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연 씨 가족이 수년전 찍은 단체사진. 왼쪽부터 차례로 둘째 언니, 큰형부, 큰언니, 남동생, 어머니와 송정훈·이정연 씨다.가족은 떨어져 살수록 친해진다는 우스갯소리처럼 가까운 사이일수록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는 건 중요하다. 그러나 이정연 · 송정훈 부부는 이 통념과 완전히 다른 삶을 살고 있다. 이정연 씨의 친정 가족과 오랜 시간 함께 지내며 ‘간헐적 동거’를 일상화해온 것. 그 결실이라 할까? 작년 10월, 이들은 더 완벽한 동거를 위한 유니언 하우스(목적이 같은 가진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공유형 주택, 함께 거주하면서 일부 공간을 공유하는 주거 형태) ‘오사랑’을 완성했다.
가족·친지와 주로 모이는 2층 주방.본격적인 집 소개에 앞서 이정연 씨 가족을 먼저 소개한다. 정연 씨는 언니 두 명과 남동생 한 명이 있는 4남매 중 셋째다. 4남매는 각자 가정을 꾸린 이후에도 서로의 집을 드나드는 데 거리낌이 없었다. 그 중심지가 이정연·송정훈 부부의 집이 된 건 친정에서 키우던 강아지 조로(지금은 무지개다리를 건넜다)를 정연 씨가 데려온 후부터다. 강아지 때문에 장시간의 외출과 외박이 어려워진 이 부부와 함께할 겸 보고 싶은 강아지 얼굴도 볼 겸 온 가족이 이 부부의 집에 모이기 시작한 것. 신혼 시절 단칸방에 살 때도 예외는 아니었다. 남편 송정훈 씨에게는 이러한 모습이 처음에 낯설었다고 한다. “더 넓은 집이 5분 거리에 있는데, 자고 간다는 게 당황스럽기는 했어요. 그런데 이제는 제가 먼저 기대해요. 가족 모임보다는 대학 동아리 같은 분위기가 있어 저도 더 빠르게 스며든 것 같아요.” 4남매는 방문 방식도 모두 달랐다. 제주도에 사는 큰언니는 초등학생인 아이 방학 때마다 서울에 올라와 몇 달씩 머물고, 근처에 사는 남동생은 주말이나 퇴근 후 저녁을 함께하고는 했다. 개인 시간을 중요하게 여겨 자주 오지 않는다던 둘째 언니도 두세 달에 한 번씩은 집에 들른다고 하니 어떤 집으로 이사를 가든 가족, 친지가 더 편하게 지낼 수 있는 공간을 고민하는 건 이들에게 당연한 일이었다.
가장 내밀한 공간인 안방은 히든도어로 문을 숨겼다. 덕분에 손님들은 이곳에 방이 있는지 모를 때도 많다고.집과 사랑을 결합한 오사랑
처음 단독주택을 매입한 건 이정연 씨의 로망 때문이었다. “주택에서의 삶을 제대로 즐길 수 있을 때 이사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다 뒤로는 산이 있고 옆에는 산책로가 있는 이 집에 반했죠. 추억을 떠오르게 하는 옛 양옥의 넓고 듬직한 모습이 마음에 들어 내부는 보지도 않고 계약을 했어요. 어차피 전부 고칠 생각이었으니까요.” 하지만 모든 일은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 법. 건축가와 함께 확인한 내부는 이들의 생각과 전혀 달랐다. 전 주인의 생활 스타일에 맞게 창을 전부 막고 앞뒤로 증축한 모습이 너무 좁고 답답하게 느껴졌기 때문.
이곳을 완전히 탈바꿈해준 주인공이 바로 건축사사무소 오구사의 정승환 대표다. “처음 내부를 보고 두 분이 원하는 모습을 구현하려면 신축이 낫겠다고 생각했죠. 아예 이런 곳에서는 못 살 것 같다고 말씀했거든요. 그런데 대장을 보니 신축도 어려운 대지였어요. 어쩔 수 없이 신축 수준의 레노베이션을 결정했습니다. 다행히 모두 철거하고 나니 두 분이 외관에서 기대한 모습이 나왔어요. 꽤 넓기도 하고 1970년대 주택에서 흔히 보던 복도식 구조나 독특한 창도 잘 간직되어 있었거든요.”
다락 바닥에 문을 달아 주방과 연결했다. 갓 만든 요리를 빠르고 편하게 옮기기 위한 묘안.
1층은 게스트하우스 같은 구조인데, 기존 집에 남아 있던 단차를 그대로 활용했다.이제 문제는 부부의 요구 사항을 공간으로 구현해내는 것. 사실 요구 사항은 단 두 가지였다. 가족이 모일 장소가 집 안 곳곳에 있으면 좋겠다는 것, 그리고 가족이 자고 갈 때 서로 간섭하지 않도록 생활이 분리되길 바란다는 것. 오랜 시간 집에서 모임을 이어온 가족인 만큼 그간의 애로 사항을 집약한 내용이었다. 1, 2층이 연결되지 않은 걸 십분 활용해 복도를 중심으로 각 실을 명확히 나눈 1층은 게스트용 공간, 2층은 부부 공간이 되었다. 이때 각 층이 별도 생활공간으로 기능하도록 층마다 거실과 주방, 심지어 야외 공간까지 두었고, 각 침실에는 전용 욕실을 만들었다. (생략)
거실에서 주방, 다락까지 점층적으로 우드를 사용한 비중이 높아진다. 덕분에 하나로 연결된 영역임에도 각각의 고유한 매력이 돋보여 장소를 이동할 때마다 새로운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사진은 주방에서 다락으로 물건을 주고 받는 이정연 · 송정훈 부부.
1층 뒷마당의 핵심은 일명 ‘아지트’라 부르는 반 야외 공간이 있다는 점이다. 주택에서 10년 넘게 살고 있는 정승환 대표가 먼저 제안한 공간으로, 야외임에도 날씨의 영향이 적어 바비큐 파티, 캠핑 등 다양하게 활용 중이다.
프로젝트 인사이드
당신에게 오사랑은 가족 프로젝트인가?
이정연 가족 프로젝트보다 나의 꿈이 실현된 모습에 가깝다. 집을 지을 때 가족의 의견을 따로 묻지 않은 것도 비슷한 이유 때문이다. 이미 약 15년간 무엇을 불편해하는지 경험했기 때문에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것도 있지만, 내가 원해서 이런 구조의 집을 지었을 뿐이다.
각자의 가족을 꾸린 구성원이 모이는 건 서로에게 부담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가족과 느슨한 동거를 지속하는 이유는?
송정훈 좋아하는 사람들과 좋은 것을 나눌 때 큰 기쁨을 느낀다. 처형이나 처남이 알아서 청소를 하고 간다거나, 몇 달씩 머물 때는 몰래 돈봉투를 두고 가기도 한다. 그렇게 서로 애쓰는 덕에 부담을 느껴본 적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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