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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 생텍스의 뱅자맹 주아노 입에 안 맞는 음식은 있을지언정 맛없는 음식이란 없다
photo01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던가? 10년이란 세월은 사람의 성격, 태도는 물론 입맛도 변화시킬 수 있을 만큼 오랜 시간임에 틀림없는 듯하다. 이태원에서 프렌치 비스트로Bistro(격식을 차리지 않고 음식을 즐길 수 있는 작은 식당) ‘르 생텍스Le Saint-Ex’를 운영하는 뱅자맹 주아노Benjamin Joinau 또한 한국 사람이 다 되었다. 외모를 보면 “봉주르” 하고 말을 걸어야 할 것 같은 인상. 그러나 웬걸, “아, 네~. 그럼요”라며 능청맞을 정도로 자연스럽게 한국어를 구사한다. 뿐만 아니라 요즘에는 젓갈과 청국장에 맛들여 즐겨 먹고 있단다. 도대체 이 사람, 누구인가?
군복무 대신 해외 파견 교사를 선택한 뱅자맹 씨는 1994년 서초동 서래마을에 있는 프랑스 학교로 부임해 왔다. 유럽이나 미국은 물론 아프리카, 동남아, 인도 여행을 즐기고 각 나라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이탈리아어, 아랍어, 일본어, 중국어 등을 배우려고 시도했을 만큼 외국 문화에 관심이 많은 그. 한국 발령을 받았을 때만 해도 단지 새로운 나라에 대한 경험을 하나 더 추가한다고 여기는 정도였다. 그런데 정작 서울에 와보니 난생 처음 먹어보는 제육볶음밥도 맛있고, 프랑스와는 판이하게 다른 도시 분위기에 흥미가 느껴졌다. 2년 머무는 것으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서울에 온 지 두 달 만에 장기 체류를 마음먹었다. 그러나 한국에 살고 있음에도 프랑스 학교에서 프랑스 사람들과 프랑스어를 쓰며 지내다 보니 서울라이트Seoulite도 아니고 파리지앵Parisien도 아닌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는 2년간의 파견 근무를 마친 후 홍익대학교로 옮겨 강의를 했다. 그런데 ‘한국을 이해하기에 이곳은 너무 좁다’라는 생각이 또다시 그를 흔들었다. 교수와 학생들로 한정된 인간관계에서 벗어나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을 만나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2000년, 친구의 친구였던 안상준 씨와 함께 식당을 열었다.
“음식은 그 나라 문화의 입구라고 생각합니다. 식당에 가면 음식뿐 아니라 사람들이 어떻게 만나서 즐기는지 사회적 관계도 볼 수 있어요. 한국 사람들은 밥을 먹을 때 별로 얘기를 하지 않고, 저녁 모임에는 식사를 빨리 하고 2차를 하러 가는 식이죠. 포장마차, 분식집, 동네 식당, 고급 한정식집을 두루 다니면서 자연스레 한국을 느끼고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한국 사람들에게 프랑스의 문화를 알려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photo01 뱅자맹 씨가 서울에서 생활하면서 가끔씩 그리워했던 것이 바로 파리의 비스트로였다. 안면이 있는 주인과 얘기를 나누며 프랑스의 소박한 음식을 느긋하게 즐길 수 있는 정겨운 곳. 프랑스에서 지내다 온 사람들 중에는 한국에 있는 레스토랑 중 가장 프랑스적인 곳을 꼽으라면 단연 ‘르 생텍스’를 말한다. 이처럼 현지의 모습을 그대로 옮겨놓다 보니 처음에는 웃지 못할 일도 많았다. 프랑스 식당에서 김치, 피클, 케첩을 끊임없이 요구하는 사람들(중국 음식점에 가도 김치를 먹을 수 있는 곳이 서울 아니던가!), 심지어 오리 고기에서 오리 냄새가 난다고 불평을 하는 손님들까지…. 사실 이것은 옳고 그름의 문제라기보다 문화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 사람들은 조리를 할 때 고기 누린내가 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불문율이다. 반면 프랑스에서는 양고기든 오리고기든 토끼고기든 당연히 고기 특유의 냄새와 맛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차이를 알면서도 타협하지 않고 원칙을 고수하다 보니 내심 불안하기도 했다. 몇 개월 만에 문을 닫을 수도 있는 위기 상황이었지만 ‘이렇게 해서 망한다 할지라도 이건 성공적인 실패’라고 뱅자맹 씨는 생각했다. 그런데 조금씩 입소문이 나기 시작하면서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갔다.
“요즘 레스토랑에 가면 빵과 함께 올리브오일과 발사믹 식초 소스를 함께 서비스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재료는 이탈리아산이지만 사실 이탈리아에서는 본 적이 없는 소스예요. 아마 미국에서 개발된 퓨전 스타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당연히 이곳에서는 빵만 드리고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그를 보니 프랑스식을 고수하겠다는 신념에 변화는 없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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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요리와 함께 흐른다
우리나라도 지방마다 음식 맛이 다르듯 프랑스도 마찬가지이다. 목초지가 많은 북쪽 지방은 낙농업이 발달해서 음식에 우유, 버터, 크림, 치즈 등을 많이 사용하는 편이다. 남쪽 지중해 지방은 올리브오일, 토마토, 허브 등을 많이 쓰는 등 이탈리아 음식과 비슷하다. 보르도 지방 출신인 뱅자맹 씨는 남부 음식을 좋아한다. 그렇지만 어려서부터 세계 여러 나라의 다양한 음식을 접했던 그는 낯선 음식에 대한 거부감이 적은 편이다. 요즘에야 각 나라의 식재료를 손쉽게 구할 수 있지만 그가 처음 한국에 왔을 때만 해도 사정이 달랐다. 지금은 웬만한 동네 슈퍼마켓에서도 살 수 있는 카망베르 치즈, 당시엔 이것도 손에 넣기가 쉽지 않았던 것. 프랑스에서 먹던 음식만 그리워했다면 그는 일찌감치 짐을 챙겨 고국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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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음식은 입에 안 맞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한번 먹어보고 ‘맛없다’고 말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지요. 새로운 음식을 맛볼 때에는 지금까지 배운 모든 것을 잊고, 이미 알고 있는 것과 비교하지 말고, 편견을 갖지 말고, 입맛을 길들여가는 갓 태어난 아기의 감각을 지니려고 노력하세요. 김치를 처음 먹었을 때에는 맛을 느끼지 못했는데, 자꾸 먹다 보니 그 맛이 어떤 것인지 알겠더라고요.” 프랑스 사람들은 남녀를 불문하고 음식에 관심이 많다. 요리책을 사서 읽고 만들어보고 맛있는 음식 먹으러 다니는 것이 생활의 일부인 그들은 식탁에서 오가는 대화 중에도 이와 관련된 것이 많다. 일전에 가보았던 레스토랑의 요리가 어떠했는지, 특별한 날 어머니가 만들어주었던 음식이 무엇인지…. 뱅자맹 씨는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어머니와 함께 빵을 만들던 때가 가장 먼저 생각난다고 한다. 오븐 안에서 반죽이 익어갈 때 집안을 가득 채우던 냄새. 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주인공이 홍차에 적신 마들렌 과자의 냄새에 이끌려 어린 시절로 시간 여행을 떠나게 되듯 빵 굽는 냄새는 그에게 어린 시절을 추억하게 하는 요소이기도 하다.
 
