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5년 01월 우리는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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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살면서 총 열다섯 번 이사를 했다. 이 말을 듣는 사람들은 ‘큰돈 벌었겠구나’ 생각하겠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아마도 내가 조금이라도 그런 이재에 밝았다면 큰돈을 벌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심한 경우 한 해에 두 번 이사한 적도 있다. 옮길 수밖에 없어서 이사한 적이 많지만, ‘아 여기서 한번 살아볼까’ 하는 마음으로 이사한 적도 있다. 어떤 사람은 내게 이사가 취미냐고 빈정거리기도 했다. 지금 되돌아보면 이사처럼 재미나는 일도 없다고 생각한다. 처음부터 어디에 살아야 한다고 정해진 것은 아니니까 살고 싶은 곳에 살면 된다. 그것이 정답이다. 직장이나 아이들 학교에서 가깝고 조용하고 햇빛이 잘 들고 자기 취향에 맞는 놀거리가 많은 동네라면 최고의 거주지가 아닐까?
이사를 자주 다니면 나름대로 성찰하게 된다. ‘산다’는 것은 물건이 하나 둘 늘어가는 과정이라 할 수 있지 않은가. 관심이 사라지고 버려야 할 물건은 언젠가 버려진다는 사실도 살면서 깨닫는다. 그러니 삶을 단출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항상 하게 된다. 또 이런 성찰보다도 더 유익한 것은 새로운 동네에서 더 많은 추억을 쌓게 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홍대 앞에 살던 때가 있었다. 지금부터 10여 년 전의 홍대 앞은 중심지라는 과녁에서 한참 벗어난 곳으로 분위기가 고즈넉하고 허름했다. 자주 가는 술집에서 모르는 사람들과 쉽게 친구가 될 수 있을 정도로 여유가 있는 곳이었다. 당시 홍대 앞에서 만난 사람들은 아방가르딕한 사람이 많았는데, 지금 그 사람들은 다들 홍대 앞을 떠났지만 그당시 홍대 앞이라는 동네가 만들어낸 풍경과 그곳의 사람들은 잘 어울렸다.
해가 지고 학교가 끝나면 학생들과 홍대 앞에서 놀았다. 늦게까지 놀다가 걸어서 집에 돌아오고 아침이면 걸어서 학교에 가곤 했다. 일요일 밤 홍대 앞에서 가족들과 놀면서 스트레스 없이 월요일을 맞이하는 것도 큰 즐거움이었다. 아이들은 체육관이 집 근처에 있어서 재즈댄스와 요가를 배웠고, 나 역시 당시에는 스스럼없이 클럽에도 자주 갔다. 즐거운 일이 내 옆에서 나를 항상 기다렸고, 내 스타일이 홍대 앞 분위기와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느 날부터 홍대 앞이 젊은 친구들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오래된 단골 가게는 사라지고 새로 생긴 음식점과 클럽 앞에 길게 줄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 무리 속에서 어색한 내 모습을 발견했다. 그래서 나는 미련 없이 이사를 결심했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뭔가에 밀린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실체는 나를 어색하고 거북하게 만들기도 했으며, 섞이기에는 힘들면서 나를 밀어내는 기운이 강했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하면 그 기운이 바로 ‘젊음’이 아니었나 싶다. 당시 내 나이가 마흔 초반에서 중반으로 가고 있었으니 홍대 앞에서 버틸 만큼 버틴 것이 아닌가.
그래서 미련 없이 이태원으로 이사를 결심했다. 학교에서 지하철 몇 정거장 거리로 가깝고, 그나마 친구들과 바에 앉아 있어도 어울릴 수 있는 곳은 이태원이라는 생각을 했다. 또 젊은 친구들과도 편하게 부담 없이 어울릴 수도 있는 곳이다. 만약 이태원에서 돌아다니는 내 모습이 어색해지는 순간이 또 온다면 어떻게 할까? 나는 미련 없이 내 모습이 어울릴 만한 또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갈 것이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환경을 바꿔서라도 내게 맞는 즐겁고 새로운 것을 접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언제나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으니까. 다음은 어디로 이사를 가게 될까? 집을 나서면 산책할 수 있고, 믿음직한 해장국집과 신선한 음식 재료를 살 수 있는 시장이 있고, 깨끗한 공중목욕탕이 있고, 체육관이 있고, 맛있는 커피를 파는 집이 있는 동네. 은밀하게 친구를 만날 수 있는 중국집, 걸어서 5분 거리에 서점이 있고, 밤이면 생맥주를 느긋하게 마실 수 있는 곳. 그런 곳에서의 삶을 꿈꾼다. 분명히, 내가 살 곳을 선택하는 기준은 ‘일’이 아닌 ‘밤이 있는 삶’이라고 믿고 있다.
많은 심리학자들이 행복을 내일로 미루지 말라고 조언합니다. 지금 행복하지 않은 사람이 미래에 행복해질 가능성은 아주 낮기 때문이지요. 그러니 지금 내 마음이 즐겁고 의미와 재미가 있는 일에 집중해야 합니다. 내가 사는 동네가 나에게 행복감을 주는 곳이라면, 매일 골목을 지날 때마다 즐거움이 밀려오겠지요. 글을 쓴 이기진 교수는 서강대 물리학과에서 후학을 양성하는 물리학자입니다. 그는 아르메니아공화국에서 연구를 했고, 파리에서 박사 과정을 마쳤으며, 일본의 대학에서도 7년간 연구했습니다. 각 도시에서 연구하는 동안 가족과 함께 벼룩시장을 찾아다니며 이 빠진 백자나 호랑이 조각 등을 사 모으는 딴짓을 했으며, 그런 아빠를 따라다닌 딸 채린은 인기 아이돌 그룹 2NE1의 씨엘이라는 스타가 되었습니다. 학교 앞 철공소에서 용접해 만든 로봇과 의자를 아트페어에 내고, 과자나 빵을 직접 구워 선물하며 즐겁게 사는 이기진 교수는 나이 먹은 사람에게, 특히 나이 든 남자일수록 행복한 인생을 사는 데 몰입할 딴짓이 꼭 필요하다고 조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