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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만큼 맛있다 카카오를 경험하다
인류와 오랜 역사를 함께한 식재료가 각별한 이유는 그 시대의 모습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본질을 탐구하는 식재료로, 고전을 이어가며 혁신과 진화를 거듭하는 카카오를 다양하게 경험해보자. 사소한 경험이 삶을 깊이 있고 윤택하게 만든다.

카카오에서 초콜릿으로, 끊임없이 진화하다


진짜, 리얼 초콜릿에 대한 움직임이 다시금 파도를 타기 시작했다. 이를 알아보고 대우하는 음식 시민으로 깨어 있는 의식이 필요한 때다.

초콜릿의 원료는 카카오다. 우리가 먹는 초콜릿은 카카오나무에서 자란 카카오 열매를 가공한 것이다. 카카오의 원산지는 남미의 산간 지역으로, 멕시코 동부에 살던 올멕Olmec족이 기원전 1500년 전후부터 기원전 400년 전후까지 카카오를 먹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이 시기는 마야 아즈텍 문명의 시대로, 카카오를 여러 향신료와 섞은 음료 형태로 즐기며 일반인은 범접할 수 없는 신의 음식으로 추앙했다. 당시 카카오 음료는 왕과 귀족만 마시는 최음제였고, 전능한 권력의 상징물이었으며, 카카오 씨앗은 신성하고 귀한 것으로 여겨 화폐처럼 쓰기도 했다.

1520년 스페인이 무력으로 멕시코를 침략한 이후 스페인에 유입된 카카오 음료는 귀족들 사이에서 유행했다. 그러자 착취가 시작됐다. 카카오 열매를 본격적으로 유럽에 실어 나르기 위해 원주민을 노예화해 재배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던 중 스페인 궁정에서 일하던 이탤리언에 의해 1606년 이탈리아로 전파되었고, 1660년 루이 14세와 스페인 공주 마리아 테레사의 결혼을 계기로 프랑스에도 전파되었다. 하지만 이때까지도 카카오는 음료 형태이거나 으깨어 굳힌 거친 반죽 형태에 불과했다. 이후 산업혁명이 도래하면서 카카오를 곱게 분쇄하고 압착하는 기계가 만들어졌다. 1828년 카카오에서 버터를 분리해내면서 카카오 맛은 진화했다. 1847년에는 현재 우리가 먹는 세련되고 부드러우며 달콤한 판 형태의 초콜릿이 탄생했으며, 1867년 분유가 개발되면서 초콜릿 맛에 또 한 번 혁신이 일어났다.

초콜릿은 지금도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다. 산업혁명 이후 많은 먹거리가 그러했듯, 초콜릿도 산업화를 거쳐 대량생산되면서 맛은 획일화되고, 원재료의 품질은 뒷전으로 밀려났다. 포장지와 광고에서 차이가 있을 뿐 개성이 몰살된 거대 기업의 판에 박힌 초콜릿이 한동안 주인 자리를 꿰차고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초콜릿을 만드는 이들이 본질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진짜, 좋은, 초콜릿은 무엇인가?

개인화와 탈산업화를 주장한 ‘제3의 물결’은 공정 무역과 오가닉 바람을 타고 이미 스페셜티 커피 열풍으로 나타났고, 그 흐름은 초콜릿업계로도 이어지고 있다. 빈투바bean-to-bar·싱글 오리진·크래프트 초콜릿이 그것이다. 1990년대에 샌프란시스코에서 시작되었지만, 지금은 이런 초콜릿업체가 미국에만 1천여 개가 될 정도로 폭발적으로 증가하며 미국과 일본 등에서는 핫한 푸드 트렌드로 꼽힌다. 국내에서도 2012년경과 2016년경에 빈투바를 주축으로 한 크래프트 초콜릿이 주목받은 바 있지만, 붐을 일으킬 정도는 아니었다. 카카오다다 윤형원 대표는 “초콜릿은 카카오를 가공해 먹는 방법 중 하나이고, 유럽인에 의해 고급스럽게 발전한 카카오 음식의 하나다. 내가 먹는 것이 곧 내 몸을 구성한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하면서, 음식에 대한 높은 관심과 흐름이 자연스레 초콜릿에까지 온 것”이라고 설명한다.

