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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한옥 클래식을 품은 가회동 한옥
거대한 샹들리에, 르네상스 시대 연회장을 연상시키는 기다란 테이블, 섬세한 몰딩을 더한 의자와 촛대까지. 가회동 한옥 ‘옴브르’는 서양 클래식이라는 의외의 모습을 입고 한옥에서의 색다른 쉼을 제안한다.

가회동 한옥 별장 옴브르는 동서양의 클래식을 품은 한옥으로 스타일링했다. 거울 너머로 보이는 공간은 클래식한 패턴의 벽지와 소품으로 연출한 서양식 침실.
클래식 패턴의 벽지와 한식 창호가 조화를 이루는 침실.
공간의 영향력이 그 어느 때보다 커진 시대다. 힙한 카페와 팝업 스토어에서 인증샷을 남기고 특별한 경험을 주는 스테이를 어렵게 예약하는가 하면, 전시보다 공간이 궁금해 새로 개관한 미술관을 방문하기도 한다. 공간이 경험의 목적이자 콘텐츠 자체가 된 것이다. 엠제트큐컴퍼니는 이러한 공간 경험을 좀 더 밀도 있게 제공하기 위해 회원제 독채 별장 서비스 ‘모자이크’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숙박비를 지불하고 머무는 방식이 아니라, 회원권을 구입한 이들이 공동 소유주가 되어 필요할 때마다 프라이빗하게 이용하는 서비스다.

정원철 대표는 팬데믹 당시 미국에서 휴양지 주택 광풍을 일으킨 공유 별장 플랫폼에서 프로젝트의 모티프를 얻었다. “국내에는 휴양할 만한 장소가 대개 호텔이나 리조트예요. 두 모델 모두 대규모로 개발하기에 어딜 가나 비슷한 모습이죠. 모듈을 찍어내듯 만든 공간에서는 제대로 된 휴식을 경험하기 어렵다고 생각했고, 다양한 콘셉트의 별장을 통해 온전한 쉼의 시간을 제공하는 프라이빗 별장 멤버십 서비스를 떠올렸습니다.”


옴브르와 아치문을 사이에 두고 또 다른 한옥 별장 1호점 뤼미에르가 맞닿아 있다. 사진은 뤼미에르 입구. 빛을 콘셉트로 컬러풀하게 만든 패턴 월이 가장 먼저 눈에 띈다.
한식 침실은 벽면과 천장, 창호까지 한지로 마감했다.
미국과 달리 한국은 휴양지 부동산이 환금성 자산으로 인식되지 않았기에 공동소유 방식이 큰 메리트가 없었고, 대신 이미 국내에 성공적으로 자리 잡은 회원권 시스템을 접목했다. 회원권을 구입하면 회원이 되고, 매달 숙박비 대신 관리비를 지불하면서 정해진 횟수 안에서 원하는 별장을 자유롭게 이용하는 방식이다. 현재 네 곳의 신축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고 다섯 채를 운영 중인데, 그중 하나가 3월에 오픈한 가회동 한옥 옴브르다. “한옥은 서울 도심에서 합법적으로 운영할 수 있으면서 한적한 분위기의 독채를 떠올렸을 때 가장 적합한 모델이었어요. 안쪽 마당을 향해 수렴하는 배치라 대문을 닫으면 소란스러운 일상에서 곧장 멀어지고요.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비일상으로 순식간에 전환되는 느낌과 프라이빗함이 좋았습니다.”


침실에서 내다보이는 마당. 툇마루에 앉은 엠제트큐컴퍼니 정원철 대표.
지하에는 좌식 소파 존과 위스키 바를 갖춘 플레이룸이 아지트처럼 숨어 있다.
인테리어는 건축부터 브랜딩, 스타일링까지 아우르며 작업하는 공간 디자인 사무소 스튜디오베이스가 맡았다. 이곳만이 아니라 모자이크 프로젝트의 모든 공간을 함께 기획·디자인하며 파트너처럼 일하는 사이다. 옴브르는 임대 공간이라 구조나 배치를 크게 바꿀 수 없었기에 마감재와 색상, 가구나 조명 등을 위주로 콘셉트를 구현했고, 스튜디오베이스에서 스타일링 작업을 담당하는 김승희 실장이 프로젝트를 맡았다. 공간에 크게 손대지 않으면서 분위기를 바꾸는 홈 드레싱 방식을 한옥에 적용한 셈. 임대 한옥에서 거주하는 이들에게도 인사이트가 될만한 대목이다.

“한옥 스테이가 늘어나면서 어느샌가 일종의 공식이 생겨버렸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우드&화이트 톤의 인테리어, 요가·다도·명상 등의 프로그램 같은 것요. 비슷한 톤앤매너에서 벗어나 새로운 경험을 주고 싶었습니다. 더군다나 모자이크 별장은 투숙객이 바뀌지 않기 때문에 비주얼과 프로그램 모두 한옥에서 일반적으로 떠올리는 정서와는 다른 모습이길 바랐죠. 한옥 특유의 아늑한 고립감에 낯선 즐거움을 더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믹스 매치라는 콘셉트로 이어졌어요.”


