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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희 씨 가족의 가회동 빌라 나에게 집이란 입체적인 회화다
서민희 씨는 집을 꾸미려고 할 때 스타일을 규정짓기보다는 정서를 채워줄 수 있는 매개체로 평소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에서 컬러를 잡았다. 눈과 마음이 편안해지는 그레이 톤의 집, 가회동 언덕배기에 그 집이 있다.


주방에서 바라본 거실 모습. 소파를 거실 한가운데에 두고 뒤쪽에 수납 가구를 놓아 기존에 사용하던 가구의 지루함을 상쇄하고 공간의 효율성을 높였다.

박스형 책장으로 많은 책을 수납할 수 있게 하면서 슬라이딩 오크 도어를 달아 전체적으로 깔끔하고 심플해 보이도록 했다. 동시에 거실 벽면이 책으로 답답해 보이지 않도록 책장 옆에는 무지주 선반을 달아 자유롭게 소품들을 장식했다.


회화 작품에서 인테리어 컬러를 잡다 북유럽 스타일, 일본 스타일, 프랑스 스타일…. 집을 레노베이션하려고 할 때 일반적으로 우리는 가장 먼저 그리고 쉽게 ‘○○ 스타일’로 콘셉트를 잡곤 한다. 그도 그럴 것이 북유럽 스타일이라고 하면 마치 공식처럼 그 안에 ‘가구는 원목 소재의 모던한 것, 벽지나 바닥은 심플한 화이트’라는 구성이 함축되어 있어 초보자에게는 훌륭한 길라잡이 역할을 해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회동 서민희 씨의 집은 좀 다른 과정을 거쳐 완성했다. 미술사를 전공했고 미술관과 갤러리에서 큐레이터로 일했으며 현재 케이 옥션K Auction에서 미술품 경매사로 일하는 서민희 씨는 집을 입체적인 회화로 본다. 이는 인테리어와 미술은 엄연히 다르지만, 사실 둘 사이의 연관성은 매우 크며 둘을 함께 볼 때 예기치 않은 상승효과가 있다는 것을 잘 아는 터다. 눈에 드러나는 화려한 트렌드가 아닌 정서와 같이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를 눈에 보이는 결과로 만들어내는 것이 바로 그 효과다. 그래서일까, 그의 집은 편안하다 못해 평온하기까지 하다. “많은 그림을 봐왔지만 이우환 작가의 작품을 가장 좋아해요. 이번 집을 레노베이션할 때도 이우환 작가의 작품에서 모티프를 얻었어요. 2000년 이후의 작품에서 보이는 작가의 경향은 흰색, 검은색 그리고 돌가루를 섞은 색상의 작품이죠. 그중에서도 저는 돌가루가 표현해내는 깊은 회색 톤의 느낌을 좋아해요.” 자연적이고 편안하며, 차가우면서도 따뜻한 오묘한 느낌 때문에 회색 톤에 매료됐다는 집주인은 그레이를 메인 컬러로 해달라 주문했고, 디자이너는 이에 어울리는 컬러와 소재로 화이트와 오크를 선택했다. 그레이의 자칫 어두워 보일 수 있는 점을 화이트 색상으로, 차가운 느낌을 오크 소재의 가구와 바닥재로 중화하기 위함이었다.


1 큰아이 방은 특이하게 천장에 포인트 벽지를 사용했다.
2 장식물도 최대한 편안하고 친근한 느낌이 드는 것을 선택해 꾸민 침실에는 무지주 선반을 달아 깔끔하고 심플한 인테리어를 완성했다.
3 내추럴을 콘셉트로 아기자기하게 꾸민 작은딸 방. 
4 자투리 공 간에 설치한 흑칠판은 큰딸 예진이의 상상 공작소. 지금 딸아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가장 잘 보여주는 곳이다.

집주인 서민희 씨와 두 딸 예진, 예나. 레노베이션 후 거실에 놓인 큰 테이블에서 세 모녀가 나란히 앉아 그림을 그리는 취미 활동을 공유한다.