확실히 카카오로 만든 초콜릿은 고급 과자이자 디저트로 발전해왔지만, 초콜릿도 결국 음식이다. 크래프트 초콜릿을 만드는 초콜릿메이커든, 예술품 같은 초콜릿 가공품을 만드는 쇼콜라티에든 모두 양질의 카카오빈에서 시작된 초콜릿이라야 진짜 좋은 식품이라는 데 이견이 없는 이유다.


크래프트 초콜릿, 본질을 경험하다
본질은 ‘있는 그대로의 성질’을 이른다. 본질에 대한 탐구로 원재료에서 정체성과 본연의 의미를 찾으려는 노력은 초콜릿업계라고 예외가 아니다. 카카오빈과 설탕, 두 가지 재료만으로도 충분한 맛을 구현해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빈투바가 오늘날 전 세계 초콜릿업계에서 단연 화두인 이유다. ‘카카오빈에서 초콜릿 바까지’를 뜻하는 빈투바는 제조자가 선별한 카카오의 원산지나 품종·가공 방식에 따라 그 맛이 천차만별인데, 와인처럼 테루아 개념을 초콜릿에 도입한 것인 만큼 만드는 이의 철학과 개성이 초콜릿에 고스란히 녹아난다.


“카카오라는 농산물로 구현해낸 초콜릿 맛을 즐기는 것이야말로 카카오의 본질을 맛보는 문화적 경험이라 할 수 있다. 카카오를 직접 가공하는 만큼 복잡 미묘한 맛보다는 원재료의 개성이 뚜렷이 반영된 초콜릿을 선보이고자 한다.” _카카오다다 윤형원 대표 (@cacaodada)


봉봉 쇼콜라, 변주를 경험하다
대개 고급 수제 초콜릿을 연상하면 프랑스의 봉봉 쇼콜라, 벨기에의 프랄린 등 한 입 크기의 작은 초콜릿을 떠올린다. 다양한 필링으로 속을 채워 표면을 초콜릿으로 감싸며, 섬세한 맛이 특징이다. 산업혁명 이후 초콜릿이 폭발적으로 인기를 끌자, 점점 더 많은 설탕과 첨가물을 사용해 초콜릿 품질이 급격히 저하되었고, 본질을 훼손하지 않은 질 좋은 초콜릿에 대한 향수가 일면서 개발의 기반이 되기도 했다. 초콜릿을 만드는 데 여러 가지 식재료를 첨가해 맛의 다양성을 살리는 것은 봉봉과 프랄린만의 방식은 물론 아니다. 하지만 변주를 통해 맛과 텍스처, 데커레이션에 이르기까지 미감을 두루 만끽하는 데 제격인 초콜릿 조각임에는 틀림없다.


“초콜릿이 준 행복한 기억 덕분에 쇼콜라티에의 길로 들어선 만큼 정성으로 빚은 한 조각의 수제 초콜릿을 통해 즐거운 미식 경험을 선사하고 싶다. 다양한 식재료를 경험하고 그 아이디어를 초콜릿에 녹여내 변주하는 이유다.” _피아프 고은수 대표 (@piaf_artisan_chocolatier)


화이트 초콜릿, 융화를 경험하다
한때 화이트 초콜릿은 초콜릿이 아니라는 논란이 있었다. 초콜릿 맛과 향을 결정하는 카카오 매스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주요 재료인 카카오 버터를 다량 함유한 고급 화이트 초콜릿은 부드럽게 녹고 맛도 깔끔할뿐더러 마치 빈 도화지처럼 순수해 다양한 식재료와 융화해 미적으로 표현하기에도 더없이 좋다. 무언가를 눈여겨보면 그간 미처 보지 못한 이면의 진면목을 잘 볼 수 있는 법. 간장이나 식용 꽃 같은 새로운 식재료를 초콜릿과 융화하는 도전은 밸런스 좋은 혁신적 초콜릿으로서 카카오 문화에 다양성을 선사한다.


