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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던 아트의 출발 아르데코 Art Deco
뉴욕의 하늘에 높이 치솟은 마천루, 1920~30년대에 제작된 영화 속에 등장하는 가구, 실내 장식, 테이블웨어 등에서 아르데코 스타일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클래식에 기반을 둔 현대적인 디자인, 기하학적인 문양이 특징인 이 양식은 가구, 주얼리 등 다양한 모티프로 여전히 현대 사회를 장식하고 있답니다. 한 세기 가까이 사람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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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으로 볼 때 20세기는 그 어느 때보다 격변기였다. 1909년 프랑스의 루이 블레리오는 자신이 제작한 블레리오 XI형 비행기를 타고 도버해협을 횡단했고, 1905년 아인슈타인은 상대성 이론을 발표하여 뉴턴의 운동법칙에 기초를 둔 고전 물리학을 뿌리째 흔들어놓았다. 같은 해 파리에서 열린 미술전 ‘살롱 도톤’에는 하늘을 겨자처럼 노란색으로, 나무는 토마토처럼 붉은색으로 칠한 작품이 출품된다. 관람객들은 경악했고 비평가들은 악평을 퍼부었다. 색채가 강하고 형태도 다듬어지지 않아 원시적인 그들의 그림은 비평가들이 보기에 들짐승처럼 거칠게 느껴졌던 것이다. 그래서 포비즘Fauvisme, 즉 야수파野獸派라고 불렀다. 그렇지만 당대 사람들을 혼란에 빠뜨렸던 이들은 아방가르드한 20세기 현대 예술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고 할 수 있다. 야수파 화가 마티스가 색채로 변혁을 주도했다면 입체주의Cubism 화가 피카소는 형태에 눈을 돌렸다. 그는 아프리카 목조각에서 영향을 받아 형태를 해체하고 새로운 방식으로 재결합했다. 20세기 초까지 아르누보 양식이 예술 전반에 걸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는데 사회적으로 합리성과 단순성, 그리고 구조적 기능성을 요구하게 되면서 아르데코가 태동하게 되었다. 세기말에 등장한 아르누보 스타일이 부드러운 곡선을 사용해 섬세한 묘사에 중점을 둔 반면 20세기 초에 나타난 아르데코는 꽃이나 동물, 인간의 형체를 모티프로 한 기하학적 형태를 단순하게 표현했다. 수공예적인 특징을 강조한 아르누보 스타일은 대량 생산에 부적합한 반면 고전적이면서도 기능적인 직선미를 추구한 아르데코 스타일은 기계화되어가는 근대 산업사회와 잘 맞아떨어졌던 것이다. 유선형의 디자인은 항공기뿐 아니라 자동차 디자인에도 사용되었으며, 가구나 램프 같은 생활용품 디자인에도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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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화가 클래식과 로맨티시즘, 인상주의를 통과해 안착한 곳은 결국 추상이었으며 그 기수로 바실리 칸딘스키와 피에트 몬드리안을 꼽을 수 있다. 실내장식이나 건축 그리고 가구에 도입된 기하학적인 추상성은 실용적이냐 아니냐 하는 논제를 떠나 장식예술의 주 요소로 자리 잡게 된다. 칸딘스키의 이름을 붙인 바실리 체어가 바우하우스의 젊은 예술가 마르셀 브로이어에 의해 만들어진 것도 이즈음이다. 네덜란드의 건축가 게리트 리트펠트는 몬드리안의 그림을 의자로 조형화했다. 1920년 미국의 웨스팅하우스 사가 피츠버그에 라디오 방송국을 열고 대통령 선거전의 개표 결과를 중계하여 큰 영향을 미치자 방송국이 급속히 증가하여 1922년에는 미국 전역에 무려 5백69개나 생겼다. 텔레비전은 1928년에 미국에서 실험 방송한 이후 독일, 영국, 소련, 프랑스 등이 연이어 실험 방송을 했으며 1935년 독일이 본격적으로 방송을 개시, 이듬해 베를린에서 열린 올림픽대회가 텔레비전으로 실황 중계되었다. 본격적인 매스미디어 시대가 도래한 것이며 아르데코 디자인은 이러한 첨단기기들에 그대로 투영되었다.
1925년 고고학자 카터가 투탕카멘의 무덤을 발굴하자 그 과정이 수년간 미디어의 톱 뉴스로 다루어지며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당연히 예술가들에게는 자극으로 다가왔을 터이다. 이번에는 투탕카멘의 마스크 같은 이국적인 색채들이 디자인에 응용되었다. 이즈음 멕시코시티에서 아즈텍 문명이 재발굴되면서 그들의 찬란한 문화유산이 아르데코 디자인에 그대로 적용되었다. 1920년대를 프랑스에서는 ‘광기의 해’, 영국에서는 ‘포효하는 20년대’라고 불렀다. 광기의 해에 나타난 예술 사조는 당시 사람들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첨단성을 보여준 것이리라.
