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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느질 작가 정경희 씨 모든 엄마는 스토리 텔러다
여자가 살림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는 평균 나이는 5~6세 정도 아닐까요. 모래알로 밥을 짓고 나뭇잎을 찧어 반찬을 만드는 소꿉장난을 즐기는 이때 꼬마 숙녀들은 ‘엄마’ 역할에 욕심을 내곤 하지요. 하지만 어른이 되면서 ‘엄마’가 되고 싶은 아이의 순수한 동심은 추억으로 희미해지고, 경제 논리 속에서 ‘살림’은 자아 실현의 반대말로 치부됩니다. 이런 요즘, “세상에 엄마보다 좋은 직업은 없다”고 말하는 이가 있습니다. 수놓고 바느질하고 꽃을 가꾸고 반질반질 살림하는 것을 즐기는 엄마 정경희 씨. 그를 만나니 현모양처는 아니더라도 ‘행복한 엄마’가 되어야 할 이유는 충분합니다.


바느질 작가 정경희 씨의 하루는 조각보 같다. 그리고 하나로는 별 의미 없는 천 조각들을 모으고 이어 붙여 완성해가는 퀼트 작업처럼 다양한 인생 역정이 어우러져 향기가 그윽한 인생을 만들어가는 모습이 아름답다.

바느질은 물론 정성껏 가꾼 마당, 온갖 빛깔의 그릇 등 여자의 로망을 완벽하게 갖추면서 집을 아궁이처럼 따뜻하게 만드는 작고 고운 엄마 정경희 씨.

꽃에 이름 짓는 엄마 먼저 정경희 씨의 하루가 궁금합니다. 새벽 5시에 일어나 두 시간 정도 천만 만지작거린다고 하니 그는 천생 바느질 작가입니다. 7시가 되면 마당에 나가서 또 2시간 정도 시간을 보낸답니다. 물론 짬짬이 밥도 짓고 반찬도 만듭니다. 아침거리는 주로 마당에서 ‘채집’하는데 간단하게 채소를 굽거나 데치는 등 소금 간 없는 건강식을 차리려고 노력합니다.

그와 가족은 10년 전 마당 있는 이 집으로 이사를 했습니다. 파주의 SBS 전원마을은 SBS 방송국 직원들을 주축으로 구성한 동호인 주택으로 1백여 가구가 모여 사는 북유럽풍 전원 단지입니다. 정경희 씨는 아직도 기억이 생생합니다. 남편 동료의 가족들과 모여 함께 부지를 선정하고, 시공사와 설계를 결정짓고 살 집을 추첨하기까지 설레던 그 과정을요. 그의 가족은 추첨을 통해 열여덟 번째로 원하는 집을 고를 수 있었는데, 고불고불 막다른 언덕까지 올라가는 이 집은 정작 인기가 없었다고 합니다. 축대 바로 윗집이라 대부분이 꺼렸지만 그는 오히려 시선이 탁 트여 좋아했고, 끝 집이라는 부담감은 오히려 전나무 숲길이라는 매력과 조용하다는 장점으로 다가왔습니다. 집의 구조도 조금 특이합니다. 굽이굽이 언덕을 올라 집에 다다르면 오솔길 같은 진입로를 지나 장미 덩굴의 현관이 나오는데, 바로 집의 2층입니다. 2층에서 1층으로 내려가 거실과 주방을 지나야 비로소 작은 마당이 나오는 ‘거꾸로’ 구조인 거죠. 이왕지사 마당있는 집을 택했는데, 마당을 지나 현관으로 들어서야 제맛 아니냐고요? 아니랍니다. 거꾸로 구조다 보니 오히려 작고 내밀한 정원이 드라마틱한 풍경으로 다가온다고요. 10년이 지난 지금, 탁 트인 전망에 옆으로는 전나무 숲길이 펼쳐지고 정갈하고 소담한 마당을 품고 있는 그의 집을 부러워하며 바꾸자는 이웃도 많다니 그 인기를 실감할 수 있습니다.

