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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6월 6월 5일 환경의 날, 21세기판 황건적의 난을 걱정하며

황건적의 난으로 혼란스럽던 후한 말, 유비·관우·장비가 의기투합해 형제의 의를 맺은 도원결의는 <삼국지연의>의 출발점이자 백미다. 세 사람이 의용군을 모아 황건적 토벌에 나서면서 <삼국지연의>는 막을 올린다. 

 

<삼국지연의>는 황건적을 살인, 약탈, 방화를 일삼으며 세상을 어지럽히는 도적 떼로 묘사한다. 하지만 실제 황건적은 농촌에서 소박하지만 행복한 삶을 살던 농민과 그들의 자손이었다. 황건적의 우두머리 장각 역시 태평도라는 정통성 있는 도교 분파의 지도자였다. 

 

사실 한나라는 탄탄한 사회복지 제도를 운영하던 왕조였다. 한나라의 법령은 노인이나 고아, 환자, 빈민 등에 식량과 의복·의료 지원 등을 제공하고, 전란이나 자연재해가 일어난 지역에 구휼 활동 등을 명문화한 조항을 포함했다. 이를 실천에 옮긴 주체에는 한나라의 조정이나 지방정부뿐만 아니라, 농촌공동체도 포함되어 있었다. 한나라 농민들은 어려운 일이 닥치면 관아의 지원을 받아 상부상조하며 어려움을 극복했고, 곤경에 빠진 사람들을 도와주었다. 즉 한나라는 일반 백성, 심지어 고아나 배우자를 잃은 사람 등 어려운 처지에 빠진 사람조차 최소한의 행복을 누릴 수 있게끔 보장하던 나라였다. 그랬기에 한나라는 전한과 후한을 합쳐 4백20여 년을 지속할 수 있었으리라. 

 

이 같은 한나라의 사회복지 제도는 기원후 2세기 중반부터 무너지기 시작했다. 이 무렵 중국의 기후가 한랭해지면서 농업 생산성이 큰 타격을 입었기 때문이다. 흉작이 이어지니 농촌공동체는 무너졌고, 한나라 조정과 지방정부 역시 이들을 도울 여력을 잃었다. 농민들은 정든 고향을 떠나 유리걸식했고, 심지어 산적으로 전락하기까지 했다.

 

이때 등장한 인물이 태평도의 지도자 장각이었다. 장각이 베푼 태평도의 가르침과 식량, 의술 등은 도탄에 빠진 한나라 백성에게 행복한 세상에 대한 희망을 주었다. 그런데 태평도의 세력이 커지면서, 이어진 불행 탓에 한나라 조정에 대한 적개심을 키운 신도들은 한나라를 무너뜨리고 새 세상을 세우려는 황건적으로 변하고 말았다. 기후변화가 불러온 흉년은 백성의 행복은 물론, 결국에는 한나라의 생명마저 빼앗고 만 셈이다. 

 

오늘날 기후위기는 이미 일상으로 다가왔다. 당장 올봄만 보더라도 이상하리만치 일찍 핀 봄꽃 때문에 봄꽃 축제를 망치는가 하면, 이어진 4월에는 이상저온현상으로 손해를 본 농민들도 생겨났다. 어느 나라에서는 이상 고온으로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는 보도도 나왔다. 지리학자로서는 절대로 가볍게 볼 수 없는 문제다. 열대, 온대, 한대 등과 같이 땅을 구분하는 중요한 기준인 기후는 지리학의 핵심을 이루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삼국지연의>는 물론 문명사, 전쟁사 ‘덕후’로 정평이 난 나로서는 이런 문제를 더더욱 가벼이 넘길 수 없다. 사실 인간이 살아가는 공간을 다루는 지리학과 시간을 다루는 역사학은 그 뿌리가 같으며, 19세기 이후 독립된 학문으로 자리매김해왔다. 지리학자의 눈으로 황건적의 난을 살펴보면 후한 황제인 영제靈帝의 무능함이나 십상시十常侍의 전횡 같은 널리 알려진 원인 외에도 후한 말의 기후변화가 겹쳐 보이기 때문이다. 기후 위기가 대책 없이 계속된다면, 머지않아 21세기판 황건적의 난이 일어나지 말라는 보장이 없다. 

 

언론 지면은 AI, 챗GPT 같은 최첨단 기술에 대한 이야기를 대서특필하지만, 아무리 기술과 경제가 발전한들 기후 위기가 이어진다면 우리는 불행해지는 수준을 넘어 생존 자체를 위협받을 것이다. 유비, 관우, 장비가 난세를 바로잡기 위해 도원결의했듯이 우리는 우리와 우리 후손의 행복을 위해 기후 위기 극복을 위한 노력에 나서야 할 때이다. 

 

“마야는 왜 울창한 밀림에서 가물어 사라졌을까?” “유럽인들이 신대륙으로 떠난 진짜 이유는?” “전 세계에 드리운 전염병 공포의 원인은?” 이동민 교수는 인류 역사의 수수께끼를 ‘기후’라는 렌즈를 통해 들여다보는 지리학자입니다. 기후학자가 아닌 지리학자라는 데 방점이 있죠. 지구 공간 전역을 훑어가는 지리학자만의 드넓은 시선을 갖추었으면서, 인류의 시간 전체를 아우르는 역사 덕후의 촘촘한 시선도 지니고 있죠. 그 시선으로 세상을 훑어가다 보니 우리가 마주한 오늘의 위기, 바로 기후 위기에 맞닥뜨리게 되더란 말입니다. 6월 5일 환경의 날을 앞두고 우리는 ‘행복’에 대해 질문했고, 그는 21세기판 황건적의 난과 도원결의로 답했습니다. 지리학의 시각으로 전쟁사와 지구사에 대한 글을 쓰는 이동민 교수는 <기후로 다시 읽는 세계사> <초한전쟁> <서해에서> <지리의 모든 것> 등을 펴냈습니다.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지리 교육 전공으로 교육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가톨릭관동대학교 지리교육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SSCI 등재 학술지 <Journal of Geography> 편집위원입니다.

 

 

글 이동민(지리학자, 가톨릭관동대학교 지리교육과 교수) | 담당 최혜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