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5년 06월 눈물 많아지는 남편, 말이 뾰족해지는 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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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어느덧 한 해의 가운데에 이르렀습니다. 그래서 6월부터의 시간을 우리는 하절기라고 부르지요. 사람의 인생에서 하절기가 시작되는 시간을 우리는 특별히 ‘중년’이라고 부릅니다. 남자는 눈물이 많아지고 여자는 ‘나’를 되찾는 자유를 누리고 싶어지는 특별한 변화가 일어 나는 시기입니다.
원래 남자는 여자에 비해 눈물과 친하지 않습니다. 여자가 남자에 비해 우는 횟수도 많고 더 길게, 더 세게 웁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한 가지 사실은 사춘기 이전 13세까지는 남자와 여자 사이에 이런 차이가 없다는 것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차이가 나는 것이 아니라 사춘기 이후의 변화라는 것이죠. 남녀에게 상이한 사춘기 이후 호르몬 변화도 한 요인으로 이야기되고, 자라면서 여자에 비해 남자는 울면 안 되는 캐릭터로 교육받는 것도 한 이유가 되겠습니다. 남자라고 울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것이 아니라 슬퍼도 잘 울지 않도록 연습한 셈인 것이죠.
사실 여자보다 남자의 마음이 더 여립니다. 여자가 남자보다 마음이 더 강합니다. 모성애 때문이지요. 남자가 강한 것은 마음이 아니라 힘입니다. 여자보다 힘이 셉니다. 그래서 사회적 역할에서 강함을 요구받은 셈이죠. 근육의 힘이든, 사회 경제적 힘이든 강한 남자가 사랑받는다는 생각이 남자들 머릿속에는 뿌리 깊게 내재화되어 있습니다. 그렇기에 울보 남자는 약한 남자고 매력적이지 못하다 생각하는 것이죠. 그런데 강한 남자라 여긴 자신의 눈에서 갑작스럽게 흘러나오는 눈물은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남자가 중년을 넘어가면 자신을 감싼 전투력의 갑옷이 벗겨지며 원래의 여린 마음이 다시 보이기 시작합니다. 강한 남자가 여성화되는 것이 아니라 원래 내 자신의 섬세한 감성을 다시 느끼는 것입니다. 평소 무뚝뚝한 남자조차도 예술가처럼 마음이 섬세해집니다. 그래서 전에는 느낌도 오지 않던 멜로드라마를 보며 꺼이꺼이 울게 되는 것입니다.
우는 것은 사실 전혀 창피한 일이 아닙니다. 남자도 울 수 있고 슬프면 울어야 합니다. 내 눈물을 갱년기 우울증의 증상으로 볼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그보다는 내 마음에 변화가 찾아왔구나 하고 생각하는 것이 정답입니다. 우리 남자에게도 여자 이상으로 희로애락을 느끼고 때론 울 수 있는 감성 엔진이 존재합니다. 남자가 감성적으로 무디다면 남자 중에 그렇게 수많은 아티스트가 나올 수 없었을 것입니다. 섬세해야 하는 셰프도 사실 남자가 더 많습니다. 감성적 기능을 남자는 강해야 한다는 통념으로 억제했을 뿐 남자 안에도 섬세한 예술가의 느낌이 다 숨어 있습니다.
반면 중년이 넘어가면 남자는 울보가 되어가는데 여자는 반응이 뾰족해지는 면이 있습니다. 우리나라만 그런 것이 아니고 외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외국 상담 사례를 보면 중년을 넘어 아내가 대화하는 데 주도권을 잡으려 하고 똑 부러지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때론 뾰족하게 날을 세워 언쟁을 하려 하니 힘들다는 남편들의 호소가 진하게 있습니다.
이런 변화도 여자가 남성화되었기에 나타나는 것은 아닙니다. 모성 엔진이 약해지면서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으면, 여성은 모성 엔진이 강력하게 작용합니다. 모성애는 나의 테두리를 확장시킵니다. 나를 넘어 가족을 나처럼 생각하게 만들죠. 특히 자식을 자신보다 더 소중하게 여기는 놀라운 마술을 일으킵니다. 희생적이고 이타적인 삶을 살게 합니다. 그러다가 중년이 넘어서면 모성 엔진이 약화되며 다시 내 이름 석 자가 중요하게 됩니다. 무엇을 위해 살았나 하는 허탈한 마음도 들고요.
이 또한 병적인 현상은 전혀 아닙니다. 자연스러운 변화죠. 그래서 중년의 이런 변화에 부부가 익숙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찾아오니까요. 아내가 밥 안 차려주고 나간다고 섭섭해하지 마세요. 모성애를 잠깐 내려놓고 ‘나’ 라는 자유감을 느끼고 싶은 것이니까요. 그리고 내게 찾아온 섬세한 감성을 이용해 아내를 위해 요리를 한번 해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잘되면 숨겨진 내 예술적 감각에 만족감을 느낄 수 있고, 망쳐도 아내가 감동할 것이며, 재료가 아까워 밥 차려줄 가능성이 높아지니 두루 행복해집니다.
봄이 지나 여름이 오듯, 우리 인생에도 중요한 시기가 계절처럼 찾아옵니다. 그런 시기마다 자신의 감정을 잘 받아들이고 충분히 해소하며 감정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하는 사람이 진짜 건강한 사람이 아닐까요? 글을 쓴 윤대현 교수는 서울대학교병원 강남센터의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진료합니다. 또한 매일 아침 MBC FM 라디오에서 <윤대현의 마음연구소>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유쾌하고 성실한 모습으로 대중의 마음 건강을 돌보아주지요. <마음 아프지 마> <윤대현의 마음 성공> 등의 책도 펴내 우리에게 정신의학적, 심리적 조언을 아끼지 않던 그는 최근 <하루 3분, 나만 생각하는 시간>이라는, 제목만 보아도 분명한 조언과 위로가 전해지는 책을 펴내 대중과 더 가까이 소통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