“무엇이든 마음만 먹으면 즉석에서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요즘이지만, 마당 일은 시간 날 때를 기다렸다가 급하게 처리할 수 있는 게 아니죠. 내년의 좋은 수확을 위해 올가을에 구덩이를 파고, 과일이나 채소 껍질들을 묻어 좋은 토양을 만드는 등 지금 당장 결과가 보이지 않지만 그래도 가치가 있다는 믿음으로 하는 거예요. 하루에 조금씩 10분, 30분, 한 시간씩 정성을 들이다 보면 꽃도 나무도 친구가 돼요.” 꽃밭 한 귀퉁이에는 남편이 일군 상추밭이 있습니다. 상추는 이른 봄 추위가 가시기 전에 심어서 장마가 오기 전까지 가족 입맛을 책임지는 밥도둑입니다. 상추에 정성껏 만든 견과류두부쌈장을 곁들이면 생각만 해도 침이 고인답니다. 그래서 그는 예고 없이 손님이 찾아와도 느긋합니다. 고소한 상추쌈, 조물조물 무친 나물 반찬 하나면 누구든 만찬을 즐길 수 있으니까요. 요즘은 마당 한쪽에 심어놓은 캐머마일 수확철인데, 잎이 좋을 때 미리 따서 채반에 말려 차로 끓여 마시면 좋다고 합니다.

파주는 서울보다 봄이 늦고, 가을은 더 빨리 찾아옵니다. 여름의 시작을 알리는 장미 덩굴이 언제였나 싶게 엉겅퀴가 고개를 내밀고, 한차례 큰 비가 오면 꽃은 지고 초록이 무성해지지요. 무심코 지나치던 마당에서 어느 날 새로 핀 엉겅퀴꽃을 보았을 때, 어제까지 노랗게 핀 분꽃이 오늘은 까만 씨앗을 맺었을 때, 바스락거리는 소리에 고개를 들어보니 낙엽이 융단처럼 펼쳐졌을 때… 반가워 눈길이 멈춘 그곳은 그대로 심상이 되어 바느질로 옮겨집니다. 아, 꽃이 흙 위에서만 피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겠습니다. 그의 집은 창문에서도 꽃이 핍니다. 볕바른 거실 창가에 리넨에 꽃수를 놓은 리넨 커튼을 달았더니 라벤더 향기가 폴폴 나는 듯 거실이 꽃밭이 되었습니다.


1 바느질은 인고의 과정을 거쳐야만 빛이 난다. 어마어마한 양의 자수가 들어간 북 커버는 책 읽기 좋아하는 딸을 위해 만든 것.
2 22년 바느질 역사의 관록이 느껴지는 바느질 함.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갤러리를 방불케 한다. 퀼트 이불, 가방, 머플러 등 손으로 만든 작품은 가족을 웃게 하고, 공간에 꽃이 피게 한다.

무릇 집이란 꽃이 피고 밥 냄새 아련한 곳. 그의 부엌은 바느질 온기와 사람의 향기가 그득하다.

바늘로 시 쓰는 엄마 바늘 들고 산 지 22년. 이제 바느질 선생이라는 타이틀도 얻었습니다. 그는 바느질할 때 시작부터 목표를 세우거나 규칙을 정하지 않는다고 합니다.마당에 피고 지는 꽃처럼 살아가는 일속에서 만난 모든 것이 바느질의 본이라며 마치 기억하고 싶은 순간을 사진 찍듯 바늘땀으로 꾹꾹 눌러 담습니다. 그중 아이들이 어릴 때 쓴 손 편지나 그림이 가장 값진 본입니다. 영화 <아메리칸 퀼트>를 보면 저마다의 인생을 살아온 이들이 모여 앉아 조각 천들을 이어가며 자신들의 일상을 이야기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하나씩으로는 별 의미가 없는 천 조각들을 모으고 이어 붙여 하나의 아름다운 조각 이불을 완성해가는 퀼트처럼 그에게도 바느질은 삶 자체지요. 또 시간이 지나면 다시 오지 않을 가족의 순간을 담는 타임캡슐이기도 합니다. 일곱 살 아들이 그린 그림을 조각조각 모아 만든 홑이불, 아이가 삐뚤빼뚤 그린 그림을 그대로 자수의 밑그림으로 사용한 액자, 아이들이 입시 지옥에 갇혔을 때 힘든 시간을 함께 나누고 싶어 1인치 조각 천을 이어 만든 이불…. 바느질은 가족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가 놓은 수는 한 땀 한 땀 어찌나 오도독한지 찐한 엄마의 마음이 그대로 전해집니다.

