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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5월 남김 없는 행복

취재차 잘사는 나라보다 저개발 국가를 가는 일이 많다. 아프리카에는 냉장고가 있는 집이 드물다. 유심히 살펴본 바 아프리카 여러 나라 엄마들은 한 끼 먹을 만큼만 준비한다. 살림 노하우라기보다는 가난해서 식량을 재어놓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곳 엄마들에게 “서구 사회에선 돈 들여 많이 사 먹고 그것 때문에 찐 살을 빼려고 다시 돈 들여 훈련(training)한다”고 말하면 다들 깔깔 웃는다. 그들은 나에게 “왜 멍청하게 그래야 하냐?”고 묻는다. 그 질문이 나를 서서히 변화시켰다. 서울에서 취재한 한 가정은 주방에 냉장고 두 대와 두 대의 김치냉장고, 냉동고를 구비했다. 벽에는 선반을 설치해 라면과 각종 인스턴트식품을 저장했다. 그 집 네 식구가 이걸 다 먹을 수 있을까? TV에는 하루 종일 ‘먹방’이 넘쳐난다. 사람들은 돈가스 한 접시를 먹기 위해 밤새 줄 서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우리 사회는 먹는 일에 목숨을 건다. 어릴 때부터 “한 입만 더 먹어라”는 성화를 들으며 자란다. 그럴 때면 부모님은 남대문의 깡통 거지들 이야기를 들려줬다. 보릿고개와 전쟁을 겪은 세대에게 먹을 것은 언제나 목숨 걸고 덤벼야 하는 것이다. 한국만 그런 것이 아니다. 미국 오리건주에 사는 80세 넘은 퇴역 조종사를 만난 적이 있는데, 그의 차고는 각종 통조림 음식으로 가득했다. 제2차 세계대전을 겪은 그는 비상시를 대비해 먹을거리를 저장해두어야 한다는 불안감에 시달린다고 했다. 나도 아프리카 엄마들처럼 음식물 쓰레기 없이 깔끔하게 먹고 살고 싶어졌다.

 

냉장고를 없앨 용기는 없었지만 음식물 쓰레기 없이 사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대형 마트에는 각종 음식이 넘쳐난다. ‘1+1’ 상품을 구입하며 나는 행복했다. 그러나 이렇게 사 온 식료품이 쌓여 유통기한을 지나기도 하고, 끝내 처치 곤란이 되었다. 대형 마트를 피하고 동네 슈퍼와 작은 식료품점을 이용했다. 물건 단가는 대형 마트보다 조금 비싸지만, 식재료를 최소한의 용량으로 구입하니 지출 금액이 확실히 줄었다. 나는 그렇게 냉장고의 음식을 최대한 줄여가며 작은 냉장고의 세 칸 중 한 칸만 사용한다. 아침에 일어나면 냉장고 속 재고 파악부터 하고 꼭 사야 할 식품을 점검한다. 집에 먹을 것을 적게 두면서 나는 더욱 행복해졌다. 식비가 줄어들었고 몸무게 걱정을 하지 않는다. 24시간 편의점이 흔하고 저녁에 주문하면 새벽 배송까지 해주는데 집에 먹을 것을 쌓아둘 이유가 없다. 평화로운 국가에 사는 혜택이다. 나는 아프리카와 저개발 국가에서 부모님 이야기 속 남대문 깡통 거지들과 만난다. 가족의 하루 식사를 단돈 2천 원 남짓으로 해결하는 집이 많다. 그보다 더 가난한 나라의 사람들은 말 그대로 초근목피로 목숨을 부지한다. 지구 한쪽에서는 기아로 사람들이 굶어 죽고, 다른 곳에는 넘치는 음식물 쓰레기가 골칫거리다. 불합리한 일이다. 나는 왜 많이 먹어야 할까? 왜 먹는 일에 내 인생의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하나? 남는 식량이 못 먹는 이들에게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질문과 답을 떠올리다 보면 배고픔으로 쓰러지는 이들의 고통에 생각이 미친다. 이러한 고민과 공감이 세상에 퍼져 있는 많은 불균형과 불합리를 바꾸는 출발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그것이 인간의 품격이 만들어내는 또 다른 행복이라고 생각한다. 

 

신선한 식재료를 구입하고 솜씨를 발휘해 맛있게 요리한 음식을 함께 먹는 일은 가족의 행복한 일상에 빼놓을 수 없는 장면입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우리는 필요한 것보다 많이 사고, 많이 먹고 있지는 않나요? 분쟁 지역과 이슈를 찾아 세계 각지를 다니는 김영미 분쟁 지역 전문 PD는 적게 사고 적게 먹는 삶의 행복을 이야기합니다. 서른 살에 방송 PD가 된 그는 줄곧 세계의 분쟁 지역을 취재해왔으며, 현재 <시사인> 국제 문제 편집위원으로 기사를 쓰고 있습니다. 최근엔 남대서양에서 급작스럽게 침몰한 스텔라데이지호의 진실을 밝혀내기 위해 남미 현지를 장기간 취재했습니다.
 


글 김영미 | 담당 정규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