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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07월 엄마의 50돌은 ‘전반전’ (서형숙 님)

 

지난 석가탄신일은 내 50돌이기도 했다. 살면서 인류 구원을 한 인물도 아니니 해마다 꼬박꼬박 찾아오는 생일이 뭐 그리 대단하랴. 우리 가족에게 생일이란 애틋한 카드 한 장으로 서로의 마음을 전하면 충분했다. 그래도 50돌은 좀 특별했던지 남편과 아이들이 며칠 머리 맞대고 꾀를 보태 <서유난 여사 일대기-전반전>이란 근사한 사진집을 만들어 선물로 내놓았다. 케이크 안엔 보석 선물도 들어 있었는데 그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50년 삶의 흔적을 샅샅이 뒤져 찾아낸 기상천외한 사진과 글로 가득한 비망록이라니…. 한 장 한 장 들춰보며 감격하고 있는데 정작 그 작업을 함께 하는 동안 아빠와 아이들이 더욱 행복했단다. 후일담을 들으니 나도 덩달아 신이 났다. 온 집 안을 헤집고 다니는 엄마의 눈을 피해 비망록 만들기는 스파이 게임 수준이었고, 불쑥불쑥 나타나는 엄마를 따돌리려 스물둘·스물네 살 두 아이와 아빠가 눈짓과 수화를 무수히 날리며 벌여야 했던 작전은 스릴 만점이었겠다. 50년을 기록한 많은 사진 가운데 이거다 싶을 때마다 “심봤다”를 연발했을 그들, 정말 행복했겠다.

 

3년 전, 남편의 50돌을 준비하며 내가 아이들과 누렸던 바로 그런 거다. 컴퓨터에 ‘아빠의 50돌’이란 창을 띄워놓고 일주일 동안 내 남편이자 아이들 아빠의 일생을 써 넣었다. 따로 혹은 함께 했는데 역시 놀이든 일이든 같이 하는 게 훨씬 더 재미있다. 장난꾸러기 아빠 일화 찾아내기에 서로 열을 올리다 너무 웃어서 눈물이 앞을 가릴 때가 많았다. ‘외모, 성격, 주특기, 첫인상, 기억나는 말 한마디, 우리가 전하고 싶은 인사’를 차례로 더듬다가 아이들이 그랬다. ‘아빠야 우리 첫인상을 기억하겠지만 갓 태어나 경황이 없던 우리에겐 무슨 기억이 있냐’는 거였다. “그래, 그러니까 가장 어릴 때 기억을 떠올려봐.”
긴 시간을 들여 아이들은 아빠와의 첫 만남을 찾아냈다. 서사시 같은 긴 두루마리 카드를 만들어 선물할 수 있었다.


이렇게 우리 가족은 찾기 놀이에 열중하며 행복할 수 있었다. 신혼 때 남편과 난 경제적으로 궁핍했던 학생 부부여서 돈 없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마주 보며 웃기, 껴안기, 칭찬하기 등 무궁무진했다. 걱정은 걱정을 불러 모으고 지혜는 지혜를 불러 모은다더니 정말 그랬다. 날이 갈수로 지혜가 저금처럼 켜켜이 쌓였다. 작은 마음 나누기에 충실하다 보니 자연스레 비망록이나 두루마리 카드 같은 50돌 선물을 할 수 있었고, 받을 수 있었다. 선물받는 사람보다 준비하는 이가 더 행복한 것은 만드는 시간만큼 누리기에 그렇다. 그래서 선물을 듬뿍 받은 내 50돌보다 남편의 50돌이 더 짜릿했다.


우리 부부는 언제나 지금 이 순간을 누리며 행복할 수 있다. 팔순 할머니가 보기에 칠순 노인이란 얼마나 좋을 때이며 부러운 ‘새댁’인가. 젊은 날에 아이를 업고 대학원을 드나든 덕에 그 진리를 일찍 깨칠 수 있었다. 아기를 달고 학교 다니지 않는 학생들은 얼마나 편하며 좋을 때인가. 반면 더 나이 든 이들이 나를 보면 아기 기르는 때란 얼마나 좋을 때인가. 젊음 하나로도 부럽기 그지없을 것이다. 그걸 깨치자 인생이 달라졌다. 오늘에 집중할 수 있었고 지금 갖고 있는 것에 감사할 수 있었다. 내가 고른 남편이 언제나 내 곁에서 잠들고 눈 뜬다.

자고 나면 시들지 않는 꽃, 아이가 내 곁에서 살 냄새 풍기고 있다. 그것만으로도 황홀하여 더 좋은 집, 큰 차, 나은 직장에 목매지 않고 행복에 겨울 수 있었다. 이런 날들이 촘촘히 엮여 우리 삶이 된다. 그건 학식도 돈도 필요 없어 누구나 맘만 먹으면 누릴 수 있는 것이다.
팔십을 바라보는 한 유명 작가는 지나온 인생을 더듬어보니 행복한 기억이 반나절거리도 안 된다며 안타까워하더란다. 정말 그런가? 별처럼 많은 날들이 우리에게 주어지는데…. 내게 행복한 기억이란 말로 다 할 수 없도록 많다.

 

그렇지요. 살 냄새, 땀 냄새, 눈물 냄새 몰씬 풍기는 가족이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에 겨울 수 있습니다. 그 가족 옆에서 먹는 나이라면 쓸쓸할 것도, 서러울 것도 없지 않을까요? 북촌 계동 한옥에 ‘엄마 학교’를 열어 아이와 함께 행복하게 나이 먹는 법을 전하는 ‘프로 엄마’ 서형숙 씨가 특별한 선물 이야기를 보내왔습니다. ‘탄생 50돌’에 받은 그 선물은, 바로 ‘함께 살아줘서, 함께 살아줄 것이어서 고맙다’는 표창장, 감사패, 위촉장 같은 것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