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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이너 부부의 소소한 일상이 담긴 집 노멀하우스Normal House
오래된 구옥이 겹겹이 자리한 미아동의 북적이는 골목 한쪽, 주변과 비슷한 모습이지만 어딘가 도드라지는 집이 있다. 회색빛 스투코로 마감한 담장 사이에 난 짙은 철문을 열면, 조그만 마당과 함께 부부만을 위한 안온한 세상이 펼쳐진다. 소소한 일상을 고담하게 담아 지은 집, 노멀하우스다.

집안에서 내다보이는 마당의 모습. 아내 김지혜 씨가 식물에 물을 주고 있다.
내게 맞는 집을 찾는 여정
김흔흔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일러스트레이터 김지혜(@day.of.heunheun) 씨와 제품 디자이너 이창호 씨. 두 사람은 3년 전 결혼한 후로 늘 단독주택에서 지내는 삶을 꿈꾸어왔다. “서울에 살던 아내와 달리 저는 대구에서 올라온 후로 내내 전셋집이나 월셋집에서 살았어요. 항상 다음 집을 걱정하며 지내다 보니 옮겨 다닐 필요가 없는 내 집이 있으면 좋겠다고 늘 생각했죠.” 결혼한 후에도 당장 집을 구입할 형편은 아니었기에 부부는 홍대 근처의 오래된 빌라에서 신혼 생활을 시작했다. 

2년 동안 공동 주거 공간의 층간 소음, 주인이 바뀌면서 전세 기간이 번복되는 일련의 사건을 겪으며 작더라도 오롯이 둘만을 위한 공간을 마련해야겠다는 생각은 더욱 강해졌다. 이후 1년 넘게 매물을 살폈다. 예산에 맞추다 보니 신축에서 구옥으로, 서울 도심에서 가장자리로 점점 멀어졌고, 일면식도 없던 미아동, 지금의 집에 이르렀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부부에게 예산 다음으로 중요하던 역세권이라는 위치, 도로 초입에 있어 안전하다는 사실이 일단 마음에 들었다. 마당의 존재도 한몫했다. “단독주택이니 작더라도 마당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이곳의 아담한 마당이 꽤나 마음에 들었어요. 햇빛이 내리쬐던 첫인상도 좋았고요.”


회색빛 스투코로 마감한 파사드에 일러스트레이터인 아내 김지혜 씨가 작업한 노멀하우스 사이니지가 자리한다. ⓒkiwoonghong 

아틀리에 이치의 입면 드로잉.


두 디자이너 부부의 이인삼각

집을 짓는다는 것은 일생에 다시없을 크나큰 기쁨이지만 동시에 끝없는 고난의 연속이기도 하다. 여러 주체가 서로 원하는 방향이 달라 충돌하기도 하고, 많은 비용이 드는 만큼 팽팽한 긴장이 도처에 산재한다. 오죽하면 “집 짓고 나면 10년 늙는다”는 말이 생겨났을까. 부부는 이 집에서 받은 좋은 인상에 용기를 내어 3일 만에 건물을 매입하기로 결정했다. 마침 재개발 소식이 들려와 공사에 많은 돈을 들이지 않는 편이 낫겠다고 판단했고, 디자이너로 일해온 경험을 살려 직접 리모델링에 도전하기에 이르렀다. 이때만 해도 분위기는 아주 희망적이었다.

“아키데일리나 핀터레스트를 부지런히 찾아보고, 여러 건축·리빙 매거진을 참조하며 열심히 공부했어요. 그렇게 6개월 정도 직영 공사를 진행했는데, 생각보다 너무 어렵더라고요. 첫 단추부터 잘못 끼운 탓인지 진행하면 할수록 상황이 나빠졌어요.” 시공사와의 충돌, 지연되는 공사와 늘어나는 비용으로 하루 하루 지쳐가던 어느 날, 남편 이창호 씨는 우연히 TV 프로그램에서 본 공간 디자이너 아틀리에 이치의 이치 하우스 프로젝트를 떠올렸다. “디자이너 부부가 구옥을 매입해 신혼집으로 고쳐 짓는 과정이 저희와 굉장히 비슷했어요. 완성한 집도 아름다워서 인상적이었는데, 문득 그때 기억이 떠올랐어요. 무작정 전화를 걸어 만나자고 했죠.”


대문을 열면 등장하는 마당. 부부가 마당에 하나씩 들인 식물은 집에서의 생활을 더욱 풍요롭게 하는 요소다.
그날, 두 사람을 만난 디자이너의 마음은 어땠을까. “첫 미팅 때 바로 현장에 갔는데, 철거가 끝나고 구조체도 어느 정도 세운 상태였어요. 구조체는 수직과 수평이 맞지 않았고, 여기저기 주먹구구로 시공한 흔적이 보였습니다.” 여러모로 리스크가 큰 현장이었지만, 건축주의 상황을 듣고 있자니 정진욱 소장은 이치 하우스 때 자신의 모습이 겹쳤다. 힘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솟았고, 어려운 가운데에서도 무언가 만들어낼 수 있겠다는 여지도 보였다. 그렇게 디자이너 부부, 건축주 부부 두 팀의 새로운 이인삼각이 시작됐다.


