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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크리에이티브 컨설턴트 스티븐 러너의 몬트리올 아파트 비율과 균형 그리고 취향의 가치
뉴욕 최초의 수집 가능 디자인 박람회 컬렉티브 디자인 페어Collective Design Fair를 설립하고, 아모리 쇼와 프리즈 뉴욕 등과 활발히 협업해온 스티븐 러너는 팬데믹을 지나며 활동 거점을 뉴욕에서 몬트리올로 옮겼다. 필립 스탁이 디자인한 아파트에서 아내 소피 카트린 라플람Sophie Catherine Laflamme과 간소한 결혼식을 올리고, 두 사람의 디자인 비전을 공유하고 취향을 합쳐 공간을 꾸몄다. 이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비율과 균형의 엄격한 조화 속에서 이야기와 추억이 깃든 디자인 및 예술 작품으로 고요하고 친밀한 분위기가 어우러진다.

아내 소피, 반려견 우마미와 함께한 가족사진. 2년 전 필립 스탁이 디자인한 새 아파트로 이사 오면서 결혼식을 올리고 새로운 삶을 시작한 만큼 큰 의미가 담긴 사진이다. Portrait by Vadim Daniel.
온통 흰 벽과 바닥, 유리창으로 이루어져 다소 차가워 보일 수 있는 아파트 거실에 나무와 가죽, 아크릴 등 다양한 소재로 만든 가구와 소품을 모아놓아 한결 편안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데이베드는 바삼 펠로스Bassam Fellows, 아크릴 테이블은 윌 추이Will Choui, 커피 테이블은 시몬 존스Simon Johns, 빈티지 엑스포 67 체어는 크리스텐 소렌센Christen Sorensen 제품이다.
파슨스와 하버드 디자인 대학원을 거쳐 건축가로 활동하던 스티븐 러너는 2013년 가장 희귀하고 탐나는 20세기 및 21세기 가구와 디자인 작품을 선보이는 컬렉티브 디자인 페어를 설립했다. 다양한 인사와 기업의 공간을 컨설팅 해오며 컬렉티브 디자인(수집 가능한 디자인이라는 뜻으로, 희귀하고 작품성이 높아 마치 예술 작품처럼 거래되는 디자인 가구와 오브제)에 대한 비전과 열정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몇 년 전 런던 디자인 페스티벌 기간 중 그를 만났고 이후 밀라노와 뉴욕의 디자인 행사와 아트 페어에서 그의 활약상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 모두에게 그랬듯 팬데믹은 그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2020년 봉쇄 기간 중 프리즈 뉴욕와 함께 연 온라인 쇼케이스를 마지막으로 그는 잠정적으로 컬렉티브 디자인 페어를 중단하고, 자신의 이름을 딴 디자인 컨설팅 에이전시를 시작했다. 그와 동시 에 활동 거점을 뉴욕에서 캐나다 몬트리올로 옮겼다. 캐나다 퀘벡 출신 아내의 영향이 컸다.


침대 옆 협탁으로 사용하고 있는 도널드 저드Donald Judd의 스틸 작품과 제임스 케이스비어James Casebere의 서정적 사진 작품이 어우러진 침실. 세라믹 박스는 귀도 감보네Guido Gambone의 작품이다.
“2년 전 아내 소피와 결혼식을 올리고 함께 살기 위해 몬트리올로 이사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우리는 시내와 세인트로렌스강 사이에 위치한 그리핀타운Griffintown에서 이 놀라운 아파트를 찾았어요. 주상 복합 아파트로 필립 스탁이 바닥부터 천장, 유리벽과 테라스 등 건물을 디자인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빛으로 가득 찬 공간이 무척 마음에 들었어요.”


