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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1월 영원한 우리의 고향, 자연

가끔 TV 음악 프로그램에서 해외 교포 출신 아이돌 가수를 보면 신기한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외국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자라다 어느 날 갑자기 한국에 들어와 어떻게 저리 자연스럽게 잘할 수 있는지. 아마 교포가 아니었다면 어림도 없을 것이다. 피는 못 속인다고, 사람의 유전자 속에 들어 있는 과거에 대한 정보가 그런 일을 가능케 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것을 개인이 아닌 인류 전체에 적용해도 비슷 할 것이다. 예를 들어 해외여행을 다니다 낯선 도시를 만나면 신기한 구경거리로 받아들이지만, 멋진 자연 풍경 앞에선 다만 며칠이라도 살고 싶은 충동이 일곤 한다. 또 대부분 한국인은 나이가 들어 은퇴하면 시골이나 자연 속에서 여생을 보내고 싶은 로망을 간직하고 있다. 이로 미루어볼 때 인간의 내면 깊숙한 곳엔 자연 에 대한 근원적 그리움이 자리하고 있지 않을까? 

우리 몸은 세포로 구성되었는데, 이 세포들은 엄밀히 말해 정보의 집적체다. 여기 쌓인 정보는 내가 태어나서 얻은 것보다 과거로부터 전해 내려온 것이 훨씬 많다. 아마도 살아온 시간대의 크기에 비례할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가 현대인으로 무리 없이 사는 이유는 최근의 정보일수록 나에게 끼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과거로부터 내려온 방대한 분량의 정보가 우리 몸에 각인되어 결코 없어지지 않고 지속적으로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이다. 

가령 현대인이 겪고 있는 각종 질병의 근본 원인을 두고 멀리 태곳적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견해가 있다. 의사들은 바이러스나 스트레스를 직접적인 병인으로 지목하지만, 인류학자들은 우리 몸과 주위 환경의 부조화 때문에 그렇다고 말한다. 우리 몸의 진화 속도에 비해 사회 환경의 변화 속도가 너무도 빨라 여기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몸이 탈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대표적 예로, 빈속에 우유를 먹으면 바로 탈이 나는 사람이 많은데, 동양인의 몸에는 젖당을 분해하는 효소가 없어 우유를 잘 소화하지 못 하기 때문이다. 폭력성, 성충동, 방랑벽 등 현대인이 안고 있는 이해하기 힘든 속성들도 모두 유전자 안에 새겨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것을 나쁘다고 규정해 억지로 없애려 하기보다 잘 구슬려 조화로운 삶의 양념으로 삼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과거로부터 물려받은 것 가운데 우리에게 가장 크게, 근원적 영향을 끼치는 것은 자연에 대한 기억이다. 유인원으로부터 현대인으로 진화하기까지 대략 수백만 년의 시간대가 펼쳐져 있다. 이 기간의 99%를 인류는 거친 자연속에서 살았다. 다시 말해 우리 몸에 각인된 정보의 99%가 자연에 관한 것이지만, 우리 두뇌는 나머지 1%의 정보에 지배당하고 있어 자연을 낯설게 느낀다. 위에서 말했듯이 아직 진화가 덜 된 몸은 자연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데 반해 우리몸의 컨트롤 타워에 해당하는 두뇌는 자연을 낯설게 느끼기 때문에 도시에 모여 살면서도 늘 어딘가 허전하고 불안한 감정을 느낀다. 그런 감정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람들은 시시때때로 무작정 가방을 둘러메고 여행을 간다거나, 시외버스를 타고 나가 텅 빈 들판 길을 터벅터벅 걷기도 한다. 우리는 언제까지 이런 부조화를 안은 채 어정쩡한 삶을 살아가야 할까? 그리고 지금은 인간의 파괴활동에 견디다 못한 자연의 무자비한 복수가 해가 다르게 우리 사회를 위협하고 있지 않은가?

과학기술을 신봉하는 사람은 인간의 지능과 기술로 그러한 위협을 얼마든지 극복해나갈 수 있을 것으로 보지만 어림없는 생각이다. 빠른 속도로 악화되는 지구환경을 개선하지 못한다면, 언젠가 인간은 지구를 버리고 다른 행성을 찾아 나서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해결책이 될 수는 없지 않은가? 우리 자신의 건강과 심신의 평화를 위해서, 또한 어머니 대지의 행복과 안녕을 위해서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야 한다.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자연을 내 삶의 현장에 적극 끌어들여야 한다. 그리하여 자연과 인간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새로운 문명을 일으켜야 한다.


올여름은 날씨를 관측한 지난 1백여 년 이래 전 세계적으로 가장 더웠다고 합니다. 어느덧 미세 먼지는 황사가 불어오는 봄뿐 아닌 사시사철의 문제가 되었고요. 바다 건너 일로만 여기던 지진의 공포를 몸으로 겪었고, 남부 지역엔 태풍 피해가 극심했습니다. 도시의 일상에 밀려 잠시 잊었던 자연과 우리의 관계를 다시금 숙고하는 요즈음입니다. 작은 들풀 이야기를 통해 삶과 자유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은 서간문 <야생초 편지>로 잘 알려진 생명평화운동가 황대권 선생은 자연과 인간의 조화로운 공존을 말합니다. 자연은 조상이 유전자에 새긴, 우리 모두의 고향이니까요. 학생 시절 간첩단 사건에 연루되어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황대권 선생은 긴 수감 기간 동안 야생초 화단을 만들고 1백여 종에 가까운 풀을 심어 가꾸며 감옥을 생명의 장소로 바꿉니다. 지금은 전남 영광에서 생명평화마을을 일구며 탈핵 및 에너지 전환 운동에 많은 시간을 쏟고 있습니다. 최근 작으로 <고맙다 잡초야> <야생초 학교>, 번역서로 <더 나은 삶을 위한 여행, 공동체> <생태공동체 가비오타스 이야기> 등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