그는 늘 집에서 일을 합니다. 작업실을 따로 마련해 집과 일을 분리할 수도 있지만 그는 집에서 일하는 게 가장 행복하고 마음도 편하답니다. 집에서도 부엌과 가까운 곳이 그의 자리지요. 커다란 테이블에 앉아 국이 끓고, 빨래가 끝나기를 기다리며 바느질을 합니다. 그 부엌에서 날마다 향기 나고 아름다운 것들을 꼬물꼬물 만들어냅니다. 그리고 그렇게 만든 작품은 장식장에, 계단에, 복도에, 집 안 곳곳에 장식되어 있습니다. 거실 그릇장 위, 재미난 냄비 받침이 눈에 들어옵니다. 언뜻 보기엔 쉽게 만들 수 있을 것 같아 물어보니 꼬박 이틀이 걸린답니다. 쉽게 만들 수 있어야 더 많은 사람이 즐길 수 있지 않겠느냐고 속마음을 조심스레 드러냈습니다. “바느질은 어려운 게 정석이라고 생각해요. 바느질의 매력은 공이 많이 들 때, 그것을 완성해나가는 시간 동안의 무념무상함 자체니까요. 먼저 지름길을 살피는 게 아닌, 과정을 지키는 것 또한 큰 기쁨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어요.”

손끝 야무진 그의 까다로운 솜씨는 ‘엄마’에게 물려받은 것이랍니다. 형제들의 옷을 일일이 지어 입히던 솜씨 좋은 엄마의 엄마, 꽃을 수놓아 만든 가리개를 창에 내다 걸며 ‘이쁘다’ 하시던 엄마의 엄마, 여름 시원하게 나라고 지어주신 삼베 조끼는 거실 한편 옷걸이에 걸어두고 그 마음을 오롯이 새긴다지요. 그리고 얼마 전에는 괜히 밤늦도록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아이들 생각에 마음이 애틋해져 손목 보호대를 만들었습니다. 하트 하나, 꽃 한 송이에 담긴 엄마의 마음을 아이들도 느끼겠지요?


1 조각을 이어 만든 바느질 살림은 10년이 지나도 언제나 한결같이 정답다. 필통, 지갑, 파우치, 안경집…. 큰 가방 속에 사는 아기 가방은 만들어두면 요모조모 활용할 수 있다고.
2 마당에 핀 야생화, 허브로 급조한 꽃꽂이.
3 단정하게 누벼 만드는 재미가 쏠쏠한 가방. 그는 여러 가지 재질, 형태로 만든 가방을 옷 색깔에 맞춰 매치하며 자신만의 스타일을 완성한다.
4 세상에 하나뿐인 브로치.


예쁜 찻잔, 고운 테이블보는 반가운 사람 더 반긴다는 마음의 표현이다.


현관 옆 작은 바느질 방은 갖가지 물건이 그득하지만 들어서는 순간 가슴이 따뜻해지는 다락방 같다. 스무 해 넘게 쓴 재봉틀과 작업대, 그간 작업한 작품과 패브릭이 켜켜이 쌓여 있어 정다운 느낌.


