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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04월 아는게 병이다? (남동철 <씨네21> 편집장)

‘아는 게 병’이라는 말이 왜 생겼는지 알 것 같다. 자판기 커피면 만족하는 저렴한 입맛이던 사람이 에스프레소에 맛을 들이고 나니 황금색 크레마가 없는 에스프레소가 나오면 화가 난다. 한때 청담동 근처를 다니는 사람들만 커피 맛에 그렇게 예민한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다. 맛이라는 게 알면 알수록 까다로워진다. 에스프레소 한 잔 마시려면 회사를 나와 한참을 걸어야 하는데도 가끔 그런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다. 영화 촬영하러 중국의 어느 사막에 가면서 에스프레소 머신을 들고 갔다는 모 감독의 마음이 이해가 된다. 된장녀, 된장남이라 욕해도 어쩔 수 없다. 한번 길들인 입맛은 돌이키기 어렵다.


커피를 안 마시는 사람들에겐 이해할 수 없는 일이겠으나 한국에서 커피 중독자의 삶은 고달프다. 테이크아웃 커피 가게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났지만 에스프레소 머신으로 추출했다고 다 맛있는 커피가 되는 건 아니다. 한번은 에스프레소를 달라고 했다가 그런 건 없다고 말하는 커피 가게를 만난 적이 있다. 모든 커피를 에스프레소 머신으로 만들면서 에스프레소는 없다니 황당해서 말문이 막혔다. 그냥 커피 원액이 나오면 그대로 달라고 해서 들이키고 나니 주인 안색이 좋지 않다. 뭐 저런 걸 한입에 들이켜나 싶었나 보다. 태연한 척했지만 내 안색도 좋지 않았다. 에스프레소가 뭔지 모르는 커피 가게에서 만든 에스프레소였으니 오죽했겠는가. 결과만 보면 에스프레소를 팔지 않겠다고 생각한 주인은 현명했다.
이런 일을 안 당하려면 커피 맛이 일정한 스타벅스 같은 곳을 이용하면 될 텐데 그것도 쉽지 않다. 스타벅스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미안하게도 미국식 커피가 내 입맛엔 맞지 않는다. 게다가 스타벅스 회장이 열렬한 시온주의자Zionist라는 말을 듣고 나서는 발을 들이기가 꺼림칙하다. 내가 낸 돈으로 무기를 사서 팔레스타인과 레바논에 폭격을 가한다고 상상하니까 안 그래도 입에 맞지 않는 커피가 더 쓰다. 비슷한 이유로 캡슐 포장된 원액으로 에스프레소를 만드는 네스프레소도 손이 안 간다.


네스프레소를 만드는 회사 네슬레 역시 친이스라엘 기업으로 알려져 있다. 쓸데없이 생각이 너무 많은 걸 수도 있는데 <88만원 세대>라는 책을 읽고는 생각할 거리가 하나 더 늘었다. 지금 한국 경제가 어떻게 10대와 20대를 착취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이 책을 보면 젊은이들의 고용 불안이 심각해질 수밖에 없는 이유가 드러난다. 스타벅스나 커피빈 같은 대형 커피 체인점을 예로 들면 젊은이가 이런 큰 점포의 주인이 되긴 어렵고 대부분 아르바이트로 일한다. 아르바이트 오래 한다고
사장이 되는 것도, 정규직이 되는 것도 아니니 이런 체인이 잘된다고 고용 불안이 해소되긴 힘들다. 그나마 작은 커피 가게를 창업하는 경우도 스타벅스나 커피빈과 경쟁해야 하니 문제다. 기껏 커피집을 차려도 젊은 세대가 서로 돕는다는 마음을 갖고 이런 점포를 이용하지는 않는다. 스타벅스에 입맛을 들인 사람들은 돈을 더 내더라도 스타벅스를 찾지 이름 없는 커피 가게는 기피하는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나라도 대형 체인점 말고 맛있는 커피를 내오는 작은 커피집을 애용해야지 싶다. 그런 가게가 극소수인 게 문제지만 말이다.

 

영화에도 어느 정도 비슷한 면이 있다. 입맛에 맞는 영화를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웬만한 동네마다 멀티플렉스가 들어서서 예전보다 쉽게 영화를 볼 수 있지만 막상 보고 싶은 영화는 근처 멀티플렉스에서 발견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요즘엔 극장에서 교차 상영이라는 제도를 실시해서 이런 현상이 더 심해졌다. 작품 자체가 좋은 평가를 받았더라도 마케팅 비용을 충분히 쓰지 않는 영화는 조조나 심야 시간만 배정받는다. 개봉 첫 주에 관객이 들지 않으면 바로 간판을 내리기 때문에 입소문이 위력을 발휘할 기회도 별로 없다. 새로 개봉하는 영화가 뭐가 있나 늘 주시하는 영화광이 아니라면 멀티플렉스가 권하는 평균적인 입맛에 자신을 길들이기 십상이다. 그게 편하긴 하지만 커피나 영화나 그렇게 유통과 마케팅에 좌우되는 세상은 서글프다. 어쩐지 주객이 바뀐 느낌이 드는 것이다. 좋은 원두와 바리스타의 기술과 정성이 어우러진 커피집이 입소문을 타듯 장인이나 예술가의 솜씨가 드러나는 영화가 존중받았으면 싶다. 그러자면 까다롭고 부지런한 소비자가 되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나는 그것이 대량 생산, 대량 소비로 뭐든지 획일화시키려는 세상에 미약하게나마 저항하는 일이 아닐까 또 한 번 오버해서 생각한다.


다수가 좋아하는 커피가 있으면 소수 몇몇이 선호하는 커피도 있기 마련이지요. 커피도, 영화도 서비스업일진대 내가 원하는 바로 그 맛과 감동을 즐길 기회를 달라고 까다롭게 요구해야겠습니다. 글을 쓴 남동철 님은 1995년 영화 주간지 <씨네 21> 창간 때부터 기자로 활동했고, 2004년부터 편집장이 되어 ‘영화’라는 한 우물을 들여다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