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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5월 아들아, 바퀴벌레로 변한다 해도 사랑한다!

최근 인터넷 사회관계망 서비스(SNS)에서 아이들이 부모에게 “내가 갑자기 바퀴벌레가 되면 어떻게 할 거냐”고 묻고, 들은 대답을 포스팅하는 놀이가 유행했다. 부모들이 내놓은 답변은 대동소이했다. 바퀴벌레가 되었다 해도 너를 여전히 사랑하고 아낄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바퀴벌레 행복해지는 법을 유튜브에서 검색할 것”이라든가 “예쁜 바퀴벌레 집을 만들어주고 외출할 때 데리고 다니겠다”는 등 부모들 대답에선 창의성 경쟁 느낌도 났다. 

 

아이들 사이에서 왜 이런 질문을 하는 게 번졌을까? 내가 보기에는 그렇게 묻는 아이의 마음 밑바닥은, ‘엄마 아빠가 원하는 만큼 공부 잘하고 좋은 대학에 가지 못해도 나를 사랑해줄 거지?’라고 확인하고픈 심정이 깔린 것 같았다. 어쩌면 자신이 자랄 때 공부를 못한다면 인정받지 못할까 봐 두려워했기 때문에 그렇게 보였을지도 모른다. 

 

대학 졸업 후 정부가 남미 지역학 분야에 주는 장학금을 받아 브라질로 유학을 갔다. 정부 장학금엔 박사 학위를 못 따면 도로 물어내야 한다는 조건이 달려 있었다. 나는 인류학 박사과정까지 가지도 못하고 석사 논문에 6년을 매달렸으나 한 챕터도 쓰지 못했다. 애당초 포르투갈어 실력이 모자라 대학원 수업을 한 마디도 못 알아듣는 형편이었으니 당연했다. 국비 장학금 받았다고 동네방네 자랑하고 떠나온 유학길이었다. 망신살이 제대로 뻗쳤구나 싶었다. 좌절감과 열패감에 짓눌려 날마다 죽고 싶었지만 차마 죽지는 못했다. 한국에 돌아오지 않고 그곳에 눌러앉아 살기로 결심한 원인으로는 무엇보다 부모에게 큰 실망을 줬으니 남은 인생은 아무렇게나 살겠다는 자포자기한 마음이 가장 컸다. 

 

이국땅에서 이민자로 살다 뼈를 묻을 작정으로 결혼해서 살았는데, 결국은 30대 중반에 한국으로 다시 돌아오게 됐다. 재혼을 했고 하루아침에 여덟 살 사내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오늘부터 내가 네 엄마야”라는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덥석 “엄마”라고 부르며 다가오는 아이를 품에 끌어안으면서 결심했다. 이 아이는 내가 그랬듯이, 사랑받지 못할까 두려워하며 자라지 않도록 보살피는 일에 목숨을 걸겠다고. 

 

아들을 키우면서 엄마 아빠는 너의 모습 그대로가 좋다고 늘 말해주고 칭찬만 해주려고 노력했다. “조금만 더 열심히 한다면, 조금만 달라진다면 참 좋을 텐데” 같은 말은 절대로 입에 올리지 않았다. 트로트 가요 가사처럼 ‘너를 향한 우리의 사랑은 무조건, 무조건’이어야 했다. 비록 네가 살아갈 세상은 모든 것을 두고 점수가 매겨지고 경쟁하는 곳이지만, 엄마 아빠의 사랑을 얻기 위해서는 그럴 필요가 없다고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사랑은 내가 원하는 대로 자식을 빚어내려고 욕심부리지 않는 것, 자식에게 능력 이상을 요구하느라 상처 주지 않는 것이라고 믿었다. 그것이 죽고만 싶었던 우울증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다 살아나 내가 깨우친 유일한 사랑법이었다. 

 

공부 쪽으로는 취향이 아니었던 우리 아들은 지방 대학을 나왔고, 지금은 이발사가 되기 위한 견습 사원으로 일하고 있다. 남의 말 하기 좋아하는 이들은 “자기가 낳은 새끼였으면 어떻게든 공부시키려고 닦달하지 않았겠어”라고 할지도 모르지만 나는 개의치 않는다. 

 

“엄마! 사람 머리 자르는 일 정말 재미있어!”라고 보내온 아들의 문자를 보며 생각한다. 학교나 성적이나 직업에 상관없이 너는 내 인생 최고의 선물이고 축복이라는 한결같은 마음으로 아들을 키운 것, 이것이야말로 아들이 인생을 행복하게 살게 하는 가장 중요한 힘이 될 것이라고.

 

오진영 고매한 철학이나 일대의 발견이 담기지 않은 글인데도 마지막 문단을 읽으며 저처럼 울컥한 분들, 꽤 계실 겁니다. 진심 때문이겠지요. ‘여덟 살 아이가 마흔 살 내 앞에 나타났다. 그리고 인생이 송두리째 바뀌었다!’라는 긴 부제의 <새엄마 육아일기>로 눈을 사로잡은 오진영 작가. 1966년에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인류학과를 졸업하고 브라질 상파울루 주립대학 인류학 석사과정을 수료했습니다. 12년의 브라질 생활을 마치고 귀국한 후 신문사 기자와 잡지사 리포터로 일했고, 포르투갈어 문학책을 번역했습니다. 지금은 재혼으로 만난 남편과 아들과 고양이 한 마리와 함께 삽니다. 옮긴 책으로 <불안의 책> <결혼식 전날 생긴 일> <알레프> <스파이> <지평선> <우리의 이야기는 반짝일 거야> <비 너머>가 있습니다.

 


오진영(번역가, <새엄마 육아일기> 저자) | 담당 최혜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