수집 가능한 디자인 작품을 다뤄온 전문가답게 빈티지 가구를 적절히 배치했다. 콘솔은 BDDW 제품, 스누피 조명은 아킬레와 피에르 카스틸리오니가 디자인한 제품, 의자는 샤를로트 페리앙의 레 아르크Les Arcs 빈티지 작품이다.
파노라마로 펼쳐지는 테라스 풍경. 아파트가 위치한 그리핀타운은 몬트리올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지역 중 하나로, 뉴욕 출신인 스티븐 러너에게 마치 미트패킹 디스트릭트와 비슷한 기시감을 준다고 한다.
성숙한 취향의 결합과 공존
뉴욕과 토론토에서 살던 두 사람이 새로운 거처로 옮겨오며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점은 서로의 디자인 비전을 공유하고, 조화를 이루도록 하는 것이었다. 아내 소피는 패션계에서 일하며 인테리어디자인 교육도 받은 덕에 그만큼 취향이 확고하고 깊었기 때문. 그는 뉴욕에서 가장 아끼던 리처드 세라, 존 발데사리, 도널드 저드 등의 미술 작품과 1967년 몬트리올 엑스포 의자 등 디자인 가구를 선별해 옮겨왔다. 조너선 네시, 제인 더헤인, 제프 짐머만 등 디자인계 친구들이 선물해준 것도 빼놓지 않았다. 온통 흰 벽과 바닥, 유리창으로 인해 다소 차갑고 엄격해 보일 수 있다는점 때문에 이런 이야기가 담긴 가구와 소품은 공간을 안락하고 친밀하게 엮어주는 역할을 했다.

건축 디자이너로서 스티븐 러너가 공간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은 비율과 균형이라고 굳게 믿는다. 사실 이것은 공간뿐 아니라 소품과 패션에도 적용되는 가치다. 클라이언트에게 디자인을 제시할 때도 비율과 균형은 큰 틀을 잡아주며, 이 안에서 개인의 취향이 반영된다. 뉴요커 출신답게 직관적이고 스트레이트한 커뮤니케이션을 선호 하지만, 다만 예술과 디자인에 관해서는 자신에게 그리고 클라이언트에게 충동적 판단이나 구입을 유보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조금 더 연구하고 골몰해볼 것을 추천한다고. 이에 대한 결과로 그 또한 자신이 미니멀리즘 조각품에 끌리고 좋아한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이는 그의 컬렉션에 반영되었다.


욕실은 그가 가장 좋아하는 휴식 공간이다. 유기적 선과 신비로운 그러데이션이 빛을 발하는 조명으로 포인트를 주었다. 페블 시리즈 펜던트 조명은 밴쿠버 베이스의 조명 회사 ANDlight 제품이며, 욕조 옆 스툴은 조지 나카시마의 빈티지 제품이다.
서로 다른 취향을 지닌 부부의 조화로운 결합을 가장 잘 보여주는 거실과 주방 풍경. 스티븐이 모은 작품들이 단정하고 모던한 공간에서 예술적 감성을 높여주고 있다. 세르주 무이 샹들리에 조명과 USM 할러 시스템, 리네로제 테이블 램프 그리고 장 프루베 디자인의 다이닝 테이블과 의자, 왼쪽 벽면의 작품은 존 발데사리John Baldessari의 석판화와 영국 작가 피터 리버시지Peter Liversidge의 조각 작품.
2020년 7월 아파트 정원에서 올린 결혼식은 소수의 가족만 참석하고, 줌을 통해 지인들과 현장을 공유했다고 한다. 이 결혼식이 이곳 아파트에서의 가장 행복한 순간으로 남았다. 강아지 우마미와 함께 이 집에서 촬영한 가족사진이 행복으로 가득한 새 출발을 보여준다. “저는 완전히 개방된 안방 욕실에서 축구 경기를 보는 것을 좋아해요. 아내는 지인을 초대해 요리를 대접하는 것을 즐기는데, 주방에서 요리를 하면서 때론 춤을 추기도 합니다. 그 모습을 보는 것이 즐거워요. 커다란 창문과 테라스에 비치는 빛의 파노라마와 도시 풍경에 함께 젖어들기도 하죠.”

물리적 환경의 변화는 그에게 더 넓고 깊은 활동에 대한 영감과 동기를 주었다. 자신의 이름을 딴 크리에이티브 컨설팅 회사를 설립해 디자인 커뮤니티의 연결과 확장을 도모하는 그는 북미 지역의 디자인 전문가로서 유럽의 디자인 거점인 밀라노에 오피스를 열고, 두 대륙을 연결하는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할 예정이다. “저는 디자인 스튜디오와 기업의 궤적 및 커뮤니케이션을 돕고 건축가, 인테리어 디자이너, 수집가, 기업 및 언론을 디자인이라는 놀라운 커뮤니티에 연합할 수 있도록 연결하는 일에 큰 보람을 느낍니다.” 그는 북미와 유럽뿐 아니라 최근 몇 년간의 한국 디자인과 아트 신의 활약상에 큰 인상을 받았다고 한다. 어쩌면 조만간 한국에서 그의 활약을 목도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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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강보라 | 사진 Alex Lesage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23년 3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