책으로 공간에 악센트를 주다 2000년에 지은 이 집은 4층 빌라 형태다. 서민희 씨 가족의 집은 2층, 이 집을 지으신 시어머니는 3층, 그리고 몇 년 전까지 시할머니께서 4층에 사셨단다. 미국 생활을 오래 하신 시어머니가 집을 지으신 덕에 집 안 곳곳에는 미국 스타일이 묻어난다. 공간을 분리하지 않은 넓은 로프트 스타일의 거실, 건식 욕실, 문턱이 없는 것 등이 바로 그것이다. 그중에서도 칸막이 하나 없이 탁 트인 넓은 거실은 단연 인상적이다. 그런데 공간이 지나치게 넓어 그 위세에 사람이 짓눌릴 수도 있고, 공간을 100% 활용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단점도 있다. 서민희 씨는 거실은 그 집에 사는 이의 취향을 가장 잘 드러내는 곳이자, 집의 얼굴이라는 사실을 잘 알기에 거실 인테리어에 대한 고민이 많았단다. 이에 디자이너 박창민 씨는 책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방법을 제안했다. 인테리어 디자이너 존 스테파니디스가 말하지 않았던가. 책으로 덮인 벽은 풍부한 질감과 색감을 느끼게 하며 책은 훌륭한 단열재 역할을 한다고. 그런가 하면 19세기 중반 성직자 헨리 워드 비처 역시 책은 가구가 아니지만 그것만큼 집을 아름답게 꾸밀 수 있는 것은 없다며 인테리어 소품으로서 책의 역할을 이야기했다. 이에 서민희 씨도 거실의 한쪽 벽면 전체를 책으로 덮어 안정적이고 인간적 분위기가 느껴지도록 꾸몄다. 거실 책장에도 어떤 것은 세로로 반듯하게 꽂아놓고, 또 어떤 것은 옆으로 눕혀 책을 북엔드처럼 연출했다. 책장에 책과 도자를 함께 두어 깊이감이 한결 다양해 보이도록 한 점도 인상적이다. 침실에는 책을 쌓아서 수직적인 악센트를 줬다. 디자이너는 안정감을 주려면 위로 올라갈수록 크기가 작은 책을 올려놓는 것이 좋다고 조언한다.


현대적인 집 안과 달리 창밖으로는 가회동의 고즈넉한 한옥 정취가 펼쳐진다. 거실 창가에는 자연을 마음껏 감상할 수 있도록 널찍한 테이블을 두었다.

벙커형 침대 아래쪽에 쿠션을 놓고 갈런드를 달아 딸들만의 비밀 공간으로 꾸몄다. 아이들은 햇살이 들어오는 창 아래에서 서로 책도 읽어주고 비밀 이야기도 나눈다.

1 그레이 컬러를 집안에 써보라. 베이스는 화이트로 하되 문이나 패브릭(침장) 등을 그레이 컬러로 하면 고급스러우면서도 모던한 느낌을 연출할 수 있다.
2 침실은 최대한 안락하게 꾸몄다. 거실같이 넓은 창에는 커튼을 양쪽으로, 침실같이 좁은 창에는 한쪽에만 다는 것이 좋다.

식탁은 기존에 쓰던 것을 그대로 사용했다. 대신 식탁 다리의 빨간색에서 모티프를 얻어 조명등의 줄도 빨간색을 선택해 통일감을 줬다. 식탁은 알레시 제품으로 더플레이스, 조명등은 이스태블리시드 앤 선즈 제품으로 인엔 문의.

같은 가구, 배치만 달리해도 새롭다 레노베이션을 하다 보면 공간의 바탕이 되는 벽과 바닥재의 소재, 컬러가 달라지는 탓에 기존에 사용하던 가구도 새로 바꾸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서민희 씨의 경우, 소파와 식탁 등 아직 쓸 만한 가구는 그대로 사용하기로 했다. 부부가 고심해 고른 신혼살림이기도 하거니와 첫아이가 태어나고 시어머니에게 선물 받은 것 등 추억이 묻어 있는 가구들이 어느덧 가족같이 친근하기 때문이다. 또 소파는 짙은 회색, 식탁은 올 화이트 등 기본적으로 가구 색깔이 모노톤이라 그레이 컬러의 인테리어에도 잘 어울릴 것 같았다. 이에 박창민 씨는 가구는 그대로 사용하되, 배치를 달리해 분위기를 전환했다. 배치만 달리해도 같은 가구가 완전히 다른 느낌이 들며 천편일률적인 분위기에서 탈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존에 벽에 붙여놓은 소파를 외국처럼 거실 중간에 둔 후 소파 뒤에 책을 놓거나 수납할 수 있는 오픈 가구를 놓았는데, 소파 뒤에 놓는 가구는 소파의 밀림을 방지해주는 동시에 시각적으로 안정감을 준다. 또 박창민 씨는 소파에 짙은 회색과 잘 어울리는 그린색 1인용 체어를, 식탁에는 빨간 줄의 조명등 등 어울릴 만한 아이템을 매치했는데, 이처럼 기존 가구를 계속 쓰면서 가구를 살려주는 서브 아이템을 구입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귀띔한다. 대신 아이들 방은 특별히 공들인 부분이 눈에 띈다. 핑크와 블루 컬러를 주조색으로 꾸민 두 개의 아이 방은 모두 2층 침대를 두었으며, 침대 아래쪽에 쿠션을 놓고 갈런드를 달아 놀이방으로 꾸며주니 친구들이 놀러 와도 침대 아래서만 도란도란 비밀 얘기를 나누고, 장난감이 밖으로 나와 어질러질 일이 없단다. 눈과 마음이 편안해지는 그레이 컬러를 주조색으로 사용하고 익숙한 가구를 배치만 바꿔 활용하길 잘했다는 서민희 씨. 레노베이션 후의 공간 변화를 가족이 편안하게 받아들이니 결과는 대만족일 수밖에.

디자인 및 시공 가라지(www.garage1.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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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황여정 | 사진 박찬우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2년 12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