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9 03월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의 창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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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15여 년 전에 디자이너 정준 선생에게서 새로운 사업 구상 얘기를 들었다. 그때는 몰랐지만 지나고 나서 생각해보니, 선생이 구상하던 사업은 일본의 무인양품에 대적하는 브랜드를 만드는 것이었다. 그것은 곧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의 창조다. 정준 선생은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보는 대단한 통찰력을 지녔다. 만약 선생이 세상을 일찍 떠나지 않았더라면, 무인양품과 멋진 한판 승부를 벌였을 것이다. 하나의 브랜드가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창조하고 세상에 큰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스타벅스가 그렇다. 소설 <모비딕>의 일등항해사 스타벅은 가정적인 따뜻함과 여성적 가치를 지닌 인물이다. 이런 성격에서 출발한 스타벅스는 포근한 분위기 속에서 멋진 커피를 마시는 경험을 파는 공간 이미지를 창조했다. 스타벅스를 세계 최대 커피 체인으로 성장시킨 경영자 하워드 슐츠는 이를 “스타벅스에 와서 커피를 마시고 잠시 눈을 감으면 다른 세상을 만나게 된다”고 설명한다. 현대인은 무한 경쟁이라는 고통의 바다를 헤엄치고 있다. 스타벅스는 이들에게 안식처로서 따뜻한 위로를 속삭인다. 그런 안식을 위해 비싼 커피값을 아끼지 않는 새로운 감성적 가치의 라이프스타일이 탄생한 것이다.
무인양품은 동양의 철학과 정서를 브랜드화해서 성공한 대표적 사례다. 무인양품이 추구하는 가치는 단순, 소박, 절제 그리고 불필요한 요소를 과감히 배제하고 본질에 충실한 데 있다. 그 바탕에는 일본 불교의 공空 사상과 와비わび, 사비さび 등의 미의식이 깔려 있다. 이런 정체성 위에 현재의 트렌드를 반영하고, 또 미래 라이프스타일의 비전을 제시한 것이다. 무인양품은 일본 전통에서 출발했다는 특수성과 세계 다른 문화에 쉽게 녹아들 수 있는 보편성이라는 강점을 함께 갖추었다. 최근에 시도하고 있는 주택 판매나 도쿄 긴자의 레스토랑 등도 무인양품이 시대를 읽어낸 통찰의 결과물이어서 그 성공을 예감케 한다. 커피 한잔으로 각박한 현실을 떠나 여유를 찾고, 또 안식을 얻고 평화를 느낀다면 그것은 물질이 아니라 정서가 된다. 우리가 흔히 쓰는 생활용품에서 담백한 절제를 느끼고 겸손을 생각한다면, 비록 그것이 사소할지라도 삶의 진실에 다가가는 것이다. 우리의 행복은 거창하지 않다. 바로 사소한 일상에 있다. 불교의 깨달음을 묻는 제자에게, 스승은 “차나 마시고 가거라”라고 대답했다. 말 그대로 마시는 차 한잔에 깨달음이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의 의식주가 곧 우리 자신이고, 라이프스타일은 무엇보다 중요한 의미와 가치를 지닌다.
스타벅스는 커피가 아닌 허먼 멜빌의 문학에서 영감을 얻었고, 무인양품은 일본 중세 사상과 미의식에 기반을 두고 출발했다. 그만큼 인문학적 상상력이 중요한 것이다. 일본은 그 상상력의 원천인 막강한 문화적 전통을 지녔다. 불교, 정원, 노(일본의 대표적 가면극), 다도, 문학 등이 그렇다. 우리도 결코 일본에 뒤질 수 없는 전통의 축적이 있다. 조선 미술의 아름다움의 실체는 기교를 초월한 것이기에 포착하기도 표현하기도 어렵다. 고도의 조선 성리학이 그 바탕이었다. 한옥, 목가구, 순백자 등은 기교 너머에 존재하는 무심한 중용의 경지라고나 할까? 일본을 대표하는 미학자 야나기 무네요시가 그토록 열광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상감청자와 불화로 대표되는 고려 미술의 섬세함과 화려함의 극치도 당대 동아시아 정상이었다. 고대 백제 미술의 아름다움에 대해서도 재인식이 필요하다. 일본에서 아름답기로 선두를 다투는 고류지 반가사유상과 호류지 백제관음이 모두 백제계 작품이다. 이 두 작품보다 더 뛰어나다고 할 수 있는 국보 제83호 반가사유상도 백제에서 만들었다. 이것을 만들어낸 역량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다. 사실을 정확히 볼 수 있는 객관적 시선이 필요하다. 그런 바탕 위에서 다양한 인문 학적 상상력이 발휘되어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이 창조되기를 기대한다. 그럼으로써 우리 삶은 더욱 풍성하고 아름다워 질 것이다.
“우리가 흔히 쓰는 생활용품에서 담백한 절제를 느끼고 겸손을 생각한다면, 비록 그것이 사소할지라도 삶의 진실에 다가가는 것이다.” 미술사학자 이내옥은 “왜 우리에겐 무인양품과 스타벅스 같은 브랜드가 없을까?”라는 의문의 답을 우리 전통을 보는 객관적 시선의 부재에서 찾았습니다.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창조하기 위해서는 아름다움을 정확히 보는 ‘안목의 성장’이 먼저일 겁니다. 글을 쓴 이내옥은 34년간 국립박물관에서 근무하며 진주, 청주, 부여, 대구, 춘천의 국립박물관장과 국립중앙박물관 유물관리부장 및 아시아부장을 지냈습니다. 저서로 <안목의 성장> <문화재 다루기> <공재 윤두서> <백제미의 발견> 등이 있습니다.
글 이내옥 | 담당 정규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