“화이트 초콜릿은 카카오 버터, 분유, 설탕이 주재료이다. 봄에 한정으로 선보이는 꽃잎 화이트 초콜릿에는 분유 대신 유자 가루를 넣는데, 산미가 매력적이다. 이 외에도 한국적 식재료를 가미해 밸러스 좋은 초콜릿을 선보이고자 한다.” _아도르 장가영 대표 (@adoreofficial)


싱글 오리진, 개성을 경험하다
초콜릿에도 커피처럼 산지별로 다양한 풍미를 선보이는 싱글 오리진 초콜릿이 있다. 대개는 빈투바 초콜릿으로 접할 수 있지만, 크래프트 초콜릿 전문점에서 소개하는 살라미 스타일의 싱글 오리진 초콜릿도 있고, 유명 마카롱 전문점에서 싱글 오리진 초콜릿 크림을 필링으로 넣어 카카오의 풍미를 전하기도 한다. 산지별로 특색 있는 카카오를 즐길 수 있는 음식도 소소하게나마 우리 주변에 가까이 자리해 있다. 문학평론가 황현산 선생의 말마따나 정성스럽게 음식을 느끼려는 자에게 맛은 언제나, 도처에 있다.


“에콰도르 싱글 오리진 초콜릿에 견과류와 건과일 등을 섞은 살라미를 통해 음식으로서 카카오의 품격을 표현하고자 했다.” _트리투바 김병현 대표(@treetobar)

“가장 중요한 것은 필링인 가나슈 초콜릿 크림이 입안에서 얼마나 빠르게 녹아 흐르고 부드럽게 조화를 이루느냐이다. 더불어 계절별로 어울리는 카카오빈으로 싱글 오리진 초콜릿의 풍부한 맛을 경험하게 하고 싶다.” _미완성식탁 최창희 대표 (@incompletetable)


카카오 음료, 고전을 경험하다
식재료의 근원을 알면 새로운 것을 이해하고 만들기가 한결 수월해진다. 그 근원이 전통이고, 고전이다. 카카오를 먹던 근원을 따라가보면 처음에는 음료 형태였다. 멕시코에서는 지금도 옛날 방식 그대로 만든 핫 초콜릿을 즐긴다. 카카오빈을 무쇠솥에 볶아 절구에 빻은 후, 시나몬 스틱·스타아니스 등 향신료를 혼합해 끓인 물에 넣고 흑설탕, 칠리 파우더, 우유 등을 섞어 마시는 참푸라도champurrado가 그것이다. 카카오빈 대신 카카오 매스나 다크 초콜릿을 넣기도 한다. 예부터 정력제로 각광받은 전통 음료인데, 유럽에 처음 전해졌을 때는 마시면 기분이 좋아지는 신비의 음료라 여겨 귀족들이 사교 음식으로 즐겼다. 이후 각 나라와 지역에서 고유한 스타일로 발전했으며, 핫 초콜릿에 에스프레소를 붓고 휘핑한 생크림을 올리는 이탈리아의 전통 음료 비체린bicerin이 대표적이다.


“초콜릿은 달기만 하고 몸에는 좋지 않다는 인식이 여전히 남아 있다. 하지만 원재료인 카카오는 인류와 오랜 세월을 함께할 만큼 맛있고 건강에도 좋은 훌륭한 식재료다. 쌉쌀하면서도 달콤한 풍미를 음료와 음식으로 만끽하기 바란다.” _요리 연구가 박현신(@orto_madre )


멕시코 몰레 소스, 요리를 경험하다
초콜릿은 카카오가 원재료인 음식으로, 다른 음식의 부재료가 되기도 한다. 멕시칸 요리의 아이콘이자 살사 소스와 양대 산맥을 이루는 몰레 소스가 대표적이다. 몰레mole는 ‘갈다’라는 스페인어에서 유래한 것으로, 그 종류도 다양하다. 칠리 몰레를 만들어 간단히 토르티야를 찍어 먹어도 맛있지만, 가장 유명한 것은 몰레 포블라노mole poblano이다. 다진 양파, 다진 마늘 등 갖은양념을 볶다가 칠리 파우더, 쿠민 파우더, 시나몬 파우더, 말린 오레가노, 치포틀레 페퍼 등 향신료와 함께 다크 초콜릿, 토마토퓌레, 견과류를 넣어 끓인 후 블렌더로 갈아 만든다. 닭고기와 특히 잘 어울리며, 여기에 흰쌀밥까지 곁들이면 금상첨화다.

구성 및 글 신민주 | 사진 박찬우 기획 및 요리 박현신(@orto_madre) | 스타일링 민들레(7doors) | 촬영 협조 및 도움말 윤형원·고유림(카카오다다 대표, 02-3446-7007)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21년 2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