 
photo01 색채, 재료, 디자인 미학 아르데코는 가구, 보석, 직물, 세라믹 그리고 인테리어 등 다양한 분야에 적용되었는데, 이는 우아함과 고상함을 기본으로 한 과거의 스타일에서 벗어나 새로운 디자인의 장을 여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아르데코의 색채는 강렬하다. 아르누보의 주류가 파스텔 톤이었다면 아르데코는 반짝이는 크롬색, 검은색 등을 사용했다. 밝은 색상과 강렬하고 뚜렷한 색채 대비를 통해 단순하고 기하학적인 형상을 표현했던 것이다. 빨간색과 검은색 그리고 은색은 이 양식의 전형적인 색채 조합인데, 빨간색과 검은색은 기하학적 형태들의 배경을 마련하며 은색은 주요 장면과 뚜렷한 지구라트Ziggurat나 다른 기하학적 이미지를 표현하는 데 사용되었다. 아르데코 예술가들은 주로 크롬을 사용하여 은색의 효과를 냈으며 반짝거림이 느껴지는 유리 또한 많이 사용했다. 이러한 색들을 더욱더 강조하기 위해 짙은 녹색이나 오렌지색, 검은색 등을 테두리 색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당연히 포비즘의 색채 감각이 영향을 미쳤는데, 이와 더불어 디아길레프 발레단의 발레 장식도 반영된 결과이다. 1910년에 공연된 <셰에라자드Scheherazade>는 <천일야화>를 소재로 한 발레 작품인데 아라비아를 배경으로 한 무대 의상과 장식은 당시의 유행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어두운 색 대신 청회색, 오렌지색, 담홍색, 짙은 군청색 등을 즐겨 사용한 오리엔탈리즘의 의상을 입은 발레리나들을 브론즈 소재의 조각품으로도 많이 만들어졌는데, 현재 이러한 발레리나 조각들은 앤티크 시장에서 컬렉터들의 인기를 얻고 있는 아이템이다.
 
1. 왼쪽 아르데코 스타일로 만든 체스트의 황금 손잡이 장식. 오른쪽 아이보리 색상과 곡선의 형태가 어우러진 체스트는 아르데코 디자인을 한눈에 보여준다. 1925년 제품. 프랑스 장식미술관 소장.
2. 왼쪽 영국의 아르데코 도공 클라리스 클리프가 만든 물병. 오른쪽 덴마크의 폴 헤닝겐이 디자인한 테이블 램프.
3. 화려한 색상으로 아르데코 이미지를 살린 코모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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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데코는 대량 생산 시대에 걸맞은 현대적인 디자인 양식이다. 그렇지만 이 시대의 작품 중에는 단순함, 깔끔한 형태, 유선형 같은 겉모양과 구상주의 형태에서 나온 기하학적이고 양식화된 장식에 고급스러움과 세련미를 담기 위해 매우 다양하고 값비싼 재료를 사용한 것도 많다. 천연 재료인 옥, 은, 크롬, 상아, 흑요석, 무색 수정 등을 사용했으며 인조 재료로 당시 새롭게 개발되어 인기를 얻으면서 전화기나 라디오에 사용되기 시작한 베이클라이트, 플라스틱, 바이타글라스, 철, 콘크리트 등도 자주 사용되었다. 고유의 질적 요소와 함께 상대적 단순성, 평면성, 대칭성, 요소들의 변함없는 반복 등을 반영했다. 장식적 모티프는 초기 고전 양식을 비롯해 아메리칸 인디언과 이집트의 전통 문양, 자연물 등에서 얻었다. 따라서 누드, 동물, 잎사귀, 태양광선 등을 형상화한 장식이 아르데코 스타일의 또 다른 특징이다. 이 외에 현지에서 생산되는 목재나 텍스타일이 재료로 이용되었으며 뛰어난 아르데코 작가들은 보석, 가구, 장식물 등 개인의 장기를 살린 제한된 범위의 품목들을 디자인했다.
