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3년 11월 무소유, 소유, 여유 (마종기 의사)
-
무소유’ 하면 으레 돌아가신 법정 스님을 생각한다. 많이 알려진 그분의 산문집 제목이어서도 그렇지만 한 번쯤 자신을 돌아보는 화두로서 무소유라는 단어를 나름대로 새겨본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 생활에서 우리같이 범속한 자가 갑자기 무소유가 된다는 것은 며칠 안에 밥 굶어 죽을 가능성을 내포한 것이라서 비록 그 단어가 정확히 쌀 한 톨 없다는 뜻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함부로 던질 수 있는 단어는 아닐 것이다. 그보다 근자에 읽은 책에서 자주 되새김질하게 되는 단어는 무소유가 아니라 오히려 ‘소유’라는 단어다. 20세기의 뛰어난 사상가이자 정신분석학자인 에리히 프롬의 유명한 저서 <소유냐, 삶이냐(To have or to be)>에서는 현대 사회에서 물질 만능주의나 소비 지상주의 때문에 오히려 존재감을 잃어가는 현대인의 문제를 비판한다. 소유하고 소비함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려는 현대인의 어리석음을 지적하면서 탐욕의 양식에서 해방되어 창조하는 기쁨을 나누는 삶으로 존재 양식을 전환하도록 주장한다.
소유에 대한 세계적 논쟁의 중심은 21세기로 접어들면서 사회경제학자며 정치학자인 제레미 리프킨이 맡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2001년에 출간한 <소유의 종말>은 소유에 대한 현대적 해석과 미래 지향적 모색이 그 중심에 있다. 자본의 기본 속성은 소유에 있지만 그 원초적 욕망이 천천히 변하고 있다고 그는 말한다. 내가 가진 것을 지키거나 소유하고자 하는 것을 얻기 위해 자신의 삶을 허비하기보다 미래 세계는 인간의 생활 방식이 변해서 소유에 대한 개념이 쇠퇴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소유는 접속으로 바뀌고 교환가치는 공유가치로 변하는 새로운 세기가 온다고 예언한다. 말하자면 에리히 프롬이 개인의 소유 욕망과 실제 개인의 삶을 연계해 고찰했다면, 리프킨은 소유와 사회 그리고 욕망과 미래 문명의 관계에 천착했다고 말할 수 있겠다. 이렇게 21세기의 화두는 단연 ‘소유’에 대한 개인적 의미나 병폐, 나아가 사회적 반응이 맨 앞에 서 있다.
그러나 이런 세계적 석학의 학문적 연구보다 우리가 느끼는 간단하고도 확실한 진리는 많이 소유할수록 오히려 여유는 그 반비례로 적어진다는 것이다. 개인의 소유와 개인의 여유는 시소 같은 관계이면 ‘여유’는 특히 오늘날 한국에서 ‘소유’보다 더 관심을 가져야 할 화두가 아닐까 생각한다. 지난 10여 년간 고국에서 자주 느끼는 것 중 하나는 바로 일반인의 여유 없는 생활 패턴이다. 물론 내 관심은 내가 아는 주위 사람들의 생활이기는 하지만 모두들 나름의 이유를 가지고 여유 없는 생활을 하고 있다고 느꼈다. 세상을 돌아다니다 보면 꼭 경제적 조건이 개인의 여유와 직접 연관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나 혼자만의 의견이 아니지만 한국 사회가 미국이나 유럽 국가 사람보다 더 물질주의에 경도된 것 같은 인상을 준다. 이상과 꿈과 미래의 이야기보다 소비와 소유 욕망으로 더 각박하고 더 경쟁적이라는 느낌이 든다. 옆집 사람이 저런 옷을 입고 있으니 나도 입어야 하고, 이런 곳을 여행하고 자랑하니 우리도 안 갈 수 없다는 값싼 경쟁심도 여유로움을 잃게 하는 정신적 요인이 된다. 그런 사람은 모든 일에서 자기 위주이고 자기 우선이다. 여유가 없으니 공중도덕에도 둔감해 이웃이나 사회의 공동선에 대한 개념이 없어진다. 우리 같은 평범한 인간이 소유욕을 완전히 버릴 수는 없겠지만 이런 인간의 필요악을 가끔은 여유로 돌리려 노력해보아야 할 것이다. 여유와 소유가 조화와 균형을 이루도록 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행복한 삶, 후회 없고 의미 있는 삶을 위한 커다란 빛이요 지혜다.
소싯적 치기에는 무엇 하나 뾰족이 잘해야 멋진 인생인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좀 더 살아보니 개인의 인생에서, 두 사람의 사랑에서, 사회의 우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때론 일갈하고 때론 공감하는 이성과 감성의 ‘균형’이더군요. 글을 쓴 마종기 씨는 차가운 이성을 가진 의사이면서 따뜻한 감성을 품은 시인입니다. 그는 1959년 의대 본과 1학년 때 <현대문학>에 ‘해부학교실’ ‘나도 꽃으로 서서’ 등의 시를 발표해 등단했습니다. 1966년부터 미국에서 살며 오하이오 의대의 방사선과 교수와 아동병원 부원장 등으로 일하는 중에도 고국에 꾸준히 시집과 산문집을 발표했으며, 한국문학작가상 등 유명 상을 두루 수상했습니다. 가수 루시드 폴과함께 쓴 서간집 <아주 사적인, 긴 만남>을 출간했고, 올해도 <우리 얼마나 함께> <이 세상의 긴 강> 등을 연이어 선보인 그의 글은 이성과 감성이 조화를 이룬 삶의 지혜를 생각해보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