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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03월 측천무후 (이영혜 발행인)


“아, 이 양반 팔십둘에 돌아가셨네.”
“누가 돌아가셨어요?”
“측천무후.”
“에잉? 누구?”
잠시 그가 누구인지 생각하다가 거의 화를 내면서 되묻는 우리 어머니.
“그 양반이 우리 친척이나 되우? 나한테까지 부고장 돌릴 일 있수?”
최근 눈도 어두워지면서 더욱 향학열(?)에 불타는 아버지께서는 역사 소설을 읽어주는 테이프를 구하셔서 틈만 나면 리시버를 귀에 꽂고 들으십니다. 그러다가 측천무후가 돌아가셨다는 대목에서 리시버를 귀에서 빼 들고는 우리를 향해 난데없이 말씀을 하신 것이었습니다. 주변 누군가의 부음을 가끔 듣게 되는 어머니는 이번에는 누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일까 섬뜩해서 되물으셨던 것이었습니다. 대답인즉슨 8세기 초에 돌아가신, 그것도 중국의 여제 측천무후인 것을 알고는 어이가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곁에서 배를 잡고 웃었습니다. 웃다가 가만히 생각해보니 측천무후(624~705) 돌아가신 연세가 지금의 아버지 나이였던 것입니다. 이 부분이 예사롭지 않게 와 닿았던 것이지요. 어머니와 아버지의 대화는 그래도 우리를 너무나 웃게 만들었습니다. 어머니는 거들던 부엌일에 손을 놓지 않으면서 “저 양반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고 남의 나라 역
사 속에서만 노시니 원…” 하고 끌탕을 하시고, “저, 저, 저… 에이. 저렇게 현실에만 급급하게 사니 무슨 인생이야….”라며 연극에서처럼 서로 다 들리게 하되 혼잣말처럼 하면서 아버지는 다시 리시버를 꽂으시는 것이었습니다.
아버지는 평생 못 하나 박아보지 않으신 분입니다. 못 한번 박아주기를 소원하는 엄마 때문에 망치를 잡으셨다가는 끝내 짧고도 굵은 비명 소리를 듣게 되고, 며칠을 까맣게 멍든 손톱의 아버지 시중이 늘어나기에 어머니는 그런 소원 접으신 지 오래입니다. 그래서 현실의 바쁜 몫을 다 짊어진 어머니 입장에서 아버지는 아주 비현실적인 사람입니다. 같이 살아도 그렇게나 다른 두 사람은 매사에 마치 닭싸움을 하듯이 맞붙었다가 금세 자신들의 일상으로 돌아가곤 합니다. 그래도 최근의 싸움 중에서는 가장 압권이어서 그날 내내 측천무후는 우리의 화제였고 히죽히죽 웃게 했습니다.

이번 경제 위기는 마치 봄맞이 대청소를 해야 하는 것과 같다고 합니다. 도덕적인 면에서나 물질적인 면에서나 일대 청소가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대청소는 자칫 엄청 어질러놓고 수습을 못하면 대단히 난감한 처지에 놓이므로, 누구라도 바로 빗자루를 잡지는 않습니다. 어디를 어떻게 할까, 버리려고 했던 저 물건을 지금 버릴까? 어디다 다시 배치할까? 저건 왜 사두었을까? 꼭 필요한 것일까? 이 기회에 그건 하나 꼭 장만하자…. 평상시와는 다른 눈으로 집 안을 둘러봅니다.
이 세계적인 경제 위기는 대청소에 대해 궁리하는 것처럼, 지금까지의 살아온 방식과 그간에 믿었던 가치를 다시 바라다 보라고 우리를 잠시 멈춰 서게 만든 것이랍니다. 그것도 전 우주적 요구가 있기 때문에 드라마틱하게 충격을 주어서라도 이 세계를 깨우고, 다시 잘살게 할 것이라는 해석은 아주 위로가 됩니다. 무엇보다 잃어버렸을지도 모르는 균형을 찾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합니다. 이 시간을 잘 보내면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의 가치, 내가 사는 이유’에 대해 훨씬 다른 느낌을 갖게 될 것입니다. 대청소를 한 뒤의 상쾌함처럼 말입니다.


저의 대청소는 방향잡기가 쉽습니다. 좋은 모델 두 분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꼭 반씩만 닮으면, 아니 반씩만 섞으면 크게 어긋나지 않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