아이를 명품 주연으로 만드는 엄마 보통 “그 집 애 잘 키웠던데” 라는 말을 들어보면 대개 일류 대학에 진학시킨 부모의 이야기입니다. 요즘은 바느질 수업에서도 아이들 교육 문제가 늘 회자되는데, 그때마다 그는 딱 한마디만 한답니다. 어떻게 하면 아이랑 사이좋게 지낼 수 있는지 고민하라고요. 아이들과 사이가 좋으려면 아이들 관심사에 먼저 다가가야 합니다. 그의 가족은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한 덩어리로 지내는 게 익숙해서인지 지금도 아빠, 엄마를 따라나서는 일이 자연스럽습니다. 남편이 퇴직하면 아들딸과 함께 네 식구가 카페를 차리고 싶다는 부푼 꿈도 있습니다. 어떤 일이든 공유하고 고민을 나누는 가족은 ‘산남리 주민센터’라는 카톡방에서 신나게 이야기 꽃을 피운답니다.

“얼마 전 고추 농사가 잘 안 됐다는 뉴스를 듣고 남편은 고추값이 많이 오르겠다며 걱정했죠. 저는 반대로 사람들이 비싸서 안 사 먹을 수 있다, 수요가 없으니 크게 오르진 않을 거라 했죠. 그때 경제학과에 다니는 아들이 아빠는 애덤 스미스, 엄마는 케인스 이론을 펼쳤다며 진지하게 설명하는 거예요. 아들은 어릴 때부터 자동차에 관심이 많았어요. 덕분에 한 마디씩 거들던 저도 자동차 박사가 됐죠. 또 딸은 제가 만든 작품을 보면서 색 배치를 제안하기도 해요. 이렇게 서로의 관심사를 들여다보는 것, 그게 가족이 아닐까요?”

아이들이 어릴 때 놀이동산이나 대공원 대신 대학 캠퍼스에 가서 곧잘 놀았다는 일화도 들려줍니다. 사람 많고 어수선한 놀이공원 대신 차분하게 쉬면서 즐기는 법을 가르쳐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남편과 아이들은 배드민턴을 치거나 책을 읽고, 옆에서 바느질하는 그의 모습이 상상이 됩니다. 재미있는 건, 딱히 의도한 게 아닌데도 두 아이 모두 그 대학에 입학했다는 겁니다. 수업하러 오는 바느질 친구들에게 두런두런 이런 이야기를 하면 “엄마 노릇 다시 시작해야겠다”고들 한답니다. 뭐든 잘하라고 하기 전에 스스로 잘할 수 있도록 길을 터주는 엄마. 세상에 마음 하나로 되는 일이 어디 있겠느냐고 하겠지만, 그의 얘기를 들어보면 ‘엄마의 마음’ 하나면 안 되는 일이 없을 것 같습니다.


봄과 여름 사이 만개한 마당의 고운 꽃송이. 엉겅퀴, 망초, 해당화 등 허브와 야생화가 전하는 심상을 자수에 담는다.

1 꽃이 꽃밭에만 있는 게 아니다! 침실, 거실, 부엌 등 햇살 따사로운 창가에 꽃 자수 리넨 커튼 하나만 달아도 기분 전환이 된다.
2 바느질은 여자의 이야기며 예쁘게 살고 싶고 귀한 아이들 윤나게 키우고 싶은 엄마의 마음이다. 요즘처럼 날씨가 좋을 때는 주로 마당의 커다란 단풍나무 아래에서 바느질을 한다. 따뜻한 차 한잔과 함께 몰입의 기쁨을 느끼는 순간이다.
3 소박한 매력의 자수 커튼이 정답게 손님을 맞는 현관 입구.
4 굽이진 언덕길을 따라 한참을 오르면 오솔길 같은 작은 마당을 지나 현관을 만나고, 가장 먼저 환영의 메시지를 담은 자수 커튼이 반갑게 손님을 맞는다.


탁 트인 전망을 자랑하는 전원주택은 1층 거실 천장이 2층까지 뚫린 메자닌 구조다. 통풍이 잘 되는 목조 주택이라 여름에도 에어컨 없이 시원하게 잘 지낸다고.

취재를 앞둔 6월 어느 날, 정경희 씨가 “장미꽃이 활짝 폈다”며 들뜬 목소리로 전화를 했다. 장미가 커튼처럼 담장을 덮을 때면 이 장미 덩굴 그늘에 앉아 수를 놓는다고.