부부가 가장 오래 시간을 보내는 주방 겸 다이닝 공간. 취미가 요리인 남편은 언젠가 베이킹에 도전할 꿈을 안고 스테인리스 스틸 상판 테이블을 택했다.
부부의 취향이 담긴 소품이 놓인 복도 초입 공간.
주방과 긴 테이블을 품은 거실
디자이너와 건축주가 한마음으로 차곡차곡 단계를 밟아 4개월 후, 방향을 잃어가던 집은 부부의 생활을 고이 담은 노멀하우스(@hojye_normalhouse)로 재탄생했다. 현관에 들어서서 복도를 마주하면, 왼쪽에는 욕실과 드레스룸, 세탁실이 가지런히 모여 있고, 복도를 지나 오른쪽으로는 노멀하우스의 핵심이자 주인공인 주방 겸 다이닝 공간이 등장한다. 노멀하우스에는 소파에 앉아 TV를 보는, 흔히 상상하는 거실 풍경이 없다. 대신 기다란 스테인리스 스틸 테이블이 자리한 다이닝 공간과 세로로 긴 벽면을 가득 채운 주방이 있다. 작은 면적을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디자이너가 선택과 집중을 한 것.

부부는 이곳 테이블에 앉아 밥을 먹고, 일을 하고, 대화를 나눈다. 두 사람에게는 이곳이 곧 거실인 셈. “두 분은 대부분 집에서 요리해 식사를 하고, 특히 남편분은 요리가 취미였어요. 지인을 초대해 시간을 보내는 것을 좋아하고요. 이러한 라이프스타일을 듣고 나니 전형적인 거실보다 주방을 넓게 만들었을 때 이곳에서 할 수 있는 행위가 더 다양해질 것 같았습니다. 기다란 테이블로 하나의 방향성을 만들어 작은 집을 넓어 보이게 하는 효과도 노렸고요.”


욕실은 콤팩트한 정사각형 평면에 세면대와 욕조, 도기를 ㄴ자형으로 배치했다.
다이닝 공간과 안방 사이에 조그맣게 마련한 서재.
나머지 공간은 제 기능을 잘할 수 있도록 크기를 조절하고 깔끔하게 선을 마무리하는 정도로 정리했다. 이유림 소장이 집중한 또 하나의 공간은 마당이다. “공사를 하면서 마당이 처음보다 줄어든 상태였어요. 작더라도 마당이 해낼 수 있는 역할이 크고, 햇빛도 정면으로 드는 곳이라 재차 철거를 해서라도 원래대로 복구하자고 제안했지요.” 그렇게 탄생한 마당은 건축주 부부가 이 집에서 가장 애정을 느끼는 공간이 되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일단 마당으로 나갑니다. 잠깐 앉아 있기도 하고 괜히 화분도 보고, 애벌레도 잡아요. 해가 잘 드는 오전에 잠옷 차림으로 앉아 햇빛을 맞으며 이야기 나누는 시간은 집에서 손꼽는 즐거운 순간입니다.”

마감재는 따뜻하고 정갈한 분위기로 맞췄다. 미세하게 광이 나는 벽지 대신 표면에 편안하게 녹아드는 도장을 택해 따뜻한 하얀색 바탕을 만들고, 어울리는 우드 톤을 선정해 공간의 요소마다 적절히 더했다. 규모가 작은 집이다 보니 가구는 최대한 빌트인으로 제작하고, 걸레받이나 몰딩도 드러나지 않도록 정리했다.


다이닝 공간의 긴 테이블은 아내의 작업실이자 부부의 식사 자리, 그리고 손님을 초대해 함께 즐기는 장소다.
아틀리에 이치의 평면 드로잉.
주방 겸 다이닝 공간 건너편에는 세탁실과 드레스룸, 욕실을 기능에 맞춰 짜임새 있게 배치했다.
작지만 풍요로운 노멀 라이프
두 사람이 이 집에 오고 나서 얻은 가장 큰 마음은 풍요로움이다. “나가야 할 날이 정해져 있는 전셋집에서는 온전히 그 집을 누리지 못했어요. 그러나 이곳에서는 불안함 없이 집도, 저희도 천천히 적응해나갈 수 있습니다. 또 저는 평범한 집에서만 살았기 때문에 직접 집을 지어 사는 것을 생각해본 적이 없었어요. 남편이 적극적으로 주도하면서 실제로 집을 짓게 되었는데, 이런 과정을 거치다 보니 집, 나아가 이곳에서 제 삶의 모습까지도 상상해보게 되더라고요. 더 주체적이 된다고 할까요. 앞으로 또 다른 새로운 꿈을 꿀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고요.”

수많은 난관을 극복한 끝에 두 사람에게 꼭 맞는 방식으로 완성한 집은 부부가 온전히 이완하고 휴식하는 안식처가 된다. 마당에 앉아 시간을 들여 내린 콜드브루 커피를 마시고, 아침저녁으로 함께 동네를 산책하는 삶. 부부의 생활이 묻어나며 집은 더욱 두 사람에게 알맞은 모습으로 무르익어갈 것이다.



정진욱, 이유림은 건국대학교 실내디자인학과를 졸업하고 2022년 함께 아틀리에 이치를 설립했다. 아틀리에 이치는 서로 다른 두 사람의 장점이 합치됨을 의미하는 ‘이치二致’의 뜻을 담아 이치에 맞는 것을 탐구한다는 이념을 따른다. ‘이치 하우스’를 시작으로 공간이 사람에게 미치는 선한 영향력에 대해 고민하며, 공간 설계와 시공뿐 아니라 이야기를 만들 수 있는 공간 기획, 브랜딩까지 다양한 작업을 통해 공간마다 고유한 아이덴티티를 구축해나가고 있다.

설계 및 시공 정진욱, 이유림(아틀리에 이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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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정경화 기자 | 사진 박찬우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23년 8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