옴브르는 대지 면적 113.74㎡, 연면적 185.65 규모의 ㄷ자형 한옥이다. 가운데 마당은 원래 이곳에 있던 해태상, 문인석과 석수조를 자갈 위에 적절히 배치해 바라보며 사색할 수 있게 했다.
서양의 클래식 요소가 가장 잘 드러나는 옴브르의 거실 겸 다이닝 공간. 촛대와 테이블, 의자, 왼쪽의 액자 오브제까지 스튜디오베이스가 디자인했다.
김승희 실장이 소개한 대로 옴브르는 서양의 클래식, 지하 플레이룸 등 한옥 하면 흔히 떠오르는 개념과는 사뭇 다른 장면이 곳곳에 있다. ㄷ자형 한옥의 중심에 길게 펼쳐진 거실 겸 다이닝 공간은 4m에 달하는 기다란 테이블을 배치해 서양의 만찬 장소를 떠오르게 한다. 굴곡진 몰딩을 형상화한 테이블 기둥과 조명, 앤티크한 패턴 패브릭으로 커버링한 의자, 곡선이 물결치는 촛대까지 하나하나 믹스 매치를 콘셉트로 직접 디자인했다. 테이블 뒤 벽면을 가로지르는 액자도 스튜디오베이스의 작품. 벽면에 나 있던 창을 길게 연장하는 형태로 가로로 긴 공간의 중심을 잡아주고, 라슨쥴Lason-Juhl 몰딩으로 액자 프레임처럼 디자인해 클래식한 분위기를 냈다.

가운데 면은 스테인리스 스틸을 폴리싱으로 마감해 거울처럼 느껴지면서도 가장자리는 샌딩해 블러처럼 은은하다. 양 날개에 자리한 침실 두 곳은 각각 클래식한 패턴의 벽지로 마감한 서양식 방과 한지로 마감한 한식 방 두 가지 무드로 디자인했다. “모자이크 프로젝트는 침실을 두 개 이상 두고, 서로 다른 느낌으로 디자인해요. 사용자가 바뀌지 않기도 하고, 두 팀이 나눠 쓰는 경우, 어느 하나를 서브 룸처럼 느끼지 않도록 배려하기 위함입니다.”


지하 주차장과 플레이룸으로 내려가는 복도 공간.
1호점 뤼미에르의 침실 겸 거실. 그린 컬러의 병풍과 카펫 바닥으로 하나의 공간처럼 읽히도록 스타일링했다.
옴브르에 숨어 있는 비밀은 아치형 문을 통해 연결되는 또 다른 한옥의 존재다. 바로 작년부터 운영 중인 모자이크 가회 1호점 뤼미에르. 애초에 이 장소를 선정한 이유가 두 한옥을 연결할 수 있는 부지였기 때문. 옴브르와 마찬가지로 거실과 침실 두 개 및 별동으로 구성하고, 지하에는 홀덤바holdem bar를 두어 한층 어른의 아지트 같은 느낌이다. 김승희 실장은 두 한옥을 함께 이용할 때 또 다른 시너지가 나도록 디자인했다. “회원분들이 주어진 조건을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으면 했어요. 여러 명이 모이는 경우, 옴브르의 다이닝에서 만찬을 즐기거나 세미나를 할 수도 있죠. 이렇게 두 집에 다른 기능을 부여해 오가며 즐길 수 있습니다. 디자인 콘셉트도 상반되는 재미를 줬어요. 옴브르는 프랑스어로 ‘그늘, 그림자’라는 단어의 뜻에 맞게 블랙앤화이트로 통일했다면, 1호점은 빛을 의미하는 뤼미에르로 이름 짓고 컬러풀하게 꾸몄어요.”

정원철 대표는 가회동 한옥과 다른 별장의 가장 큰 차이점으로 ‘서울에 있는 제2의 집’이라는 점을 꼽는다. “이곳은 집과 마찬가지로 프라이빗한 공간이지만 좀 더 쉽게 오픈할 수 있어요.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거나 한적하게 쉬고 싶은데 멀리 나가기 어려울 때 편하게 와서 머물기도 하고, 누군가와 함께 즐기기도 하면서 열린 형태의 집으로 쓰이기를 바라요. 뤼미에르를 오픈하고 보니 숙박만 하는 것이 아니라 친구와 파티를 열거나 비즈니스 미팅을 하는 등 다양한 양상으로 쓰이더라고요. 옴브르가 더해지면서 또 어떤 모습으로 이용될지 기대하고 있습니다.”



디자이너 김승희 건국대학교와 동 대학원에서 실내디자인을 전공하고 1997년 인테리어디자인을 시작해 매거진, 광고 스타일링까지 업역을 꾸준히 확장해왔다. 건국대학교를 비롯해 여러 대학에서 강의했고, 지금은 스튜디오베이스에서 공간 스타일링과 디자인을 하고 있다. 모자이크 프라이빗 빌라, 롤리폴리 꼬또 스타일링, 밀라노 트리엔날레 한국관 전시 스타일링 등을 작업했다. studiovas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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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정경화 기자 | 사진 박찬우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24년 4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