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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06월 ‘음악에 음식 더하기(임진모 음악평론가 )


 

불평을 잘 늘어놓지 않는 아내가 가끔 소망인지 불만이지 모를 소리로 혼자 넋두리를 하곤 했다. 사실 들으라고 하는 소리다. “몇 개월이라도 좋으니 꼬박꼬박 월급을 받아봤으면 한이 없겠다!” 솔직히 월급은 음악평론가와 같은 프리랜서에게는 아득한 단어다. 아내한테는 미안하다. 월급은 액수를 떠나서 살림하는 아내에게는 한 달의 그림을 그릴 수 있게 해준다는 장점이 있다. 들쑥날쑥한 프리랜서의 통장은 짜증이 날 것이다. 스케줄을 늘려 박리다매로 열심히 뛰면 그달에는 좋을지 모르지만 당장 다음 달 ‘오버’의 후유증이 나타나 일을 줄이게 되고, 그러면 아내는 한숨을 쉰다. 기자생활을 치우고 음악평론으로 전업한 뒤 16년 동안 이런 상황은 어김없이 반복되고 있다. 새 천 년에 들어서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프리랜서의 장점을 찾아야 했다. 음악을 사랑하는 데 방해하지 않으면서 가정에도 도움이 될 만한 것!

그러다가 간혹 해오던 음식 만들기가 퍼뜩 머리를 스쳤다. 한번 제대로 음식을 만들어 그럴싸한 상을 차리는 일로 아내의 일을 덜어주자. 처음에 아내는 ‘내 자리를 빼앗지 말라’고 했다. 하지만 아내가 집을 비울 때 하나씩 하나씩 음식의 세계에 도전해나갔다. 음식 만들기가 재미있고 의미 있는 것은 만드는 사람에 따라 다양한 결과물을 창조할 수 있다는 데 있다. 달걀 하나만으로도 수도 없는 요리가 가능하다. 계란말이, 계란찜, 계란 입힌 호박전, 계란프라이 등등.
결정적으로 요리에 흥미를 갖게 된 것은 우리 음식의 오묘함 때문이다. 한국 요리는 파 하나를 보더라도 그것을 써는 방식이 제각각 다르다. 설렁탕에 넣는 파, 찌개를 끓일 때 넣는 파, 국물을 낼 때 넣는 파 등등 어떤 경우는 굵게, 때로는 가늘게, 어떨 때는 옆으로 썰어야 한다. 국물을 내는 것도 취향에 따라 가지가지다. 다시마와 멸치를 이용해야 좋을 때가 있고, 파뿌리를 씻어 말린 것으로 국물을 내도 시원하다. 경험이 쌓이다 보니 식구들의 칭찬도 비례한다. 고등학생인 딸아이는 “생태탕은 아빠가 끓여주는 게 최고야!”라고 치켜세우기도 한다. 이력이 붙으면서 음악과 음식을 비교하게 되었다. 평소 ‘음악평론은 음악가에 대한 서비스’라는 주장을 펴지만 결코 음악을 만드는 사람의 세계를 헤아리지 못한다. 평론은 어디까지나 완성된 음원과 앨범을 듣고 평하는 2차 직업이다. 1차는 무조건 음악을 만드는 사람의 몫이다.

요리를 통해 음악을 만드는 즐거움이 다름 아닌 ‘실험’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음식이란 것이 요리사의 취향과 의중이 반영된 실험에 따라 천차만별의 결과가 나타나듯 음악도 음악가의 접근 방식과 도전에 의해 그들의 개성과 독자성이 구현된다. 사실 실험이 아니면 음악은 의미를 상실한다. 서구 음악계든 국내 음악계든 음악가에게 요구되는 두 가지 축은 자유와 실험이다. 이것이 없으면 설령 엔터테이너는 될 수 있을지언정 아티스트로 대우받지는 못한다.
아직 김치 담그기까지는 성공하지 못했다. 아무리 노력해도 원하는 맛이 나질 않는다. 요리책에 충실히 근거해서 손으로 배추와 양념을 버무려도 7년의 요리 경력이 허송세월처럼 느껴진다. 그렇지만 아내가 자리를 비워도 남은 식구들이 굶지 않게 된 것은 다행이다. 언제든 빠른 시간 내에 나물을 무치고 국, 찌개를 대령할 수 있으니까. 간혹 ‘음식과 음악을 묶어 얘기해달라’ ‘요리 프로에 나와달라’는 방송 관계자들의 요구에 아직은 내공 부족을 들어 사양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도전해보고자 한다. 심지어 아내도 용기를 내 출연해보라고 한다.


요리할 때는 한없이 자유롭다. 또한 아기자기한 실험을 벗해서 포만감도 누린다. 게다가 식구들이 즐거워하니 뿌듯하다. 새벽에 출출하면 안주를 만들어 아내와 술을 마신다. 한 잔도 못하지만 아내는 늦은 시간까지 옆에 앉아준다. 취기 때문에 당연히 아침에 일어나는 시간은 늦어진다. 7시면 벌떡 일어나야 하는 월급쟁이는 엄두도 내지 못할 일이다. 잠을 깨우는 아내의 한마디. “음식 만들어 먹고, 늦게 일어나고, 이래서 프리랜서가 좋은가 보네.” 음악에 음식이 더해지면서 나의 삶은 업그레이드되었다.

음악 인생에 요리 경험이 끼어드니 음악의 풍미가 진해졌습니다. 아직 김치 담그기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음식 창조’의 과정 덕분에 작곡가의 입장으로 음악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각종 매체와 음악 전문 사이트(
www.izm.co.kr)를 통해 음악을 더욱 진하게 사랑하는 길을 안내해주는 음악평론가 임진모 씨의 6월 에세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