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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05월 봄날 (이영혜 발행인)


봄날에 시를 써서 무엇해
봄날에 시가 씌어지기나 하나
목련이 마당가에서 우윳빛 육체를 다 펼쳐 보이고
개나리가 담 위에서 제 마음을 다 늘어뜨리고 진달래가 언덕마다 썼으나 못 부친 편지처럼 피어 있는데
시가 라일락 곁에서
햇빛에 섞이어 눈부신데
종이 위에 시를 써서 무엇해
봄날에 씌어진 게 시이기는 하나 뭐.
- 나해철의 ‘봄날과 시’


도대체 이렇게 시를 쓰는 시인은 어떤 분일까요?
어떻게 이렇게 쉽고도 적절한 단어들을 엮어서 단 몇 줄로 봄의 풍경을 한눈에 확 풀어놓을 수가 있을까요?
이 시를 소개한 이경철 문학평론가 선생님과 이런 면을 준 중앙일보에 감사드립니다.
마치 제 시가 당선되면 해야 할 것 같은 인사말이 절로 나오는 것은,
시집 한 권 손에 들어본 지가 아득한 제가 어디 가서 이 시를 만나겠나 싶어서입니다.

우리 눈앞에 보이는 것과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 사이에는 기묘하다고 말할 수 있는 상관관계가 있다고 합니다.
때때로 큰 생각은 큰 광경에서 나올 수 있고, 새로운 생각은 새로운 장소가 필요한지도 모릅니다. 어떤 풍경을 바라보다 보면 파편처럼 흩어졌던 생각도 다시 모이고, 잃었던 꿈도 다시 살아날 수 있고, 불현듯 새로운 생각과 만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길을 떠나 여행을 하고, 계절이 바뀌면 더 새로워하는 것인가 봅니다.
이번 봄은 저에게 또 다르게 다가왔고, 제법 어떤 믿음을 갖게 했습니다.
강해야 살아남지만 부드러움이 없으면 삶의 매력과 살아야 할 이유가 없다는 말을, 봄날이 확실히 깨닫게 했습니다. 어쩌면 겨울을 강하게 견뎌야 했던 이유는 이렇게 시인이 시를 쓸 수도 없게 아름다운 봄을 피울 작정을 품고 있었기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이제 어떤 겨울도 지리해하지 않으리라 생각했습니다.
어떤 어려움도 가치가 있는 것이고, 어떤 하찮은 것이라도 의미를 찾아내겠다 하는 의젓한 생각을 했습니다.

독일 친구가 자기 나라를 방문한 이탈리아 친구를 어느 성당에 데려가서 그 성당이 유럽에서 두 번째로 큰 성당이라고 자랑했답니다. 그 독일 친구가 이탈리아를 방문했을 때, 이탈리아 친구는 어느 성당에 데려가서 자기 고장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당이라고 소개했다고 합니다. 이웃한 나라여서 더 예민하게 싸우는 두 나라 간의 표현 차이이기도 하고, 가치의 다름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이야기입니다. 내가 가진 것, 내가 보는 것, 내가 맞은 시간은 모두 가치와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남과 다른 조건들입니다. 우리의 미래를 위해서 잘 해석해두어야 할 현재일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해서인지 활짝 핀 봄이 벌써 지나갈 것을 더욱 아쉬워하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