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1년 02월 지금 할 수 있는 걸 지금 하는 것
-
병이 전염되는 것처럼 불행도 전염된다. 불행이 전염되는 것처럼 행복도 전염된다. 우리가 서로 곁에 있다면 인간을 둘러싼 생각이나 행동 따위는 쉽게 전염될 수 있다. 팬데믹을 겪으며 깨달았다. 당신이 안녕해야 내가 안녕할 수 있다는 점, 혼자만의 안녕은 아무 소용이 없다는 점을. 당신의 문제, 동네의 문제, 사회의 문제, 나라의 문제, 세계의 문제가 나와 너무 깊이 연루되어 이곳에서 그곳을 밤새 걱정할 수밖에 없다는 걸 깨달았다. 만약 알에서 갓 깨어난 병아리가 뚜벅뚜벅 걸어와 이렇게 묻는다면 어떨까. “이봐요, 당신의 세상에선 무엇이 행복인가요?” 그렇다면 나는 병아리의 작고 까만 눈에 대고 이렇게 말하겠다.
내 세상에서 행복이란 서로 얼굴을 보여주는 일이야. 눈과 코와 입을 내놓고 공기를 들이마시는 일이지. 친구들과 거리를 걷고, 마주 앉아 서로의 표정을 실컷 구경하는 일이야. 카페에서 침을 튀겨가며 토론을 하고, 맥주잔을 부딪치며 주말을 보내는 일이지. 한 입 베어 문 샌드위치를 친구에게 건네며 “먹어볼래?” 물어도, 예의에 어긋나지 않는 일이야. 어떤 위험도 위기도 모른 채 세상의 모든 존재를 환영하는 일이지. 행복이란 사람들과 한자리에 모여서 안부를 묻는 일이야. 네트워크 말고 대면對面을 통해 관계를 맺는 일이지. 행복이란 존재에게 부딪칠 자유를 주는 일이야. 인파 속에 휩쓸려 다니기, 공연장에서 ‘떼창’하기, 전시장에서 사람들과 섞여 작품 관람하기. 도서관에 앉아 늦게까지 책을 보고, 아이들에게 친구와 물건을 공유하라고 일러주는 일이지. 교실에서 공부하고, 기념일엔 축하 자리를 갖는 일. 장사하는 사람은 마음껏 장사를 하고, 운동하는 사람은 땀 흘리며 운동을 하는 일이지. 행복이란 무엇보다 타자를 두려워하지 않는 일이란다. 여기까지 말하고는 병아리의 가느다란 다리를 잡고, 조금 울게 될지도 모르겠다.
1년 전에는 이 모든 것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지금이나 언제라도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러고 보니 행복은 놀랄 만큼 작은 일들, 일상을 꾸려나가는 시간 곳곳에 있었다. 우리가 누리던 범상한 일들이 저마다 특별한 순간이었다는 걸, 빼앗겨보니 알겠다. 그러니 당신이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바로 지금 한다면! 그 속에 당신이 찾는 행복이 들어 있을지도 모르겠다. 범상한 순간에 깃든 소중함, 이게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 글을 다 쓰고, 나는 냉장고에 넣어둔 와인을 한잔 마실 예정이다.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지금 한다면 행복한 일이다. 당신은 지금 무얼 할 수 있는가?
“행복에 관해 새삼 생각해보는데, 왠지 눈물이 날 것 같았다”고, 이 글을 보내는 메일에 박연준 시인이 썼더군요. 아마, 모두 그럴 거예요. 시인이 말했듯 지금 할 수 있는 것부터 생각해보자고요. 박연준 시인은 파주에 살며 시와 산문을 씁니다. 시, 사랑, 발레, 건강한 ‘여자 어른’이 되는 일에 관심이 많고요. 2004년 중앙신인문학상을 통해 등단했습니다. 시집으로 <속눈썹이 지르는 비명> <아버지는 나를 처제, 하고 불렀다> <베누스 푸디카> <밤, 비, 뱀>이 있고, 산문집으로 <모월모일> <소란> <밤은 길고, 괴롭습니다> <인생은 이상하게 흐른다> 등이 있습니다. 장석주 시인과 함께 산문집 <우리는 서로 조심하라고 말하며 걸었다>, 시집 <내 아침 인사 대신 읽어보오>를 펴냈습니다.
글 박연준(시인) | 담당 최혜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