건축물과 생활용품에 스며든 디자인 1918년에 출현하여 1939년까지 지속된 아르데코 양식은 뉴욕 맨해튼의 고층 빌딩 사이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뉴욕 록펠러 센터를 실내장식한 도널드 데스키, 크라이슬러 빌딩으로 유명한 윌리엄 반 알렌의 역작들이 기념비적인 랜드마크로 맨해튼 거리에 아름다운 자태를 드러내고 있다. 뉴욕의 명물로 확고히 자리한 슈레브와 램, 하몬이 장식한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은 20세기 아르데코 스타일의 가장 대표적인 상징물로 두고두고 오는 세대에 우뚝 서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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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구 디자이너로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자크 에밀 륄망이 있다. 1925년 아르데코 전시회에 그가 출품한 실내장식은 한 시대의 모델로서 크게 영향을 남겼으며 오늘날 앤티크 경매에 자주 등장한다. 그리고 르네 랄리크의 유리 디자인은 전 분야에서 빛을 발했는데 향수병과 주얼리, 조각, 테이블웨어, 램프 등의 영역을 개척했다. 그 외에도 모리스 뒤프렌, 건축가 르코르뷔지에, 금속공예가 장 퓌포르카, 패션 디자이너 에르테, 인공 보석 세공인 레몽 템플리에와 장 푸케 레네 로베르, H. G. 머피와 비벤 닐슨, 동상 조각가 시파루스 등이 있다. 패션 디자이너 폴 푸아레와 그래픽 아티스트인 에드워드 맥나이트 코퍼 등은 많은 고객을 확보했던 대표적인 작가였다.
1960년대에 부활한 아르데코 스타일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면서 아르데코 양식은 점차 쇠퇴해갔다. 그러나 1960년대 후반 베비스 힐리어가 <아르데코>라는 책을 펴내면서 이에 대한 관심이 새롭게 부활했다. 아르데코라는 말은 1925년 파리에서 열린 산업 박람회의 공식 명칭에서 따온 용어가 오늘날까지 그대로 불리게 된 것이다. 그런데 왜 1960년대에 와서 다시 1920년대 스타일에 관심을 갖게 되었을까. 아마 전쟁으로 인해 단명했던 당시의 스타일에 대한 아쉬움 때문이 아닐까 싶다. 파리에서 출발한 아르데코는 신흥 공업국으로 급부상한 미국에서 오히려 크게 호응을 얻었으며 많은 분야에 적용되었다. 그래서인지 뉴욕과 워싱턴 등 미국 전역에서 아르데코 소사이어티가 결성되어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아르데코만 전문으로 다루는 앤티크 딜러가 25년 전부터 등장했을 정도로 이미 수십 년 전부터 이 디자인의 마니아들이 존재하고 있었다. 첫선을 보인 지 어느덧 한 세기가 다가오지만 아르데코풍의 가구, 보석 등은 여전히 현대 사회를 장식하고 있으며 갈수록 마니아층이 두터워지고 있기도 하다. 아르데코 스타일은 현대적 감각을 추구하는 요즘의 디자이너들에게도 많은 영감을 주고 있다. 유럽이나 미국 등에서는 아르데코 페어가 자주 열리는데, 기발하고 참신한 디자인의 제품이 많이 선보인다. 앤티크 수집가를 비롯하여 디자인 분야에서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한번 쯤, 아니 기회가 닿는대로 가서 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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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예술사조 가운데 앤티크에 초점을 맞추면 아르누보와 아르데코로 범위가 좁혀진다. 그 이유는 이들 사조가 특정한 분야에 그치지 않고 생활 전반에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아르데코 스타일은 침대, 장식장, 체스트, 식탁, 테이블 등의 가구를 비롯해 라디오와 같은 소품, 인테리어 장식품에 이르기까지 생활 스타일의 직접적인 모티프였던 것이다. 일상 용품으로 실용화되어 많은 사람들의 생활 속에서 사용되었고 공간을 풍요롭게 장식해주었다. 시점을 현재에 맞추어도 이들 사조의 영향은 그 무엇보다 우선하는 것 같다. 2005년 인테리어 디자인 트렌드 중 하나로 아르데코풍이 주목을 끌 것이라고 한다. 이처럼 아르데코 스타일은 끊임없이 되살아나서 사람들의 미적 욕구를 넉넉히 채워주고 있다.
 
 
1. 왼쪽 과감한 생략과 단순한 선을 사용해 디자인했다. 오른쪽 1931년 영국의 J. K. 화이트가 나무와 숲을 모티프로 디자인한 라디오.
2. 왼쪽 승리의 여신을 속도감 있게 표현한 장식물. 가운데 피에트 몬드리안의 그림을 조형화한 의자로 아르데코 시대를 대표하는 제품 중 하나이다. 리트펠트 작품. 오른쪽 장미목의 고급스런 질감과 일본풍의 자개 상감 기법 부케 장식이 눈에 띄는 캐비닛. 1927년 제품.
4. 왼쪽 발레 공연 ‘세헤라자데’의 무대 장식은 아르데코 디자이너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다. 오른쪽 이집트 모티프를 이용한 포스터로 독일의 월터 슈나켄버그가 디자인 한 것.
 
김재규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05년 3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