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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04월 꽃보다 아름다운 것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장은 꽃 시장이다. 번역 작업에 쫓기지 않을 때면 자주 꽃 시장에 간다. 평생 알파벳으로 된 검은 활자에 갇혀 살아서인지 고운 꽃을 보면 설레고 딴 세상에 들어선 기분을 느낀다. 어릴 때 늘 집에 꽃이 있었던 이유도 있을 것이다. 어머니가 10년 이상 꽃꽂이를 배우셨고 전시회에도 참여하셨다. 그래서인지 요즘도 나는 손님이 오는 날은 장보기나 청소보다 꽃부터 챙긴다. 손님 대접에 음식을 가장 중요시하는 문화에서 난 좀 어이없는 안주인이다.

꽃 시장처럼,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람을 꼽으라면 타샤 튜더라는 삽화가이자 라이프 스타일리스트다. 미국 버몬트 산골짜기에 나무 집을 지어 앤티크 세간을 갖추고, 1830년대식 차림으로 자신만의 레시피로 요리하면서 멋진 정원을 가꾸고 산 사람. 양초부터 옷감까지 직접 만든 생필품은 예술 작품이고, 크리스마스 같은 명절치레는 멋진 의식이 된다. 마리오네트 인형극을 공연하고 미니어처 가구로 꾸민 인형 집을 만들고, 평생 1백 권이 넘는 그림책을 그리면서 생활과 동화의 경계가 없이 산 여성으로 몇 해 전 그의 생애와 삶을 담은 책 여러 권이 출간되면서 국내에서도 유명해졌고, 타샤처럼 자연과 함께하는 라이프스타일을 꿈꾸는 사람이 많아졌다.

나 역시 타샤의 정원과 공예, 음식을 다룬 책을 여러 권 번역하면서 말할 수 없는 감탄과 부러움에 빠졌다. 층층이부채꽃, 참제비고깔이 만발한 정원에서 직접 키운 밀을 빻아 만든 케이크를 곁들여 차를 마시고, 그림을 그리는 생활이라니 더없이 부러울 따름이다. 이것이 사진으로 보는 그녀의 삶이었다면, 사진으로 찍을 수 없는 진짜 삶은 어땠을까. 타샤는 명문가 출신의 아버지와 최초의 페미니스트로 꼽히는 화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지만, 아홉 살 때 부모가 이혼하면서 아버지의 친구 집에서 자랐다. 버림받은 상처를 잊기 위해 상상 속의 삶에 빠져들었을 것이다. 아버지의 성을 버렸고, 영화 <센스 앤 센서빌러티>의 한 장면 같은 배경에서 살면서도 시골 생활을 꿈꾼 것을 보면 어릴 때부터 그 마음이 어땠을지 짐작된다. 유명 삽화가였지만 화가가 아니라는 자괴감에 시달렸고, 얼굴이 못났다고 느껴 처음 청혼한 남자와 사랑 없이 결혼했다. 무능한 남편과 살아야 하는 결혼 생활에 시달리다 이혼하고, 그림으로 생계를 꾸려가며 자녀들을 키워야 했다.

보통 여인이라면 주저앉았겠지만, 타샤는 힘든 생활을 견디기 위해 쉼 없이 꽃을 심고 가꾸고 만들었다. 나는 그것을 용기라고 생각한다. 상처 많은 인생살이에 매몰되지 않기 위해 용기를 내고 수고한 끝에 감탄스러운 삶을 엮어낸 것이다. 이제 책장을 넘기면, 사진 속 예쁜 꽃밭보다 타샤의 굵은 손마디가 눈에 들어온다. 정원을 가꾸느라 평생 그녀의 손과 발이 엉망이었다는 글도 잘 보인다. 그 멋진 풍경에 한 인간의 고달픈 인생이 오롯이 녹아 있다는 것을 안 이상 부럽다는 말이 쉽게 나오지 않는다. 타샤는 “누구나 달과 같아서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는 어두운 면을 갖고 있다”는 마크 트웨인의 말을 좋아했다. 그 어두운 면이 살아보려는 용기와 수고를 만나면 얼마나 풍성한 아름다움을 피워내는지 타샤가 가르쳐준다. 그러고 보니 살아보려는 용기와 수고, 꽃보다 아름답다.

글 공경희 담당 김민정 수석기자


도시에 사는 우리는 “자연으로 가서 편안한 웰빙 라이프스타일을 누리고 싶다”는 푸념을 하곤 합니다. 그런데 아름다운 정원 속 삶이 마냥 부럽던 타샤 튜더의 삶에도 함정 같은 바윗돌과 척박한 모래밭이 있었다는 사실을 보며, 결국 우리 마음의 정원부터 아름답게 가꾸는 것으로 평화로운 삶이 시작된다는 진리를 깨닫습니다. 글을 쓴 공경희 번역가는 서울대 영문과를 졸업했습니다. 대기업 홍보실을 반년 만에 그만두고 전문 번역인의 길을 택해, 25년 동안 3백 권에 달하는 책을 번역하며 전 세계의 훌륭한 소설, 비소설, 아동문학을 국내 그 누구보다 꼼꼼히 탐독했습니다. 대표작은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모리와 함께한 일요일><호밀밭의 파수꾼><우리는 사랑일까><마시멜로 이야기><좀비> 등이 며, 저서로는 북 에세이 <아직도 거기, 머물다>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