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해주세요.
본문 바로가기
2011년 10월 밥 (장석주 시인)

장석주 시인의 첫 번째 글
귀 기울이면 집과 인접한 심씨沈氏 문중門中 소유의 밤나무 숲에서 후두두 알밤 떨어지는 소리가 요란하다. 새벽의 정밀靜謐을 깨고 밤나무 숲에 그득 차 있는 침묵의 깊이를 깨우는 소리다. 젖은 풀 위로 알밤들이 나신을 드러내고, 곧 부지런한 촌로들이 자루 하나씩을 어깨에 메고 이 열매들을 거두러 오리라. 밤나무 숲과 붙은 마른땅은 애초에 고추밭이었다. 열한해 전 나는 그 땅에 집을 짓고, 식솔과 남루한 살림을 끌고 들어왔다.

혜가가 보리달마에게 제 마음의 번뇌를 끊고 평화롭게 해달라고 했다. 보리달마는 “어디, 네 마음을 여기 꺼내보아라. 평화롭게 해주겠노라”고 대답했다. 밤나무 숲 근처에서 삶을 꾸리며 내게 꺼낼 마음이 없음을 홀연 깨달았다. 물론 내 혼자의 힘은 아니고, 노자와 장자의 도움을 받았다.


마음보다 중요한 게 나날이 먹는 밥이다. 서른 해 전쯤 ‘밥’에 대한 생각에 골똘했다. “귀 떨어진 개다리소반 위에/ 밥 한 그릇 받아놓고 생각한다./ 사람은 왜 밥을 먹는가./ 살려고 먹는다면 왜 사는가./ 한 그릇의 더운밥을 얻기 위하여/ 나는 몇 번이나 죄를 짓고/ 몇 번이나 자신을 속였는가./ 밥 한 그릇의 사슬에 매달려 있는 목숨./ 나는 굽히고 싶지 않은 머리를 조아리고/ 마음에 없는 말을 지껄이고/ 가고 싶지 않은 곳에 발을 들여놓고/ 잡고 싶지 않은 손을 잡고/ 정작 해야 할 말은 숨겼으며/ 가고 싶은 곳을 가지 못했으며/ 잡고 싶은 손을 잡지 못했다./ 나는 왜 밥을 먹는가, 오늘/ 다시 생각하며 내가 마땅히/지켰어야 할 약속과 내가 마땅히/ 했어야 할 양심의 말들을/ 파기하고 또는 목구멍 속에 가두고/ 그 대가로 받았던 몇 번의 끼니에 대하여/ 부끄러워한다. 밥 한 그릇 앞에 놓고, 아아/ 나는 가롯 유다가 되지 않기 위하여/ 기도한다. 밥 한 그릇에/ 나를 팔지 않기 위하여.”(졸시, <밥>) 더운밥은 내 도덕의 시험대였다. 누구도 이 시험을 피할 도리는 없다. 밥이 생존의 목적성을 감당하지는 않지만, 생존을 위한 대체가 없는 필연적 수단이기 때문이다.

생명체는 이것 앞에서 평등하다. 이 평등이 정치적 올바름의 바탕이 되어야 마땅하다. 기독교도, 불교도, 이슬람교도 이것을 죄악시하지 않는다. 입으로 들어가는 것, 어떤 모호함도 없이 자명하고 적나라한 것, 수고하고 땀 흘려야만 얻을 수 있는 것, 생명의 불이 타오르도록 하는 질료. 나는 이것을 평생 먹었다. 슬플 때도 먹고, 기쁠 때도 먹고, 우울할 때도 먹었다. 이 의식을 날마다 더불어 하는 사람들이 ‘식구食口’다. ‘식구’라는 이름의 공동체. 이것을 떠먹은 숟가락의 노동에 대해 우리는 한 번도 감사하지 않았다. 앞으로도 얼마를 더 먹어야 할지 모른다. 이것의 토대 위에 생각과 마음의 성채城砦가 선다. ‘무덤에서 무덤으로 가는 짧은 여로’(카를 크롤로, <무엇인가 끝나고>) 속에 있는 찍힌 수많은 휴식의 점들, 이 휴식의 점들이 없다면 삶도 없다. 이것을 구하는 일은 구도求道의 행위라고 하기는 어렵다. 차라리 일정 기간 고의적으로 끊는 것이 구도 행위다. 금식은 육체라는 현전에 대한 저항이고 도발이다. 벽에 머리를 찧는 것만큼이나 어리석긴 하지만, 이것은 영장류靈長類의 행위 중에서 가장 숭고한 것에 속한다.

어떤 밥을 먹느냐보다 누구와 먹느냐, 그리고 그 밥을 어떤 방식으로 구했느냐가 중요하다. 밥을 구하는 방식의 담백함이 도덕성을 규정짓고, 필연코 우리가 어떤 사람인가를 드러내 보이기 때문이다. 오늘 점심은 안성 재래시장 안쪽에 있는 3천 원 균일 국밥집에서 그림 그리는 후배와 먹고, 늦은 오후에는 심복의 아름다운 책 <부생육기浮生六記>를 읽으리라. 이백은 “덧없는 인생 꿈만 같으니, 얼마나 즐거움을 누리겠는가?(浮生如夢 爲歡幾何)”라고 노래했다. 나는 이 쓸쓸한 유배지에서 그럭저럭 담백한 밥을 구하고, 청고한 꿈들을 꾸며 살았다.

밥맛 알고 물맛 알면 어른 된 거라고 어르신들이 말씀하셨지요. 장석주 시인의 이야기처럼 마음보다 중요한 게 나날이 먹는 밥인데, 우린 밥을 밥으로나 알고 살았던 것 같습니다. 오늘부터 시작해보렵니다. 아주 사소하고도 소중한 시작. ‘나는 왜 밥을 먹는가, 오늘?’이라고 생각하기. 그렇게 하루하루 생각하다 보면 매일 먹는 밥이 여름처럼 뜨겁고, 들이켜는 물이 겨울처럼 차갑다는 사실에 눈물지을 줄 아는 사람이 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