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많이 쓰는 말이 ‘마음’이라고 한다. 그러기에 마음을 얻는 것이 천하를 얻는 일이요, 마음을 세우는 것이 나를 세우는 일이라 했던가. 이러한 마음을 전하고 마음을 얻고 마음을 간직하는 데 시詩만 한 것이 있으랴. 마음을 들여다보고 마음을 고르고 마음을 세우는 일은 시심詩心, 그러니까 시의 마음에 가깝다. 마음의 맨 윗길에서 가장 말갛게 제 스스로를 비추고 있는 것, 마음의 맨 밑바닥에서도 찰랑찰랑 물기가 마르지 않는 것, 그것이 시의 마음이 아닐까.
우리가 ‘시적’이라거나 ‘시인 같다’고 할 때를 생각해보자. 아마도 아름다움이나 놀람, 설렘이나 황홀, 충일 등이 동반한 때일 것이다.
감동이나 기도의 순간일 것이다. 이런 시의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기에 그것을 처음 교감하게 되는 것은 대부분 가족이 된다.
두 돌배기 아이는 생일 축하 노래를 좋아한다. 누군가의 생일 다음 날이면 어김없이 종일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른다. 부를 때마다 ‘OO의 생일을 축하합니다’에서 OO를 바꿔 부르곤 한다. 엄마, 아빠, 할머니, 친구들, 그러다 냉장고, 딸기, 나무, 모래까지도…. 아이는 눈을 반짝이며 보이는 것마다 반갑게 생일을 축하해준다. 안녕! 안녕! 세상을 향해 최초의 말을 건네듯. 그 아이의 마음이 바로 시심이다.
말문이 트인 아이는 어느 날 선언한다. “엄마, 오늘부터 엄마는 아지, 아빠는 끼리, 언니는 콩콩이, 나는 밍밍이야. 이제 그렇게 불러야 돼, 꼬옥~.” 또 어느 날은 이렇게 선언한다. “오늘부터 식탁은 구름, 의자는 나무, 밥은 흙, 반찬은 소라라고 해야 돼, 알았지?” 시인이란 세상의 관계를 새롭게 맺어주는 자이고 세상에 새롭게 이름을 부여해주는 자가 아니던가. 때로는 정말 시인인 척 그럴싸한 표현을 쓰기도 한다. 대소변 훈련을 시킬 즈음, 아이는 하얀 오리 변기에 똥과 오줌을 싸고서는 엄마를 부른다. 그러고는 의기양양하게 말한다.
“엄마, 내가 달님 오줌, 별님 똥을 눴네.” 글자를 쓰기 시작한 아이가 삐뚤삐뚤 쓰는 문장 하나하나가 죄다 시다.
파란색을 동그랗게 칠해놓고 이렇게 쓴다. “달님이 연못을 보고 있어요.” 빨간색을 동그랗게 칠해놓고는 또 이렇게 쓴다. “햇님이 꽃을 키워요.” 그러고는 제법 시다운 형식을 갖추기도 한다. “내 동생은 내가 가지고 노는 것만 가지고 논다./ 엄마는 그런 줄 모르고 동생만 안아준다./ 이뻐해줄까? 엄마 몰래 꼬집어줄까?”(<내 동생>) “자박자박 걸으면/ 사각사각 소리 남고// 뚜벅뚜벅 걸으면/ 서걱서걱 자국 남고// 그러다가 파도 오면/ 모래밭은 하얀 백지장.”(<모래밭>)
우리 아이만의 얘기가 아니다. 평범한 아이들 얘기다. 아이의 마음이 시인의 마음이고 그 아이들의 눈이 시인의 눈이다.
엄마 마음이나 아빠 마음, 언니 동생의 마음은 또 어떤가. 그 마음들과 눈들이 교감하고 발현되는 곳이 가족이다. 기쁠 때나 슬플 때, 힘들 때나 사랑을 전할 때 시의 마음을 빌리지 않던가. 그때마다 우리는 그럼에도 우리 삶이 살 만한 것이고 그 삶의 마디마디가 소중하고 벅찬 순간들임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시는 우리 삶의 알파나 오메가 그 자체는 아니다. 그러나 우리 삶을 플러스 알파로, 플러스 오메가로 만들어주는 마법의 요체다.
가족의 발견, 거기서 비롯되는 생활의 발견, 행복의 발견, 사랑의 발견이 시의 마음과 멀지 않다. 시는 결코 몇몇 시편의 속성만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세상을 마주하고 들이마셨던 ‘그 누구’ 혹은 ‘그 무엇’의 영혼 속에 있는 지평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매일 매일 시에 가까이 있다. 매일 매일 시를 발견하는 가족, 매일 매일 시를 읽는 가족, 그리하여 매일 매일 시를 사는 가족, 그들이 바로 이 세상의 알파요 오메가이다. 가족이야말로 마음이 통하는, 아니 통해야만 하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오늘도 시라는 ‘깨지기 쉬운 질그릇’에 마음을 담아 건넨다. 그 마음이 조급과 조갈이 든 우리 삶에 한 편의 생수生水, 아니 생시生詩가 아닐는지. 글 정끝별(시인)
바람기도 없이 정수리에 쏟아 붓는 햇살에 마음까지 노곤해지는 여름입니다. 이런 날엔 더더욱 시를 읽어야 한다고 말하고 싶어집니다. 소월시문학상을 받은 정끝별 시인은 입에 착착 붙는 우리의 시로 마음의 더위까지 밀쳐낼 수 있다고 전합니다. 아이의 마음이 곧 시의 마음이고, 시의 발견이 곧 가족의 발견이라는군요. 그의 말처럼 이 더운 삶에 장대비가 아닌 보슬비로 시가 우리 맘에 오셨으면 좋겠네요. 그는 얼마 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시 100편’이라는 부제가 붙은 <어느 가슴엔들 시가 꽃피지 않으랴> (정끝별?문태준 공저, 민음사)라는 시 모음집을 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