photo01 “한국에서 프랑스 요리의 맛을 완벽하게 재현해내기란 쉽지 않습니다. 유럽은 양파, 감자, 당근, 토마토 등의 종류가 다양한데, 여기에는 한두 종류밖에 없으니까요. 그렇지만 돗나물, 시금치, 상추는 한국 것이 훨씬 더 맛있습니다.” 우리나라 채소를 완전히 파악하고 있는 뱅자맹 씨의 음식 솜씨는 평균을 훨씬 뛰어넘는다. 마늘, 후추, 계피를 좋아하는 그가 최고로 여기는 식재료는 양파. 버터에 구웠는지, 그릴에 구웠는지, 날것인지에 따라 맛과 향이 다른 양파는 ‘하느님의 선물’이란다.
지난해 말에는 르 생텍스 옆에 바비큐 레스토랑 ‘라 플란챠La Plancha’를 열었고, 프랑스 요리책도 냈다. 프랑스에서는 하루에도 몇 번씩 노천 카페에 가서 느긋하게 커피를 마시던 그였지만, 서울살이 10년에 그런 여유는 이미 오래전에 사라졌다고 한다. “1년에 한 번 정도 프랑스에 다녀옵니다. 그때에는 단골 비스트로에도 가고, 벼룩시장을 다니면서 앤티크 접시를 사오기도 하죠. 그런데 한낮에 파리 사람들이 공원 벤치에 앉아서 책을 읽고, 일광욕을 즐기고, 카페 테라스에 앉아 있는 것을 보면서 제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아세요? ‘어떻게 이 시간에 여기 있지? 일 안 하나?’ 싶은 거예요.” 그는 이미 활기 있고 빠르게 돌아가는 서울 생활에 길들여진 것이다. 벌써 2개의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있고, 앞으로 케이터링 영역까지 확장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는 그가 한국을 쉽게 떠날 것 같지는 않다. 문의 02-795-2465
 
2. 왼쪽,가운데 레스토랑 안에는 음식과 관련된 과거 유럽의 일러스트레이션, 그림, 광고 및 포스터 등이 걸려 있어서 매우 이국적인 느낌이 든다. 오른쪽 할머니에게 물려받은 차함과 어린 시절 그가 사용했던 스푼과 에그 스탠드.
3. 한국인 동업자 안상준 씨와 함께.
 
정지현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05년 3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