집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무대로 만드는 엄마 오늘은 바느질 수업이 있는 날입니다. 부엌에서 캐머마일 차가 끓고 있습니다. 맵시 좋은 리넨 원피스를 입고 부엌에 들어선 정경희 씨. 바람에 꺾인 꽃 한송이를 빈 병에 꽂아 테이블 위에 무심히 두었는데 그 자체로 그림입니다. 그는 이렇게 손님이 오는 날은 그릇부터 챙깁니다. 그의 그릇 사랑은 아이들의 동화에서 시작되했다고 합니다. <피터 래빗> 시리즈를 읽어주다 피터 래빗 시리즈를 모았고, 질 바클렘의 동화 <찔래꽃 울타리>도 아이들이 좋아해 이 그림이 전사된 찻잔과 접시를 모았답니다. 밥 먹으면서도 아이들은 눈을 반짝이며 흥미로워했고, 늘 조심조심 썼다지요. 그렇게 하나 둘 모으다 보니 웨지우드, 로얄코펜하겐, 빌레로이앤보흐 등이 차곡차곡 쌓여 주방 찬장에 또 한가득 꽃이 피었습니다. 오랫동안 찜해둔 찻잔을 구입해 하루 중 틈이 나는 시간에 그 찻잔에 차 한잔을 우려내 마시는 것, 그런 작고 소소한 기쁨 하나로도 부엌은 충분히 달큰합니다.

2층 구석에 그의 바느질 방이 있습니다. 스무 해 넘게 쓴 낡은 재봉틀 한 대와 학교 걸상 같은 자그마한 작업대와 의자, 천과 그간 작업한 작품들을 켜켜이 쌓아둔 장식장, 바느질 함까지 집에 있는 가구는 모두 남편의 솜씨입니다. 그런데 어쩜, 가구의 결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세월의 관록이 적당히 배어 있으면서도 어디 하나 모나거나 투박한 부분이 없습니다. 가구에는 쓰는 사람의 마음 씀씀이도 투영되기 마련이니까요.

바느질 친구들이 하나 둘 모이자 그가 사부작사부작 움직입니다. 어느새 상이 차려집니다. 고슬고슬 지은 밥과 상추, 잣, 호두, 캐슈너트 등 견과류를 다져 넣고 참기름, 고추장과 된장을 섞어 만든 쌈장과 오이 루콜라 샐러드를 곁들인 수수하고 검박한 상차림인데, 먹고 나니 한 끼 잘 대접받았다는 기분이 듭니다.

“엄마란 나이 밥 먹으면서 만들어지는 무엇 같습니다. 체하지 않게 천천히, 잘 익은 김치처럼 제대로 숙성되었을 때 비로소 맛이 나는 무엇. 그게 엄마이고, 또 엄마 노릇이지요. 쉽지는 않습니다. 넘어지고, 부서지고, 생채기를 내면서 스물 몇 해를 ‘엄마’라는 이름으로 살아보니 그렇습니다. 엄마라는 게 세월이 깎아 만든 숨결 같은 일이라는 걸, 풋사과 같았던 젊은 날에야 알 턱이 있었을까요. 그저 마음먹으면 되는 쉬운 일로만 알았던 거지요.”- <엄마가 좋아> 中

기쁘게 나이 먹는 엄마 정경희 씨가 펴낸 책 <엄마가 좋아>를 읽고 나니 문득 <딸은 좋다>라는 동화책이 떠오릅니다. 딸로 태어나서, 딸아이를 키우면서 엄마가 느끼는 것을 담은 이 책의 마지막 문장 때문입니다. “딸은 정말 좋다. 아기를 낳아 엄마가 되어볼 수 있으니까.”

딸이든 아들이든 자식 낳아 기르며 사는 엄마의 일생에서 아이에게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인생은 참 아름다운 인생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는 딸 자인 씨에게 얘기합니다. 자인이는 엄마가 될 수 있어 좋겠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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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지현 기자 | 사진 김재윤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3년 9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