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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04월 제15회 서울리빙디자인페어 (이영혜 발행인)


“이번 호 몇 페이지에 나온 기사의 사진에서 본 건데요,
그거 어디서 사면 되나요?”
“네? 잠깐만요.
네, 제가 그 페이지를 펼쳤는데 어떤 걸 말씀하시나요?”


“오른쪽 사진의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는 소품인데요.”
“아, 네. 이걸 말씀하시는 거군요.”
“그거 어디서 얼마에 파는지 알려줄 수 없나요?”
“글쎄요….”
“그것 좀 그분 댁에 물어봐서라도 알려줄 수 없나요? 어디서 샀는지…. 꼭 좀 알려주세요.”
“아, 네. 그럼 전화번호 알려주세요. 그분께 여쭙고 다시 알려드릴게요.”
<행복이 가득한 집>이 발행되고 며칠 뒤쯤이면 어김없이 편집부에 이런 전화가 하루에도 몇 통씩 오곤 합니다.
때론 담당이 아닌 기자가 받기도 하고, 취재를 한 곳에 전화를 걸기도 해야 하고, 그분이 안 계시기도 하고, 계셔도 그분의 기억이 가물거리고, 기억난다 해도 구입한 곳의 연락처를 알아내야 하고, 또다시 독자한테 알려드려야 하고…. 사소한 이 질문에 대답하려면 여러 회로를 거쳐야 합니다. 이렇게 호기심 많은 열성 독자들을 위해 ‘이런 것들을 실제로 다 모아놓고 보여드리면 어떨까’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어느 날 아침이었습니다. 출근을 하려고 아파트를 나서서 누군가를 그 자리에서 기다려야 했습니다. 아파트 맨 아래 출입구로 사람들이 줄줄이 나오고 있는 것을 그저 바라보다가 갑자기 놀라운 느낌에 사로잡혔습니다. 평형대가 달라도 어느새 우리는 거의 똑같은 구조의 아파트에 살게 되고, 입주 때 이미 다 발라져 있는 똑같은 벽지, 똑같은 부엌, 똑같은 욕실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저도 그리고 저 사람들도 그 전날 밤 똑같은 벽지의 천장을 바라보며 공상하다가 잠이 들고 꿈을 꾸었던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리고 서둘러 각자의 일터로 간 우리 중 물건을 만들고, 그런 우리 중 새로운 아이디어를 요구받고, 그런 우리 중 누구를 가르치고… 이렇게 획일적일 수밖에 없는 환경 속에 살면서 어떻게 남다른 생각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그날 아침에 강한 질문을 던져주었던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당시에는 독자들이 어찌나 이사를 자주 다니는지 반송되어 오거나 주소지가 바뀐다는 전화가 아주 많던 시절이기도 했습니다. 정말이지 우리는 주거지를 그저 평당 가격으로 만들어낸 재화의 용도로만 살고 있었고, 더 유리한 곳으로 이사 갈 채비를 하느라 전국이 안정감이 없었습니다. 어쩌면 그때는 많은 사람들이 마음으로도 인생을 임시로 살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기획을 하고 시작한 것이 ‘서울리빙디자인페어’입니다. 이것은 ‘생활을 디자인하면 행복이 더 커진다’는 우리 매체의 슬로건을 실현시켜주기에도 적절했습니다. 아니, 그보다는 차분하게 ‘영원처럼 지금을 살자’는 다른 형태의 제안이라 해도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가정 家庭이라는 단어는 ‘들판’과는 다르게 부르는 ‘정원’처럼 꽃밭을 가꾸는 정원사가 있어야 한다는 뜻일 것 같습니다. 커튼, 가구, 전자제품 등을 가지고 어떤 느낌의 정원을 만들까 생각하고 선택하는 의지가 ‘가정’의 매력도입니다. 이제 우리는 많이 달라졌습니다. 다른 벽지의 천장을 보고 남과는 다른 생각을 이어가고 남과는 다른 꿈을 꾸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우리나라가 경쟁력 있는 제품을 개발하기 시작했고, 그러한 우리를 세계가 인정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발전은 남다르고 까다로운 소비자의 요구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집 안’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믿습니다. 누구든 글씨를 배울 때는 잘 쓴 사람 것을 베끼는 연습을 합니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자기 것이 만들어지는 법입니다. 그런 경험을 열심히 해내지 아니하고 자기 세계를 처음부터 만든 작가가 없는 것처럼 말입니다. 호기심 많은 몇몇 독자들이 우리를 자극했고, 그분들이 자신의 가족을 남다르게 만들었으며, 사회에 그 가족을 내보내기 시작했으니 그분들이 바로 세계적 경쟁력을 싹틔운 것입니다. 이제 물질의 시대가 가고 정신의 시대가 도래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물건 하나라도 어떤 생각으로 사는가를 확실하게 질문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볼륨 volume이 아니라 밸류 value, ‘사치’가 아니라 ‘가치’에 답변하는 상품만 살아남는다는 뜻이기도 하며, 투자의 항목을 더욱 선명하게 가늠하는 시대가 펼쳐진 것입니다. 남다른 감각과 차별화된 품질로써 새로운 가치를 창조해내는 인테리어 관련 용품들의 각축장인 ‘서울리빙디자인페어’는 그 어느 때보다 가족을 행복하게 지켜야 하는 조용하고 따뜻한 의지를 가진 ‘가정 정원사’들을 위한 것입니다. 봄이 바빠야 가을이 넉넉한 법이라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