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9년 06월 “진작 말하지” (이영혜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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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혼식을 맞이하는 부부가 있었답니다. 그러니까 결혼해서 50년을 같이 산 것이지요. 이 부부는 평생 큰 소리 한 번 내지 않고 금실 좋다는 평판이 자자하였답니다. 자식들이 합세하여 금혼식 기념 여행을 떠났습니다. 다음 날 아침 레스토랑에서 분위기를 만들어주기 위해 두 부부만 따로 자리하게 했습니다. 늘 그랬듯이 그날 아침에도 머리가 백발인 남편이 아내에게 빵을 떼어주는 노부부의 다정한 모습이, 다른 테이블에 자리한 자식들 눈에는 물론이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아름답게 보이더랍니다. 그런데 아내는 그날 남편이 떼어준 빵을 받아 들더니 “이제는 참고 싶지 않아요. 이 굳은 부분은 내가 아주 싫어해요”라고 말을 꺼냈답니다. 남편은 식빵을 먹을 때면 언제나 빵 테두리의 딱딱한 부분을 아내에게 떼어주었던 것입니다. 물론 아내는 빵의 부드러운 부분을 남편이 좋아하는 줄 알았기 때문에 지금까지 참아왔던 것입니다. 이날 아침까지도 가운데 부드러운 부분만 자기가 가져가는 얄미운 남편에게 지금까지 군소리 한 번 안 하고 살아왔던 것이 버럭 억울하게 느껴진 것입니다. 할머니가 다 된 아내는 금혼식까지 치른 마당이고 저만치 자식들도 있겠다, 더 이상 겁날 것이 없다는 투로 솔직하게 속내를 드러내고야 말 태세였습니다. 그 말을 들은 남편이 “아, 그랬던 거요? 진작 말하지. 나는 실은 부드러운 부분이 싫었는데…. 나는 딱딱한 테두리를 좋아하지만 맛있는 부분을 사랑하는 당신에게 먼저 주었던 거요”라고 말했습니다. 결혼 초부터 아내에게 먼저 권한 것이 이렇게 50년이 여일하게 흐른 것이었습니다. 식빵의 음양 조화를 이들은 매일 아침 이렇게 맞추던 것이었습니다.
이 이야기 어떻게 들리세요? 남 보기에 아무 문제가 없는 듯한 두 사람의 오랜 조화는 남편의 이런 배려와 아내의 참을성으로 가능했던 것입니다. 참으로 합合이 든 부부라고나 할까요. 그럼에도 두 부부 사이에는 무언가가 빠져 있었던 채로 살아왔다고 보이지 않으세요? 예부터 남편은 하늘이라 하여 믿고 따르던 시절이어서 그랬을 수 있습니다. 사실 간단한 것을 너무도 오래 참아낸 것이지요. 서로 솔직하게 대화를 했더라면 평생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떼어서 그 부분을 싫어하는 상대에게 주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이 부부는 알고 보면 더 즐길 수 있는 인생을 식빵 외에도 많은 부분을 놓쳤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겉으로 보기 좋았던 것이, 어이없는 희생이나 진심을 가린 채 만들어낸 조화였던 것입니다.
‘대화’라는 것을 어떤 사람은 날씨 좋은 날 큰 배를 타고 수상 여행을 하는 것에 비교했습니다. 부드럽게 떠가서 거의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육지에서 차차 멀어지므로, 아주 멀어지고 난 다음에야 비로소 해안이 저 멀리 보이는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너무나 적절한 비유입니다. 사실 알고 보면 사람 간, 관계 지음의 근본은 대화일 것입니다. 그것으로 막힌 것을 트이게 하고 가려진 것이 걷히게 되어 통하게 되는 것이지요. 가장 심각한 문제는 대화의 상실에 있을 수 있습니다. 한편 들으려 하지 않거나, 아니면 침묵을 배경으로 한 균형은 언젠가는 깨질 것이며, 따라서 건강하지 않습니다. 서로 마음이 맞는 생활의 비결은 솔직한 대화를 통해 관계와 생활을 조화시켜나가는 것이 기본일 것입니다. 가만히 보면 사람들은 자기가 갖지 않은 것을 가진 사람을 좋아합니다. 예컨대 눈이 나쁜 사람은 눈이 좋은 사람을, 이가 빼뚤거리는 사람은 치아가 가지런한 사람을…. 인간은 자기가 갖지 않은 것, 자기에게 부족한 것을 상대를 통해 보완하려는 경향이 짙다고 합니다. 그래서 생물학적으로는 상반되는 것이 더 일치시킬 조건이 되고, 조화되지 않는 것이 가장 아름다운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요소일 수 있다고 합니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그렇게 상반된 배우자를 선택해놓고도 자기 관점에서만 상대방을 보는 아이러니 또한 갖고 있지요.
결투를 각오한 할머니는 예상을 뒤엎은 할아버지의 대답에 전의를 상실하셨겠지요. 그동안 몰라준 남편의 진정성과 어리석게 참아낸 억울함에 마음이 어땠을까요? 저는 그 뒷얘기는 못 들었지만 할머니가 우셨을 것 같아요. 감동으로 뭉클해진 두 부부는 더 오래, 더 금실 좋게 사셨을 거라고 믿습니다. 그렇지만 서로 맛없는 부분의 빵을 먹고 만 잃어버린 세월은 어찌해야 하나요? 너무 늦었잖아요.
‘조화는 무릇 무패자로 만든다고 합니다. 그러나 말할 수 있는 용기는 승리자를 만든다고 합니다.’
우리 솔직하게 말하면서 살아요.
추신 ; 문제는 이런 폭탄선언이 있은 후에도 할아버지는 다정한 빵 나누기를 하실까요? 자신의 선심을 오랫동안 제대로 받아오지 않았다는 점에서 할아버지도 마음이 깨졌을 것 같아요. 그게 걱정되어요.에이, 그러니까 처음부터 할아버지가 ‘이 부분을 내가 제일 좋아하는데 당신에게 양보를 하오’ 했다거나, ‘저는 가운데를 좋아하거들랑요’ 하는 할머니의 솔직한 대화가 필요했다니까요. 진작 말해야 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