피는가 하면, 산책길에서도 낙엽과 열매를 수집하는 데 열정을 쏟는다. 실제 그의 디자인 스튜디오를 방문했을 때 본, 숲을 이룰 정도로 많은 화초와 식물 연구소를 방불케 하는 말린 열매와 씨앗, 나뭇잎 등의 자료는 그가 얼마나 오랜 시간 이 분야에 매진하고 또 이를 발전시켜 나가는지 생생하게 알려주었다. “모든 것은 자연 속에 답이 있어요. 사람도 자연의 일부이기 때문에 그와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구축해야 합니다.우리가 컴퓨터로 도안할 수 없는 것이 이미 자연 생물 속에는 존재하지요. 이런 것을 발견하고 그 원리를 이해하면 사람에게 꼭 필요한 유기적 디자인이 탄생하는 것입니다.” 그가 이를 위해 관심을 두는 것은 식물에 머무르지 않는다. 카르멜로 스튜디오에서 눈길을 끄는 컬렉션은 독특한 ‘짜임새’를 지닌 민속 오브제로, 모두 용도와 형태가 다르지만 유기적인 조직을 통해 뛰어난 기능성을 발현하는 생활용품이다. “우리 집 계단에 걸어놓은 죽부인 봤나요? 한국에 갔을 때 죽부인을 본 순간 그 과학적인 구조와 용도에 감탄을 금치 못했죠. 귀국길에 핸드 캐리로 고이 모셔왔답니다.”

그래서일까, 직장 아닌 집, 그것도 집 안 한가운데 의미심장하게 매달아 놓은 죽부인은 사실상 카르멜로의 집을 대표하는 아이콘이자 가족을 하나로 엮어주는 매개체기도 하다. 촬영 당일 카르멜로는 집에 잠시 들를 여유조차 없을 만큼 바빴지만 그를 대신해 딸과 아들, 부인 등 가족이 말하는 집에 대한 단상은 그의 생각과 일치했고 계단을 오르내릴 때마다 죽부인을 가리키며 이구동성으로 아빠의 죽부인 ‘득템기’를 전설처럼 들려주었으니. 단독주택에서 누릴 수 있는 홀연함, 독립된 사생활을 꿈꾸며 이곳에 입성한 카르멜로 가족은 오히려 더 친밀한 관계, 튼튼한 조직이 되었다. 그래! 누가 뭐래도 세상 가장 자연스러운 유기적 관계는 바로 가족 아닌가.


숲처럼 자연스러운 분위기를 지향하는 디자인 스튜디오 내부.

#고친집 #기타 #기타 #거실 #아이방 #현관/복도 #기타 #디자이너
글 이정민 기자 | 사진 박찬우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2년 7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