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은 덤벙댄다. 뭐가 그리 급했는지 컴퓨터도 끄지 않고 외출했다. 자주 있는 일이긴 하다. 바닥을 훔치던 엄마는 자연스레 컴퓨터에 눈이 간다. 쓰다 만 글이 화면에 어지러이 널려 있다. 근데 이건 뭐지? 첫 문장부터 예사롭지 않다.
“사나이는 울지 말아야 된다는 말은 틀린 것 같아요. 생각해보면 20년 동안 난 엄마한테 항상 받기만 하고 뭐 하나 제대로 해준 게 없었네요. 그동안 못난 아들 하고 싶은 거 다 할 수 있게 해줘서 너무 고마워요. 엄마한텐 참 미안하지만 먼저 가서 내가 하고 싶은 일들 하고 있을게요. 나중에 다시 만날 때 부끄럽지 않게 열심히 하고 있을게요. 나중에 너무 혼내지 마세요. 저에게 허락된 시간이 많지 않아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엄마 고맙고 미안해요. 그리고 사랑해요.”
나중에 다시 만날 때? 저에게 허락된 시간? 엄마의 눈이 뒤집힌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손이 떨린다. 발이 얼어붙는다. 가까스로 전화기부터 찾아 단축 번호를 누른다. 벨 소리가 가까이서 들린다. 아들의 휴대전화가 침대 위에서 노래를 부른다. ‘멘붕’이다. 바로 그 순간 천연덕스럽게 문 여는 소리. ‘유언’을 남기고 사라진 아들의 손에는 편의점에서 산 라면이 들려 있다.
“이거 뭐야?” “뭐긴 뭐야, 라면이지.” 엄마는 걸레를 던진다. “죽는다면서 라면은 무슨 라면?” “죽기는 누가 죽어?” 그때 아들은 엄마의 눈에서 눈물을 본다. 사태를 알아차린 아들이 비로소 웃기 시작한다. “컴퓨터 봤구나. 우리 엄마 참 단순하네. 이거 과제야 과제. 비행기 추락 5분 전에 가족한테 문자메시지 보내기.” 그리고 모자는 부둥켜안는다.
도대체 어디까지가 ‘리얼’인가? 반은 사실이고 반은 거짓이다. ‘유서’와 과제는 사실인데 모자간의 대화는 내가 적당히 지어낸 얘기다. 미안하게도 문제의 과제를 낸 장본인이 바로 나다. 이런 ‘악취미’에는 유래가 있다. 여대에서 교수를 한 적이 있다. 7년 반 동안 했으니 짧은 기간도 아니다. ‘미디어 글 읽기와 쓰기’라는 과목에서 ‘유서 쓰기’를 과제로 낸 적이 있다. 팔팔한 20대에게 연서가 아니라 유서를 쓰라니.
의도는 좋았다. 앞으로 얼마나 살 것인지를 가늠하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 답이 나올 거라는 생각에서였다. ‘언론 플레이’도 안 했는데 어떻게 소문을 들었는지 일간지 기자가 취재를 왔고 그게 기사화됐다. ‘스무 살의 유서’는 졸지에 장안의 화제(?)로 떠올랐다. 제자들의 반응은 어땠을까? 한마디로 압축하면 ‘감사’였다. 과제를 낸 내게 감사한 마음도 조금은 있었지만(시간의 소중함을 알게 해주어 고맙다는) 거의 대부분은 부모에게 감사, 지금껏 자신을 사랑해준 모든 이에게 감사, 또한 지금 살아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다는 거였다.
십여 년이 흐른 지금은 달라졌을까? 이번에도 예외는 없었다. 좀 짧아지긴 했지만 주제는 그대로였다. 죽을 때가 되면 철든다는 말은 사실이었다. 스무 살의 마지막 문자메시지는 세 마디로 얼룩져 있었다. “미안해요, 사랑해요, 고마워요.”어렴풋이 책 제목 하나가 떠오른다. <미안하다고 말하기가 그렇게 어려웠나요>. 유서 쓰기 과제를 낼 때와 거의 비슷한 시기에 나온 책이다. 내용은 충격적이다. 명문대에 다니던 아들이 부모를 무참하게 살해한다. 평소에 얌전하기로 소문난 아이였다. 이럴 때 떠오르는 말은 두 마디다. “오죽하면”과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책은 이 사건을 주목한 심리학과 교수가 구치소에 있는 패륜아와 오랫동안 면회한 내용이다.
진단은 하나. 소통의 부재였다. 세상에 자식 사랑하지 않는 부모가 어디 있으랴? 단, 사랑을 말하지 않는 부모는 많다. 사랑한다고 말하기가 그렇게 어려운가? 자식도 마찬가지다. 부모에게 죄송하고 사랑하고 감사하지 않은 자식이 세상에 어디 있으랴? 그러나 그걸 표현하는 자식은 많지 않다. 낯간지러워서? 쑥스러워서? 다 알고 있을 테니까? 이 순간부터는 아끼지 말자. 대량 방출하자. 죽음에 임박해서 숨 헐떡이며 내뱉을 필요가 있는가? 지금 살아 있을 때 무한 발설하자. 조금 무안하지만 많이 행복해질 거다. 소리 내서 연습해보자. 미안해, 사랑해, 고마워.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라는 광고 카피가 낭만적으로 느껴지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말하지 않으면 몰라요”라는 말을 나 자신에게, 그 누군가에게 해주고 싶은 순간이 많아졌습니다. 그동안 수많은 강의와 글을 통해 ‘소통’이 곧 ‘행복’으로 통하는 길임을 전파해온 주철환 교수는 동북중·고등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하다 MBC에서 PD로 일하며 수많은 프로그램을 통해 시청자들과 소통했습니다. 그 후 이화여대 언론홍보영상학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 OBS경인방송 사장과 JTBC 대PD를 거쳐 아주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로 돌아왔습니다. 저서로는 <청춘> <더 좋은 날들은 지금부터다> <오블라디 오블라다> <인연이 모여 인생이 된다> 등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